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9화 (9/327)

8. 조선시대라는 벽!

“박복 아범 오늘 사 온 닭은 집에서 키우는 닭들과 섞이면 안 되네. 그러니 대나무와 싸리나무로 가두어 키울 수 있는 우리를 만들어주게나.”

“네. 먹쇠랑 같이 내일까지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갈피(葛皮 칡 껍질)로 그물망을 만들어야 하네.”

“갈피로요? 그건 질기다 보니 만들기가 힘이 드는데, 그건 어디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요?”

“닭 우리 위로 그물망을 쳐서 닭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할거네.”

“저, 그런데. 도련님. 먹이를 찾아 먹을 때는 닭이 우리 밖으로 나오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그물망을 만들어봐야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아 물론, 갈피 그물망을 만드는 게 힘들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요.”

박복 아범은 일하기 싫어서 토 다는 게 아니라며 조심스레 그물망이 소용없는 일 아니냐며 충고했다.

“아니 이 닭들은 우리 안에서만 키울 거네. 아예 우리 밖으로 못나오 게 가두어 키울 거야. 그래서 그물망이 꼭 필요해.”

“네? 그럼, 닭은 저 안에서 뭘 먹고 사는 겁니까요?”

“그야 당연히 사료를 먹여... 아!?”

춘봉은 박복 아범에게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사료가 없구나. 이 멍청한 놈.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어휴 이 멍청한 놈아.’

닭을 키우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육계의 부드러운 고기를 위해 가두어 키우는 것만 생각했던 내가 한심했다.

‘닭 사료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준비하지 않다니 어휴.’

갑자기 반응이 달라진 나를 보며 박복 아범이 눈치를 살폈기에, 일단 갈피로 그물망을 만들라 시켰다.

나는 조선 시대에 미래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사용한다면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빼먹고 있었다.

‘미래의 기술이나 노하우는 현대문명의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거야. 그런 인프라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그것이 문제였어.’

클릭 몇 번 만에 배송받을 수 있는 값싼 사료조차도 현대문명과 축산과학이 만들어낸 산업 시대의 인프라였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조선시대인데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니.’

인프라가 없는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을 직접 다 만들어 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닭 사료에 뭐가 들어갔더라...’

가게의 닭고기 납품 계약을 위해 충북에 있는 여러 육계농장을 방문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당시 농장의 전체적인 시설과 환경을 꼼꼼히 살폈었고, 닭들에게 먹이는 사료도 체크를 했었다.

‘닭 사료의 주원료는 옥수수와 소맥, 미강이 거의 90%를 넘었어.’

옥수수는 다들 알 테고, 소맥은 밀이었다. 그리고, 미강은 쌀을 도정하고 나오는 속 쌀겨를 말하는데 나름 영양가가 많은 부산물이었다.

원료의 대부분인 이 세 곡물에 더해서 유기농이니 뭐니 하면서 ‘도롱박’이나 ‘주정박’ 같은 박나물과 비타민을 위한 과일, 야채의 부산물이 사료에 추가로 들어갔었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쌀겨는 준비할 수 있겠지만, 옥수수와 밀이 없다면 닭의 대량 사육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선 시대이니 남미가 원산지인 옥수수는 당연히 구할 수 없고, 밀은 기후 문제로 보리보다 더 비싸다. 다른 곡식으로 대체를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다른 잡곡도 비싸다는거지.’

“휴... 벽이구나. 조선시대의 벽이야.”

옥수수와 밀로 만들어진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 같은 곡물을 먹고 사는 닭이 어떻게 가축화되었고 조상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되짚어 봤다.

닭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적색야계(red jungle fowl)가 가축화된 것은 약 8천 년 전이라고 배웠었다.

물론, 학자에 따라 기원전 3천 년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지만, 여러 학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닭의 가축화가 돼지, 소보다 한참이나 늦었다는 것이었다.

소, 돼지, 말의 경우는 농경문화가 시작되자마자 가축화가 바로 진행되었지만, 닭의 경우에는 농경문화가 상당 수준 발전해 잉여곡물이 남는 시대가 된 이후에야 진행되었다고 했다.

즉, 잉여 곡물이 없다면 키울 수 없는 가축이 닭이라는 말이었다.

‘닭을 키워 판 돈으로 다시 곡식을 사고 그걸로 다시 닭을 키워서는 수지타산을 맞추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곡물 가격이 비싸지는 보릿고개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고.’

그리고 또 문제가 있었다.

옥수수와 밀을 먹여 빨리 크게 하는 육계의 경우에는 출하가 5주에서 6주가 걸리는데, 옥수수와 밀을 대신해서 다른 곡물을 먹이게 되면 출하 시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럼 비봉산의 김일란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닭들을 키우는 거지. 서라벌 닭이나 다른 닭들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닭들에게 곡식을 먹일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뭔가 김일란이란 사람은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노하우를 내게 알려줄까’

답이 보이지 않는 일에 걱정만 하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우선은 큰형 몰래 광에서 조와 수수를 꺼내 닭들에게 먹이며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했다.

***

“박복아 목수 좀 불러오너라.”

“목수요? 목장 말입니까요?”

“아, 그래 나무를 다루는 목장 말이다.”

“네. 그런데 뭘 만들기 위해 부른다고 할깝쇼?”

“그게 반자동 사료통인데... 일단 설명이 어려우니 우선 오라고 하거라.”

대부분의 육계농장에서는 자동으로 사료와 물을 먹을 수 있는 배관 시스템을 사용해서 닭이 앉아서도 언제든 사료와 물을 먹을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했었다.

가만히 앉아서도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다 보니 닭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임이 없기에 35일 만에 50g의 병아리가 1.7kg의 육계로 몸무게를 늘릴 수 있었다.

그런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지만, 조선시대에는 불가능했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사람이 사료를 채워주면 중력의 힘으로 조금씩 밀려 나오는 반자동 사료통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현대에서는 프라스틱 사출로 대량 생산되었기에 몇천 원이면 사는 사료통이었지만, 여기에선 나무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원리로 물이 나오는 반자동 물통까지 그림을 그려 목장에게 보여주었다.

“도련님. 이 사료가 밀려 나오는 통은 소인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돌아가는 뚜껑을 가진 물통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건 물이 나오는 용도이니 그냥 옹기그릇에 물을 담아내면 안 되겠습니까?”

집안의 가구나 자잘한 나무로 된 물건들을 전담으로 만들어주는 목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프라스틱이 없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목장의 옹기그릇에 물을 담아서 주는 것으로 현실 타협했다.

그렇게 닭 우리 안 바닥에 짚과 겨가 깔리고 사료통과 물그릇이 놓이게 되니 현대식 육계농장과 비교하긴 힘들었지만, 나름 가둬 키울 수 있는 조건은 만들게 되었다.

물론, 사료통에 가득 담겨 있는 조와 수수, 기장 같은 잡곡은 큰형 몰래 곡식 창고에서 들고 온 것이었다.

***

“하하하 꼬마 도령 그런 거로 고민을 하셨소?”

다시 오일장이 열리는 날 만난 김일란은 그게 무슨 걱정이냐며 웃으며 내 궁금증을 풀어줬다.

“우리도 서라벌 닭이나 비둘기나 전부 다 곡식을 먹여 키우고 있소이다.”

“허면, 그 곡식 값은 어떻게 충당하는 것이요? 내게 판 서라벌 닭의 값으로는 키우기 힘들 것 같은데.”

“정확하게 잘 보셨소이다. 사실 닭은 손해나 겨우 보지 않을 정도일 뿐이오. 내게 가장 큰돈을 벌어주는 것은 시간을 알려주지도 않고, 제사상에도 오르지도 못하는 놈들이오. 그놈들을 판 돈으로 곡식을 사 먹이는 것이오.”

“응? 그 시각을 알려주지도 않고, 제사상에도 올리지 못한다는 그놈은 대체 어떤 놈입니까?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돈을 벌어주는 겁니까?”

“그건, 바로 비둘기라오.”

“비둘기요? 비둘기가 어떻게 돈이 되는 겁니까? 아, 전서구로 비싸게 팔리는 겁니까?”

비둘기로 돈을 벌고 있다는 김일란의 말에 전서구가 떠올랐다. 우편 사업이 그 정도로 돈이 되는 건가 싶었다.

“하하하 그게 아니오. 전서구로 쓰이는 비둘기가 아니오. 애완용 비둘기요. 그리고, 예전 전조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서구로 비둘기를 썼던 적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오.”

“애완용 비둘기라... 믿을 수 없군요. 애완용 비둘기가 그렇게 돈이 된다니.”

애완용 비둘기가 비싸게 팔린다는 김일란의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닭둘기로 불리는 그놈들의 몸값이 높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최씨 무신정권! 그래, 기억이 난다.’

다름 아닌 KBS 역사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이 비둘기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떠올랐다.

최씨 무신정권을 열어 재친 최충헌과 권력자 이의민의 싸움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 애완 비둘기 때문이었다.

‘최충헌 역의 김갑수 형님과 이의민 역의 이덕화 형님의 명연기가 압권이었지.’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였던 이의민의 아들이 최충헌의 동생이 기르던 애완 비둘기를 강탈하듯이 가져간 게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이 일이 커져 최충헌 형제가 이의민 일파를 죽였고 고려 무신정권을 최씨 일가의 무신정권으로 만들었었다.

애완용 비둘기로 인해 칼부림이 나고 집권세력 간에 내분이 나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애완 비둘기의 인기는 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심지어 관리들이 비둘기를 키운다고 업무를 하지 않자 모든 관리는 애완 비둘기를 기를 수 없다고 법령을 만들어 공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법이 있었음에도 애완 비둘기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모범이 되어야 할 공민왕 자신마저도 비둘기를 키웠었다.

특히, 공민왕의 비둘기 사육 스케일은 남달랐는데, 비둘기의 먹이로만 매달 곡식 960kg를 쓸 정도로 많은 비둘기를 길렀다고 했다.

‘나라 돌아가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비둘기 키우는 데만 심력을 썼으니 고려가 박살이 날수 밖에. 그런데 웃기네. 현대에서는 유해조수 취급받는 놈들이 이 시대에는 비싼 몸이라니.’

춘봉도 김일란처럼 비둘기를 키워 닭을 사육할 돈을 벌어볼까 생각했지만, 비둘기는 사치 사업이라 시장을 연결해주는 거간꾼이 없다면 뛰어들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도령은 닭에 진심인 듯한데, 왜 그리 닭에 집착하는 거요? 다른 양반들이 비둘기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과는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거 같은데.”

“닭으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어 그러오.”

“요리? 으하하하 닭요리를 위해 닭을 기르려고 하다니 대단한 식도락가였구만. 아암. 그래야 양반의 취미라고 할 수 있지. 내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고기가 맛있다고 하는 닭들을 모아 주겠소.”

김일란의 말을 듣고보니 비둘기나 닭, 금계 같은 조류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브리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내 치킨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닭을 키우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비봉산으로 찾아오시오.”

“고맙소이다. 내가 가지 못할 때는 여기 이 자를 보내겠소이다.”

***

집으로 오는 길에 소달구지에 앉아 고민했다.

‘닭을 내가 꼭 키워야 하는 건가?’

비둘기 덕분에 조류를 전문적으로 키우고 조류의 품종을 개량하는 브리더가 있는데, 내가 꼭 닭을 직접 키우고 품종개량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그냥 김일란 같은 전문적인 사람에게 관리된 닭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조선 시대라는 거대한 벽이 막아서고 있었다.

‘냉장 트럭은커녕 얼음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원할 때 닭을 납품받는 게 가능할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손질된 닭이 아닌 살아있는 닭을 납품받는다고 해도 오일장처럼 오 일마다 받으러 가는 게 여건이 안될 것 같았다.

지금이야 문경과 비봉산이 하루 이틀 걸리는 거리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닭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 터였다.

결국, 직접 길러서 자체조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 같았다.

‘결국, 곡식을 사료로 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구나. 그렇다면, 잡곡값을 어떻게 벌어들인다.’

이젠 돈 벌 궁리를 해야 하는데, 소달구지에 실린 서라벌 닭들이 꼼지락거렸다.

[꼬꼬. 뺙뺙. 삐약.]

김일란은 네가 서라벌 닭을 구매한 이후 태어났다고 병아리 4마리도 챙겨줬는데, 병아리의 꽁무니로 암수를 구분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해가 지며 석양이 지는 시골길을 소달구지에 앉아서 가고 있으니 뭔가 감성적인게 올라왔다.

‘이런 목가적인 풍경은 조선시대라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그리고 내가 손을 내밀자 겁 없이 내 손에 올라타는 병아리의 따뜻한 느낌도 있다 보니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 두 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구웃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샛노란 병아리만 보면 왠지 날아라 병아리 노래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키워서 잡아먹을 병아리를 보며 감성에 젖는 게 뭔가 이중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인간이 아니겠는가.

“도련님 그건 무엇입니까요? 뭔가 가슴이 뭉클하는 그런 느낌인데요.”

“여윽시, 박복이는 뭔가를 좀 아는구나. 이 노래는 풍류를 알던 기인이 병아리를 보고 만든 노래란다.”

“소인이야 병아리를 보면 통구이나 해먹을 생각을 하는데, 역시 풍류인들은 다른가 봅니다요.”

“통구이 식도락이 아무리 좋다 한들 이런 풍류도 알아야지. 노래를 네게 알려줄 테니 닭을 돌볼 때 부르거라.”

그렇게 박복이에게 알려준 날아라 병아리는 특유의 구슬픈 느낌 때문인지 어느새 집안 종들의 노동요가 되었고, 서서히 퍼져 나갔다.

***

“저기 걔 있으시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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