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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8화 (18/327)

17. 요리숙(料理宿). (2)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포계를 하는데, 서라벌 닭이 아니라 집닭으로 하라굽쇼?”

내 수석 쉐프의 역할을 하는 덕구 어멈은 찻물 밥을 하다 말고 반문했다.

“그래. 집닭으로 포계를 하게나. 손님들을 위해 서라벌 닭을 잡으면 키울 닭이 없어질 판이야. 이제 손님들에게는 그냥 집닭으로 포계를 해줄 거네. 고기의 질이 떨어지는 만큼 염지나 기타 재료는 더 신경을 써야 하겠지.”

“하, 하지만, 도련님. 저도 먹어 봤지만, 염지를 한다고 해도 집닭의 맛은 서라벌 닭을 따라가지 못합니다요.”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손님들에게도 서라벌 닭을 주게 되면 씨가 마를 지경이야.”

“그건 그렇지만 고기가 질겨서 알아채지 않을까요?”

“이미 먹어 본 큰형이나 기주 형은 알아챌 수도 있겠지. 그리고, 이제 집닭에게도 잡곡을 먹일 거네. 집닭이 살이라도 좀 쪄야 서라벌 닭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깐. 그러니, 일단 오늘은 집닭으로 포계를 하게나.”

“네.”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덕쇠 아재도 따로 만나 이야길 했는데, 닭에게 곡식을 먹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도 지금,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오! 정말 기주 자네의 말이 맞구만. 물만 밥도 이렇게 다를 줄이야. 대엽종 녹찻물에 고소한 현미를 더해 내는 물만 밥은 처음 먹어보네.”

“거기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물에서 올라온 명란을 올려주는 이 구성도 아주 감명 깊네. 집에서 멀리 떠난 객들에게 고향을 기억하게 하는 맛이라니.”

“김치와 명란, 그리고 이 김의 향취가 아주 잘 어울려. 명란의 겉을 한번 익히기도 했지만, 김치와 김이 명란에서 날 수도 있는 비린 맛을 없애주고 있어.”

상주에서 나름 방귀 좀 뀐다는 양반들의 자제이다 보니 맛있다는 음식을 많이 먹어 봤었고, 음식에 대한 품평도 이제까지의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원길이 자네 아버님께 인사를 안 드려도 되는가? 영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향교에서 몇 번이나 인사를 드렸는데.”

“아 인사는 내일 하면 될 겁니다. 지금은 아주 바쁘십니다. 요즘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드시다 보니...”

말끝을 흐리는 원길의 말에 다들 싱긋이 웃었다.

“도련님. 포계를 올리면 되오리까?”

찻물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데 종들이 사기로 된 접시를 들고 줄줄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 이 냄새가 다 뭔가? 육향이 이리 고소할 줄이야.”

풍류를 위해 겨울에도 들고 다니는 부채를 펼쳐 포계에게 살살 부채질했다.

그러자, 고소한 닭 튀김 냄새와 간장과 마늘이 졸며 만들어 낸 짭짤한 내음이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기본 맛, 이것은 간장 마늘 맛, 이것이 파, 상추, 깻잎이 올려진 파상깻 맛일세.”

“포계란 것이 세 가지의 맛을 가진 요리였다니. 이런 닭 요리는 처음일세.”

이제까지 닭요리라고 하면 탕처럼 끓이거나 조림으로 해서 먹는 것이 전부였었는데, 기름에 튀기듯이 구운 닭이 나오자 다들 냄새를 맡아보며 신기해했다.

더구나 한 접시에 3가지 맛이 올려져 있다 보니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보단, 손을 써 닭고기를 집어 먹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는 양반의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포계를 먹는 친우들을 보며 진기주와 전원길도 포계를 입으로 가져갔다.

“응?”

“이거...”

원길과 기주는 포계의 맛이 전보다 못하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고기가 질겨. 이건 서라벌 닭이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막내가 서라벌 닭이 없다 보니 집닭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이거 어쩐다.’

진기주가 고민하듯이 원길도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둘 다 맛이 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왜냐면 다른 이들은 이런 튀긴 닭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며 맛있다고 예찬에 가까운 칭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닭을 기름에 구우면 이렇게 고소한 맛이 나는 줄 몰랐구만. 기주 자네가 독창성 있는 요리라고 큰소리치는 걸 믿지 않았는데, 내가 맛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구만. 인정이네 인정이야!”

“하. 하. 하.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하지만, 가장 독창적인 음식은 주토피아라는 음식이네.”

진기주는 지금 먹고 있는 포계에 대화가 집중되지 않게 얼른 주토피아로 말을 돌렸다.

“주토피아? 그건 또 언제 나오는 건가? 오늘은 배가 불러서 더 이상은 못 먹을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주토피아는 내일이야 내일. 내일은 더 기대하게. 지금 먹는 포계보다 더 맛날 걸세.”

진기주는 친우들이 빨리 취할 수 있게 연거푸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

“막내야 포계를 집닭으로 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고기의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미 면포를 받았는데, 고기가 질기다고 면포를 뱉어내야 하나 고민이 컸다.”

“형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기름이나 밀가루는 좀 더 써서 맛을 보강했습니다. 다른 형님들이 질기다고 맛이 없다고 하던가요?”

“그건 아니다만, 이미 서라벌 닭을 먹어 본 나나 기주는 바로 맛이 못한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이들이 못 알아차렸다면 된 것입니다. 형님은 서라벌 닭으로 만든 포계를 우리만 먹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어?”

“가장 맛있는 걸 우리만 먹자는 겁니다. 기주 형님의 예처럼 포계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알을 많이 낳지 않는 서라벌 닭은 씨가 마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먹는 포계에도 서라벌 닭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형님은 그래도 좋으신 겁니까?”

“그, 그것까진 생각해보지 못했구나.”

원길도 이야길 듣고 보니 서라벌 닭으로 만든 포계의 맛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지금도 쉽게 구하기 힘든 닭을 더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 기주 형에게도 입단속을 시키도록 하마.”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내일 주토피아는 똑같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쉬거라.”

원길 형에게는 우리만 서라벌 닭을 먹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였다.

서라벌 닭의 수급이 딸리는 건 맞았지만, 그것보단 우리 전씨 가문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계와 주토피아, 그리고 하나 더 준비한 음식을 먹어 본 양반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 행랑어멈들을 볶아댈 것이다.

그때 전씨 가문의 요리숙(料理宿)을 알려야 했다.

***

“먹기 전에 조린 양념을 올린다고?”

그리고 다음 날 저녁으로 주토피아가 올라오자 다들 난리가 났다.

이렇게 상 위에 음식을 올린 후 마무리가 되는 요리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주 자네가 한양의 음식들이 평범하다고 했던 이유를 내 이제야 알겠어. 뜨거운 양념을 뿌리자 꽃봉오리처럼 벌어지며 요리가 마무리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맞아. 이런 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구만. 이건 혁신이네. 혁신이야! 이런 음식은 집에서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진기주와 더불어 한양에서 좀 놀았던 박무영은 음식을 먹다 말고 원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원길이 내 값을 후하게 쳐줄 테니, 이 요리를 하는 부엌 어멈을 내게 팔게. 얼마면 되겠는가?”

“허허. 무영 형 그건 안 될 것 같소이다.”

원길은 갑자기 부엌일을 하는 어멈을 팔라는 말에 정중하게 거부했다.

“내 이 요리를 어머님께 올리고 싶어서 그러네. 얼마면 되는가? 얼마면 행랑어멈을 팔겠는가?”

“저 그게...”

“잠시만, 나도 부모님께 이 요리를 올리고 싶네.”

“난 오늘 내일 하시는 할아버님께 이 부드러운 토끼고기를 드시게 하고 싶다네. 내게 어멈을 팔게나.”

유교 국가인 조선답게 누가 더 효를 행하는지 경쟁하는 판이 되어 버렸다.

“형님들의 효를 행하려는 마음은 알겠으나, 무영 형은 물론이고, 다른 분들에게도 이 요리를 하는 사람을 팔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 설마 이 요리를 한 사람이 자네 내자(아내)라도 되는 건가?”

“그, 그게, 내자가 아니라, 동생입니다. 제 막냇동생이 이 요리들을 만들고 했기에 팔 수가 없는 겁니다.”

“막내라면... 원종이가?”

“응? 남자가 요리를 했다고? 어떻게...”

“부엌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는 말인가? 허허허! 이런 일이...”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부엌 어멈을 팔기 싫어서 하는 말 아닌가?”

상주의 양반가 자제들은 양반이 음식을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진짜라고 하자 주토피아를 먹었을 때와는 다른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 반가의 자손이 부엌칼을 들고 밥을 하며 부엌을 드나든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것도, 조상이 분명치 않은 허울만 양반입네 하는 자들이 아니라 전조(前朝)에서부터 내려온 양반가의 자제가 요리를 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아니 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야기나 들어보세. 어떤 연유로 원종이가 부엌일을 하게 된 건가?”

양반이 요리한다는 사실에 뭔가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다들 원길의 입만 쳐다봤다.

“그게... ‘식료의’라는 의원이 되고 싶다고...”

원길은 동생 원종이가 역병에 걸렸었고, 병을 나은 이후에 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으며, 단순한 의원이 아닌 식료의가 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길 털어놓았다.

“흠. 내 자헌대부 전순의 영감이라면 잘 알지. 주상전하의 총애가 깊은 분이지. 허나, 반가의 자손이 의원이 된 경우가 없을 터인데.”

“전순의 영감도 출신이 빈천했으나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녹선 되셨으니 반가의 자손이 의원이 안 된다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니오?”

“그렇게 하면 또 그렇구만... 하지만...”

다들 이야길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법도에는 안 맞는 거 같으나, 천한 자가 자헌대부에 올라 양반이 되었으니 양반은 의원이 될 수 없다는 말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 마음에 남아 있는 의관이나 역관의 벼슬은 격이 다른 벼슬이라 여기는 특권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분란을 만들지는 않았다.

“허허. 그렇다면 늘 밖으로만 나도는 아들이 간만에 효도를 하려 했는데, 그것도 못하겠구만. 원종이를 빌려 갈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러게나... 따로 모셔오든지 하는 방법밖에 없겠어.”

“그 식료의 인가 하는 의원이 되면 의원으로 부르면 될 것 같구만.”

“오! 그 방법이 있었구만.”

다들 맛난 음식을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

“이제 형님들도 제가 식료의가 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시는 앞에서 직접 특별한 음식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어린 네가 뜻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럼 어떤 특별한 것을 해줄 것이냐? 아주 기대가 크다.”

“오늘 해드릴 요리는 메밀과 녹두로 만드는 부침개입니다.”

“부침개?”

박무영을 비롯한 양반들은 흔히 먹는 부침개라는 소리에 다들 실망했다. 더구나, 메밀과 녹두로 만든다고 하기에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곁채 바깥으로 돌로 만들어진 화덕이 놓이고 그 위에 철판이 놓이자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어서 종들이 맷돌을 가져왔고, 행랑어멈들은 맷돌을 돌려 미리 불려두었던 녹두와 메밀, 멥쌀을 갈아 부침물을 만들어 내었다.

부침물에는 어제 먹고 남은 토끼고기를 잘게 다져서 넣었고, 김치와 파, 숙주, 고사리, 부추도 잘게 다져 넣었다.

그리고 부침물의 점성을 위해 밀가루와 소금, 후추, 깨를 넣어 잘 섞어 주었다.

화덕 위에 놓인 철판이 뜨거워진 것 같자 돼지비계를 올려 철판을 닦았다.

[챠이익~.]

돼지비계가 철판의 열에 고통받으며 자신의 몸에 담겨있던 기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래 빈대떡에는 흥건한 돼지기름이지.’

준비된 재료만 보고도 ‘아! 빈대떡을 하려는 구나.’ 하고 바로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이름 때문에 외국인들은 처음 보았을 때 전혀 갈피를 못 잡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부침개의 모양이기에 빈대떡을 아주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내려온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조선 중, 후기에 나온 요리서에도 그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근대 음식이었다.

심지어 탈북한 북한 사람들도 빈대떡이 뭔지 전혀 몰랐는데, 이는 부대찌개처럼 6.25 전쟁 이후 만들어진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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