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8화 (38/327)

38. 다리와 꼬리. (3)

삼겹살을 먹을 땐 상추와 깻잎에 싸 먹는 것이 국룰이다 보니 채소가 땡기긴했다.

그리고, 실제 조선에도 겨울에 온실을 만들어 야채를 길러 먹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전순의 영감이 남긴 산가요록에 실려있는 ‘동절양채(冬節養菜)’가 바로 그것이었다.

겨울에 야채를 심어 먹는 법이란 뜻인데, 남향으로 해가 들 수 있게 황토를 쌓고, 종이를 바른 창과 짚을 덮어 만드는 온실이었다.

물론, 온도 조절을 위해 흙바닥 아래로 온돌 구들장을 깔고, 습도 조절을 위해선 가마솥에 물을 끓여야 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온실이었다.

산가요록이란 책이 발견된 직후 실제 책에 쓰인 그대로 온실을 만들어 보니 현대의 온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겨울에 봄 채소를 기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원종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기에 온실을 만들어 상추와 채소를 재배하고 싶었지만, 가성비가 문제였다.

온실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작으로 불을 피워야 했는데, 상추와 채소를 위해 나무 장작을 태우는 것 자체가 낭비로 느껴졌다.

“다른 고기도 한번 구워 보거라.”

형의 말에 이미 익은 삼겹살을 옆으로 치우고 목살과 항정살을 솥뚜껑에 올렸다.

[촤아악~.]

달아오른 솥뚜껑에 금세 고기가 익었다.

“흠. 항정살이라는 건 좀 질기구나. 익으면서 노랗게 변하는 것도 좀 없는 것 같고.”

“큰 도련님 이 목살은 그래도 먹을 만 합니다. 드셔 보세요.”

고기가 익을 때마다 집게로 집어 형과 어멈들에게 먹이고 나도 먹어봤다.

‘처음의 맛은 확실히 내 기억 속의 삼겹살과 목살이었지만, 계속 씹다 보니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구나.’

냄새를 잡기 위해 고기 위로 후추를 뿌려 먹으니 후추 향에 돼지 냄새가 가려져 먹을만했다.

하지만, 후추가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였다.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새우젓과 된장을 고기에 발라 먹어보기도 했고, 간장과 식초에 절인 야채에 싸 먹기도 하며 효과적으로 돼지 잡내를 없애는 방법을 고민했다.

구운 마늘과 김치, 된장까지 좀 짭짤하게 같이 먹자 어느 정도는 냄새를 가릴 수 있었다.

돼지고기를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음? 퉤퉤.”

고기를 잘 먹던 형이 갑자기 항정살을 뱉어 버렸다.

“이건 왜 이러는 것이냐? 다 익었기에 밖으로 내어둔 것을 한번 먹어 보거라.”

원길의 말에 원종과 덕구 어멈이 삼겹살과 목살을 집어 먹었다.

“응?”

“어맛!”

원종은 삽겹살을 씹다 말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뭐지 왜 이렇게 냄새가 심한 거지?’

원종은 이 삼겹살 부위가 이상한 건가 싶어 목살과 항정살도 먹어봤지만, 역시나 냄새로 인해 제대로 씹지도 않고 뱉어냈다.

“이거 갑자기 냄새가 엄청나게 심해졌는데요.”

“그렇지? 아까 먹었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의 냄새가 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소금 후추의 맛으로 고기가 먹을만했는데, 지금은 소금 후추가 있다고 해도 먹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난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음. 도련님들 이건 아마 고기가 식으면서 냄새가 올라온 것 같습니다요. 지금 굽고 있는 목살이나 항정살도 솥뚜껑에서 바로 집어 먹는 것은 냄새가 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기가 식으면서 냄새가 올라온다는 말이군요.”

덕구 어멈의 말에 원종은 직접 고기를 먹어 확인했다. 진짜 식은 고기에서 냄새가 더 강력하게 났다.

“아마도, 화기(火氣)가 돼지의 역한 냄새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익었다고 솥뚜껑 밖으로 들어내다 보니 화기가 엷어지며 냄새도 다시 올라온 것 같습니다.”

다시 솥뚜껑에 올려 구우면 냄새가 없어질까 싶어 익은 고기를 다시 올렸지만, 냄새가 약해지진 않았다.

“음. 처음 구울 때 만 화기가 냄새를 눌러 주는 거 같네요.”

원종은 현대에서 겪어보지 않은 문제다 보니 뚜렷한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 고기를 굽고 나서 바로 먹어야 하는 조건이 걸리면 이건 요리에 쓸 수 없는 고기가 아니냐.”

원길은 냉정하게 말하며 젓가락을 놓았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니 왜 돼지고기가 조선 시대에 각광받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냄새라면 집돼지든 멧돼지든 키워서 잡아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식은 멧돼지 고기의 역한 냄새를 경험하게 되자 그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소가 150만 마리 키워질 때 돼지는 80만 마리 밖에 안 키워졌던 이유도 이 냄새 때문일 것 같았다.

새로운 돼지 먹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멧돼지 고기는 직화로는 못 먹을 것 같습니다. 덕구 어멈. 솥을 준비해주게. 다른 고기는 삶아봐야겠어.”

바로 솥뚜껑이 치워지고 큰 솥이 올려지는 동안 분해된 멧돼지 고기를 보니 족발이 눈에 띄었다.

달유가 가죽을 벗길 때 깊게 벗기다 보니 돼지 껍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족발을 하기에는 최적의 상태였다.

‘그래 수육 족발로 간다.’

일반적인 수육보다는 갖은 양념이 들어가는 족발이 냄새 제거에는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솥에 물을 올리고, 족발과 남은 고기들을 모두 때려 넣었다. 30분 가까이 삶아내곤 물을 버리고 다시 새 물을 넣었다.

돼지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 두 번이나 끓인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넣었다.

이후로는 5년 이상 묵은 간장과 된장, 마늘과 생강을 다져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파와 녹차를 넣었는데, 비린내가 아닌 고깃국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팔각이나 커피 원두, 흑설탕 같은 향신료가 있었다면 냄새를 더 없앨 수 있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대로 2시간 넘게 푹 삶아내었는데,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아니 왜 맛없게 허여멀건 색이지. 아 노두유(老豆油)가 없구나.’

한국식 족발은 중국 음식인 동파육이나 장육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래서 검은색을 내는 노두유와 알싸하고 단맛을 내는 팔각이 꼭 들어갔다.

80~90년대의 족발은 대부분이 이 노두유와 팔각으로 맛을 낸 족발들이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그런 중국스러운 맛이 싫은 가게 주인들은 노두유나 팔각을 대신해 카라멜 소스를 넣었고, 치킨 스톡도 넣는 집이 생겨났다.

‘치킨스톡이나 흑설탕은 당연히 없고, 카라멜도 없고. 뭐로 맛있어 보이는 노란 갈색을 내지.’

물에서 삶아진 고기를 꺼내 다시 구워 색을 입혀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조선 시대에 간장 말고, 검은색을 내는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바로 오징어와 문어의 먹물이 떠올랐으나, 그걸 구해오다가는 일주일이 넘을 터였다.

이탈리아 쪽 애들이 많이 하는 보리를 검게 볶아 검은색을 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원종아, 그럼 저건 언제 먹을 수 있는 것이냐?”

“저 국물이 쫄면서 고기에 흡수가 되어야 하니 앞으로 한시 진 이상은 더 끓여야 할 겁니다.”

“한 시진? 그럼 내 약 좀 먹고 오마.”

원길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예전부터 한약을 먹고 있었다.

“아! 맞다! 한약!”

원종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들 한 번쯤 먹어봤다시피 한약의 색은 검은색이었다. 어떤 약재가 들어가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한약은 검을수록 좋은 약재가 많이 들어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 그 검은색을 만들어 내는 약재는 따로 있었다.

“덕쇠 아재 집에 숙지황(熟地黃)이 있습니까?”

“있기는 있사오나...”

내가 후추를 부엌에서 털어 나올 때처럼 말을 흐리는 덕쇠 아재를 앞세워 창고로 움직였다.

지황(地黃)이라는 식물의 뿌리를 술에 담갔다가 찌는 걸 3~4번을 반복하면 검은색의 숯처럼 변하게 되는데, 이를 숙지황이라 불렀고, 이 숙지황이 한약의 색을 검게 하는 약재였다.

물론, 한약의 색만 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보해주고, 근육과 뼈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약재였다.

“오 당귀(當歸) 말린 것도 집에 있었습니까?”

덕쇠 아재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지만, 숙지황 한 움큼과 당귀 한 움큼을 들었고, 감초(甘草)도 한주먹 챙겼다.

당귀는 속칭 한약 냄새라고 하는 그 한약 냄새를 만드는 약재였고, 감초는 단맛이 나는 장점도 있었지만, 약재들을 조화롭게 다스려 주는 역할을 하는 약재였다.

조리고 있는 족발 솥에 당귀와 감초를 넣었고, 숙지황은 색을 확인해 가며 한 톨씩 넣었다.

“킁킁 이건 무슨 냄새냐? 설마 약재를 넣은 것이냐?”

원길은 자신이 먹고 온 한약과 같은 냄새가 솥에서 나자 눈을 부라렸다.

“형님이 드시는 약을 빼돌린 게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흠흠. 누가 의심했다고 했느냐? 녀석 나를 뭘로 보고. 흠.”

“집 안에 있던 약재를 조금 넣었는데, 이로 인해 이 음식은 이제 약선음식이 되었습니다. 산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던 멧돼지의 고기에 혈(血)을 보해주는 약재가 들어갔으니 멧돼지와 같은 힘을 주는 음식이 된것입니다.”

“오! 멧돼지와 같은 힘? 그거라면 좋지.”

원길은 약재의 냄새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코를 킁킁거렸다.

나도 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니 당귀의 한약 냄새가 멧돼지의 잡내를 확실히 지운 것 같았다.

저녁 시간까지 조리고 조려 국물이 다 없어질 정도가 되자 족발과 고기를 꺼내 썰기 시작했다.

두시진 넘게 솥에서 조려진 탓인지 손만 대어도 족발의 뼈가 살과 분리가 되었다. 손으로 뜯으면 뜯어질 정도로 고기가 흐물흐물해지니 이빨이 좋지 않은 노인들도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와 형님께 먼저 올렸고, 집안의 모든 종을 모아 족발과 수육을 먹였다.

“엄맛! 이게 무슨 냄새여? 이거 보약 냄새 아니여? 이거 우리가 먹어도 되는 것인감?”

종들은 뼈까지 발라져 갈색의 맛깔스러운 빚을 내는 고기를 받고서도 쉽게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큰 도련님이나 대감마님이 먹는 보약에서 나던 냄새가 났기에 혹시나 경을 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한겨울이기도 하고, 멧돼지를 잡았기에 특별히 보약과도 같은 약선족발을 했으니 다들 이거 먹고 이 겨울을 잘 넘기길 바라네. 어서 먹게나.”

원종이 얼른 먹으라고 하고, 어멈들이 같이 먹으면 좋은 새우젓과 된장, 절인 채소를 챙겨주자 그제야 종들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오 만득이! 이게 보약의 맛이여? 고기의 맛이여? 이렇게 순 살코기를 먹어보는 게 얼마 만이여?”

입안에 들어온 고기는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만큼 부드러웠는데, 몸에 좋다는 한약 맛이 은근히 올라오는 것이 진짜 몸보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맛있는 고기를 막내 도련님이 주시니 올겨울에는 아무도 안 죽고 넘어가는 거 같구먼.”

“그러네. 겨울 추위를 막아주는 이 옷도 있지만, 올해 들어 우리가 고기를 얼매나 먹었나. 다른 집안 종들은 이야길 해도 안 믿을 거야.”

“진짜 고기가 입에 올라 붙는구만. 그런데, 돼지를 예전에 내가 잡아먹었을 때는 냄새가 심해서 아예 못 먹었다는 말이여. 그런데 이 멧돼지는 어떻게 이리 냄새가 없는 것이여?”

“그것이 도련님이 하는 그 식료의술인가 하는 그 술법 아니시겠는가.”

“오, 그러고 보니 그렇구먼. 도련님이 해주신 것이라 이렇게 맛이 있는 것이지. 엇, 박봉이 저 넘은 또 먹으려고 줄을 섰네. 나도 더 먹어야겠네.”

120kg이 넘는 멧돼지였기에 고기는 충분했고, 60명이 넘는 노비들이 든든하게 고기를 먹었음에도 고기가 남을 정도였다.

“덕구 어멈. 이 뼈들을 모아 다시 솥에 담고 물을 부어 고우게나.”

“네? 이 뼈로 또 뭔가를 하실 겁니까요?”

“그래. 약선족발도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달래주고 몸을 일으켜 세워주는 음식이 있네. 그리고 남은 고기는 얇게 편으로 썰어두시게나.”

덕구 어멈은 마음을 달래주고, 몸을 일으켜 세워준다는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있다는 말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했다.

*

[작가의 말]

사실, 족발도 6.25 이후 북한 피난민에 의해 만들어 진 음식입니다.

평안도의 유민들이 서울 장충동에 터를 잡아 살면서 돼지 족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공산주의를 피해 한국으로 도망친 화교들의 요리와 섞여 우리가 아는 족발이 되었습니다.

노두유나 팔각 같은 중국 향신료가 족발에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족발을 먹는 요리법이 많습니다. 그러니 오늘 다들 족발 시키십시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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