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포계(炮鷄). (2)
“포(炮)자를 쓰는 걸 보니 닭을 포 뜨는 요리 같은데, 포를 떠 석쇠에 굽는 것이냐?”
“아닙니다. 기름에 튀기듯 굽는 요리입니다.”
“기름에 튀기듯 굽는다고? 그렇다면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군.”
아버지를 비롯해 형과 형수는 물론이고 한양에서 데려온 관기 출신인 첩 원홍도 포계란 음식은 처음 들어본다며 궁금해했다.
사실, 포계(炮鷄)란 이름은 현대인들에게도 생소하게 들리긴 마찬가지였는데, 이 포계란 이름 자체가 한국에 알려진 게 2001년이었으니 어쩌면 가족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처음 포계라는 요리가 한국에 알려지게 된 사연이 참으로 드라마틱한데, 2001년 청계천 8가 고서점의 폐지 더미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란 책을 찾으면서 알려지게 된 요리이기 때문이었다.
산가요록(山家要錄)이란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산가(山家)에서 생활하는데 요긴한 방법들을 모은 책인데, 여기에 닭을 요리하는 방법으로 포계란 요리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머리 아픈 고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먼저, 준비된 두 개의 솥에 간장 종지 4~5개 분량의 콩기름을 넣었다.
기름이 귀한 시대다 보니 아무리 양반가라고 해도 두 개의 솥을 가득 채울 만큼 콩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솥이 달구어지며 기름에 기포가 맺히기 시작하자 준비된 닭고기를 솥에 올렸다.
[촤아악~!]
열이 오른 기름에 물기 있는 닭들이 들어가니 식욕을 돋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가득 채우며 간지럽혔다.
박복 어멈과 덕구 어멈은 각자가 맡은 닭고기가 타지 않게 젓가락으로 뒤집으며 고기를 튀기듯이 굽었다.
생 닭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기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그제야 반죽을 만들었다.
응? 치킨은 반죽을 입혀서 기름에 넣어 튀기는 거라고? 지금 순서가 틀린 거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일반적인 치킨이었다면 반죽을 입힌 닭을 기름에 넣어 튀기는 게 맞아.
하지만, 포계는 그런 현대적 레시피와는 방식이 달라.
일단, 조선 시대에는 반죽에 쓸 밀가루가 비싸기도 했고, 기름도 부족하다 보니 닭을 튀겨낼 만큼 많은 기름을 쓸 수도 없는 게 현실이었어.
그런 현실적인 제약이 있기에 반죽을 만드는 것도 밀과 쌀을 섞어 찧은 가루에 청장(4~5년 묵은 간장)과 참기름, 달걀, 꿀과 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그리고, 잘 섞인 걸쭉한 반죽을 노릇하게 익고 있는 닭고기 위로 뿌리는 거야.
[취이익~.]
내가 걸쭉한 반죽을 닭고기 위로 뿌리자 어멈들은 젓가락을 놀려 닭고기를 뒤집어가며 반죽 물에 닭고기를 묻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걸쭉했던 반죽이 열을 받아 닭고기에 입혀지기 시작했다. 마치, 반죽을 입혀 넣은 듯한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래 좋아. 걸쭉한 반죽이 닭고기를 코팅하고 있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름과 밀가루를 아끼는 헝그리 레시피였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조선 시대이다 보니 이 정도의 기름과 밀가루만으로도 호화로운 레시피였고 비주얼이었다.
“오 냄새가 좋구나!”
“간장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그럴듯하구나.”
구워지는 닭고기 냄새가 좋은지 가족들은 코를 벌름거렸다.
걸쭉했던 반죽이 닭고기에 입혀지고 갈색의 맛있는 익은 색으로 변하자 접시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닭 종류에 따라 3개씩 접시를 준비했는데 포계요리를 그대로 올린 기본 맛이 하나였고, 마늘과 파를 다져 올리고 간장을 뿌린 간장 양념 맛이 하나, 그리고, 간장 양념을 먼저 뿌리고 파와 상추, 깻잎을 잘게 썰어 올린 파상깻 맛이 하나였다.
그리고, 포계를 먹다 목 막히는 것을 대비해서 물김치와 감초물도 준비해서 먼저 올렸다.
서라벌 닭으로 만든 접시를 먼저 올리고 이후 집닭으로 만든 접시를 올렸다.
‘새로운 맛을 겪는 것이기에 처음 혀에 느껴지는 강렬한 맛이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지.’
이것도 꼼수였지만, 뭐 누가 뭐라고 할 텐가.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은 포계의 기본 맛부터 맛보시면 됩니다.”
부채질하던 아랫것들이 작은 접시에 담아 아버지와 형님에게 올렸고, 형수와 첩 원홍에게도 포계를 올렸다.
“어맛! 고소하고 맛있어요! 기름에 구운 닭고기가 이런 맛이라니.”
방금 구웠기에 뜨거울 만도 한데, 원홍이는 기본 맛 포계를 뜯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또한 조각을 입안에 넣고는 우물우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접시를 드시면 됩니다.”
이번엔 아랫것들이 집닭으로 만든 기본 맛을 접시에 담아 올렸다.
“으음? 이것도 맛있는 기름 맛이기는 한데... 뭔가 질긴 느낌이 있는데...”
입맛에 민감한지 큰형은 바로 식감이 다른 걸 알아챘다.
“맞아요. 앞에 고기는 쫄깃했는데, 이건 질겨요. 그리고, 뭔가 맛도 없는 거 같은데... 분명히 똑같이 굽고 했는데, 왜 다른 것이지?”
원홍이는 분명 같은 닭인 것 같은데, 맛이 다르자 먼저 먹어봤던 닭을 다시 먹어보고 집닭 기본 맛과 비교를 했다.
“먼저 먹었던 닭고기와 맛이 달라요. 먼저 먹은 이게 그 가둬 키웠다는 서라벌 닭인가요?”
원홍이는 궁금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지만, 일부러 답을 하지 않고 두 번째 마늘 맛 포계를 접시에 올렸다.
“아, 닭고기에 스며든 마늘향이 이렇게 향긋하다니 마늘 하나가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맛의 흥취가 달라질 줄이야.”
호들갑을 떠는 원홍이가 보기 싫은지 형수가 인상을 찡그렸지만, 형수도 마늘 포계를 먹어보곤 이내 맛있다고 젓가락을 놀려댔다.
‘역시 마늘의 민족이라 마늘 맛이 추가된 것만으로도 반응이 좋구나.’
그리고 다시 집닭으로 만든 똑같은 마늘 맛 포계가 올라가자 기본 맛을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이제 알겠어요. 먼저 먹는 것이 서라벌 닭으로 만든 것이죠? 맛이 확연히 차이 나요. 맞죠?”
“네 맞습니다.”
원래는 세 가지 맛을 다 보고 난 이후 어느 게 더 맛있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맛에 대한 원홍이의 호들갑에 아버지와 형은 물론, 형수도 동의하고 있었기에 더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서라벌 닭이라는 닭의 품종 차이도 있지만, 키우는 사육 환경에 따라서도 이렇게 닭고기의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럼 세 번째 파상깻 맛 포계도 드셔보십시오.”
“파상깻 포계? 그게 이것의 이름이냐?”
특이한 이름에 아버지가 물어왔다.
“파와 상추, 깻잎을 같이 올렸기에 앞글자만 따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럼, 이 요리를 네가 생각했다는 말이냐? 그래서 이름을 붙인 것이냐?
“네. 원래 이름은 포계라고 있사오나, 마늘이나 파와 상추를 올리는 것은 포계에서 제가 추가를 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가했다라...”
아버지는 뭐라고 작게 이야길 했지만, 아랫것들이 담아주는 파상깻 포계를 입으로 가져갔다.
“옷! 파의 알싸한 맛과 깻잎의 화~하는 맛이 절묘해요. 기름에 구워진 포계의 듬직한 맛에 좌우에서 알싸하고 화한 맛이 같이 움직이니 이건 정말 별미에요! 이건 마치...”
원홍은 현대의 푸드 칼럼니스트처럼 포계의 감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그 옛날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결의했다는 도원결의의 맛이에요!”
‘에? 그게 무슨...’
치킨을 먹다말고 갑자기 도원결의가 튀어나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흐음! 도원결의 맛이라…. 그럴싸하군.”
큰형이 원홍의 말이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포계가 유현덕처럼 중심을 잡고 있으면 알싸한 풍취의 파 맛이 관운장처럼 오른쪽에 서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깻잎의 향은 장익덕처럼 왼쪽에 서는 맛이야. 한양 교방에서 알아줬다더니 이런 풍취를 알아볼 줄이야. 놀랄 따름이오.”
큰형은 진심으로 원홍에게 감탄했다는 듯이 이야길 했다.
“오호홋 교양으로 배우는 것이랍니다.”
“그럼, 포계에 같이 올라간 이 상추나 마늘은 무엇인 거 같소?”
“그... 그건... 제갈공명이 아닐까요?”
원홍은 약간 자신 없는 어투로 대답했다.
“옳거니! 맞구나!”
이제껏 가만히 포계를 드시던 아버지가 큰소리를 질렀다.
“세 가지 맛이 공명(共鳴)하는 맛. 상추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잎을 떼어내도 다시 잎이 올라오는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다. 한중왕(漢中王) 유현덕의 유지를 받들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북진을 해야 했던 그 마음을 잎이 계속 올라오는 상추에 빗댄 것이리라.”
“오오! 공명(孔明)이 공명(共鳴)한다는 심오한 이치가 담겨져 있는 거군요. 아... 그렇구나.”
전원길은 아버지의 말에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동생아. 내 너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 형이 네 뜻을 미리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구나.”
전원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같이 촉촉한 눈이 되어 동생을 쳐다봤다.
“삼국지의 유·관·장 형제처럼 우리 삼형제의 우애를 이 포계란 요리로 나타내고 싶었구나. 나는 너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그깟 잡곡 몇 섬이 아깝다고, 쪼잔하게 굴었구나. 이 형이 잘못했다.”
“아니, 형님 그게...”
“되었다.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네가 닭을 키우는 것에 이제 뭐라고 하지 않겠다. 마누라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시오.”
“네 서방님. 능히 포계우애(炮鷄友愛)란 고사로 만들어져도 될 것 같은 일입니다. 저도 도련님이 닭 장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렇듯 우애를 중시하는 도련님의 마음을 알고 나니 제가 먼저 챙기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 마누라가 알아주니 고맙소. 원종아. 앞으로 닭을 네 마음대로 키우고 장사하겠다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겠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감사합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면서도 기묘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자 형과 형수가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땡큐였다.
“잠시만 있거라. 닭을 키워 닭 장사를 하겠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아... 아버님 그 그것이 말입니다.”
형은 아버지의 말에 난감해하며 얼른 말을 하라는 눈빛을 내게 보내었다.
“그게, 제가 닭을 키워 닭 농장을 하고 싶다고 형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닭이 아니라 곡식을 먹여 키우는 닭이다 보니, 잡곡을 계속 쓸 수 있는지 인정을 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닭 농장을 하고 싶다고? 원길아 너는 왜 내게 이런 이야길 하지 않았느냐? 들어보니 벌써 한참은 지난 이야기 같은데.”
“그, 그것이... 막내가 치기(稚氣)로 닭을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버님께 이야길 드리지 않았습니다.”
“허허. 이 아비가 멀쩡한데도 벌써부터 동생들의 일을 알리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더할 것이 아니냐. 둘째 원상이가 쌀을 좀 보내 달라고 기별을 넣은 것도 알고 있는데, 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냐?”
원길은 아버지가 둘째의 일까지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그게, 원상이 처가가 영덕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집안인데, 그렇게 형편이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좀 더 사정을 알아보고 아버님께 이야길 올리려고 했습니다.”
“되었다. 이달 말까지 원상이에게 백미 50섬을 보내도록 해라.”
“네에? 아버님 원상이가 보내 달라고 한 건 10섬입니다. 50섬이라니요. 너무 많습니다.”
“무슨 말이 많으냐. 보내라고 하면 보내거라. 내 말을 이제는 듣기 싫다는 것이냐?”
“아, 아니 그게 아니옵고... 원상이에게 50섬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원길은 10섬이면 막았을 일이 50섬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줄어들 재산에 속이 쓰렸다.
“그리고, 원종이 너는 닭 농장을 하겠다는 게 진심이냐?”
“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닭 농장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 팔자 제 하기 나름이다. 네가 닭 농장으로 닭을 키우게 된다면 너는 닭을 치는 자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너의 신분이 양반이 아닌 신량역천(身良役賤)이 될 수도 있음에야. 그걸 왜 모르는 것이냐?”
“저도 사족의 후예가 닭을 키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저는 닭 농장만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도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뜻? 뜻을 세웠다고? 허허. 그래 양반은 당장 배를 곯고 치욕을 당하더라도 뜻이 커야 제구실을 하는 법이지. 어린 나이에 네가 뜻을 세웠다니 웃음이 나면서도 네가 다 큰 것 같아 기쁘구나. 그래 그렇다면 닭 농장을 해서 뭘 하려고 하는 것이냐? 무슨 뜻을 세운 것이냐?”
“아버님. 지금의 시작은 닭 농장이지만, 뜻을 세운 것은 식료의(食料醫)입니다.”
“식료의?”
*
[작가의 말]
식료의로 의학물로 가나요?
토막상식 : 신량역천(身良役賤)이란 무엇인가?
고려·조선 시대 신분제 아래에서 양인 신분을 갖지만, 그 역이 고되어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천민으로 취급되던 계층을 말합니다.
글에서는 양반이라도 닭을 치게 되면 결국 책을 읽는 양반이 아니라 닭을 키우는 양인 혹은 천인으로 신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의미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