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가장 좋은 단백질원. (1)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 - 브리지트 바르도.’
1980년 프랑스의 유명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에게서 이 말이 나왔을 때, 한국에서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었다.
아니 화제를 넘어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한국은 첫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에 이런 해외 유명인들의 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여론이 주목하니 한국의 동물보호단체들도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었다.
결국, 정부는 서울 올림픽 관광객들에게 이런 개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6.25 전쟁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개고기로 인해 야만스러운 나라로 이미지가 박힐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정부는, 개고기 파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대로변에 있는 보신탕집을 골목 안쪽으로 이전하라고 요구했고, 이전이 불가능하면 그 앞에 큰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보신탕 대신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게 해서 개고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여름 보양식으로 즐겨 먹어왔던 개고기는 80년대부터 터부시되기 시작했고, 2000년 이후 늘어나는 애견인과 TV 동물 농장류의 방송확산으로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젊은 세대들은 거의 개고기를 먹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먹고 싶어도 파는 가게가 없어 먹기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80년대 사람들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말에 개고기를 먹는 게 부끄러운 거구나 하고 느낀 사람도 있었고, 왜 문화상대주의(文化相對主義)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른 결과 브리지트 바르도가 병신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미 세대 간의 입맛 차이가 나버린 이후였다.
젊은 세대가 찾지 않고, 혐오 음식이라고 낙인찍혀 버렸기에 보신탕 가게들도 점점 없어졌고, 그렇게 개고기는 한국에서 먹는 고기 중에서 가장 비주류인 고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터부시 되는 개고기가 조선 시대에는 가장 사랑받는 고기였다.
소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국법으로 엄금하니 잡아먹기 힘들었고, 돼지는 크기도 작고, 똥을 먹여 키웠기에 그 냄새가 심했다.
그리고 달걀을 낳아주는 닭을 잡아먹기엔 계속 달걀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되니 백성들은 닭도 쉽게 잡아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개는 소나 돼지, 닭과는 달랐다.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았고, 영양분이 부족할 때는 자신이 알아서 쥐나 새를 사냥해서 먹었기에 먹이에 대한 부담감도 적었다.
또한, 무리 생활을 하며 주인을 배신하지 않아 쉽게 키우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조선 시대 최고의 단백질 원이었다.
“아차! 늑대를 잡고 나서 방혈(放血)을 하지 않았구나.”
원길은 요리를 알게 되면서 짐승을 잡은 후 피를 빼지 않으면 피가 고기 사이에 굳어버려 비린 맛을 일으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굳은 피가 고기의 맛을 떨어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종도 방혈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죽은 지 시간이 지나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늑대를 보곤 지금이라도 멱을 따 피를 뽑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형의 말처럼 먹으려면 방혈을 해야 했다.
“덕구 어멈 지금이라도 피를 뽑을 수 있게 멱을 따게.”
원길의 말에 가파치 마을 출신인 덕구 어멈이 칼을 들고 나섰지만, 그보다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어르신 아무리 칼을 잘 쓴다고 하더라도 여인이 하기에는 힘든 일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다리가 아파 산에 따라오지 못했던 사냥꾼 달유가 나섰다.
“늑대 가죽도 범이나 곰 가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겨울에 잡은 늑대 가죽은 털이 풍성해 비싸게 거래가 됩니다. 제값을 받으려면 처음 가죽을 벗기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달유는 발등이 부어 쩔뚝거리면서도 늑대의 뒷다리를 묶어 기둥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러곤, 한 뼘 길이의 날카로운 칼로 늑대의 목을 찔러 방혈 할 구멍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났고, 날씨도 추웠기에 목에서는 피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달유는 늑대의 똥꼬에 칼을 집어넣어 길게 아래로 찢으며 가죽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오, 솜씨가 좋구나. 그러고 보니 사냥꾼은 경호원도 되고, 발골도 할 수 있는 멀티 포지션이구나.’
사냥꾼인 두 사람을 더 내 밑에 두고 싶어졌다.
달유는 늑대 가죽을 다 벗기자 배를 갈랐는데, 길쭉한 창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함께, 특유의 고기 비린내가 양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보게 창자는 최대한 자르지 말고 주게나.”
원종은 현대에서 공부를 위해 개고기를 몇 번 먹어보기는 했지만, 그 이미지 때문에 직접 손을 놀려 개고기를 조리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달유가 늑대의 내장을 꺼내고, 고기를 분리하기 시작하자 어떤 요리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늑대의 등뼈와 갈비는 찜으로 하고, 창자는 순대로, 뼈를 발라낸 고기는 개장방식으로 해 먹읍시다. 덕구 어멈은 뼈를 발라낼 때도 피가 고인 고기는 순대에 쓸 수 있게 따로 빼두세요.”
“네 알겠습니다요.”
덕구 어멈이 내 말에 따라 달유를 돕기 위해 나서자 금세 늑대 한 마리가 분리되어 정리되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원종도 옷을 갈아입고는 늑대의 창자를 손보기 시작했다.
창자에는 산 짐승 특유의 비린내와 노린내가 진동했는데, 창자를 뒤집어가며 몇 번이고 씻었다.
‘고려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성공한 고선지 장군을 중국 놈들이 욕할 때 냄새나는 개 창자와 똥을 먹는 놈이라고 욕했다고 하더니, 이 냄새를 맡아보니 그런 욕이 이해가 되는구나.’
물론, 이게 늑대였기에 개보다 냄새가 더 심할 것 같긴 했다.
“등뼈와 갈비로 찜을 하는데, 여기에 염통(심장), 간과 허파도 잘라 서 한참을 찌면 되네. 이후 잡내를 없애기 위해 된장과 천초, 마늘, 생강을 넣고, 무와 말린 시래기도 넣어 다시 한번 끓여내면 등뼈찜이 될걸세. 이건 박복 어멈이 맡게.”
고추와 후추가 있으면 잡내를 잡는 게 좀 더 쉬울 것 같았는데, 후추는 한양이나 부산포(富山浦) 왜관이 아니면 구할 방도가 없었다.
“덕구 어멈은 살을 다 발라내었으면 순대에 쓸 것을 빼고 고기를 삶는데, 간장과 참기름, 마늘, 생강, 깨소금을 넣어 푹 삶게. 고기가 물러져 흩트려질 때까지 삶으면 되네.”
“개장인데 고사리와 토란은 넣지 않으시는 겁니까요?”
덕구 어멈은 개장에 고사리와 토란이 들어가지 않자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건 나중에 들어가네. 흩트려질 때까지 익은 늑대고기를 손으로 일일이 찢은 후에 고사리와 미나리, 토란대, 대파, 콩나물을 넣어 다시 끓이게.”
덕구 어멈이 하는 개장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고 뭔가 비슷한 음식이 떠올라 의문점이 생긴다면, 그게 맞다.
바로 육개장이다.
재료를 보고 육개장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육개장의 원조가 바로 이 개장이었기에 조리 방법이 같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덕구 어멈이 끓이고 있는 개장에 고춧가루와 후춧가루가 충분히 들어가고 개고기 대신 소고기가 들어가면 육개장이 되는 것이었다.
육계(鷄)장 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건 왜 개장이라고 안 쓰고 계장이냐고?
그건, 2000년 이후 몇몇 요리 좀 한다는 한식 요리사들이 육개장에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으며 육계장이라고 표기하여 홍보했는데 이는 육개장의 원 어원도 모른 체 요리의 개성만을 주장한 사례일 뿐이다.
그래서 육계장은 현재 정식 음식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으며, 육개장에 닭고기나 콩고기로 만든 다른 고기가 들어가더라도 육개장으로 통일하여 부르는 게 정식이었다.
“밤과 당근, 시래기, 부추, 파를 잘게 다지고 찹쌀도 가져오거라.”
보통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찜이나 국과 같이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개고기의 가장 별미는 바로 개고기 순대였다.
방혈 되지 못해 늑대고기의 색이 검게 변한 고기를 이용해 순대를 만드는데, 원래 순대에 피가 들어가는 것이기에 쓰임이 딱 맞았다.
물론, 이 개고기로 순대를 만드는 것은 1800년대 이후 후추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는 음식이었다.
고기뿐만 아니라 염통, 간을 잘게 다졌고, 깻잎과 무말랭이도 잘게 다져 순대 속을 버무렸다.
이후로는 창자가 찢어지지 않게 쑤셔 넣는 게 일이었는데, 이건 어멈들에게 맡겼다.
“오! 냄새가 끝내주는구나.”
동시에 세 가지 음식이 만들어지다 보니 냄새가 퍼졌고, 그 냄새는 추워서 방안에만 있던 사람들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살아 있는 늑대를 보기 위해 산에도 오른 아버지와 형에게 먼저 음식이 올라갔다.
찜과 개장이야 평상시에 먹던 음식이었지만, 현대식으로 만든 순대는 처음 보는지라 젓가락이 순대로 움직였다.
“그냥 드시면 안 되고, 소금과 후춧가루, 천초가루를 섞은 것에 찍어 드셔보시지요. 그리고, 된장과 새우젓을 섞어 만든 양념장, 그리고 꿀 겨자 양념에도 찍어 드시면 됩니다.”
“어디 그럼.”
아버지는 소금에, 형은 꿀겨자양념에 찍어 먹었는데, 둘 다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내 소싯적에 평양에서 양고기로 만든 순대라는 것을 먹어보았지만, 이런 맛이 아니었다. 이렇게 씹히는 것이 많고, 고기 핏내가 나지 않는 순대는 처음 먹어본다. 맛이 있구나.”
전기환은 젊을 때 먹어본 양고기 순대와 비교를 하며 이런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고 그때 먹어본 순대와 비교하며 맛에 감탄했다.
“아, 그런가요? 저는 순대란 음식을 처음 먹어보다 보니 원래 이런 맛인 줄 알았습니다.”
원길은 비릿한 피 굳은 냄새가 살살 났지만, 순대 안에 들어간 갖은 야채와 무말랭이의 씹히는 맛으로 인해 아주 입맛에 맞았다.
“그리고, 양 순대는 단순히 소금에 찍어 먹을 뿐이었지, 이렇게 다른 양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님 그때 드셔 보셨던 건, 아마 원나라의 방식으로 만든 것일 겁니다. 이렇게 창자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드는 음식 자체가 원나라를 세운 유목민들이 주로 만들어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새우젓이나 장에 찍어 먹는 방식은 우리의 것입니다.”
“어쩐지 이 새우젓과 장으로 만든 양념장이 순대와 잘 맞는구나. 텁텁할 수도 있는 것을 새우젓의 짠맛이 깔끔하게 맞추어 주니 별미 중의 별미구나.”
“동생아 이 순대라는 것을 닭으로는 못 만드는 것이냐?”
“에? 만들라면 만들 수는 있겠지만, 닭의 창자는 크기가 작아 제대로 속 재료를 넣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걸 진짜 개로 한번 만들어 먹어 봐야겠구나. 어서 너도 먹자.”
그제야 원종도 젓가락을 들었는데, 먹고 보니, 순대가 참으로 맛있었다.
방혈되지 못한 피가 마치 선지의 눅눅한 맛처럼 무게감을 만들었고, 찹쌀이 그 눅눅함에 찰진 맛을 추가해 주고 있었다.
내림상으로 늑대고기 음식들이 내려가자 형수를 비롯한 여자들이 먹었고, 종들과 사냥꾼에게도 음식이 내려갔다.
늑대 한 마리로 만든 것이라 양이 얼마 되지 못했기에 다들 한두 점 먹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하며, 골수를 충족시킨다고도 하니 다친 사람들이 더 먹어야 할 터인데...”
겨우 고기 한 점 주워 먹는 사냥꾼들에게 들리라는 식으로 이야길 흘렸다.
“동생아. 그럼 우리 들개라도 잡아먹는 게 어떻겠느냐? 집안의 개는 다 작고, 쓸모가 있으니 놔두고 들개를 잡아 먹자구나.”
“들개요? 들개가 많습니까?”
“없는 것 같지만 은근히 있단다. 올가미 덫에 늑대가 걸리길 기다리는 것은,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늘보와 같으니 적극적으로 들개를 잡아 먹어보자꾸나.”
이제까지 뭘 먹더라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형이 나서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유난스레 형이 앞장서서 들개를 잡아먹자고 하니 뭔가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