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거 어때?
춘봉은 누워있다 갑자기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인 듯했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첫째 첩인 다희로구나. 현대로 따지면 새엄마인가? 아니 아버지의 전 애인? 그것도 아니면 그냥 노비로 대해야 하나?’
새엄마라고 하기엔, 서울 규방에서 데리고 온 새 첩도 있었고, 이미 아버지의 애정이 멀어졌기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호한 관계의 여자였다.
밖을 보니 형수와 비슷한 20대 중반의 마른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서 있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이복형제들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작은 아이들이었다.
법도(法度) 상 방으로 들어오라 하기도 어려워 마루로 나가 마주 앉았다.
“어인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아차 너희는 이거 받거라.”
춘봉은 소매에서 엿을 꺼내어 애들에게 줬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는 눈치를 봤다.
“풍양 오일장에 가서 너희들 주려고 일부러 사 온 엿이다. 어서 받거라. 안 그럼 엿이 녹아 버려 먹지 못하게 된다.”
그제야 아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고 엿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쪽도 드시오.”
다희는 자신에게도 엿을 주자 받아도 되는지 망설이다 받아들었다.
춘봉은 한 뼘 길이의 기다란 엿을 그대로 입에 집어넣으려는 아이들을 급히 말렸다.
“엿은 말이지 그렇게 한입에 다 넣는 게 아니야. 요렇게 양쪽을 잡고 잘게 부수어 먹는 거란다.”
춘봉은 엿장수에게 배운 엿 먹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줬고, 아이들이 힘이 없어 엿을 조각내지 못하자 아이들이 먹기 좋게 직접 조각을 내주었다.
“작은 조각을 입에 넣고는 천천히 녹여 먹는 것이란다. 그래야 달달한 엿 맛을 오래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엿을 맛있게 입에 물고 있자 다희도 엿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다희는 갑자기 들려오는 군침 삼키는 소리에 흠칫했다.
“언년아 넌 이미 먹었지 않았느냐.”
“죄, 죄송해요. 엿의 맛을 생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냥 침이...”
옆에서 부채질하면서도 언년이는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숙였다.
“나랑 나눠 먹지.”
다희는 조각낸 엿을 언년이에게 내밀었는데, 언년이는 춘봉의 눈치를 보면서도 다희가 내민 엿 조각을 얼른 받아 입에 넣었다. 그러곤 배시시 웃으며 행복하다는 듯이 부채질했다.
단맛에 행복해하는 언년이는 물론이고 이복형제인 진기와 향희도 처음 먹어보는 엿의 단맛에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춘봉은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아쉬웠다.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렛이 안겨주는 달콤한 단맛과 밀가루 과자가 안겨주는 고소한 단맛을 알려주고 싶구나. 그러려면 일단 사탕수수부터 구해야 하는데...’
“막내 도련님이 저희를 내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드리러 온 것인데, 이렇게 맛있는 것도 주시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엿이 먹고 싶어 껄떡거리던 언년이에게 대부분의 엿을 내어준 다희는 고개를 숙여 읍을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요. 배가 다르다 하나 형제인 것인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내 아버지께 두 아이의 속신(贖身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는 것)을 이야기할 터이니 그때까지는 원망하지 말고 기다리시오.”
“가감사합니다. 감읍 드릴 따름입니다.”
다희는 노비 출신이었지만, 아버지의 첩이 되었을 때 말투를 주워들었는지 말투가 천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때까지는 그대나 아이들이 집안일을 해야 할 거요. 아버지가 그대를 다시 찾는 상황이었다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게 아니니 어쩌겠소. 그래 어떤 일을 잘하오? 뭔가 재주는 있소?”
“그게... 바느질은 좀 합니다.”
바느질을 좀 한다는 다희의 이야길 들었지만, 사실 이 시대의 여자는 부엌일이나 바느질, 청소 같은 집안일이 아니면 잘하는 재주가 있을 턱이 없었다.
설령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재주를 돋보일 기회 자체도 없었고.
“아, 길쌈도 남들 못지않게 할 줄 압니다.”
“길쌈?”
길쌈이라 하면 삼베, 명주, 모시, 무명 같은 천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면포가 화폐로 쓰이는 조선 시대였기에 가내 수공업으로 면포를 만드는 건 나름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럼 우선 박복 어멈과 이야기해서 내 옷이나 지어주시오. 키가 커지고 있어 옷 길이가 짧소. 그리고, 집안에서 닭과 오리를 잡을 때 나오는 털들을 모아주시오.”
“네? 닭의 털이나 오리의 털을 모으란 말입니까?”
“맞소. 닭털, 오리털을 모아서 뜨거운 물에 한 번 삶고, 그걸 다시 햇빛에 말려서 모아주면 되오.”
“새의 털을 어디에 쓴다는 말인가요?”
다희는 이때까지 닭털을 모아서 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궁금해 물었다.
“겨울 옷을 만들 거요. 일단, 박복 아범이 비봉산에서 닭털과 오리털 같은 새의 털을 받아오기로 했는데, 그것도 같이 삶아서 말려주시오.”
춘봉은 풍양 오일장에서 김일란을 만난 이후 어떤 것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허생전의 허생처럼 유통을 어지럽히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에서 허생은 거부(巨富)에게 만금(萬金)을 빌려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하여 돈을 수십만 금으로 만들었었다.
물론, 허생전은 소설일 뿐이었지만, 물류 유통망이 엉망인 조선의 특수성 때문에 매점매석으로 돈을 버는 것은 현실성이 있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허생전처럼 만금을 빌려줄 수 있는 거부를 알지도 못했고, 설령 그런 거부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내게 만금을 빌려줄까 싶었다.
만금(萬金)을 빌려주는 거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허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허생전에는 조선의 엉망진창인 유통망과 그에 따른 재화의 허점을 그대로 그려냈었다.
사실, 지금 당장만 해도 수확량이 많은 호남지역의 곡식을 사서 내년 보릿고개 때 다른 지역에 푼다면 두세 배의 이득은 충분히 남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게는 물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종잣돈이 없다는 게 문제지.’
형이 닭 농장을 한번 해보라고 했지만, 전폭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닭 사료를 가지고 오는데도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다.
‘아니 다른 대체역사물 환생자들은 왕손이니 세자니 만석꾼이니 하는데, 난 뭐임. 어휴...’
자본을 끌어 올 수가 없다 보니 어떻게든 집안 노비들의 노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게 바로 닭이나 오리의 털로 만드는 겨울 방한 의류였다.
기존 조선 시대의 방한복은 짐승의 털로 만든 가죽옷이 최고였고, 목화솜을 넣어 만든 옷도 어느 정도 산다는 사람들만이 입을 수 있는 고급 옷이었다.
솜을 넣어 만든 옷들도 솜이 비싸다 보니 얇게 넣을 수밖에 없었고, 추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물론, 그런 솜옷도 못 입는 노비들은 그저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닭과 오리를 잡을 때 나오는 털은 그냥 버려지고 있다는 거지.’
재룟값을 거의 들지 않고, 노동력을 공짜로 쓸 수 있는 조건에서는 최적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물론, 패딩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면포나 직물은 집안 창고에서 빼돌려야 했다.
‘나이를 먹고 혼자 나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겨울옷을 만들어 팔며 최대한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
겨울 옷을 만들 거라는 내 말에 다희는 알았다고 하면서 다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내 도련님이 보기에는 제가 어떻습니까?”
갑자기 들어오는 다희의 물음에 춘봉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로서? 아니면 이복동생을 낳은 아줌마로서? 무슨 의도의 질문인거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감마님이 저를 다시 부르지 않는 이유가 막내 도련님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요?”
“아, 그런 질문이었군요.”
다희는 아마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쟁취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내게 물어본 것 같았다.
“제가 그리 박색입니까?”
“으음...”
그제야 다희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봤다.
‘흠. 일단, 아버지가 첩으로 삼아 동생을 둘이나 낳았을 정도라면 이런 얼굴이 아버지의 취향인거 같긴 한데... 왜 갑자기 내쳐진 거지.’
조선 시대 잡록을 모아 놓은 책인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보면 당시 미인의 조건에 대한 글이 나와 있었는데, 미인의 눈은 쌍꺼풀 없이 가늘고 길어야 하며, 가슴이 작고 허리에 살집이 있는 게 미인의 조건이라고 했다.
거기에 이마가 넓고 턱이 튀어나와야 복스러운 얼굴이며 입술은 얇아야 하고, 매부리코를 가져야 미인의 얼굴이라고 했다.
그 미인의 조건에 다희를 대입해 보면 실처럼 가는 눈은 미인의 조건과 일치했다.
쪽 머리를 한 이마도 직각에 가깝게 양옆으로 넓었으며, 마른 몸에 비해 얼굴과 머리의 크기도 컸다.
다만, 아이를 둘이나 젓을 먹여 키웠기에 가슴이 컸고,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몸은 비쩍 말라 있었다.
몸이 마르고 가슴이 큰 거 빼고는 나름대로 조선 미인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심미안(審美眼)은 현대인인 나와는 완전히 달라서 큰일이네. 난 쌍꺼풀 있고 가슴 크고 허리 잘록하고 베이비 페이스가 좋은데. 내 이상형으로 따지면 그건 조선 추녀의 조건이잖아.’
현대인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을 가진 여자는 눈살이 겹쳐진 눈이라고 해서 개구리 형상과 같다며 피해야 하는 얼굴이라고 했다.
또 여자의 머리가 작으면 새대가리 같다고 하여 머리 작은 여자는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니지 조선 시대에는 내 이상형이 추녀니깐 내가 데리고 살기에는 더 좋은 건가?’
양반으로서 삼처사첩(三妻四妾)을 두는 상상력이 올라왔다.
“막내 도련님이 보기에도 제가 정녕 박색입니까?”
“흠흠. 그건 아닙니다. 대동야승이라는 책에 따르면 그쪽은 살집이 없다는 것만 뺀다면 미인의 조건에 부합되는 게 많습니다.”
“살집요?”
“네. 혹시 동생들을 낳기 전에는 살집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보다는 살집이 있었습니다. 둘째 향희를 낳은 이후 몸이 아파 살이 빠졌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살집!”
그러고 보니 당나라 현종의 비였던 양귀비도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라 푸짐한 아주머니 스타일의 여자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 교방에서 데리고 온 첩도 살집이 좀 있었구나. 아버지는 후덕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아버지는 여인을 안았을 때 푸근함을 느끼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쩌면 사람의 푸근함을 그리워하시는 건지도 모르지요.”
“그럼, 살을 찌우면 될까요?”
“해서 안 될 것은 없지요. 식사량을 늘리고, 뭔가가 먹고 싶다면 부엌에서 챙겨 드세요. 먹는 거로 누가 이야길 하면 제가 허락했다고 하시구요.”
“오늘 찾아오길 잘한 거 같아요. 먹는 것으로... 흑흑흑...”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다희가 울기 시작하자 춘봉은 난감했다.
엄마 옆에서 엿을 먹고 있던 진기와 향희도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제 어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같이 울기 시작했다.
“으허엉... 어엄마!”
“으아앙~!”
“어허, 애들도 같이 울지 않소이까 눈물을 거두시오.”
엄마를 따라 아이들까지 울어 버리니 춘봉은 난처해서 언년이에게 아이들을 달래라고 시켰다.
“얘가 어디라고 이리 우는 거요!”
박복 어멈이 큰소리를 치며 달려왔는데, 다희가 청승맞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뿔이 났다.
울고 있던 다희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일갈했다.
“지금 여기서 우는 게 저 아이들 속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오?”
“끅끅끄윽... 흑흑...”
아이들의 미래에 좋지 않다는 박복 어멈의 말 한마디에 다희는 끅끅거리며 울음소리를 애써 줄였다.
“우리 도련님이 정이 넘치셔서 저 둘과 함께 챙겨주시는 거지. 여기서 울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좋을 것 같으냐?”
“죄, 죄송합니다...”
다희는 겨우 눈물을 그치고는 두 아이를 안고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울음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니, 지아비의 애정을 받지 못하는 여자의 서러움이란 것이 내게 와 닿았다.
“박복 어멈. 다희가 살집이 생기면 다시 아버지가 부를지도 모르니, 매일 저녁 남는 밥을 다희에게 챙겨주게나.”
“네 도련님.”
“그리고, 매일 아침 진기와 향희를 내게 보내게. 다른 곳에서 눈치 보는 것보다는 여기서 언년이와 박복이랑 있는 것이 눈치를 덜 받을 거네.”
“흑흑 감사합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
“언년이를 따라서 지룡(地龍)을 잡아 오는 거다. 할 수 있겠지?”
배다른 남동생인 진기는 6살이었고, 향희는 5살이었기에 일을 시키는 게 좀 그랬지만, 언년이와 지렁이를 잡아 오는 일은 놀이처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닭 사료로 조와 수수, 기장 같은 곡식을 풍성하게 주고 있었지만, 현대의 사료처럼 비타민 같은 유기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렁이나 메꾸기 같은 생 먹이를 잡아 닭에게 사료처럼 먹이기로 했다.
물론, 지렁이는 언년이와 두 동생이 잡고, 박복이는 메뚜기를 비롯한 여러 벌레를 잡아 와야 했다.
어리더라도, 인력을 4명이나 쓰면서 닭 먹이를 마련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닭을 늘려 안정적인 닭의 공급이 가능해야 다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닭이 매일 알을 낳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알은 너무 한대.’
서라벌 닭은 고기 맛을 위해 육계에 가깝게 품종을 만든 것이라 달걀을 잘 낳지 않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알은 너무했다.
산란계로 유명한 레그혼 품종은 하루에 125g 정도의 사료를 먹음에도 1년에 280개, 많으면 320개까지도 알을 낳는 품종인데, 그 녀석들에 비교해서 한 달에 5알, 1년에 많아도 70개 미만으로 달걀을 낳는 서라벌 닭의 능력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단백의 먹거리로 지렁이와 메뚜기를 먹여 보기로 한 것이었다.
설령 달걀 생산량에는 별 차이가 없더라도 생 먹이로 인한 고기의 발육 상태가 좋아질 것이니 손해는 없을 것 같았다.
박복이가 잡아 온 메뚜기 같은 벌레는 바로 닭들에게 먹였고, 아이들이 잡아 온 지렁이는 일부는 먹이고 일부는 상추를 기르는 밭에 풀었다.
지렁이가 흙을 먹고 배출하는 분변토가 토질에도 좋기 때문이기도 했고, 집안에 있는 밭에 지렁이가 많아지면 먹이 수급에도 편하기 때문이었다.
‘닭을 위해 지렁이 양식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저 도련님. 이 텃밭은 대감마님과 큰 도련님이 중히 여기는 곳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요. 저 지렁이가 상추를 상하게 할까 봐 걱정입니다요.”
사랑채와 텃밭을 관리하는 아버지의 몸종이 나를 따라다니며 걱정을 했다.
“걱정말게. 오히려 저 지렁이로 인해 상추가 더 잘 자랄 거네. 아마 아버지나 형님이 더 좋아할 거야.”
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채 옆에 만들어져 있는 텃밭에는 상추가 심겨 있었는데, 이 밭에서 나는 상추는 아무나 먹지 못했다.
오로지 아버지와 형, 그리고 나만이 이 밭에서 나는 상추를 먹을 수 있었다.
왜냐고? 이 당시에는 상추가 정력제로 통했거든.
*
[작가의 말]
사실 삼처사첩이라는 말은 조선 시대에 없었습니다.
삼처사첩이라는 말은 중국 금병매에서 유래된 말로, 조선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