78. 그의 한양 체류기. (2)
송상 행수 석태는 무작정 나이기온을 팔고 있는 공랑(公廊)에 뛰어들었다.
“이보시오. 이곳의 책임자를 아니 주인장을 좀 불러주시오.”
“나이기온을 사러 오신 것이오? 그렇다면 따로 책임자를 부르지 않아도 되오. 나이기온 옷은 추위를 막고자 만든 옷이라 미리 만들어져 나온다오. 지금 추워서 얼어 죽겠는데, 만드는 시간이 걸리면 안 되지 않겠소? 그러니 몸에 맞는 옷을 찾아서 바로 구매하면 되오.”
“아, 아니. 그 일 때문이 아니오. 나는 송상의 행수로 있는 석태란 사람인데, 이 공랑의 주인이 혹여 문경 사람이오?”
문경이라는 말에 안쪽에 있던 사냥꾼 출신 오추가 나왔다.
“문경 전씨가 운영하는 공랑이 맞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오?”
오추는 석태란 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작년 문경에서 옷을 사간 송상의 석태요. 주인을 뵐 수 있겠소?”
“도련님은 궐에 계시기에 퇴청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거요. 그런데, 무슨 일이요?”
“아, 도련님이 출사를 하셨소? 퇴청하시고 이곳으로 오신다면 기다리겠소이다.”
석태는 자신이 가지고 온 나이기온을 송상의 근거지에 모두 두고, 문경 전씨가 운영하는 공랑을 염탐하듯 지켜봤다.
‘허리까지 오는 나이기온 단옷은 닭 7마리, 무릎까지 오는 장옷은 닭 10마리에 팔고 있구나.’
석태는 자신들이 만든 원가와 비교해보니 그렇게 크게 남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단옷은 닭 4마리, 장옷은 닭 6마리가 들어가니 전씨네가 파는 가격과 동일하게 팔아도 되겠구나. 아니지. 그렇게 하면 아니 된다.’
석태는 여름내 옷을 만들며 들어간 시간을 계산해보고, 자신이 대행수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이문을 계산하자 단옷은 닭 9마리, 장옷은 닭 12마리는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전가의 도령과 어떻게 가격을 담합해서 올릴 수 있을까...’
“이보시오. 도련님이 늦으시는 것 같은데, 머무시는 곳으로 같이 갑시다.”
“원래 잘 오지 않으시는 거요?”
“퇴청을 제시간에 하시면 늘 오시고, 일이 많아 늦으시면 바로 집으로 오시오. 갑시다.”
석태는 오추와 일꾼들을 따라 다연재(茶宴齋)에서 밥도 얻어먹으며 기다리니 해시(밤9시~11시)가 넘어서야 전가의 도령이 퇴청해서 왔다.
“아니, 시발! 주옥같아서 벼슬 못 해 먹겠네! 아오! 주먹이 운다 울어!”
석태는 분노의 일갈을 쏟아내는 원길을 보자 말도 꺼내지 못하고 구석에 주저앉았다.
***
“자네가 고령군(신숙주)께서 직접 데려다준 이인가?”
“네. 문경에서 온 전원길이라고 합니다.”
“그래. 건번이라는 것을 제대로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고? 어디 그 건번이라는 것 좀 보세나.”
나무상자에서 꺼내진 건번을 호조의 여러 관원이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몇몇은 직접 먹어보기도 했는데, 수분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건번을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병영에서 병사들에게 주게 되면 반란이 일어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이빨이 부러질 것 같은데. 이걸 누굴 보고 먹으라고 하는 건가?”
“건번은 평상시에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긴급 시에 전쟁 중에 불을 피우지 못할 때를 위해서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두면 장마철이라도 한 달은 보관할 수 있는 음식입니다.”
“장마철에 한 달?”
관원들이 무려 한 달이나 보관할 수 있다는 말에 놀란 듯하자, 원길은 뿌듯해졌다.
‘역시 다들 이 건번의 효용성을 알아주는구나.’
“그리고, 보릿고개나 자연재해로 인해 급하게 사람들을 먹여야 할 때 이 건번을...”
“장마철에 한 달을 진짜 보관해 봤나?”
건번을 열심히 설명하는 원길의 말을 끊고 훤칠하게 잘생긴 이가 나섰는데, 다들 눈치를 봤다.
“한 달 내내 비가 오는 장마철에도 멀쩡하다고 했는데, 진짜 보관해 봤나?”
“아, 아직 한 달 내내 비가 내릴 때가 없었기에...”
“그럼, 미확인이지 않나. 내가 이 건번을 보니 상자 속에서 자기들끼리 부딪혀 부러진 것도 있더군. 그러면, 부서진 곳을 통해서 습기가 더 빨리 스며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아, 저 그것이...”
원길은 생각지도 않은 건번의 약점을 물어보자 어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이 건번은 잡곡을 섞어 만든다고 하던데, 각 잡곡의 비율에 따라 딱딱함이나 맛이 다를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보관할 수 있는 기간도 달라지겠지. 이런 것은 생각해 두었나?”
원길은 기분이 나빴지만, 이 자가 하는 말이 다 옳은 말이었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지랄하는 놈이 자기보다 잘생긴 놈이다 보니 괜히 더 지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문제를 확인하라고 주상전하께서 저에게 벼슬을 내린 것 아니겠습니까? 방금 물어본 것을 토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되었습니까?”
“뭣? 하하하. 이놈 문경 촌에서 올라왔다고 하더니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삐딱하게 구는구나. 뭐 오늘은 첫날이니 여기서 끝내마. 하지만, 면신례(免新禮)때 피똥을 싸게 될 것이다.”
“쯧쯧쯧. 자네 큰일이네. 방금 나간 저 치가 누구인지 아는가?”
“누구요?”
“우의정을 지내신 권람 어르신의 아들인 권일이네.”
“권람 어르신이라면 돌아가셨지 않소?”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친우들이 다 그대로 있지 않나? 지금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호조의 좌랑이지만, 같이 일을 하셨던 영의정(한명회)이 떡하니 계시니, 여기에 계속 있겠는가? 금세 올라갈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자네는 찍힌 것이네. 쯧쯧.”
“그럼, 여기 면신례는 보통 어느 정도요?”
원길도 관직에 나오면 신입 신고식인 면신례를 격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뭐, 형조에 비하면 그리 심하진 않아. 가장 심했던 게 소피(오줌) 받아먹기일 뿐이었어. 하하하. 얼굴이 노래지는구만. 면신례 때 더 독하게 받지 않으려면 먼저 미리 손을 쓰게나. 아참, 나는 직장(直長)으로 있는 유진이라고 하네. 시전 쪽 일을 맡고 있지.”
“아, 그럼 물어볼 것이 있소이다. 공랑(公廊) 점포를 얻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 문경에서 올라오는 것을 팔아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오?”
“호오. 고령군(신숙주) 어르신이 직접 데리고 와서 그런지 특이하구만. 사족인데, 물건을 팔 생각을하다니. 따라오게, 마침 육조거리 앞에 세금 미납으로 비게 된 공랑이 하나 있네.”
***
“도련님. 같이 일을 하신다는 직장 어르신들께 나이기온 옷을 일일이 한 벌씩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권일이란 분에겐 장옷도 한 벌 보냈습니다.”
“그래. 장사는 좀 되느냐?”
“문을 연 지 사흘 만에 50벌 넘게 팔았습니다요. 추운 겨울이라 옷을 맞춰 입게 되면 옷이 만들어지기 전에 얼어 죽는다는 말로 이야길 하니, 다들 수긍을 하고 나이기온을 사 갔습니다. 그래도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겠다고 하는 자들은 치수를 재어두었습니다. 문경에서 바느질 어멈들이 며칠 내에 도착하니 그 이후로는 주문 제작도 가능할 것이옵니다.”
“다행이군. 그럼 나는 면신례에 다녀오지.”
“힘내십시오. 그리고 고주망태가 되면 언제든 저희가 모시고 올 터이니 뒤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원길은 마음도 무거웠고, 발걸음도 무겁게, 천우정(天優亭)이라는 기생집으로 들어섰다.
이미 돈을 치러서 그런지 기생들이 절을 하며 맞이했다.
“호조의 면신례는 저쪽입니다.”
기생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는 원길을 보며 여인들이 수군거렸다.
“저 양반 문경에서 올라왔다고 하던데, 재산이 아주 많은가 보오. 천석꾼 집안이라도 되는 것인가?”
“처첩으로 들어가려고 이미 조사를 했수?”
“조사는 무슨. 원래 면신례에 들어가는 비용은 같이 벼슬을 제수받은 동기들이 내는 것인데, 저 양반은 혼자서 비용을 다 내어 버렸다지 뭐유. 그래서 재산이 많은가 보다 추측하는거유.”
“소 4마리 값을 치렀다고 하던데, 혼자서 소 4마리를 처리할 정도라면 천석꾼에 버금가겠구먼. 문경의 전원길이라고?”
기생들이 원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자 자연스레 부엌에서 일하는 어멈들에게도 그 이야기가 들어갔다.
“뭐? 호조 면신례에 온 사람이 문경의 전원길이라는 선비라고?”
“네. 제가 똑똑히 들었어요. 천석꾼 집안처럼 소 4마리의 값을 혼자서 치렀다고 하던데요.”
천우정에서 부엌어멈으로 손님상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을 책임지는 도락 어멈은 아는 사람의 이름에 깜짝 놀랐다.
도락 어멈은 여름날에 문경의 요리숙에서 새로운 요리를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같은 또래의 다른 어멈들과 요리를 배우며, 언문도 깨우쳤고, 어깨너머로만 배우던 요리의 기본을 제대로 배웠었다.
‘그리고, 내가 나일 수 있게, 어디서도 부끄럽지 않은 요리숙의 요리 인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지.’
자신에게 그런 가르침과 의미를 알려준 스승과 같은 원길 선비에게 특별한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다들, 준비하던 것 외에 다른 요리도 해야겠다. 오늘 호조의 면신례에 올라가는 상에는 우리 천우정의 모든 것을 넣도록 한다. 재료도 최고급으로 모두 꺼내어라.”
도락 어멈의 말에 급격히 바뀐 재료와 요리로 인해 아랫사람들이 토를 달만 했지만, 그 누구도 블평,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내게 배운 신 요리를 가르쳐주신 분이 오늘 오셨으니, 재주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도락 어멈은 문경의 요리숙에서 동기들과 같이 요리를 했던 즐거운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웃으며 주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들어오는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상을 뒤엎을 것이야!”
“그러면 난 그 뒤엎은 상의 음식을 내 버선에 모으지. 하하하.”
“그럼, 내가 그 버선을 들고 원길이에게 먹이면 되는건가?”
“그렇지. 그거야! 하하하.”
면신례를 집행하는 선배들이야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했지만, 그런 면신례를 받아내야 하는 원길은 죽을맛이었다.
‘제길. 요강에 오줌 받아 먹이거나 똥 밭에 뒹굴게 하는 것은 나이기온 옷을 받았으니 빼주겠다는 건가?’
단순히 상을 뒤엎고, 땅에 떨어진 것만 먹이겠다고 하니 옷을 뿌리고 돈질한 게 먹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시대에 이 무슨 똥군기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면신례라는 악습은 고려 말부터 전해져 내려져 온 유서 깊은 악습이었다.
물론, 처음 이 면신례가 만들어졌을 때는, 음서제로 관료가 된 콧대 높은 고관의 후손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만들어졌었다.
부모의 배경만 믿고,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는 그런 건방진 신입들에게 가해지던 행사였는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존의 조직에 참여해도 되는지를 확인받는 허참례(許參禮)의 성격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조직(?)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 주는 대신 고통을 받으라는 그런 악습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면신례로 인해 정몽주의 증손자 같은 명문의 후예가 죽어 나가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위에서 단속해도 면신례가 더 퍼질 뿐이었다.
추후 영조시대 때 승문원(承文院 외교문서를 담당하던 기관)의 모든 관원들을 삭직(削職 벼슬을 빼앗다) 시킴으로써 추후 관료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면신례가 없어졌다.
물론, 그래도 할 놈들은 했다.
“오! 이거, 나이기온 옷을 돌릴 때 알아봤지만, 천우정에 얼마를 가져다 바친 건가? 요리 때깔이 다르구만.”
“그러게. 이러면 내가 상을 뒤엎기가 곤란하잖아. 하하하.”
호조의 관원들은 매년 천우정에서 면신례를 했음에도 오늘 같이 푸짐하게 상을 다 채우듯이 올라 온 상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맛에 반해버렸다.
“이거 상 뒤엎어서 흘린 거 주워 먹게 하기에는 이 음식들이 너무 아까운데.”
“나도 동의! 뭔가 다른 걸 해! 쩝쩝쩝.”
“오, 고기가 살살 녹는구먼. 버리기 아까워!”
“그럼, 이렇게 하지. 이 상위에 올라와 있는 음식으로 우리가 한 번도 먹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을 만들게 시키지. 만약,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먹어봤거나, 들어본 음식이라면 다음에 또 천우정에서 한턱내는 것으로 하고. 어때?”
“좋아 좋아. 난 찬성. 권일이 자네는 어떤가?”
“흠. 나도 동의를 하지. 대신 조건을 걸지. 우리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라도 맛은 있어야 하는 거야. 맛이 없다고 그 누구라도 이야길 하면, 천우정에서 이만큼 다시 사야 하는 거야.”
‘아니 시바, 그러면 다 먹어놓고 맛없다고 하면 다시 또 돈 써야 하는 거잖아. 이 쌍놈의 거지새끼 같은 놈들.’
원길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눈은 상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요리숙을 하며 이리저리 원종에게 배운 것이 많다 보니, 상위에 놓여 있는 것들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그럼, 이제껏 한번도 드셔보지 못한 음식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
[작가의 말]
실록에 여러 번 면신례의 폐해가 기록되어 있고, 영조 시대 이후 관료조직에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이미 병영에서 신입 병사들에게 행해지던 얼차려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군대를 가지 않은 대학에서도 이런 것이 있으니... 참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졌고, 널리 퍼진 악습입니다.
물론, 이런 신입 길들이기는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다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루키 헤이징으로 미국 대학이나 프로스포츠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