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오가연맹(4)
서백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토끼(卯) 부적으로 매를 유인한 주은리.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술법으로 매의 시야와 자신을 연결했다.
작고 날쌘 담비라서 무림인들이 경계하지 않는 초랑. 그러나 땅을 달리는 담비는 키가 사람 발목밖에 안 되기 때문에 높은 곳을 볼 수 없는 등 시야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매는 시야에 한계가 없다.
구름 위에서 먹잇감을 발견하고 사냥하는 매는 짐승 중에서도 시력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 매의 눈을 통해 요새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주은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은 없으리라.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만한 술법!
초랑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송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은리를 살폈다. 술법으로 매를 조종하고 있는 중에도 그녀는 자기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과거 편복선생은 시야를 공유할 때 의식도 함께 옮겨야 했는데 저 소저는 상관없어 보이는군.’
그건 확실히 놀라웠다.
주은리가 편복선생의 실력을 얕잡아보던 것도 이해가 됐다. 무공으로 치면 그녀는 편복선생보다 두 수 이상 차이가 나는 고수이니까.
“요새 내부의 일곱 개 망루는 왕(王) 자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 말에 일행은 즉시 망루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왕(王) 자를 보건대 좌우 양옆에 세 개씩 망루가 있고 마지막 하나는 요새 중앙에 서 있다는 뜻.
주은리의 정찰은 단순히 요새를 지켜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요새 구석구석을 정확히 묘사하는 설명!
“각 망루는 큼지막한 종이 걸려 있는데, 종에 연결된 줄이 망루 아래까지 내려가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망루와도 연결되어 있군요.”
“…….”
그 말을 듣고 서백 일행은 침묵했다.
망루에 오른 경비는 대개 뿔피리 등을 불어서 침입자를 알린다. 때문에 망루 경비는 요새 잠입시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 되는 존재다.
문제는 뿔피리와 종은 처리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뿔피리는 경비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죽은 자는 뿔피리를 불 수 없으니, 경비의 목숨을 빼앗으면 뿔피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종은 어떤 방식으로 울릴지 모른다.
종에 줄이 연결되어 있으니 망루 위의 경비가 죽은 것을 보고 지상에서 울리는 것도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경비의 몸에 줄을 묶어 두었다면 경비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경비가 쓰러지는 순간 종이 울릴 테니까.
즉 망루가 지키고 있는 암벽으로는 요새에 잠입할 방법이 없다는 뜻.
계속해서 주은리는 매의 눈으로 본 요새 모습을 설명했다.
특히 요새 중앙에 나무로 지은 커다란 건물이 여섯 채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서백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오가연맹 다섯 명의 고수가 각각 건물 하나씩을 쓰겠군.’
다섯 세가가 손을 잡았다고는 하나 무림인들이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아는 일.
즉 오가연맹의 다섯 고수는 자신들의 호법을 거느리고 건물 한 채씩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의 건물은 무사들을 위한 공동 숙소이리라.
“그 주변에도 작은 건물들이 여러 채 있습니다. 모두 이십 채? 나무에 가려서 확실히 보이지 않는군요. 협곡 안이라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길이 무척 비좁습니다.”
건물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는 것은?
지키는 자들보다 침입자들에게 유리한 지형이라는 의미.
지형이 작을수록 지키는 자가 유리하다. 그러나 지형이 좁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 침입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은신할 곳이 수없이 늘어나는 셈이니 말이다.
단지 수풀과 나무에 가려서 완벽하게 지형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웠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는 사소한 정보가 목숨을 좌우할 수 있으니까.
“무림인 두 명씩이 각 망루에 올라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정문과 후문에 두 개씩, 요새 중앙에 일곱 개.
즉 망루의 숫자는 모두 열한 개다.
열한 개의 망루에 두 명씩이니 스물두 명이 동시에 망루 경비를 선다는 뜻.
“정문과 후문에 각각 열두 명의 무림인이 경비를 서고 있군요. 그 외에 건물들은 따로 경비를 서는 무림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백의 머릿속은 계산에 들어갔다.
망루에 스물두 명. 정문과 후문에 스물네 명.
합해서 모두 마흔여섯 명.
삼교대로 경비를 선다고 치면 하루에 경비를 서는 인원만 총 백서른여덟 명이 된다.
요새의 총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경비 서는 데만 상당한 인원을 쏟아붓고 있다는 뜻.
“이거 개미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할 만큼 철통같은데…….”
왕이삼도 그걸 깨달았는지 말했다.
하지만 서백은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반대로 경비의 눈만 피할 수 있으면 건물에 접근한 다음은 쉽다는 뜻이 됩니다. 건물에는 오가연맹의 호법들밖에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쩝, 그런가…….”
왕이삼은 내심 작전을 취소하면 좋겠다는 심정이 강했으나 서백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시무룩해서 목소리를 줄였다.
“서백의 말이 맞소. 외곽 경비에 지나친 인원을 투자하고 있으니 일단 내부 잠행이 성공하면 일은 오히려 수월할 것이오.”
“…….”
송현도 한 마디 거들자 왕이삼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밖에도 주은리는 요새 정보를 하나씩 열거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통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디에서 막다른 곳이 되는가 하는 정보였다.
물길이 흐르는 곳, 세면장, 불을 피우고 밥 짓는 곳, 측간, 닭과 돼지를 기르는 축사, 볏짚단이 쌓여 있는 식량 창고 등등.
서백 일행은 주은리가 전하는 정보를 빠짐없이 머릿속에 새겼다. 주은리가 남쪽부터 북쪽까지 시선을 이동하며 설명했기 때문에 일행의 머릿속에는 요새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도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새 북쪽을 막고 있는 후문을 설명할 때였다.
“후문에서 동쪽 암벽에 가깝게 붙어 있는 창고가 하나 있는데 식량 창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창고가 나오자 서백은 침을 삼키며 더욱 집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은리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창고에는 다섯 명의 무림인이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
이상했다. 다른 건물들은 따로 경비가 없는데 유독 동쪽 암벽 옆의 창고만 다섯 명의 무림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고?
“안 그래도 숫자가 부족할 텐데 왜 거기만 경비를 세우는 거지? 뭐 중요한 거라도 들어 있나?”
왕이삼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는데, 그답지 않게 맹점을 찌른 질문이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창고를 세운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무림인이 다섯 명 있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인데…….”
순간 서백은 창고의 비밀을 깨닫고 말을 멈췄다.
‘그런 건가?’
서백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을 하고 있자 왕이삼은 그게 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반면 송현은 평소 그답게 태연하게 팔짱을 낀 채 서백의 설명을 기다렸다.
이윽고 서백이 입을 열었다.
“일단 창고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허, 모른다고? 난 또 뭐라고.”
잔뜩 기대했던 왕이삼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서백의 다음 말을 듣자 웃음이 쑥 들어갔다.
“저들은 중원의 유명세가 다섯 개가 손을 잡은 일당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맞기 때문에 잠시 손을 잡았을 뿐, 서로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죠.”
“자존심 센 정파 놈들이니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하다는 거냐?”
“창고에 경비를 서는 무림인 다섯 명은 다섯 세가에서 한 명씩 사람을 보낸 겁니다.”
“그, 그런…….”
“다섯 세가가 서로 믿지 않으니 각자 한 명씩 사람을 보내서 감시하도록 한 것이죠.”
“……!”
“즉 창고에는 오가연맹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들어 있을 겁니다.”
서백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왕이삼은 연신 감탄했으며 송현도 그답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서백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창고가 오가연맹 요새의 약점일지도 모릅니다.”
* * *
주은리는 밥 한 끼 먹을 시간 동안 매의 눈을 통해서 요새를 정찰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요새의 조감도를 전해들은 서백 일행은 요새 전경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정찰이 끝나자 주은리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합쳐서 허공에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순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주은리의 두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매의 눈을 공유하던 술법을 푼 것이리라.
“부적은 저절로 불타서 사라질 것이니 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부적으로 동물을 포획해서 오감을 연결시키는 술법.
주은리의 술법은 그밖에도 많으리라 예상되지만, 방금 펼친 술법 하나만으로도 실전 상황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다음 차례는 요새 잠입을 실행하는 것.
그러나 서백은 그답지 않게 막막한 심정이었다.
‘요새가 너무 완벽하다.’
사실 오가연맹 요새는 왕씨세가 요새보다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깎아지른 두 줄의 암벽 사이를 가로막으며 서 있으니, 말 그대로 천혜의 요새였다.
무엇보다 경비 숫자가 상당했다. 오가연맹은 곳곳에 망루를 세워서 만에 하나 암벽을 타고 내려올 침입자를 막고 있었다.
주은리의 술법은 분명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요새 구석구석을 지도 보듯이 알게 되자 오히려 삼엄한 방비를 어떻게 뚫고 잠입해야 될지 막막해진 것이다.
“정문을 넘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까?”
서백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송현에게 물었다.
하지만 송현도 쉽게 방법을 찾지 못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정문에만 경비가 열두 명, 문 양옆에 서 있는 망루가 둘이니 네 명, 도합 열여섯 명이 정문을 지키고 있으니 무리다.”
“한밤에 암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풀 한 포기 없는 말 그대로의 암벽이다. 민둥산을 내려갔다간 횃불이 아니라 달빛에도 발각되겠지.”
“그렇다면…….”
서백은 계속해서 잠입 방법을 제시했고 송현은 그 방법이 왜 불가능한지 대답했다.
왕이삼이 보기에 둘이 장기를 두는 것 같았다.
둘의 대화가 마치 서백이 장군을 부르면 송현이 멍군으로 응수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때 송현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중얼거렸다.
“이럴 때 소운이 있었다면 제격인데.”
“유소운 형님 말입니까?”
“그래. 소운이라면 암벽을 내려가기 전에 망루를 지키는 경비 둘쯤은 쥐도 새도 모르고 제거할 수 있으니까.”
“소운 형님은 어디에서 활을 쏘든 백발백중이실 겁니다. 암벽 타는 솜씨도 상당하시거든요.”
“못 보던 사이 실력이 늘었나보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정이니 당연한가.”
서백과 송현이 유소운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자 왕이삼은 자기도 모르게 심통이 나서 말했다.
“쳇, 그 길치 놈. 꼭 필요할 때면 자리에 없다니까!”
하지만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다들 요새 잠입 방법을 고민하는 중인데 자기 혼자만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니…….
왕이삼은 무공이 약할 뿐 뻔뻔한 철면피는 아니었다. 그는 괜한 말을 했다 싶어서 사과를 했다.
“아니, 뭐, 내 말은 소운 그놈이 항상 필요할 땐 없으니까…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순간 왕이삼이 그답지 않게 말을 뚝 끊었다.
한 번 입을 열면 분위기를 깨거나 장광설을 늘어놓는 왕이삼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일행은 무슨 까닭인지 궁금해서 그를 돌아봤다.
왕이삼이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후배, 내가 요새에 들어갈 방법 하나 알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