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2화 (32/327)

31. 내 안전을 위해. (3)

“하하하. 행수라는 자가 어찌 그리 행동이 가볍나? 중간에 세워진 생기다 만 다리는 가라앉히고 사람이 아니라 옷을 보게나.”

엄숙하게 이야기하는 원길 형의 말에 석태는 얼굴이 벌게지며 다시 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채월이 옷에 달린 후드 모자를 쓰고, 춥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며 얼굴을 들어 보여주자 보호해주고 싶다는 보호 본능이 일어나 다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허허, 자중들 하시오. 이번에는 외부 활동과 움직임이 많은 중인들을 위한 단옷이오.”

남자의 시선을 잡아끌던 채월이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지 않고 안으로 다시 돌아갔고, 박복 아범이 손에 장도리와 못을 들고 걸어 나왔다.

“짧은 단옷은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옷으로 장옷과 비교하면 두께는 얇으나 활동성이 강한 옷이오.”

박복 아범이 걸어오다 말고 쭈그려 앉아 못을 박는 시늉을 했고, 일어서면서도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짐을 드는 시늉을 하며 활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부녀자용 단옷은 활동성을 강조했으며, 호주머니를 양쪽 밖으로 달아 어멈들의 편의성을 강조했소.”

석태와 김율시는 단옷을 입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박복 아범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뒤이어 나오는 여자에게 눈이 쏠렸다.

흰색의 단옷을 입은 유화란 관기는 손에 빨래 바구니를 들고 나왔는데,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몸을 꼬아대며 걸어오는 모습이 현대 모델의 캣워크와 비슷했다.

“오오!”

“분명 내가 아는 유화란 계집인데, 어찌 이리 달라 보이는 것이냐. 옷이 날개로구나.”

김율시는 분명 자신이 데리고 온 관기들이 맞았으나 이리 달라 보이는 모습에 심히 놀랐다.

그리고, 유화가 바구니를 내려두고 빨래를 하듯이 쭈그려 앉자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부녀자들의 단옷은 추운 밖에서 주저앉아 일할 때를 대비해 남자들의 단옷보다 엉덩이 부분이 더 길게 되어 있소이다.”

유화가 원종의 말에 따라 빨래하듯 손을 흔들자 몸이 흔들렸고, 자연스레 강조된 엉덩이가 좌우로 씰룩거렸다.

“어허 이 사람들, 옷을 보라니깐 옷을! 왜 그리 사람을 보는가. 옷 사러 온 거 아닌가?”

원길 형의 핀잔에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어 들어가는 유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 실제 나이기온을 입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어떠하오? 과연 송도에서 팔릴 것 같소이까?”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아마 나이기온이 송도에 풀리기만 한다면 대박이 날것입니다요.”

송상의 행수답지 않게 흥분해서 이야길 하는 석태를 보니, 미인계와 패션쇼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나이기온 옷을 다 구매하겠습니다.”

“장옷 40벌에 단옷 120벌이 있기에 동전 1800냥인데. 그만큼 큰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오? .”

“그, 그렇게나 옷이 많은 것입니까?”

석태는 처형인 김율시가 며칠 전 40벌을 사 간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도 160벌이나 있자 놀라는 눈치였다.

“옹기와 도자기를 사러 왔기에 그리 큰돈은 없습니다. 대신 송상의 어음(於音)을 드리겠습니다.”

“어음?”

“네. 당장은 돈이 없으니 어음으로 드리겠습니다. 두 달 이내에 결재해드리겠습니다.”

송상의 행수인 석태라는 자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기에 어음으로 거래할만한 신용이나 믿음이 없었다.

하지만, 처형 사이인 아전 김율시를 보고 거래하기로 결정했다.

“좋소. 거래합시다.”

석태가 가지고 있던 400냥을 받고, 나머지 1200냥에 대해 어음을 받았다.

“햐 이 시대에 어음이라니. 신기하네.”

각서처럼 날짜와 금액이 쓰였고, 송상의 인장이 찍힌 어음장을 보니 뭔가 신기했다.

이 어음이란 말은 중국 한자에서 건너온 것 같지만, 사실 순우리말 단어였고, 한자는 음차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 상평통보 같은 엽전, 동전을 몇백 개씩 들고 다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보니 상단들은 이런 어음을 개별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양식이 정해지지 않고, 상단마다 중구난방이었다.

“동생아, 그런데 이거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원길은 황소 3마리에 달하는 큰돈을 벌었음에도 손해가 아니냐며 심각한 듯 이야길 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그렇지 않으냐. 네가 여종들에게 알려줘서 나이기온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솜씨 좋은 침모가 이 옷을 뜯어 본다면 어떻게 만드는지 바로 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후 우리에게 옷을 사지 않고, 저들도 새털을 모아 직접 만들려고 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우리가 손해인 것이 아니더냐?”

“아니, 형님. 언제 이렇게 상재(商材)가 늘어나신 겁니까요?”

원종은 칭찬이 아니라, 진짜 놀라서 물었다.

“하하하. 내 사마천의 화식열전을 보았느니라. 부자와 가난함의 이치는 세상의 이치를 알면 알 수 있다고 하더구나. 내 그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나니 재물이 어떻게 이치를 따라 만들어지고, 움직이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장하십니다. 형님. 그 이치를 송상도 알기에 아마 옷을 뜯어보고 똑같이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도 있는 법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그건 무엇이냐?”

“똑같은 옷을 송상이 만든다고 해도 우리 것이 더 잘 팔리게 해주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원길 형의 말처럼 송상이 카피를 떠서 같은 옷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브랜드화 전략으로 우리가 우위에 서는 방법도 있었다.

브랜드화 외에도 고급화로 모자를 접어서 넣는다거나 호주머니를 안쪽에 만드는 것, 패딩을 양면으로 만들어 뒤집어 입어서 마치 두 벌로 보이게 하는 방법까지 패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형시켜 판매하는 방법은 많았다.

“그리고, 형님. 송상을 알게 되어 우리는 더 이득이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득을 생각한다면 사실, 나이기온을 어느 정도는 넘겨줘도 남는 장사일겁니다.”

“흠. 또 내가 모르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구나.”

“하하하. 일단 모았던 새털도 거의 다 떨어져 가기에 더 이상의 나이기온 옷을 만들기도 힘든 상황이긴 합니다. 그러니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닭과 오리를 길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그 부분은 내 더 신경을 쓰도록 하마.”

“네. 그건 그렇고, 이 붉은 비단 위를 걸어 본 느낌은 어떻습니까? 일이 잘되면 한양에 가서도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수십 명 수백 명 앞에서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한양에서? 오! 판을 크게 하는 것이라면 좋은 일이지. 나는 언제든지 붉은 비단 위에 설 수 있다.”

“네. 꼭 한양에서 붉은 비단 위에 서게 해드리겠습니다.”

***

“어서 마차에 싣게나. 송도로 빨리 돌아가야 해.”

“행수님. 그런데, 송도까지 가지 않고, 한양에서 다 팔아도 되는 것 아닙니까요? 한양을 지나 송도까지 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요?”

“쯧쯧쯧. 내 누차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으냐. 장사 하루 이틀하고 끝낼 것이냐?”

“네? 그게 어찌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요?”

“잘 생각해보아라. 장옷 40벌에 단옷 120벌이다. 우리가 한양에서 팔게 되면 이 옷이 특출난 물건이기에 두 배는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뭐가 남겠느냐? 다시 물건을 사러 문경으로 내려오겠느냐?”

“아아, 그럼 송도로 가시는 이유가...”

“그래, 한양이든 의주든 옷을 팔려면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큰돈을 만질 수 있다. 송도에서 제작해서 한양이든 의주든 팔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시장을 우리가 만들게 되는 것이야. 그러면 나는 대행수가 되고, 너는 행수가 될 수 있겠지.”

“그, 그렇담 어서 갑시다요. 행수어른. 눈보라가 몰아친 데도 이 목 뒤에 달린 모자를 쓰게 되면 눈보라도 무섭지 않습니다요.”

송상의 행수 석태는 이 나이기온 이란 옷이 경남보다 훨씬 더 추운 북방에서 대박을 터트릴 거라고 확신했다.

기존 송상이 거래하던 원단, 포목 시장에 옷을 만들어 파는 완성 옷 시장이 새롭게 생긴다면 그 새로운 시장의 대행수는 자신이 될 터였다.

‘헌데 그 원종이란 어린 도령이 보통이 아니야. 나와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거래하며 흥정을 즐기는 눈치였어.’

석태는 그간 자신이 만나보았던 양반들을 떠올려 보자 확연히 그 도령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무본억말(務本抑末)이라며 상업을 엄금하고 농사와 누에치기만을 강조했던 그런 양반들과는 틀렸어.’

그 도령뿐만 아니라, 자신들 앞에서 장옷을 입고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아주던 장남도 여타 양반들과는 궤가 다른 것 같았다.

‘이런 귀물을 만들어 내는 자라면 예사 인물이 아니겠지. 가까이 지낼만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경남도에 한해서는 우리가 만든 옷이 아니라 전가에서 만든 옷을 받아 팔며 친맥을 만들어 둬야 한다.’

***

“아~함! 아이고 잠이 오는구나. 이놈들 이리 오거라.”

모닥불 가에 앉은 개똥이는 손이 심심해 불가에 누워 있는 땅개를 끌어안아 개의 뱃살을 주물럭거렸다.

“그날 늑대가 왔을 때 네놈들이 나서서 막았어야 이렇게 밤마다 번을 서지 않았을 거 아니냐. 이제 똑띠 해야 한다. 늑대가 오면 바로 튀어 나가 싸우고 해야 한다고 알았느냐?”

개똥이의 말에 개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뿐이었다.

혼자 불 가에 앉아 있다 보니 개똥이는 심심하다 보니 개들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 가에 모여있던 네 마리 개들의 귀가 꿈틀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짖어대며 뒷문으로 내 달렸다.

“에이 씨부럴, 왜 내가 번을 서는 오늘이야!”

개똥이는 몽둥이가 아닌 꽹과리를 들어 두들기며 개들을 따라 뛰었다.

[쟝쟁쟝쟁~ 창챵창~.]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사람들이 뛰어나왔고, 이전과는 달리 몇몇은 닭과 토끼를 키우는 곳으로 뛰어갔다.

“도련님! 닭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다행히, 넘어오기 전에 개들이 눈치채고 짖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자.”

어떤 짐승이 내려왔는지 궁금해서 가보니 짐승이 아니라 피 칠갑을 한 사람이 있었다.

“엇! 도련님 아전의 소개를 받아 온 그 사냥꾼들입니다.”

“사냥꾼?”

그러고 보니 아전 김율시가 처음 왔을 때 타 도에서 데리고 온 사냥꾼이었다.

한 명은 정강이가 부러진 것 같았고, 다른 한 명은 발등이 퉁퉁 부어있었고, 산길을 굴렀는지 온몸에 찰과상을 입고 있었다.

“훅, 훅, 후... 늑대를 쫓다 범을 만나 피하다 다리가 부러졌소이다. 몸이 멀쩡한 둘은 범을 끌고 다른 곳으로 갔고, 우리는 급히 내려왔소이다. 크윽.”

“어서 뭣들 하느냐 방을 비우고 이 둘을 치료해주어라.”

급하게 행랑채 방이 비워지고 둘을 눕히자 정구 어멈이 묵은 된장을 가져왔다.

“된장은 왜 가져 온 것이냐?”

“네? 그게 상처에 발라야 하지 않습니까요?”

“아니 이 멍청한 여편네야. 도련님이 의원이신데 무슨 된장이야?”

된장을 들고 온 정구 어멈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된장을 뒤로 감추었다.

‘아니 잠시만, 내가 식료의라고 했지만, 이런 거 모른다고.’

원종은 식료의는 음식으로 뭘 하는 사람이지 이런 골절상은 못 한다고 이야길 하고 싶었다.

‘군에서나 요리학원에서 칼질하다 다칠 때 무슨 약을 바르고 하는 것까지는 알지만, 이런 환자는 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방에 누워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두 사람을 보니 그렇게 이야길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작정 된장을 바르겠다고 하는 지금 시대의 외상치료보다는 내가 치료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군대에서 받았던 응급처치훈련과 민방위와 영화, 유튜브등에서 다리가 부러진 환자는 부목을 대어 바로 맞추어야 한다는 건 몇 번이고 보았었다.

“독한 술을 가져오거라. 그리고, 가위를 가져오거라, 좀 잘라야 하겠다.”

“네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소인의 다리를 자른다는 말입니까요?”

정강이가 부러져 다리가 삐뚤하게 된 자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말에 얼굴이 퍼레졌다.

“무슨. 옷을 잘라야 치료를 할 게 아니냐. 다만, 부러진 채 산길을 내려오다 비뚤어진 다리는 곧게 다시 펴야 하니 아플 걸세. 내가 어려 힘이 없으니 간이 큰 자가 도와야 하는데 누구 없는가?”

“여기 삼식이와 철구가 젊어 힘이 좋고 강단이 있습니다요.”

사냥꾼의 이를 보호하고 소리를 못 지르게 입안에 천 뭉치를 집어넣었고 치료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내가 사냥꾼의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곤 둘에게 다리를 맞잡게 했다.

“부러져 비틀어진 밑에 다리를 잡아당겨 곧게 만들어줘야 하네. 할 수 있겠나.”

“네에. 맡겨 주십시오.”

“하나, 둘, 셋에 하는거네. 하나.”

입으로는 숫자를 세었지만, 손으로는 바로 맞추라고 했다.

“크으으윽.”

사냥꾼의 입에서 고통을 참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발을 맞추는 둘도 식은땀을 흘리며 발을 곧게 만들었다.

부러진 정강이뼈가 곧게 부러졌다면 이렇게 한 것만으로도 다시 잘 붙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리를 절게 될 터였다.

이 이상은 그저 신에게 맡기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를 부목 삼아 다리에 붙여 붕대로 감아주었고, 발등이 퉁퉁 부어있는 자는 부기가 빠지게 찬물을 묻힌 수건을 덮어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치료의 전부였다.

독한 술로 찢어지거나 한 상처를 닦아주었고, 남는 술을 둘에게 먹여 잠을 재웠다.

‘먹고 사는 문제도 크지만, 다치거나 병 들 때 사람을 살리는 이것도 크구나. 진짜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도 키워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이 급박하여 알고 있는 한도에서 다리를 바로 펴고 부목을 대었지만, 이것보다 더 다친 사람이 생긴다면 현대의 수박 겉핥기식의 치료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역시 도련님은 대단하시네. 따로 의원을 차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 님들아! 그게 아니라고! 이건 개나 소나 다 아는 거라고. 소문 같은 거 내지 말라고!’

32 내 안전을 위해. (4)

“박복아! 새벽엔 일이 급했지만, 분명 늑대 잡으러 산에 간 사냥꾼들이 범을 만났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저도 들었습니다요. 범을 피하려다 다쳤다고 했습니다요.”

박복이도 똑똑히 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렇담 더 큰 일이지 않으냐? 늑대만 있는 게 아니라 산속에 범이 있다는 것 아니더냐?”

“그, 그렇습죠.”

표범인지 진짜 호랑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근방 산에 있다고 생각하니 섬찟했다.

‘가축을 대량으로 키우다 보면, 분뇨 냄새나 동물 특유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게 되어있어 그 냄새를 맡고 온 것일까?’

아마도, 그런 냄새는 맹수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맛집 냄새일 터였다.

사냥꾼들이 잡는 게 힘이 든다면, 내가 알고 있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야 했다.

밟으면 다리가 끼이는 덫을 생각해 봤으나 그건 스프링이 있어야 덫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프링은 코일 강을 둥글게 말아 만드는 것이기에 지금 조선의 금속기술로는 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금속공업이 발달해야 만들 수 있는 스프링 덫을 제외하면, 사각형의 철창으로 된 포획 틀이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그리고, 철사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올가미 덫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박복아 야장에게 가자.”

***

“도련님이 그려오신 이 포획 틀? 이건 소인이 만들 수 있겠으나, 쇠 값이 많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요. 멧돼지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면 200냥은 주셔야 합니다요.”

“꽤나 비싸구만. 그럼 철사(鐵絲)는 혹시 만들 줄 아는가?”

“철사도 필요하십니까? 철사는 저기 만들어 둔 게 있습니다요.”

야장은 철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는지 자신만만하게 철사를 내놓았더

하지만, 현대의 가느다란 철사를 봤었던 원종의 눈에는 철사의 굵기가 균일해 보이지도 않았고, 올가미 덫을 만들 만큼 얇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기에 포획 틀을 주문하고, 철사도 30냥 치나 샀다.

‘산의 아무 곳이나 올가미 덫을 설치한다고 동물이 잡히진 않겠지. 사냥꾼들에게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물어보자.’

제대로 올가미 덫을 놓기 위해서는 사냥꾼들이 필요했기에 다친 사냥꾼들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 차 들렸다.

발등이 부은 자는 한결 나아져 거동할 수 있었고, 정강이가 부러졌던 자도 발가락을 움직이고 하는 게 가능했다.

야매로 뼈를 맞추고 한 것이 운 좋게도 제대로 치료가 된 것 같았다.

아직은 병자들을 움직여 산 초입까지 가는 게 안될 것 같았기에, 박복 아범과 젊은 남자 종 일곱 명에게 몽둥이를 들려 같이 산으로 움직였다.

나름대로 올가미를 설치하기 위해 산길을 벗어나려 하자 박복 아범이 조언을 했다.

“도련님. 동물들이 자기들만 다니는 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른 동물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작은 동물이나 그럴것입니다요. 맹수라면 움직이기 편한 사람이 만든 길도 잘 다니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범이나 곰, 늑대 같은 경우라면 숨어서 움직이는 길 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둔 편한 길로 다닐 것 같았다.

폭이 좁고, 옆에 고정할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길에 목이나 다리가 걸리면 졸려 드는 올가미 덫을 여기저기 설치했다.

철사가 비싸다 보니 30냥이나 들인 철사를 모두 썼다.

종들은 물론이고 원종이도 혹시나 범이 나올까 싶어 급히 설치하고 내려왔다.

***

[멍멍멍! 웰웰웰, 왈왈!]

늦은 밤 다시 한번 개들이 짖어댔다.

잠을 자던 사람들이 뛰쳐나와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히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개가 짖고 꽹과리를 치니 엄두를 못 내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꽹과리 소리에 나도 놀라서 튀어나왔으니 귀가 예민한 동물들은 더하긴 할 터였다.

“덕쇠 아재. 작년에는 범 때문에 곤란했다고 하던데, 작년에는 어떻게 했었소?”

“기억이 나지 않으신 겁니까? 그저 개가 짖으면 밖으로 다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다른 집의 계집종이 하나 물려가고, 가축들의 피해도 커지자 마을 남자들이 다들 산에 올라 범을 밀어내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쫓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물러나게 하는 방법이었군.”

“네. 맞습니다요. 올해는 이게 늑대인지 범인지 아직까지 모르기에 대응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하는 덕쇠 아재의 얼굴을 보니 잠을 설쳐서 그런지 피곤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몇 번 되지 않아서 괜찮다지만, 계속 짐승들이 내려오고 뛰쳐나오고 하다 보면 잠을 설치게 되어 사람들이 먼저 지칠 것 같았다.

“저... 저 도련님. 저희 둘이 매일 밤 번을 서겠습니다.”

“응? 자네들은 다리를 다친 환자인데 자네들이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는 건가?”

“아닙니다. 번을 서는 거라면 앉아서도 가능합니다. 개들이 소리나 냄새를 맡고 알려주는 것도 있으니 지금 당장 걷지 못한다고 해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리를 다친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건강하며 밥값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날이 서 있는 창을 지팡이 삼아 짚어 나와 있었다.

“허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원종은 말을 하다말고 사냥꾼들이 들고 있는 창을 주시했다.

‘날이 서 있다. 그냥 폼을 위해 들고 다니는 창이 아니야.’

장식용 창이 아니라, 제대로 손때가 묻어있고 동물의 피를 적시고 숨을 끊었던 진짜 창이었다.

창을 보자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늑대가 넘어와 닭들을 해쳤을 때, 제대로 병장기를 쓰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름의 관록이 붙어 사병으로 바로 쓸 수 있는 두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물론, 다리를 다쳐 그게 완쾌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계기라는 게 만들어졌다는 거였다.

‘아플 때 잘해주고, 챙겨주면 내 사람으로 만들기 쉽지.’

앞으로 전순의 영감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나 일을 위해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데, 이들만 한 보디가드가 없을 것 같았다.

“좋네. 그럼 낮에는 잠을 자고 두 사람이 모닥불 가에서 번을 서게나. 박복아 전에 내가 따로 만들라 시켰던 검은색의 나이기온 옷을 두 벌 가져오너라.”

“네? 그 검은색의 중옷 말입니까요? 옷의 뒷길이만 긴 그걸 말씀하시는 거 맞지요?”

박복이가 재차 확인하며 들고 온 중옷이라 불리는 옷은 검은색으로 염색된 천으로 만들어진 패딩이었다.

“번을 설 때 모닥불이 있다곤 하나 추울 것이니. 이걸 입게나.”

“헉, 이 귀한 것을 천것인 저희가 입어도 되겠습니까요?”

“추운 날 밖에서 일하는 자에게 입히려고 만든 것이니 딱 자네들을 위한 옷이네. 어두운 밤에 몸을 숨기기에 좋은 검은색이기도 하니 사냥꾼에게는 맞춤일걸세.”

사냥꾼 오추와 달유 깜짝 놀랐다. 다쳐 누운 이틀간, 이 집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겨울옷을 보았었고, 좋아 보여 값을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옷값이 10냥이라는 말에 사 입을 생각을 접었었다.

한데, 그런 옷을 그냥 입으라고 내어주었다.

물론, 정녕 가지라고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것일 테지만, 비싼 새 옷을 입으라고 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박복아 둘 다 다리가 불편하니 앉아서 번을 설 수 있게 의자도 가져다주어라.”

번을 서는데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챙겨줬고, 주전부리로 누룽지까지 챙겨주란 말에 오추와 달유는 감동을 받으며 번을 섰다.

“도련님. 저치들에게 중옷을 입히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요.”

“뭐가 아깝다는 말이냐?”

“그냥 제가 입고 있는 단옷을 줘도 되는데, 새털이 빠지지 않게, 바느질 자리마다 솜을 뭉쳐 넣어 털이 빠지지 않게 공을 더 들인 옷인데, 저자들에게 입히는 게 너무 아깝습니다요.”

“녀석아 그러면 저 중옷을 네게 줄 터이니 네가 겨우내 밤번을 설 것이냐? 잠도 못 자고?”

“아니... 그건 또 아니구요.”

“그럼 되었다. 추운 겨울 밤샘하며 번을 서는 것을 원하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저런 옷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법이다.”

“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요.”

“그래. 생각이 짧구나. 그러면 내일 밤엔 일부러 저들에게 찾아가서 주전부리도 챙겨주고, 저 둘에게 중옷이 보통 옷이 아니라고 내가 은혜를 베푼 거라고 이야길 하거라.”

“네?”

“아 그리고, 자진해서 밤번을 선다고 한 것이 내 마음에 들었다고 하고, 서로 이야길 하며 친해지라는 말이다.”

“왜요? 사냥이 끝나면 떠날 사람이지 않습니까?”

“야이 멍청한 놈아. 넌 진짜 생각이 짧구나. 그냥 가서 시킨 대로 하고 이야길 하면서 저 둘에 대한 것을 알아 오너라.”

내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닐지도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인적사항도 미리 알아보고 성정이나 그런 부분을 판단해야 할 것 같아 정보가 필요했다.

“아아! 알 것 같습니다요. 저것들이 중옷을 입고 도망치면 잡아 올 수 있게 미리 알아두라는 것이군요. 이해했습니다요. 헤헤.”

“그,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거라. 휴.”

모로 가든 질러가든 사냥꾼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만 하면 되긴 되었다.

***

“도련님! 어제 설치한 올가미에 늑대가 잡혔습니다요!”

혹시나 싶어, 박복 아범과 남자 종들에게 어제 설치한 덫을 확인해보라고 시켰는데, 급하게 한 명이 뛰어 내려왔다.

“어제 놈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돌아가며 걸린 거 같습니다요.”

내가 설치한 올가미에 늑대가 걸렸다는 소식에 집안 모든 남자들이 산으로 움직였다.

“저기 입니다요.”

박복 아범이 손짓하는 곳을 보니 늑대가 올가미에 걸린 채로 사람들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발버둥 치고 있었다.

“오! 정말 살아있구나!”

친인들과의 만남이 아니면 아예 집 밖으로 나오시지 않는 아버지마저도 늑대를 잡았다는 소식에 산으로 오르셨다.

물론, 추위에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롱패딩이 있었기에 선뜻 오른 것이었다.

“허허 저놈, 눈에 핏대가 서 있는 것을 보니 무섭기도 하다.”

원길도 살아있는 야생 늑대를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두려움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를 신기한 듯이 관찰했다.

“어떻게 할깝쇼?”

“이 녀석이 우리 닭을 물고 간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몽둥이로 때려잡게나.”

담이 큰 몇몇이 나서 올가미에 묶여 꼼짝 못 하는 늑대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매 앞에 장사 없다고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보이던 늑대도 종국에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버렸다.

“챙겨서 내려가자, 그리고 저 철사로 만든 올가미는 다시 설치하거라.”

원길형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죽은 늑대의 털가죽을 한 번씩 만져보며 신기해했다.

“회색에 덩치가 좀 크다뿐이지 개랑 별 차이가 없구만.”

“막내야. 이번 여름에는 역병과 여러 가지 일이 있어 복날에도 개장(狗醬)을 먹지 못했는데, 이 늑대로 개장이 가능하겠느냐?”

“네? 개장요?”

그러고 보니 조선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고기 요리가 바로 개고기였다.

조선 시대에는 개고기 요리를 개장이라고 했으며, 이를 한자로 가장(家獐)이라고 표기를 했다.

‘집 가家’에 ‘노루 장獐’을 써서 개고기 요리로 표기했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닌 노루라는 의미로 돌려 말하는 의미였다.

왜 돌려 말하냐고?

집안의 개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잡기 힘든 노루를 잡아 귀한 고기로 급을 올렸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조선 시대에는 개고기를 많이 먹었고 소중히 여겼다는 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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