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9화 (39/327)

39. 다리와 꼬리. (4)

“아버님. 막내가 만든 약선족발이라고 합니다.”

“족발? 족(足)자를 한자로 쓴다면 겹치는 말이지 않으냐? 발발이라니.”

“아, 그러고 보니 겹치는 말이군요. 막내에게 들었을 때는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흠. 뭔가 이유가 있어서 겹말을 쓴 것이겠지. 그런데 이게 멧돼지로 만든 것이라고?”

“네. 한번 드셔보십시오.”

“허허. 돼지고기를 먹게 될 줄이야. 네 할아버지가 봤다면 아주 신나게 웃었을 거다.”

“뭣 때문에 그렇습니까?”

“고기를 이렇게 자주 먹으니 웃으셨을 거다. 그리고 그 고기가 돼지고기이니 더 웃으셨을 거다. 아마, 나라가 바뀌고 기뻐하셨을 때처럼 기뻐 웃으셨을 것이다.”

“네? 할아버지는 나라가 바뀌면서 관직을 내려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기뻐하신 겁니까? 혹시 태조대왕과 인연이 있으셨습니까?”

“아니다. 할아버지는 개성에서 태어나 태조대왕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기뻐하신 이유는 고기를 눈치받지 않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아, 전조의 불교가 강성했을 때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었지요.”

“그렇다. 그래서 네 할아버지는 나라가 바뀌는 걸 아주 기뻐하셨었다. 바로 소를 잡아 열흘 내내 소고기를 잡수셨지 덕분에 나와 네 고모도 소고기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단다. 그때 닭과 돼지도 잡게 해서 잡수셨는데, 돼지고기를 먹어보시고는 도저히 먹을 고기가 아니라고 노비들에게 다 내렸었지. 그런 돼지고기가 멧돼지 고기로 다시 상에 올랐으니 네 할아버지가 아주 재미있다고 웃으셨을 거다.”

“하하하. 맞습니다. 저도 처음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을 때 돼지 냄새가 나서 먹다가 뱉었었습니다.”

“그렇지 그 냄새 나는 고기가 약선족발이 되어 상에 올랐으니 아버님이 어떤 웃음을 지으셨을지 궁금하구나. 참으로 고기를 좋아하시는 양반이셨는데... 그래 우리도 들자꾸나.”

전기환은 어릴 때 본 것도 있고, 돼지고기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었기에 제아무리 원종이가 한 요리라 해도 그 냄새를 어쩌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안에 들어온 족발에서 은은한 한약재의 냄새가 풍기며 부드럽게 고기가 씹히자 깜짝 놀랐다.

“이게, 정녕 돼지고기가 맞는 것이냐? 어찌 이런 부드러운 맛이... 소고기와는 다른 풍미와 부드러움이 있구나. 먹길 잘했어. 허허허.”

“저도 처음 먹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돼지 껍질이 있는 부분은 탄력이 넘쳐 탱글탱글하고, 그 안쪽의 고기는 씹으면 바로 바스러져 버릴 정도로 부드럽다 보니 이 고기를 신수인 기린(麒麟)의 고기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었을 것이옵니다.”

“그래, 만약 네가 이게 멧돼지고기라고 하지 않고, 기린의 고기라고 했다면 나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처음 느껴보는 맛이로구나.”

“여기 마늘과 생강, 꿀을 버무린 양념을 올려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합니다.”

원길은 아버지의 상에 놓인 족발 위로 마늘 양념을 올렸는데, 달콤한 마늘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식사를 돕는 계집종들도 벌꿀이 섞여 있는 마늘 향에 침을 꼴깍 삼킬 정도였다.

“음! 달콤하면서 마늘의 알싸한 향이 두꺼운 듯 부드러운 족발과 만나니 천상의 맛이로구나. 허허허허. 내가 돼지고기의 맛을 칭찬하게 될줄이야.”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구워서 기름지게 먹었을 때와는 천양지차의 맛입니다.”

원길도 꿀 마늘 양념에 감탄하며 족발과 수육의 맛에 감탄했다.

물론, 부자의 젓가락과 입은 움직이는 속도를 높여 갔다.

***

원종은 큰 가마솥 두 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돼지 뼈 국의 간을 봤다.

“음. 되었다. 이 정도면 맛이 우러나온 것이다.”

숙지황과 한약재의 영향으로 흰색의 뽀얀 국물이 아닌 갈색빛이 도는 국물이 되었지만, 오히려 한약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고깃국물의 잡내를 없애주며 흥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릇에 밥부터 퍼게나.”

박복 어멈이 노비들이 먹는 흰 사기그릇에 잡곡밥을 수십 개 펐고, 그 그릇에 황녀 어멈이 돼짓국의 국물을 부었다.

그릇을 이어받은 덕구 어멈이 잘게 썬 고기 수육과 시래기를 밥에 올렸고, 파와 다진 마늘, 산초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식 어멈이 된장과 새우젓을 그릇에 넣으며 숟가락을 꽂아 주었다.

“자자, 나처럼 줄을 서서 한 그릇씩 가져가게나.”

본래, 아침 식사는 노비라고 해도 상에 아침을 차려 먹었지, 이렇게 그릇을 들고 가 음식을 받아먹으라고 하는 예는 없었다.

그릇을 들고 다니며 밥을 받아먹는 사람은 이 시대에는 거지밖에 없었다.

물론, 오일장 같은 시장통에서야 사람이 갑자기 몰리기에 평상에 걸터앉아 그릇을 들고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특별한 때였기에 다들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막내 도령이 특별한 음식이라며 챙겨주는 것이기도 했고, 양반인 막내 도령도 그릇을 들고 평상에 앉았기에 다들 불만 없이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을 놀렸다.

“후아~ 뜨뜻한 국물이 장난이 아니구만.”

“그러게 아침 추위가 그냥 날아가 버리는데. 이 이마에 땀 좀 보게나.”

몇몇은 춥지도 않은지 나이기온 옷을 벗어두며 국물을 들이켰다.

“이게 어제 먹은 멧돼지 고기로 끓인 것 같은데, 이렇게나 돼지고기가 맛이 있는 줄은 몰랐네. 이 군내 비슷한 특이한 냄새가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이젠 뭔가 식욕을 당기는구먼.”

“으허허. 국물까지 뚝딱 먹으니 든든하구만. 내 먼저 일어나네.”

노비들은 추운 겨울 땔감을 만들거나, 눈을 치우는 일을 하는 것을 아주 귀찮아했었다.

하지만, 뜨뜻한 국물에 돼지고기 몇점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오늘은 왠지 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바람에 늘 어깨가 움츠러들던 노비들이었지만, 든든하게 채워진 밥심 때문인지 자신감도 생겼고, 마음까지 편해지고 여유로워졌다.

그런 마음의 편안함과 여유는 이 집안의 노비라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노비들을 보는 원종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이 노비 60명이지, 아버님이나 우리 가족들까지 치면 70명이 넘는 대인원이다. 매일 70여 명의 밥을 차리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양반이 먹고 난 상을 내려 노비들에게 내릴 때도 따로 상을 차리고 해야 하기에 부엌의 어멈들 손에서는 물기가 마를 새가 없었다.

더구나, 가스 불도 아닌 아궁이 불에 온수가 나오는 싱크대도 없는 상황이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을 줄여야 해. 상을 차리기보다는 긴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단체 급식 형태로 가야 해. 그래야 어멈들도 편하고, 먹는 사람도 편해진다.’

궁극적으로는 긴 탁자와 의자를 도입함으로써 식문화에 변화를 가져와야 했다. 그래야 음식 장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호, 호, 호랑이닷!!”

아침을 든든히 먹고 마당과 대문 앞의 눈을 쓸고 있던 삼식이는 눈에 들어오는 호랑이의 검고 노란 털가죽에 기겁했다.

“호, 호랑이가 나타났닷!”

비명과 같은 고함에 사람들이 뛰쳐나왔는데, 이제는 원종의 사람이 된 두 사냥꾼도 있었다.

“어디요? 어디에 있소?”

달유는 창을 오추는 활을 들고 나왔는데, 아무리 살펴도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 문 밖을 보시오!”

급히 두 사람이 뛰쳐 나가보니 과연 삼식이의 말처럼 호랑이가 있었다.

다만, 이미 죽어 사냥꾼의 어깨에 가죽으로 올라가 있었다.

“여어! 둘 다 때깔이 좋구만. 누구는 범 쫓는다고 피똥을 쌌구만.”

“성달이! 우리가 쫓던 그놈을 잡은겐가?”

“후하하하 맞네. 자네들을 깜짝 놀라게 해서 굴러떨어지게 만들었던 그놈이라네.”

“같이 갔던 밀구는 어디에 있나? 관에 소식을 전하러 갔나?”

달유는 같이 산에 올랐던 네 사람 중 한 명인 밀구가 안보이자 성달에게 물었다.

“그게... 죽었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세 이야기가 길어. 그리고 이 댁의 어르신과 이야기할 것도 있어.”

“무슨 이야기?”

달유가 성달에게 되물었지만, 성달은 그저 어깨에 짊어지고 온 호랑이의 가죽과 사슴의 사체가 무겁다며 전씨네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그러니깐, 저 호랑이가 우리 포획 틀에 잡혀 있었다는 그 말이더냐?”

“네. 대감마님. 보름 가까이 쫓던 녀석이온데, 어제저녁 소릴 듣고 가보니 포획 틀에 잡혀 있었습니다. 주인이 있는 포획 틀이다 싶어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저 놈이 난동을 부리며 포획 틀을 부수려 하여 제가 창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청하러 왔습니다요.”

“흠. 우리 집안 사람이 포획 틀을 확인하러 가기 전에 마음대로 죽인 죄가 있긴 있구나.”

“네. 하지만, 포획 틀이 부서질 것만 같았기에 손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그건 지금 포획 틀을 가지러 간 이들이 오게 되면 알게 되겠지.”

원종은 이 성달이라는 사냥꾼의 얄팍한 수를 알 것 같았다. 포획 틀에 걸린 호랑이를 보곤 욕심에 먼저 죽이고 가죽을 벗긴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버지도 이자의 얇은 수를 어느 정도는 눈치챈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호랑이를 잡을 때는 그 공에 따라 갑, 을, 병까지의 공적을 매긴다고 하던데, 너는 너의 공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당연히 갑의 공적은 포획 틀을 설치한 전씨 가문의 공 입니다요. 저는 그저 포획 틀을 빠져나갈 것 같은 호랑이를 죽인 것이라 ‘병’의 공적만 인정받아도 충분할 것입니다요.”

“주제는 알아서 다행이구나.”

아버지는 그래도 사냥꾼이 주제를 알고 처신한다고 여기는 듯했지만, 원종은 생각이 달랐다. 달유와 오추가 같이 왔던 밀구란 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포획 틀의 주인인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가죽까지 벗겨왔다는 것이 괜히 의심스러웠다.

원종의 눈엔 성달이라는 자가 잔머리가 빠른 고단수로 보였다. 아마 포획 틀에 잡힌 호랑이의 가죽을 혼자 다 먹으려고 하다간 탈이 생길 것 같자, ‘병’의 공적이라도 안전하게 챙기기 위해 수를 쓰는 것 같았다.

뭐, 혼자 먹기 위해 도망친 자를 찾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왠지 찝찝한 느낌이었다.

“도련님. 포획 틀을 가지고 왔는데, 저 사냥꾼의 말이 맞습니다요. 한쪽 틈새가 벌어져 벌렁거리고 있습니다요.”

“멧돼지를 잡았을 때 그놈이 난리를 쳤고, 호랑이까지 설쳤을 테니 이리된 것이구먼.”

원길은 우그러져 벌어진 틈을 보곤 그럴 만하다며 고갤 끄덕였다.

“우리가 설치한 포획 틀 안의 범을 건드린 것은 괘씸하고 죄를 물어야 하지만, 도망칠뻔한 것을 네가 막았으니 그 죄는 묻지 않겠다.”

“감사합니다요. 대감마님.”

사냥꾼 성달은 죄를 묻지 않겠다는 말에 절을 했다.

“그리고, 공적을 따져 병의 공적을 인정하니 오승포(五升布) 50필을 내리도록 하마 그것이면 되겠느냐?”

“추... 충분합니다요.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오승포 150필이면 노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는데, ‘병’의 공적으로 50필을 받는 것이라 충분한 보상이긴 했다.

“아버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가 산짐승에게 손해를 입었기에 아전에게 조수구제를 요청했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보면 공적인 업무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전이 조수구제에 대한 상신을 올리고 현에서도 따로 착호인에 대한 일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잡았다고 아전에게 보고하자는 말이더냐? 이런 문제는 그냥 우리가 처리를 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잔일까지 아전에게 알리게 되면...”

“네 형님 맞습니다. 이런 일도 아전에게 보고하게 되면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가 결정 나게 될 수도 있기에 이제까지는 알리지도 않았습지요. 하지만, 제가 거두어들인 사냥꾼들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이들은 착호갑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착호갑사?”

“네. 공식적인 사냥의 성공이나 증거가 있어야 그 공을 인정받아 한양에서 착호갑사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아전에게 알려주고 정식으로 상고를 올리게 된다면, 이 성달이라는 자는 아마 바로 착호갑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포획 틀에 걸린 호랑이를 마음대로 잡은 죄를 지은 자이지만, 은혜를 베풀겠다는 말이더냐?”

“네. 형님 맞습니다. 이곳 문경은 산이 많아 늘 조수구제에 대한 고민이 있는 곳입니다. 착호갑사에게 은혜를 베풀어 둔다면 나중에 산짐승을 처리할 때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이 알려진다면, 착호갑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앞다투어 우리 가문에 몰려들어 산짐승들을 잡아줄 것입니다.”

“오호, 그렇구나. 우리가 공을 인정해 주다 보면 착호갑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멧돼지는 물론이고 산짐승을 잡아서 알아서 오겠구나.”

“네. 그러니. 정식으로 알리고, 저 사냥꾼을 위해 상신을 해주어야 합니다.”

“좋다. 그렇게 하거라. 성달이라고 했느냐? 너는 며칠 여기에 묶으며 기다리도록 하거라.”

“네.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되었다. 일단 시간을 벌었으니 이 찝찝한 느낌을 확인해보자.’

포획 틀을 만들 때 야장에게 강철로 만들게 하여 큰돈을 들였었다.

아무리 멧돼지나 호랑이가 틀 안에서 난리를 치더라도 강철로 된 포획 틀을 저리 우그러트리는 건 불가능 한 일이었다.

‘분명, 저놈이 숨기는 뭔가가 있다.’

*

[작가의 말]

본문에 나온 것처럼 족발은 한자인 발 족(足)과 한글인 발이 겹쳐진 겹말입니다.

‘발발’이란 뜻입니다.

일설에는 1960년대 돼지 족을 판다고 한자와 한글을 간판에 병기하는 과정에서 ‘足발’이라고 표기했는데, 그걸 읽은 사람들이 족발이라고 읽기 시작하며 족발이라는 단어가 퍼진 것이 아닐까 하는 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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