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다리와 꼬리. (2)
“가죽 주머니 더 없어?”
삼식이는 가죽 주머니에 김이 펄펄 나는 멧돼지의 피를 받고 있었는데, 멧돼지의 크기가 큰 만큼 가지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다 쓰고도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데, 에잇! 바로 마셔야겠다.”
삼식이는 떨어지는 멧돼지의 피를 받아먹겠다고 입을 벌리고 멧돼지 아래로 몸을 움직였지만, 발에 차여 옆으로 뒹굴었다.
“어이쿠 왜 이러십니까요?”
삼식이는 벌떡 일어나 화를 내려다, 발길질 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고는 그저 눈만 멀뚱거렸다.
“산짐승의 피를 바로 마시면 아니 된다. 가죽 주머니에 든 선지는 굳혀서 끓여 먹으면 되지만, 생피는 잘못 먹다가는 병에 걸리게 된다.”
“네에? 저렇게 김이 펄펄 나고 있는 신선한 피인데, 어디가 나빠져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 피안에는 고(蠱)가 산다. 피를 생으로 마시게 되면 그 고(蠱)가 네 몸으로 들어와 정기를 갉아먹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래 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게 될 것이다.”
“헉. 차, 참말입니까요?”
“그래 참이다. 그리고,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고 나서 염통이나 간을 생것으로 먹는 일도 있는데, 바로 잡아 신선하다고 하더라도 생간이나 염통에도 선지처럼 고(蠱)가 살 수 있다.”
원종의 말을 들은 달유는 흠칫했다. 멧돼지의 배를 갈라 생간을 먹으려 했던 것이었다.
“멧돼지의 대가리는 포획 틀의 미끼로 쓸 것이니 대가리까지 가죽을 벗길 필요는 없네.”
“네에.”
달유는 상대적으로 연한 배 부분의 가죽을 벗겨내었고, 배를 가르자 창자가 후드득 하며 쏟아져 나왔다.
“윽. 냄새야...”
배 밖으로 나온 창자에선 추운 겨울이다 보니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김과 함께 멧돼지 특유의 냄새도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늑대의 비린내는 가소로울 정도의 엄청난 냄새였는데, 마치,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았던 축사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멧돼지의 창자는 냄새가 너무 심해 저희도 먹지 못하니 바로 땅에 묻어 버리겠습니다요.”
사냥꾼인 달유도 냄새를 견디지 못하겠는지 버리려고 했다.
원종도 그냥 땅에 묻어 버릴까 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창자와 부속물은 모두 챙기게나. 먹을 사람이 있겠지.”
“네? 네 알겠습니다.”
달유는 가죽을 마저 벗겨 그 안쪽으로 돼지의 창자와 부속물을 감쌌다.
그러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생간을 주워 들었다.
평상시라면 맛있겠다며 칼로 썰어 먹었을 생간이었지만, 원종의 말에 군침만 삼키다 용기내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정녕 간이나 염통을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요?”
“어허 안된 데도. 방금 잡은 생간이 몸에 좋다고 하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고(蠱)의 무서움과 비교하자면, 먹지 않는 것이 100배는 더 이로울 것이네.”
“그, 그 정도로 무서운 겁니까 그 고(蠱)라는게.”
“자네의 뱃속에서 구더기가 기어 다니며 자네의 창자를 긁어먹는다고 생각해보게,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잖습니까?”
“그래 눈에 잘 보이지 않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것을 먹다 죽은 사람이 있네. 삼국지에 나오는 진등(陳登)을 아는가? 그는 민물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유명한 화타도 손을 쓰지 못하고 고(蠱)로 인해 요절했네.”
천의(天醫)라는 화타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말에 그제야 달유는 간과 염통을 포기했다.
“너희들도 다 새겨들어라. 집에서 키운 것이든 산에서 잡은 것이든,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으면 절대 생식을 하면 아니 된다. 그들의 몸에 있던 고(蠱)가 들어오면, 채 사십까지도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의 평균 수명은 왕이나 양반들은 45세 전후, 서민들은 그보다 짧은 35세 전후였다.
천민의 경우에도 35살 전후로 죽게 되기에 원종이 말한 사십까지도 살아보지 못할 터였지만, 병에 걸려 더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은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시킨 대로 육회나 생선회를 먹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살아갈 수도 있겠지.’
“고기와 생선은 절대 날것으로 먹지 말고, 언제나 불로 익혀서 고(蠱)를 죽이고 먹어야 한다. 알겠느냐?”
“네에.”
현대에서야 기생충 알약 몇 알로 기생충 대부분을 죽일 수 있지만, 지금 시대에는 몸 안의 기생충을 죽일 방법이 없으니 아예 안 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흐응! 크아앙!]
달유가 가죽을 다 벗기고, 고기를 잘라내어 정리하는데, 산 위에서 섬찟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버.범이닷!”
“호랑이 소리다!”
울음소리 한번에 겁 많은 종들은 벌써 다리를 부들거릴 정도로 겁을 집어먹었다.
‘아차, 피 냄새 때문이구나.’
“어서 마무리하거라! 삼식이는 멧돼지 대가리를 포획 틀 안 고리에 걸어라.”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노비들은 알아서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산을 뛰듯이 내려왔다.
다들 지금 당장이라도 호랑이가 뒤에서 덮칠까 봐 미친 듯이 뛰었다.
***
“후우, 후우. 낙오한 사람은 없지?”
“네 도련님. 헉헉...”
산을 벗어나 시야가 넓어지자 마음도 안정이 되었는데, 그제야 공포가 사라지며 기대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포획 틀에 멧돼지 머리를 달아두었으니 호랑이가 그걸 먹으러 들어갔다가 잡히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호랑이 가죽 1장이면 한양 시내의 초가집을 살수도 있는 가치라고 했었기에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윽, 이건 무슨 냄새냐? 원종아. 설마 이 냄새 나는 창자로 순대를 만들 생각이냐? 이 냄새는 아무리 마늘이나 생강을 쓴다고 해도 없애기 힘들 것 같은데. 이 냄새를 참아가며 누가 먹겠느냐?”
원길 형은 물론이고 덕구 어멈도 멧돼지 창자 냄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냄새가 심해도 먹을 게 부족한 때가 오면 먹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가을에 비축한 식량이 있을 테지만, 춘궁기가 오면 냄새나는 돼지 창자라도 줄을 서서 먹을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멧돼지 고기를 제대로 살펴보니 안심과 등심의 고기는 그래도 살이 튼실했고, 넓적한 갈빗살과 어깨살도 구워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덕구 어멈. 창자도 씻어주고, 고기들을 물에 담그어 핏물을 최대한 빼주게나.”
핏물이 빠지며 냄새도 같이 빠져준다면 기름기 가득하게 구워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물물로 몇 번이나 핏물을 뺏자 냄새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고, 달유에게 돼지고기 부위에 대해 교육을 했다.
돼지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분리시키는 일은 잘했지만, 부위별로 구분해서 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여기가 안심이고... 여기가 등심이라 부르네. 그리고, 여기에서 여기까지는 목살이라고 하는데...”
“도련님. 이렇게 부위를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까? 같은 돼지에서 나온 고기라면 그 고기가 그 고기 아닙니까요?”
“돼지고기가 거기서 거기 같겠지만, 다르다네. 부위별로 지방이 있는 범위가 다르고, 근육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네. 아 그리고, 이 흰색의 비계를 지방이라 부르네.”
이참에 지방과 근육, 단백질, 탄수화물을 달유에게 설명했다.
“지방이 많이 끼어 있는 이 항정살과 지방이 거의 없는 안심을 구웠을 때 같은 맛이겠나?”
“부위별로 구워 먹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위를 나누는 것도 이 시대에는 없었고, 직화로 구워 먹는 것도 소고기나 그렇게 먹었지 돼지고기는 늘 탕이나 찜으로 해서 먹는 시대였다.
그저 머리, 목, 몸, 다리, 팔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전부였다.
육식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부위에 따른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부위별로 먹어보며 지방 함량에 따른 고기 맛을 한번 알아보세. 형님과 덕구 어멈을 비롯한 요리숙의 어멈들을 불러오게나.”
***
곁채 마당에 놓인 화덕에서는 불이 피어올랐고, 솥뚜껑 두 개가 화덕 위에 놓였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솥뚜껑에 올려진 돼지비계는 뜨거운 열에 제 몸의 기름을 토해내 솥뚜껑의 겉을 윤기 있게 만들었다.
“이 기름으로 솥뚜껑을 먼저 닦아야 하네. 이 돼지기름이 표면을 번들번들하게 입혀지면 그때 고기를 올리면 되네.”
“저 그런데, 도련님. 왜 솥뚜껑을 이렇게 놓는 겁니까요? 하나는 바로 놓였고 하나는 뒤집혀 놓였는데, 이렇게 따로 놔두는 이유가 있습니까요?”
“그러게. 덕구 어멈의 말처럼 왜 이렇게 솥뚜껑을 달리 놓은 것이냐?”
“여러 가지 맛을 위해 달리 놓은 것입니다. 이 바르게 놓인 뚜껑을 보시면 비계의 기름이 뚜껑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보이십니까?”
“보이는구나. 오, 그러고 보니 이건 기름이 바로 솥 바깥으로 떨어지고, 뒤집혀 놓은 솥뚜껑은 기름이 중앙에 고이게 되는구나. 이 기름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냐?”
“네 맞습니다. 그럼, 고기와 비계가 층을 이루고 있는 삼겹살부터 구워 보겠습니다.”
[촤아악~.]
열을 받아 뜨거워진 솥뚜껑에 삼겹살을 올리자 뜨거운 열에 튀기듯이 익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가득 채웠다.
“오! 이 소리는 뭔가 식욕을 돋우는구나. 처마에 부딪히는 빗소리 같기도 하고, 물고기가 물을 튀기는 듯한 이 소리가 먹음직스럽게 들리는구나.”
“고기가 익으면서 나는 냄새도 그럴 듯한데요. 물로 핏물을 빼고 해서 그런지 썩은 냄새 같았던 비린내가 없어졌어요.”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뒤집으려 하는데, 삼겹살의 두께가 두껍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에이.”
덕구 어멈에게 고기를 뒤집으라 시키고는 덕구 어멈이 차고 다니는 단검을 받아 담장 너머 자라는 대나무를 베었다.
그러곤 대나무 젓가락을 만들었고, 길게 채를 썬 대나무는 끝의 각도를 세워 붙여 줄을 묶어 집게를 만들었다.
“이렇게 집게를 몇 개 만들어 두게. 고기를 불판에 구울 때는 이렇게 집게로 굽는 것이 편하고 좋네. 젓가락도 고기를 먹을 때는 백양목 대신에 대나무로 만든 것을 쓰면 될 것이네.”
집게가 생기자 고기를 들어 자르려고 했으나 가위가 없었다.
“박복아 나이기온 옷을 만드는 곳에 가서 가장 잘 드는 가위를 하나 들고 오너라.”
불판에 구워 먹는 고기문화를 퍼트리려면 이런 나무 집게와 젓가락, 잘 드는 가위가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가위가 오기 전에 집게로 고기를 잡아 덕구 어멈의 단검으로 삼겹살을 썰었다.
칼이 잘 들어서 그런지 가위보다는 못했지만, 썰리긴 썰렸다.
“된장에 찍어드셔도 좋고, 후추와 섞어둔 소금에 찍어 드셔도 됩니다.”
원길 형은 물론이고, 다른 어멈들도 비싼 후추가 뿌려져 있는 소금을 찍어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
“어맛!”
다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감탄사를 터트렸다.
“입안에 고기의 육향이 가득 차는 구나, 소고기와는 다른 맛인데, 이거 뭐라고 해야할 지도 모를 맛이구나. 아! 부드러움이구나. 소고기 직화구이와는 다른 지방이란 것의 부드러움 이구나!”
뜨거운 열에 녹은 지방과 노랗게 익다 못해 황금색으로 겉이 익은 마이야르 반응은 처음 먹어보는 이의 입맛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가위로 한입에 들어갈수 있게 잘라 절단면도 익혀주자 고소한 지방의 맛에 다들 놀랐다.
“그리고 삼겹살을 굽다 보면 이렇게 기름이 모이는데 여기에 마늘과 파, 김치를 넣어 튀기면 됩니다.”
[파파파팍!]
솥뚜껑에 고인 돼지기름에 마늘과 김치를 넣자, 튀김이 구워지는 소리가 나며 난리가 났다.
이내 마늘은 노랗게 익어갔고, 김치도 숨이 죽었다.
“튀긴 마늘을 된장에 찍어 고기와 함께 드셔보십시오.”
구운 삼겹살에 마늘에 된장이면 당연히 깻잎에 상추가 나와야 했지만, 겨울이다 보니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거 겨울 하우스 농사도 해야 하는 건가.’
*
[작가의 말]
기생충에 의한 사망은 젊은 사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2009년 하동에서 미라화된 조선 시대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젊은 20대였습니다.
회 좋아하시고 하신다면 1년에 한 번은 구충제 복용을 추천드립니다!
ps:삼겹살은 원래 1950년대 이전에는 세겹살로 불렸습니다.
지방과 고기가 겹치게 되어 있는걸 보면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으로 이야길 하지, 일겹, 이겹, 삼겹으로는 이야기 안 하잖아요.
그러다 세겹살이 인기가 생기고, 문서화 되며 한자 三겹살 로 표기가 되면서 삼겹살로 이름이 고착화 된 것이 아닌가 추론이 됩니다.
돼지도 원래는 도야지였다가 돼지로 되었구요.
도야지 이전에는 ‘돝’이라고 부르기도 했구요.
이렇듯 음식의 이름을 보면 시대가 보이는 그런 재미가 나름 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