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망자 색출 작전(4)
서백이 통성명을 제안했을 때 비웃었던 살수들.
하지만 이번 제안을 들었을 때는 내심 무심한 척했지만 귀가 솔깃했다.
서백의 제안에 빈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수들은 동시에 그걸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도 눈빛을 교환하지 않았다. 서백과 송현 중 누구라도 눈치를 챈다면 좋은 기회가 날아가 버릴 테니까.
“그런 헛수작이 성공할 거라고 보냐?”
도화광이 반쯤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실은 모든 게 연기였다. 완전히 믿는 척하거나 몽땅 헛소리로 치부하면 서백이 눈치 챌 가능성이 있었다.
“명령자에 대한 정보가 확실한 거 맞냐고?”
“방주에서 지금까지 제가 말한 정보 중 틀린 것이 있습니까?”
“뭐 없는 것 같다만.”
“지금 명령자 때문에 발이 붙잡혔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망자 떼가 도시를 포위하면 끝장입니다.”
“그건 그렇지.”
“그전에 뭐라도 해 봐야죠.”
서백의 말에 도화광이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겼다. 물론 연기였다.
들킬까 봐 시선은 교환하고 있지 않지만 살수들의 눈빛은 새벽 하늘에 뜬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꼬마가 스스로 덫에 걸려드는군!
약관도 안 된 나이치고 제법 영리한 서백이 왜 저런 무모한 작전을 펼치는 걸까?
살수들은 그 의문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망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정심을 잃었군.
-어차피 약관도 안 된 어린애잖아. 당연한 일이지.
어쨌든 서백과 송현이 망자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놈은 완전 망자 전문가군.
-망자에 대한 정보는 부르는 게 값인데. 죽이기는 아깝지만 할 수 없지.
살수들이 침묵을 지키자 서백이 말했다.
“그럼 모두 찬성하시는 걸로 알고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그제야 살수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서백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 교환처럼 보였지만, 실은 서백이 계속해서 스스로 덫으로 들어오게 유도하자는 뜻이었다.
서백이 등에 멘 검을 내려서 검끝으로 바닥에 점 하나를 찍었다.
“여기가 지금 우리가 있는 집입니다.”
이어서 점을 중심으로 팔방위로 뻗어나가도록 일직선의 금을 여덟 개 그었다.
“이 집 주위에 있는 여덟 곳에 덫을 놓겠습니다.”
-덫은 이미 놨고 네가 발목을 넣고 있는 중이지!
“마침 주위 여덟 군데에 집이 있습니다. 일단 각자 한 명씩 떨어져서 집으로 이동합니다. 일행은 일곱 명이라 방위 하나가 남겠지만 어쩔 수 없죠.”
“여덟 군데에 모두 집이 있는 건 어떻게 아냐?”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습니다.”
“하! 꼬마 놈이 지나치게 꼼꼼하군.”
도화광의 말에 가시가 있었지만 서백은 눈치 채지 못하는지 그냥 넘어갔다.
“북쪽 집을 시작으로 한 명씩 원을 그리며 돌아가게 이동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순서는 장수, 서백, 왕표, 송현, 도화광, 왕이삼, 소삼락. 우리 일행과 방주에서 만난 무림인 네 분을 번갈아 섞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
살수 넷은 서로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할 뿐 반대하지 않았다. 서백이 제시한 순서는 두 무리가 뒤섞이기 때문에 공정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속셈은 전혀 달랐다.
-순진하군. 지금 공정한 게 중요한가?
-꼬마 놈이 알아서 자기 일행과 떨어져 주다니, 잘 먹으라고 밥상을 차려 주는 격이군!
살수 넷은 각자 머리를 굴리며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다.
“반대하시는 분이 없으니 순서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후배, 잠깐만. 우리끼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까?”
뜻밖에도 왕이삼이 의문을 제시했다.
일곱 명 중 가장 두뇌 회전이 느린 왕이삼마저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서백의 제안이 불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애초에 서백의 작전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고작 통성명한 것밖에 없는데 뭘 믿고 흑도인들과 작전을 펼친다는 말인가?
“지금은 작전의 위험 여부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명령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서백이 단호하게 잘라 말하자 왕이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각자 위치로 가서 은신하십시오. 밥 한 끼 먹을 시간(30분)이 지나면 제가 여덟 방위의 집을 차례로 돌겠습니다. 그리고 망자 떼가 몰려드는 곳을 발견하면.”
서백이 품에서 청색 폭죽을 꺼내 보였다.
“어느 집인지 알 수 있도록 공중에다 방위 쪽을 향해 폭죽을 쏠 테니 창문으로 보든 소리를 듣든 모두 모이십시오. 물론…….”
스윽. 서백이 바닥에 표시하느라 내렸던 검을 등걸이에 다시 멨다.
“혈귀들을 도륙하고 명령자를 처치할 각오를 하고 오십시오.”
무심하던 서백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항상 조롱을 일삼는 도화광마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만큼.
“그럼 이동합시다.”
서백의 말이 떨어지자 일행은 다시 호흡을 멈춘 뒤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각자 맡은 집을 향해서 팔방위로 뿔뿔이 흩어졌다. 정확히는 일곱 방향.
거리는 여전히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고 어디선가 망자들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정체를 숨긴 채 일행 속에 숨어 있는 명령자를 찾는 작전.
그런데 작전을 펼치는 일곱 명 중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바늘 소리도 들릴 만큼 적막한 집.
집안은 사람이 산 지 오래되었는지 바닥에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벽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소리 없이 잠입한 두 인영은 집안을 살피다가 상대편을 발견하고 동시에 놀랐다.
“뭐냐? 네놈이 왜 여기 있지?”
“그러는 네놈은? 네놈이 갈 곳은 여기가 아닐 텐데?”
둘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집안에 잠입한 두 인영은 장수와 왕표였다.
둘은 각자 자신의 애병인 만자도와 쌍검을 쥐고 있었다.
어둠을 틈타 누군가를 암습하려던 속셈.
장수와 왕표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씨익 웃었다.
“네놈도 꼬마를 노리고 왔냐?”
“당연하지. 그쪽도 마찬가지 아냐?”
둘이 잠입한 집은 팔방위 중 동북쪽에 있는 곳, 즉 서백의 책임 장소였다.
실은 장수와 왕표는 자신의 책임 장소로 향하다가 중간에 발을 돌려서 서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집안에 잠입했다가 서로 마주친 것이다.
둘이 자기들 방위로 안 가고 여기 온 이유는 하나.
바로 서백을 붙잡으려는 것!
마침 둘은 자기 방위의 바로 옆에 서백의 방위가 있었다. 참새도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데 둘은 처음부터 서백을 노리고 방주에 탄 자들이었으니…….
흑심을 들킨 둘은 머쓱한 미소를 짓다가 대화를 시작했다.
“꼬마는 어디 있냐?”
“못 봤는데.”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는군.”
“무슨 소리냐? 나는 방금 여기 왔다고.”
장수가 추궁하자 왕표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다가 되물었다.
“네놈이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들어오지 않았냐? 오호라, 미리 와서 꼬마를 잡아서 숨겨 두고 오히려 발뺌을 하는 것이군?”
“우리 둘은 동시에 들어왔는데 누가 먼저 왔다는 거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구나!”
“누가 할 소리!”
둘의 얼굴에서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지고,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게 변했다.
그때 구석진 곳의 어둠 속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라면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장수와 왕표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물론 서백이었다.
둘이 집안에 들어온 지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서백의 기척을 아무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서백이 어디 있냐며 코앞에서 말싸움까지 벌였으니…….
어둠 속에서 서백이 얼마나 비웃음을 지었을까?
살수는 은신이 생명이다.
청부살인을 위해서 목표가 나타날 때까지 며칠 밤낮을 숨어 있는 것은 물론, 살인을 마친 뒤에도 흔적을 지운 뒤 추격자의 눈을 피해 도주해야 한다.
누군가 은신하고 있으면 귀신 같이 잡아내는 것이 또한 살수다.
자신이 은신에 도가 튼 만큼 섣부른 상대가 은신하는 것쯤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흑도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살수 두 명이, 코앞에서 은신하고 있는 꼬마를 눈치 채지 못했다고?
아니, 서백은 딱히 어떤 수법을 써서 은신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둠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우두커니 서 있었을 뿐.
-꽤 하는 꼬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단하군.
서백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되자 장수와 왕표는 슬며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교환했다.
-싸우는 건 그만하고 일단 꼬마부터 잡자.
-그게 좋을 것 같군.
-협정을 맺는 건 어때? 남궁세가의 포상금은 평생 써도 다 못 쓸 금액이다. 꼬마를 잡아서 넘긴 뒤 포상금은 둘로 나누자.
-불만 없다. 그렇게 하지.
둘은 즉석에서 한 패로 손을 잡았다.
물론 둘 다 흑도인인만큼 누가 먼저 뒤통수를 칠지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때 걱정해도 되는 일.
눈앞의 꼬마를 일단 잡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래서 명령자가 누구냐, 꼬마야?”
왕표가 물었다.
그는 젊은 사내가 흔히 그러듯이 망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령자가 누구인지 알아서 손해 볼 건 없으니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서백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무슨 소리냐? 네가 망자 색출 작전을 제안…….”
“작전은 세웠습니다만 명령자에 대해 얘기한 것은 몽땅 거짓말입니다.”
“뭐라고?”
왕표와 장수는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망자들이 서로 뭉쳐 다니는 습성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혈귀들이 명령자의 존재를 깨닫고 모여드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명령자 색출은 불가능하죠.”
“왜?”
이번에는 장수가 물었다.
그러자 서백이 어이없다는 듯이 둘을 빤히 쳐다보다가 곧 한숨을 쉬며 반문했다.
“두 분은 바보 천치십니까?”
“뭐야? 이 어린놈이 오냐 오냐 하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명령자는 정반대로 했을 겁니다. 자신한테서 망자들이 멀리 떨어지도록 조종했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야 명령자라는 걸 들키지 않을 테니까요.”
“……!”
그 말에 장수와 왕표는 턱이 빠져라 입을 딱 벌리며 경악했다.
듣고 보니 서백의 말이 옳았다.
만약 일행 중에 명령자가 있다면 서백의 작전을 코앞에서 들은 셈.
자기 귀로 함정 얘기를 들었는데 누가 그 함정에 빠진다는 말인가!
장수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목소리를 흐리며 물었다.
“그럼 왜 이런 일을…….”
“벌였냐고요? 정말 멍청하군요.”
“네놈…….”
“몇 번을 말합니까? 이건 망자 색출 작전입니다.”
“아니, 방금 이 작전으로는 망자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함정에 걸려들지도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냐!”
장수가 버럭 소리 질렀다.
단순히 서백한테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서백의 얘기가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서백의 말이 논리에 맞으면서도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서백이 다시 무심한 목소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들한테 설명한 작전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실은 저는 망자를 색출해 낼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간단합니다.”
스윽.
서백이 등에 멘 검을 손에 쥐며 말했다.
“두 분의 목을 베면 망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