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요리숙(料理宿). (4)
“아니, 내가 알려주지 않았느냐? 먼저 녹두로 부침개를 굽고 그 위에 밥과 채소와 계란을 쌓아서... 어이구! 속 터져!!”
상주의 양반 박무영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집안에서 나름 솜씨 있다는 행랑어멈에게 밥비거(밥備巨)를 설명해주며 만들게 시켰지만, 자신이 문경에서 먹어본 대로 요리가 나오지 않자 화를 내고 있었다.
“쇤네가 여러 잔치에 불려 다니며 부침개를 많이 부쳐봤지만, 이렇게 부침개를 쌓는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요.”
“아니, 그러니깐 이건 새로 만들어진 부침개 요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휴, 앓느니 내가 죽지. 죽어!!”
박무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지도 못하고 꼬치꼬치 말대답까지 하는 행랑어멈에게 손이 올라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화를 참으며 밥비거에 대해 다시 이야길 해줬지만, 어멈이 밥비거를 만드는 데 실패하자 박무영은 화를 참지 못했다.
“아니! 왜 못하는 것이야! 이 식충이 같은 것이!!”
[와장창!]
“에구머니나!”
기껏 종들이 만들었던 화덕을 발로 차 무너트렸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가져다 두었던 양념이나 야채를 가리지 않고 다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박무영의 패악질에 놀란 종들은 뿔뿔이 흩어져 박무영의 화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며 눈치를 봤다.
“쯧쯧쯧 내 저럴 줄 알았다. 제 버릇 어디 가나. 개가 똥을 끊지.”
“그래도 문경에 다녀와서 책이나 좀 들여다보고 한 거 보면 작심삼일은 한 게지 뭐. 평소라면 종들에게 손찌검할 텐데 그래도 때리지는 않는구만. 그나저나 말녀 어멈이 고생이구만.”
“아니, 제 놈이 밖에서 뭘 먹고 왔으면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던지. 말만 씨부린다고 그걸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으면 그게 도깨비방망이지. 사람이여? 안 그려?”
“그건 그런데, 도대체 문경에서 뭘 먹고 왔기에 저 지랄인 거여? 같이 갔던 개똥이는 뭐 특별한 거 못 먹어봤다고 하더만.”
“낸들 아나. 양반들끼리 뭘 해 먹든지 했겠지. 어이구 이쪽으로 온다 피하세.”
종들은 패악질을 부리는 상전의 눈을 피해 숨었고, 혹여나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문제는 이런 기이한 일이 비단 박무영의 집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휴우. 잠을 자려고 누웠으나 눈앞에 계속 떠오르고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포계로구나. 그 고소한 기름의 냄새. 이 어찌할꼬.”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덮고 누운 최재원은 잠이 들었다가도 눈앞에 떠올라 식욕을 자극하는 포계로 인해 잠이 깼다.
머릿속이 포계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재원은 기름지고 고소했던 포계의 그 맛이 생각나 입맛을 다졌다.
“정말로 기주 그 친구의 말이 맞았어.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며칠 있다가도 생각나는 이 욕구를 어찌할 수가 없구만. 다시 문경 전가네로 가야 하는 것인가.”
포계를 만들고 요리했던 사람이 행랑어멈이라면 돈질을 하든 보쌈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 행랑어멈을 데리고 오면 되었지만, 그게 안 되니 최재원은 가슴이 답답해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햐아. 먹고 싶구나. 야밤에 더 생각이 나는 닭고기라니.”
상주의 젊은 양반들 중 몇몇이 갑자기 난폭해지거나, 다른 일에 대해 의욕을 나타내지 않는 일이 생겼고, 몇몇은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참을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다 한숨만 내쉬며 우울해한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진기주와 문경에 며칠간 다녀온 젊은 양반들이 다들 그러다 보니 가까이서 그들과 생활하는 종들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마치 실려병(實女病)같구만 실려병.”
“실려병? 아, 상사병 말하는 거구먼. 그러고 보니 증상이 같기도 하군. 화를 내고 의욕이 없고, 멍하게 허공을 보고하는 걸 보면 딱 상사병이 맞는구만.”
“그럼 문경에서 절세가인이라도 봤다는 말인데, 문경에 그런 절세가인이 있었나? 그런데 다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앓기만 하는 거 보면 유부녀이거나 무슨 수가 있는 거겠지? 그러니 저리들 실려병에 걸려 골골거리는 것이지.”
“허허허. 천하의 우물인가 보구만 한둘도 아니고 다섯이나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니.”
노비들은 재미 삼아 상사병이라고 농을 했지만, 그 말은 입을 타고 여기저기 퍼졌고, 안채에도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무영의 아버지가 대사헌의 벼슬을 했기에 권력에 따라 박무영의 어머니인 김씨가 젊은 양반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 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다들 이러는 것이냐? 뭐 하는 어느 여자이기에 다들 이렇게 혼을 빼앗겼느냔 말이다!”
김씨는 자신이 보기에도 사랑에 빠진 실려병과 증상이 같았기에 대뜸 어느 여자인지를 물었다.
“그게, 자당(慈堂) 어른... 도는 말처럼 저희가 실려병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여자 문제가 아닙니다.”
진기주가 나서 소문처럼 여자에 빠진 게 아니라고 이야길 하며 김시가 옆에 대기시킨 의원을 불편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문경에서 다들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러는 것이야?”
“그... 그것이...”
진기주는 물론이고, 다들 식도락에 빠져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러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머니. 우리를 고칠 수 있는 건 식료의(食料醫)라는 문경 전씨 집안의 원종이가 와야지만 해결이 될 것입니다.”
“식료의? 그런 의술도 있는 것이냐? 그리고, 너는 이제까지 이야기하지 않다가 왜 이제야 입을 여는 것이냐?”
박무영은 어머니의 타박에 고개를 숙였다.
“마님. 식료의라 하면 먹는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의원을 식료의라고 하는데, 찾아보기 힘든 의술이옵니다. 도련님의 말처럼 식료의술로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의원을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옵니다.”
초빙해온 의원의 말을 들은 김씨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 식료의원을 부르면 되겠구나. 그자를 불러라.”
진기주와 박무영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어머니의 명을 쫓아 원종이가 문경에서 올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도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급해서 말까지 타고 갔던 이가 편지만을 가지고 돌아오자 다들 실망했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듣고는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형님들의 사정을 들은 봐. 원하는 식료술을 베풀면 될 것 같습니다. 허나, 저의 몸은 하나뿐이니 어찌 다섯 형님의 식료를 모두 맡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로, 형님들 집안의 행랑어멈 한 명씩을 우리 집에 보내주시면 저의 식료술을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 식료의의 비전과 같은 식료술을 알려주겠다니. 다행이로구나.”
어머니인 김씨는 비전을 베풀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런데 마님. 그게, 식료술을 배우는데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 의원의 비전을 배우는데 돈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얼마인가?”
“그것이 행랑 어멈 한 명을 가르치는데 백미 2섬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백미 2섬?”
추수를 막 끝낸 가을이라고는 하나 백미 2섬이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걸 잡곡으로 바꾸어 먹는다면 4인 가족이 1년 내내 먹을 만큼의 곡식을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김씨 부인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생각 끝에 나름대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젊은이들에게 내놓았다.
“다섯 집안에서 모두 다 어멈을 다 보낼 필요가 있느냐? 다섯이나 보낸다면 백미 10섬이다. 그렇게 하는 것 보다 한집의 행랑어멈을 보내어 배우게 하고 식료술을 배워 온 어멈에게 다시 배우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김씨 부인은 나름의 지혜로 쌀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말했지만, 오히려 그 말이 다른 이들의 욕심을 일깨웠다.
‘그렇구나. 우리 집 어멈을 보내어 배우게 하고, 다른 집 어멈들에게 식료술을 가르칠 때 백미 한 섬만 받아도 이득이다. 배로 남는 장사인 것이야.’
‘아니지, 상주에 여기 있는 다섯 집안만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 집 어멈이 비전을 배워 오면 내가 다른 이들을 불러 비전 요리를 대접하고, 그걸 다시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잖은가.’
자신은 가만히 앉아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었고, 행랑어멈으로 백미를 손쉽게 벌 방법이 있는 것으로 보이자 다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집 행랑어멈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닐세 우리 집 행랑어멈이 빠릿빠릿하여 일을 빨리 배우네.”
“우리 행랑어멈은 손맛이 끝내주네. 더 맛있게 요릴 할 것이네.”
서로가 집안의 어멈을 보내겠다고 나서자 그제야 김씨 부인도 사태를 깨달았다.
머리를 써 쌀을 아끼는 방법을 알려주어도 이미 백미 2섬으로는 말릴 수 없는 욕구가 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휴. 이 철없는 모지란 놈들. 쯧쯧쯧.”
작은 이득과 욕구 앞에 눈이 멀어버린 젊은이들의 혈기에 김씨 부인의 속은 타들어 갔다.
***
우여곡절 끝에 상주 양반가들에게서 다섯 명의 행랑어멈이 오게 되었는데, 3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다들 춘봉요리숙(春峰料理宿)에 잘 오셨네. 여러분의 교육을 맡은 춘봉 전원종이라고 하네.”
어느새 현대의 이름이었던 춘봉은 호(號)가 되어 이름 앞에 붙었다.
“일주일간의 교육이지만, 한 솥에 밥을 해 먹고 한방에서 같이 자며 생활해야 하니 서로들 친하게 지내시게나.”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나이 차도 있고, 본인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니다 보니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사실, 백미 2섬을 써가며 여기에 보내질 정도라면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손맛을 인정받은 어멈들일 터였다.
한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식료술이라는 것을 배워 오라고 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먼저 자네들이 배울 식료술(術)은 식료의(醫)가 되기 위해서 배우는 것들일세. 한마디로 자네들도 식료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네.”
“네? 저희 같은 천한 계집도 의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천한 노비, 그것도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시대에 여자가 의원이 될 수도 있다고 내가 말하니 어멈들은 다들 놀라 했다.
“물론이네. 그대들도 의원이 될 수 있네. 의녀(醫女)라고 들어보지 못했는가?”
춘봉은 드라마 허준은 물론이고, 사극에서 왕비를 모시는 의녀나,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에 있던 의녀들이 생각나 당연하다는 듯이 여자도 의원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길 했다.
“쇤네는 처음 들어 봅니다요.”
“저도 처음 듣습니다요. 참말로 의녀라는 게 있는 것입니까요? 기생처럼 수청을 드는 그런 계집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요?”
원종은 자신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의녀의 존재를 오히려 여자들이 모르고 있다고 하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