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4화 (14/327)

13. 달팽이와 토선생.

박복이가 비를 맞으며 잡아 온 달팽이를 보니 껍질인 패각을 가진 달팽이도 있었고, 패각 없이 그냥 길쭉한 몸만 있는 민달팽이도 있었다.

‘역시 명주 달팽이와 민달팽이가 대부분이네. 이 둘은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거긴 하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팽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인 에스카르고(Escargot)란 달팽이 요리를 떠올릴 터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달팽이를 먹어왔었다. 바로 골뱅이와 군소였다.

골뱅이와 군소는 바다에 사는 거라 종류가 다른 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서식지를 구분해서 부른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놈들의 영어 이름은 스네일(Snail) 이었다.

즉, 에스카르고 요리에 쓰이는 포도밭에서 사는 달팽이나 바닷물 속에 사는 골뱅이나 같은 달팽이이고, 사는 곳이 다른 품종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프랑스 에스카르고 요리를 처음 먹어본 사람 중엔 왜 골뱅이와 맛이 같냐고 이 맛인 줄 알았다면 비싸게 안 먹었을 거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달팽이는 한약에서 백와(白蝸)라 부르며 약재로도 쓰였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주로 골절환자의 뼈를 붙게 하는 데 효과가 있고, 쓸개를 보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렇듯 달팽이는 알게 모르게 우리 옆에 있어왔다.

다만, 이걸 키워서 사람이 먹을 가성비나 안전성이 나오는지가 문제였다.

‘달팽이도 기생충이 있기 때문에 일일이 내장을 제거해서 먹어야 하는데, 이 작은 달팽이가 가성비가 나오려나.’

현대에는 달팽이 농장이 있을 정도로 애완용이나 식용으로 달팽이의 수요가 생겨나고 있었지만, 그건 손바닥 크기까지 자라는 외래 대형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에 사는 토종 달팽이인 명주 달팽이는 3~4cm 내외의 작은 녀석이었고, 외래종과 비교했을 때 성장도 느린 것이 문제였다.

시험 삼아 달팽이 배를 갈라 창자를 제거해보니, 일 없는 노비를 투입한다고 해도 도저히 가성비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닭 먹이로 쓰자. 그리고 달팽이 패각이 있으니 닭에게 도움이 되겠지.’

사실 서라벌 닭을 기르면서 조개껍질 같은 석회질에 대해 고민했었다.

닭이 달걀 껍질을 만들 때 필요한 영양분이었는데, 사는 곳이 문경이라 조개껍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달팽이의 패각이 있으면 그 대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달팽이는 실내에서도 충분히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흙을 넣은 사육 통에 달팽이들이 좋아하는 닭 장풀 같은 연한 풀잎을 넣어주기만 하면 금세 수를 늘릴 수 있었다.

‘온도와 습도가 문제겠지만, 관리할 사람만 있다면 충분하지. 닭에게 먹일 좋은 먹이가 생긴 거야.’

집안에 쓰이지 않는 작은 옹기들을 모아 바로 달팽이 양식에 들어갔다.

집닭들이 지렁이를 먹고자 상추밭을 기웃거리는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지렁이들 또한 양식 옹기에 넣어 방 한쪽을 가득 채웠다.

물론, 습기가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말풀이나 닭장풀을 넣어주는 일은 언년이와 이복동생들의 일이 되었다.

***

“토끼닷!!”

달팽이 먹이로 줄 풀을 뜯기 위해 행랑 아이들과 들에 나왔는데, 토끼도 풀을 뜯기 위해 나온 것인지 아이들과 마주쳤다.

박복이를 포함해 8명의 아이가 몰이사냥을 하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토끼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잽싼 토끼는 아이들이 짠 포위망을 비웃듯이 아이들 사이로 쏙 빠져나가 버렸다.

“햐, 내리막길이나 사람만 몇 명 더 있었어도 잡을 수 있는 건데.”

아이들은 토끼를 잡지 못해 아쉽다고 난리를 쳤지만, 춘봉은 생각지도 않은 식재료의 발견에 눈이 번쩍 떠졌다.

‘토끼는 사료가 필요 없다. 풀만 먹고 사는 놈이지. 이거다!’

사료 없이 풀만 뜯어 먹이면 되는 동물을 보자 가슴이 쿵쿵거렸다.

“박복아 마을에 토끼를 키우는 집이 있느냐?”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요.”

“그럼 덕쇠 아재에게 이야기해서 10여 마리 사오게 하고, 너는 아버지와 같이 대나무로 토끼 우리를 만들도록 해라. 그럼 새로운 걸 먹게 해주마.”

***

“뭐? 막내가 이젠 달팽이를 키운다고? 아버지가 내린 곡식은 안 쓰고?”

“네. 큰 도련님. 곁채 방 안에 한가득 옹기를 쌓아 달팽이와 지렁이를 키우고 있으십니다. 쌀은 신경도 안 쓰고, 닭 키우는 잡곡만 가져가셨습니다.”

“허허. 그 식료의인가 뭔가 하는 그것참 고약하구나. 방안에서 달팽이, 지렁이를 키운다니. 그것도 닭 사료로 쓴다고 하더냐?”

“네. 닭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허허 집안에 기인이 났구나. 기인이 났어. 안방에서 달팽이, 지렁이를 키운다니. 쯧쯧.”

원길은 동생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그렇게 키운 달팽이를 닭에게 줄 때 내게 이야길 하거라. 구경이나 가게. 그리고, 마누라가 포계가 먹고 싶다고 하니 서라벌 닭으로 두 마리 해 올리도록 하거라.”

“네? 그게... 그냥 집닭으로 해 올리면 안 되겠습니까요? 어제는 대감마님이 드시고 싶다고 하여 서라벌 닭을 잡았는데, 막내 도련님이 닭이 부족하다고 하여 더 늘릴 때까지는 서라벌 닭을 내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에잉. 집닭은 맛이 없던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도련님이 막내 도련님께 이야길 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누라가 먹고 싶다는 걸 체통 없이 내가 해달라고 막내에게 이야길 하는 게 채신머리없어 보이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사오나. 그럼 토끼고기로 포계를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요? 막내 도련님이 토끼도 키워야 한다고 해서 토끼를 십여 마리 사 왔습니다요.”

“포계(炮鷄)가 아니라 포토(炮兎)? 토끼고기는 주로 전골을 해 먹는데, 기름에 구워 먹는다니 그럴듯하구나! 그럼 포토로 한번 해 올려 보아라.”

덕구 어멈은 방금 잡은 토끼를 조각내어 물에 담그어 피를 빼곤 소금과 청주로 토끼고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막내 도련님이 하는 밑간을 대충이나마 보았기에 흉내는 내었지만, 비싼 호초는 쓰지 못했다.

걸쭉한 반죽 물까지 만들어 기름을 두르고 익어가는 토끼에게 쏟아부으니 일견하기에도 갈색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였다.

한번 보고 배운 대로 그릇 위에 상추도 깔고 구운 토끼고기를 올렸다. 그러곤 그 위로 빻은 마늘이 들어간 청장 간장을 뿌렸다.

냄새가 그럴듯하게 나오자 덕구 어멈은 음식을 올렸다.

“음. 간장 마늘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마누라 어서 듭시다.”

원길과 그의 부인은 일전 먹었던 포계를 생각하며 포토를 입에 가져갔다.

“윽.이게 뭐야.”

원길은 씹고있던 토끼고기를 뱉어낼까 고민하다 억지로 고기를 씹어 삼켰다.

“에이 질기기만 하고, 맛이 없구나. 집닭으로 하는 것보다 못하구나.”

“전골로 먹는 것보다 더 질긴 것 같아요.”

원길은 물론이고 부인까지 포토를 한점 먹고는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토끼고기는 질기다 보니 전골이나 탕에 맞는 거 같구나. 이건 치워라.”

요리를 한 덕구 어멈은 물론이고 덕쇠도 안절부절못하며 상을 치웠다.

그리고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원길은 동생에게 한풀이를 시작했다.

“서라벌 닭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냐? 네가 서라벌 닭이 부족하다고 하여 토끼를 포계의 방식대로 했지만, 질겨서 먹지를 못했다. 아버님도 포계가 먹고 싶지 않으십니까?”

“허허. 난 며칠 전에 또 먹었지. 그냥 너는 집닭으로 해 먹거라.”

“하지만, 맛이 끄응...”

원길은 아버지의 말에 반항하려 했지만, 마음속으로 말을 삼켰다.

“서라벌 닭이 병아리를 낳긴 하지만, 늘어나는 숫자보다 잡아먹는 숫자가 많아, 비봉산에서 닭을 키우는 자에게 서라벌 닭을 더 구해달라고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그 닭들이 오면 해드리겠습니다.”

“오! 그게 언제냐?”

“열흘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전에 제가 다른 요리를 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요리냐? 포계말고 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이냐? 나는 포계가 좋은데.”

“무릇 하나만 계속 먹으면 질리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니, 나는 질리지 않는다. 삼시 세끼 모두 포계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구나.”

원길이 문밖의 마누라를 쳐다보자 마누라도 마찬가지 마음이라며 고개를 급하게 끄덕였다.

‘치느님 인기는 어쩔 수 없구나.’

“형님. 같은 것만 먹는다면 그 맛에 익숙해져서 나중엔 크게 맛있다는 게 와 닿지 않게 될 겁니다. 그래서 치느님, 아니 닭고기와는 다른 향미를 가진 요리를 먹다가 다시 포계를 먹어야 그 맛이 더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익숙해지면 새로움이 떨어지는 법. 그래서 다른 요리는 어떤 것이냐?”

“토끼요리입니다.”

“토끼는 이미 포계와 같은 방식으로 먹어 봤지만 별로였다지 않느냐. 질기기만 했어. 토끼고기는 전골이 가장 맞는 거 같은데, 그럼 너도 토끼로 탕이나 전골요리를 해줄 것이냐?”

토끼는 원길의 말처럼 지방이 거의 없다 보니 고기가 질겼고, 그래서 국물에 푹 익혀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탕이나 전골요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토끼가 닭과 오리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많이 도축되는 유럽에서는 토끼 스테이크부터 직화구이까지 수십 종류의 요리가 있었다.

“아닙니다. 형님이 드셔보시지 못한 요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포계처럼 기대해도 되는 것이냐?”

“기대를 하시게 되면 기대한 만큼 실망을 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냥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는 기대만 하십시오.”

“흐흐흐 그게 그것이지. 이거 내일이 벌써 기다려지는구나.”

***

내일 올릴 토끼요리를 알려주기 위해 토끼 한 마리를 잡으라고 하니, 남자가 아닌 덕구 어멈이 나섰다.

토끼 뒷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단 후 멱을 따 피를 빼는데 그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었다.

“덕구 어멈이 보배였구만.”

춘봉은 덤덤하게 보고는 있었지만, 멱이 따여 발버둥 치는 토끼의 모습을 보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덕구 어멈이 가파치 마을 출신입니다.”

“역시, 그래서 저리 칼을 놀리는데 망설임이 없는 것이었구만.”

덕구 어멈은 사후경직이 되기 전 몸이 말랑할 때 토끼의 가죽도 벗겨내었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솜씨 좋은 덕구 어멈이 토끼의 가죽을 최대한 얇게 벗겼음에도 토끼 가죽은 꽤나 두꺼웠다.

‘산토끼 가죽이 두껍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두꺼워도 너무 두꺼운데. 고기양이 너무 작아.’

유럽에서 요리를 배울 때 다루었던 토끼는 체계적인 사육을 했기에 나름 덩치도 컸고 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잡는 토끼는 한국의 산토끼를 잡아 사육한 것이다 보니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고기가 적었고, 지방도 적었다.

‘토끼고기가 질겼기 때문에 주로 탕이나 전골을 해 먹은 것도 있겠지만, 토끼고기가 워낙에 양이 적으니 국에 넣어 국물이라도 배부르게 먹자고 해서 탕이나 전골 요리를 한 게 아닐까.’

토끼 한 마리로는 좀 부족한 듯하여 한 마리를 추가로 더 잡았다.

“막내 도련님 며칠 전 큰 도련님께 올릴 때 소금과 청주로 염지를 했었는데, 맞는 방법인가요? 이것도 염지를 할까요?”

솜씨 좋은 덕구 어멈은 말하기도 전에 나섰지만, 춘봉은 덕구 어멈을 말렸다.

원래 하려는 요리는 살을 발라 굽는 스테이크 계열이었지만, 칼솜씨가 좋은 덕구 어멈을 보자 요리를 바꾸기로 했다.

“오늘 할 건 포계가 아니네. 토끼 산적과 비슷할 거네. 우선 살을 발라내는 방법이 있으니 다른 솜씨 좋은 어멈들도 부르게.”

*

[작가의 말]

실제로 조선 시대에 토끼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사료가 안 들다 보니 키우는데 돈이 안 들었거든요.

지금 북한에서도 토끼와 염소를 키우는 게 가정 내 중요한 부업이라고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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