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식료의(食料醫).
“식료의(食料醫)? 그럼 의원이 되고 싶다는 말이냐?”
“네. 아버님. 다만 일반적인 의원이 아니라 음식을 헤아리는 의원인 식료의가 되고 싶습니다.”
“식료의라... 처음 들어보는 의원이구나.”
아버지 전기환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의원이 되겠다는 막내아들의 말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했다.
“아버님. 식료의란 원래 없던 의원이 아닙니다. 옛 신화시대의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백초(百草)를 맛보고 약을 찾아내었듯이 식료의는 음식에서 약을 찾는 의원을 말합니다. 중원의 화타도 음식으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원이었다고 합니다.”
“화타라면, 관운장의 상처를 치료하고 조조의 머리를 열어보려다 죽었다는 그 의원인가요? 그가 식료의였나요?”
아버지의 첩 원홍은 화타를 알고 있다며 아는 체했다.
“네. 멀리는 중원의 화타가 있지만, 가까이로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계시는 전순의 영감이 식료의이십니다.”
“전순의 영감? 들은 기억이...”
“아버님 그 있잖습니까. 당상관(堂上官)에 오른 내의원.”
“아, 세종대왕 시절 장영실 대호군(大護軍)과 같이 초법적으로 발탁되었던 그 영감이로구나.”
“아버님 아무래도 원종이가 병을 겪은 것을 계기로 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역병을 앓은 후 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장남의 말에 전기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종아 그럼, 너는 전순의 영감의 문하로 들어가 의술을 배우겠다는 것이냐?”
“문하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러고는 싶지만, 우선은 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문하에 들기 위해 찾아갈까 합니다.”
“흠.”
전기환은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는 아들의 말에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버님. 전 괜찮은 거 같습니다. 향교에서 듣기로 전순의 영감의 실력이 좋아 문종이 승하하신 후에도 크게 벌을 받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들어 알고 있다. 내의원이라...”
전기환도 전순의 영감에 대한 것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원이 되겠다는 막내의 말에는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순의 영감은 문종의 종양을 직접 절개 수술한 인물로 이후 문종이 승하함으로써 의금부에 하옥되어 죄를 물어 죽여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허나, 그 재주를 아껴 단종이 즉위하자 석방되었었고, 당금의 주상인 세조에게는 자헌대부에 1등 공신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자였다.
‘반가의 자손으로 입신양명하여 벼슬을 하는 것이 최고의 영예인 것은 맞지만, 의관이나 역관의 벼슬은 같은 품계라고 해도 품위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반가의 자손은 의관이나 역관이 될 수 없는 것인데, 막내는 이것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현대의 시선으로 봐서는 외교를 맡는 역관이나 의료를 담당하는 의관이 엘리트들의 직업으로 볼 수 있었으나 조선 시대의 역관이나 의관은 중인들이나 하는 벼슬이었기에 품계가 높다 한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간혹 양반이 의술을 익히는 경우가 있었으나 양반 출신의 의원은 정식 의원으로 치지 않았고, 의관이 될 수도 없었다.
양반에게 있어 의술은 수묵화를 그리는 것과 같이 취미 생활로나 여기는 잡기일 뿐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전순의 영감의 이야길 듣고 뜻을 세운 것이겠지. 사화가 일어나도 죽지 않고, 당상관에도 오를 수 있는 것을 알고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고민하는 전기환과는 달리 첫째 원길은 잘된 일이라며 의원의 장점을 춘봉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역병 때 너를 고친다고 의원에게 면포를 몇 개나 내줬다. 의원은 돈을 잘 버니 네가 제대로 의술을 익힌다면 한 재산 모으기는 쉬울 것이다.”
돈돈하며 재물 모으는 것에 욕심이 많은 큰아들을 보고, 막내를 보니 어리지만 자신의 뜻을 세운 그 포부가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흠. 좋다. 원종이 네가 뜻이란 것을 세웠으니 식료의라는 걸 한번 해보도록 하거라.”
“아버님 정말이십니까? 그럼 제가 닭을 키우고, 식료의가 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부엌에 출입하는 일을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그래. 그것이 뭐가 되었든 허락하마. 원상이에게 백미 50섬을 주었듯이 너에게도 백미 50섬을 줄 터이니 그것으로 확인하고 싶은 일을 확인하고 전순의 영감의 문하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거라.”
“네. 아버님 감사합니다.”
춘봉은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려나가자 기분이 좋아 허리가 절로 굽어지며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되었다. 내가 요리를 하고 부엌을 드나들기 위한 허락을 받았어.’
“아니, 아버님! 50섬이라니요. 원종이는 아직 어립니다. 그런 큰 재물은...”
“되었다. 더는 말을 꺼내지 말거라. 아직 어리다고는 하나 성혼을 할 수 있는 나이이며, 너는 세워 보지도 않은 뜻을 세운 아이다. 그러니 그 뜻을 지원해 주어야지.”
“아니, 하지만, 아버님!.”
“그만. 조용히 하거라. 그리고 서라벌 닭으로 만든 포계를 이리 가지고 오거라. 순덕이는 가서 이화주(梨花酒) 좀 내어 오거라.”
아버지가 포계를 마음에 들어 하고 아껴둔 배꽃으로 담은 술을 마시겠다고 하자 원길도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
춘봉도 그런 아버지를 위해 놋그릇 쟁반에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놋그릇 쟁반 바닥에 상추와 파를 깔고 그 위에 세 종류의 치킨을 구분해서 담아 올렸다.
그리고 얇게 썬 연근을 닭고기를 튀기듯이 구웠던 솥에서 튀기듯이 구워냈다.
“주인 나리, 이 물김치와도 잘 어울리니 한번 드셔보시와요. 연근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더해지니 더 맛있는 거 같사와요. 그래서 그런데, 이리 맛있는 건 열흘에 한 번은 먹을 수 있게 해주시와요.”
아버지의 첩인 원홍이 포계를 자주 먹고 싶다며 아버지께 애교를 부리자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친우들이나 형의 친우들이 서라벌 닭 맛을 알게 되면 포계를 요리로써 팔 수 있을 것이다.’
***
“휴. 드디어 가셨구나.”
아버지는 아껴둔 이화주에 대취하여 업혀 가셨고, 형님 내외도 본인의 곁채로 돌아갔다.
물론, 서라벌 포계 세 마리는 모두 그들의 배로 사라지고 없었다.
“박복 어멈, 덕구 어멈 오늘 수고했소. 이리 오시오. 아범들도 이리 오시오.”
급하게 요리를 해야 한다고 고생한 어멈들과 아범들을 불러 모아 집닭으로 만든 포계를 먹게 했다.
“서라벌 닭과 비교하면 못하지만, 이것도 맛있으니 어서 들게나. 집닭만 줘서 미안하네.”
“아이고 아닙니다요. 호초와 상추에 온갖 귀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이라 소인네 입 구멍이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게 태어나 처음입니다요.”
“이 밀가루와 쌀가루가 입혀진 껍질만 해도 천상의 맛입니다요.”
행랑채의 어른들이 달려들어 한 조각씩 손에 들자 어느 틈에 아이들도 내 눈치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포계를 한 조각씩 집어갔다.
그래도 내 사람 같다고 박복이와 언년이에게도 한 조각을 쥐여줬고, 눈치를 보는 이복동생들까지 한 조각씩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이 포계란 요리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요? 닭을 탕에 넣고, 볶는 요리는 알아도 이렇게 기름에 튀기는 요리는 쇤네도 금시초문입니다요.”
“그 식료의원이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요?”
“맞네. 식료의로 유명하신 전순의 영감이 남기신 산가요록에 나와 있는 요리일세.”
“이런 맛난 요리를 먹으면 확실히 앓고 있던 병이 나을 것 같습니다요. 하하하.”
질긴 치킨 한 조각에도 기뻐하며 꼼꼼하게 살을 발라 먹으며 웃는 종들을 보고 있으니, 나는 닭을 먹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푸근했다.
‘포계란 요리는 닭과 밀가루, 기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쉬운 요리인데, 왜 이 시대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지? 밀가루와 기름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 폐지 더미에서 산가요록이 발견되었을 때 현대 사람들이 가진 의문도 춘봉이 가졌던 의문과 마찬가지였다.
산가요록이란 책의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던 요리서가 알고 보니 조선 최고(最高)의 요리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학계와 요리계는 들떴었다.
그리고, 이런 요리서가 있었음에도 왜 산가요록에 쓰여 있는 요리들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는지도 궁금해졌다.
이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이 책이 한문으로 쓰였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다른 책들도 다 한자인데, 그런 책들은 잘 내려왔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산가요록은 실용서였기 때문에 전해져 내려올 수가 없었다.
책의 이름인 산가(山家)는 산의 집으로 화전을 일구는 자들을 칭할 수도 있지만, 산과 들에서 농사짓는 일반 백성들을 뜻하기도 했다.
즉 글을 읽는 사(士)자 들어가는 선비나 양반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농사를 짓는 자들은 당연히 한문을 모르는 무지렁이가 대부분이었고, 설령 농민 중에 한자를 아는 자가 있다고 해도 술을 담는 법, 간장을 담는 법, 요리하는 법 등이 쓰여 있는 아녀자들이나 할법한 일을 궁금해할 남자는 없었다.
한자를 아는 양반이나 중인들은 이런 책을 중히 여길 이유가 없었고, 산가요록이 가장 필요했던 산가의 백성들은 한자를 알지 못하니 이런 책이 눈앞에 있어도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으니 후대로 책이나 그 내용이 이어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순의 영감이 쓴 산가요록은 몇백 년 후에 폐지 더미에서 우연히 발견되었고 요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책에 실려 있는 요리를 직접 해보며 조선 시대 음식들을 재현했다.
거기서 포계라는 닭고기 요리를 해 먹어보니 현대의 치킨과 맛이 유사하다며 한국식 치킨 요리의 원형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왔었고, 이 포계를 한국식 치킨요리의 원류로 여기게 되었다.
‘전순의 영감을 만나게 되면 내가 언문으로 써서 보급하겠다고 해야지.’
“박복아, 포계가 맛있느냐?”
“네.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는 처음 먹어 봅니다요. 헤헤.”
박복이는 물론이고 행랑채의 아이들은 맛있다며 입을 모았다.
“그러면 내일은 지렁이와 메뚜기를 더 많이 잡아 와야 한다. 그래야 닭을 더 많이 키워서 너희들이 또 먹을 수 있는 것이야.”
“네. 도련님. 내일은 진짜 농땡이 치지 않고 많이 잡아 오겠습니다요!”
박복이의 굳은 결의와 같은 대답에 동조하듯 다른 아이들도 외쳐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날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다들 집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닭을 먹인 다음 날에 애들을 부려야 메뚜기를 많이 잡아 올 건데, 날씨가 도와주지를 않네. 어휴.”
서글픈 마음에 비 내리는 바깥을 보고 있으니 비 소식에 나와 움직이는 달팽이들만 보였다.
“달팽이는 현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달팽이 크림 같은 화장품도 만들면 돈이 될 텐데. 그건 어떻게 만드는지도 알 수도 없고, 그냥 먹고 치우... 아! 아니네. 박복아!!”
혼잣말을 하다말고 박복이를 곁채가 떠나가라 소리쳐 불렀다.
“예이!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요?”
“박복아. 너 저기 달팽이 보이느냐?”
“네. 잘 보입니다요. 저 눈 좋습니다요.”
“그래, 눈 좋아서 다행이다. 저 달팽이가 이 근방에 많으냐?”
“어라? 그러고 보니 달팽이가 많아졌네요. 대감마님의 상추를 흩어 먹는다고 해서 정기적으로 잡았는데, 근래 비가 오지 않아 잡지를 못했네요. 얼른 애들을 모아서 잡겠습니다요.”
“그렇구나. 상추를 키우는 텃밭이 있으니 달팽이도 많은 거였어. 박복아, 애들을 모아서 달팽이를 잡아 와라.”
“잡아오라굽쇼? 발로 밟아 터트리는 게 아니구요?”
“그래, 저 달팽이가 아주 중요한 놈이다!”
박복이는 뭔가 큰 발견을 했다는 듯이 좋아 죽는 막내 도련님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제 얻어먹은 포계요리가 있었기에 비를 맞으며 달팽이를 잡으러 나섰다.
*
[작가의 말]
세종대왕 시절에는 출신에 상관없이 재주만 있으면 발탁하여 인재를 뽑았습니다.
장영실이 과학 쪽 분야의 인재였다면 전순의는 의료 쪽의 인재였습니다.
미천한 신분으로 당상관인 자헌대부가 되었고, 좌익원종공신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에 이르기까지 4명의 왕을 모셨고,
문종의 종양을 절개수술하였으나 문종이 죽음으로서 의금부에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단종 때 석방되고 세조 때 다시 중용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