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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9화 (19/327)

18. 요리숙(料理宿). (3)

응? 뭔가 이상하다고? 빈대떡이 6.25 전쟁 이후로 나온 음식이 맞냐고?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하는 빈대떡 신사 노래가 일제 치하인 1943년에 나왔는데, 무슨 6.25 전쟁 이후에 나온 음식이냐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짧게 한다면 그 노래에 나오는 빈대떡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빈대떡이 거의 다른 음식이기 때문이야.

우리가 아는 빈대떡은 녹두 가루에 돼지고기와 숙주 등의 야채가 들어간 부침개인데.

사실 우리나라가 돼지고기를 음식에 자주 쓰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거든.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고? 돼지고기를 잘 안 먹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당연히 말이 되지.

과거 조선 시대나 1900년대 초반에는 돼지고기 자체를 즐겨 먹지 않았어.

그 맛있는 돼지를 왜 안 먹어? 하면서 놀랄 수 있겠지만, 사료가 없던 시절에 돼지를 키우려면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물 쓰레기나 인분(人糞)을 먹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돼지고기에는 엄청난 노린내가 났거든.

똥 돼지라고 하는 말도 돼지가 똥을 먹고 자랐기에 붙이는 말이었어.

그래서, 사료로 축산이 제대로 되기 전에는 돼지고기를 먹을 때 그 냄새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예를 들면 중국의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동파육이 있겠지.

소동파가 항주로 가게 되었는데, 항주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제대로 먹을 줄 몰랐기에 몇 시간을 삶아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냄새를 없앤 동파육을 만들었는데, 그만큼 돼지의 냄새가 심했기 때문에 항주 사람들이 먹지 않았던 것이었어.

근대에 들어 돼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어릴 때부터 거세하고, 사료를 먹인 이후에야 돼지고기가 음식에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어.

그래서 지금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빈대떡은 1960년대에나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1943년 노래에 나온 빈대떡은 어떤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길 거야.

노래 속 빈대떡을 알려면 먼저 노래 가사를 알아야 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이 가사로 노래를 기억하겠지만, 원래 1943년 나온 한복남의 노래 가사는 달라.

원래 가사는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였거든.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로 부르다 보니 원작자나 후에 리메이크를 한 다른 가수들도 다 대폿집 대신 집에 가서로 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레 빈대떡은 집에서 부쳐 먹는 음식이 되어 버렸어.

원 노래 가사에 나오는 대폿집은 당시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정동(덕수궁 뒤쪽)에 많았는데, 가난한 이들이 많다 보니 빈대도 많았고, 그런 빈대 많은 싸구려 대폿집에서 파는 값싼 부침개를 빈대 많은 동네의 떡이라 부른 것이 그 가사 속 빈대떡이야.

그렇게 빈대떡은 한 지역의 비하 의미가 있는 음식 이름이었지만, 6.25를 겪으며 사람들에게 값싼 부침개의 대명사 같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지.

달구어진 철판에 돼지기름이 비계에서 녹아 나오자 기름으로 철판을 코팅하듯이 문질렀고, 기름막이 만들어졌다고 판단되자 부침 물을 부었다.

[챠아아악~]

열에 익어 갈색으로 굳어지는 부침개를 손에 쥔 뒤집개로 꾹꾹 눌렀다.

부침개에 고소하게 만들기 위해 기름을 많이 쓰다 보면 눅눅해지는데 그런 기름을 빼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기름은 나오지 않았다.

‘빈대떡은 원래 흥건한 돼지기름으로 구워 돼지기름을 빈대떡에 배이게 해야 하는데, 기름이 문제로구나.’

어쩔 수 없이 숟가락으로 콩기름을 떠 빈대떡에 부어가며 구울 수밖에 없었다.

“박복아! 여기 와서 이걸 휘젓거라.”

놋쇠 그릇에 달걀노른자와 들기름을 넣곤 박복이에게 휘젓게 했는데, 휘젓는 손이 느려지지 않게 다른 아이들과 로테이션을 돌려가며 휘젓게 했다.

그러면서 소금과 식초를 넣어 간을 했고, 산초가루를 넣어 잡냄새를 없앴다.

“되었다. 거품이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달걀노른자와 기름으로 마요네즈를 만든 것이었다.

잘 구운 빈대떡을 형들에게 올리며 찍어 먹을 식초와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같이 올렸고, 박복이와 아이들이 열심히 휘저었던 마요네즈도 같이 올렸다.

‘땡초가 있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너무 아쉽구나.’

양념장이든 빈대떡이든 땡초의 알싸한 매운맛이 있어야 자극적인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데, 없는 고추를 그리워한다고 고추가 생길 일은 없었다.

원길 형이나 기주 형도 내가 만든 빈대떡 부침개를 처음 먹어보기에 조심스레 젓가락을 움직였다.

[바사삭!]

녹말가루 대용으로 넣은 메밀가루와 멥쌀가루가 눅눅해야 할 부침개에 바삭함을 만들어 줬다.

진기주의 입에 들어간 빈대떡은 자신이 품고 있던 돼지기름의 향을 뿜어내었다.

“음. 녹두 가루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무거운 느낌은 뭐지? 아, 돼지기름이로군. 돼지비계 맛이 이 부침개에 스며들어 있는 거구만.”

“이보게 이 누르끼리한 양념에 찍어 먹어보게나.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오! 뭔가, 느끼함에 느끼함을 더해주는 맛이로군. 이 부드러운 느끼함이 부침개의 맛을 배가시키는 것 같아. 달걀과 기름으로 만들었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느끼한 부침개의 맛을 식초와 산초가루가 담백하게 만들어 주고 있구만.”

“뭔가 시원한 막걸리가 당기는 맛이구먼. 박복아! 가서 막걸리를 내오거라.”

상주에서 온 친우들은 물론이고 빈대떡을 처음 먹어보는 원길이나 기주도 먹걸리와 잘 어울리는 맛에 만족했지만, 포계나 주토피아를 처음 먹었던 감동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뭔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원종아 이 누르끼리한 양념장은 무엇이냐? 아까 보니 달걀노른자를 휘저어 만들던데, 이건 무엇이라 부르는 것이냐?”

“아, 형님 그건 계란마요(鷄卵摩搖)라고 하는 양념입니다.”

“마요? 문지를 마(摩)와 흔들 요(搖)를 쓰는 걸 보니 계란 노른자를 흔들고 문질러 만드는 것이로구나.”

“네 맞습니다.”

단순히 달걀노른자를 휘젓는다고 만들어지지 않고 식초나 소금, 기름을 넣어야 마요네즈가 만들어지지만, 형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만들고 있는 건 모양이 둥글지 않고, 사각형인데, 그건 모양을 달리한 이유가 있느냐?”

내가 뒤집개를 양손에 들고 사각형의 부침개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자 형들은 궁금해했다.

“네. 지금 드신 것은 기본 맛이었고, 제가 형님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독창적인 음식은 지금 만드는 이것입니다.”

“오옷! 역시, 부침개가 뭔가 맛은 있지만, 밋밋하다고 생각했었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춘봉은 잘 구워진 사각 빈대떡을 철판 옆으로 옮기고 굽던 그 자리에 잘게 썬 죽순과 파, 홍당무를 올렸고, 그 야채들 위로 달걀 물을 부었다.

달걀 물과 야채들이 익는 시간 동안 흰 쌀밥도 철판에 올려 사각형 모양으로 굽기 시작했다.

“아니, 밥을 기름에 굽는다고?”

“희한하구나. 밥을 굽는다니.”

“엇! 빈대떡 위로 밥을 올리고 다시 구운 야채 계란을 올린다고?”

춘봉은 사각형 빈대떡 위로 사각형으로 구운 밥을 올렸고, 다시 계란물과 같이 구운 야채를 올렸다.

그리고 아까 만들어 두었던 계란마요네즈를 넉넉하게 야채 위로 올렸다.

그러곤, 다시 그 위로 빈대떡을 올렸다.

“형님. 이것이 바로 밥비거(밥備巨)입니다.”

“밥비거? 그렇다면 밥이 없는 이 부침개는 그냥 비거(備巨)이더냐?”

“네. 제가 임의로 지은 이름입니다. ‘갖출 비’와 ‘클 거’를 한자로 씁니다.”

“크게 갖추었더라. 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게 여러 재료를 갖추었다는 뜻이냐?”

“그런 의미도 있사오나. 밥과 반찬으로 쓰는 고기, 나물을 다 넣어 크게 갖춘 한 끼라는 의미입니다. 자, 이렇게 양손으로 잡아 한번 드셔보시지요.”

춘봉은 한지로 밥비거를 감싸 형들에게 건네주었고, 자신도 하나를 들었다.

“이렇게 비거 두 장이 위아래로 있고 그사이에 밥과 야채가 있기에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양손으로 이렇게 잡고 씹어 먹는 것이옵니다. 앙~.”

춘봉은 나름대로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씹었다.

춘봉의 입안에서는 빈대떡과 밥, 야채가 섞이며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맛을 내고 있었다.

“허허허 오랑캐처럼 수저를 쓰지 않고 양손으로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만, 뭔가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맛이기에 특이하구나.”

“바싹하게 구운 녹두 부침개가 밥과 만났고, 그 둘을 잘 섞어 주는 계란마요 양념이 화룡점정이구나.”

“응? 계란마요라니? 난 잘게 썬 김치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네 혀가 이상한 거 아닌가?”

“아니 둘 다 무슨 소리야? 이 마늘 향이 안 맡아지나? 밥비거를 한입 베어 물면 입안으로 퍼지는 마늘 향이 엄청난데 자네들은 이게 안 느껴지는 겐가?”

“뭐? 그런 맛이 난다고? 난 그냥 간장 양념이 베여있는 죽순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원길은 물론이고 상주의 양반들은 자신이 먹은 밥비거의 맛은 이렇다며 서로가 침을 튀기며 맛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형님들! 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 밥비거마다 계란마요 맛, 김치 맛, 마늘 맛, 간장 맛을 따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응? 그런 것도 가능한 것이냐?”

“네. 밥비거 한 개 한 개마다 다른 맛을 가미하거나, 완전 다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한 요리입니다.”

춘봉은 다시 빈대떡을 눈앞에서 구웠는데, 이번에는 한 장의 빈대떡 위로 밥과 4가지 양념을 모두 올렸다.

달걀야채로 만든 패티 위에 다진 김치가 올라가고, 다시 간장에 졸여진 마늘과 죽순이 올라갔다.

그리고 사각형의 밥비거를 좌우로 잘라 4등분으로 만들었다.

속에 든 재료가 많은 만큼 그 모양을 잡기 어려웠는데, 춘봉은 대나무 이쑤시개를 직각으로 꽂아 그 모양을 유지시켰다.

“응? 이쑤시개에 달린 깃발과 글씨는 무엇이냐?”

4개의 대나무 이쑤시개 윗부분에는 깃발 봉처럼 한 글자씩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다들 무슨 글씨인지 맞춰보았다.

“사. 친. 이. 효로 구나(事親以孝: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춘봉은 맛을 다르게 만든 밥비거를 조각으로 자르며 글씨가 쓰인 이쑤시개 깃발을 꽂았는데, 다들 그 글자들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맞히기 위해 눈을 굴렸다.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이라? 이건 화랑들의 세속오계로구나. 그렇다면 난 사군이충을 먹지.”

“그렇담 나는 살생유택.”

“이거 뽑아 먹는 맛이 있는 요리라니 특이하구나 특이해.”

“이런 것이 바로 독창적인 요리이지.”

“그러면 난 특이하고 독창적으로 먹어보지.”

진기주는 세속오계에 따르지 않겠다는 듯이 살생무퇴로 글씨를 맞추어 밥비거를 먹었다.

그리고 같은 맛인 듯하면서도 다른 맛을 안겨주는 밥비거의 다양한 풍취에 감탄했다.

“승려 원광에게 세속오계를 청했던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을 생각하니 맛있는 밥비거를 먹음에도 마음이 무겁구나.”

“자네도 그런가?”

“나도 그래. 그리고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알겠네. 바로 이 세속오계의 말들이 우리를 누르고 있는 것이야.”

“원종이 저 어린애가 우리에게 정신 차리라고 이렇게 돌려 먹이는 것이었구먼.”

“크흑. 원광에게 세속오계를 청해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金言)을 받은 화랑들처럼 우린, 밥비거를 통해 금언을 받았구만. 내 마음이 아파 결례인 줄 알지만,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네.”

모인 이들 중에 가장 한량이었던 박무영은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밥비거로 자신을 깨우친 원종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 이 친구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가버리는구먼. 그럼 나도 당숙께 인사하고 가야겠어.”

친우들이 돌아가자 진기주 또한 상주로 돌아갔는데, 그런 이들을 모습을 보며 춘봉은 웃고 있었다.

“그럼, 이제 다시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

[작가의 말]

사실 빈대떡에 대한 어원이나 가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중국의 빙저에서 왔다는 말도 있고, 조선 후기에 나온 음식디미방이란 책의 빈쟈법에서 왔다는 말도 있습니다.

빈대떡의 어원에 대한 썰들은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면 아주 재미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어원이 어떻든 맛있으면 되는거쥬.

글구, 빈대떡이 서민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비싸진 음식이라 서민이 마음 편히 먹기엔 가격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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