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천당문의 의뢰(3)
당조정은 첫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모 당홍이 거듭 강조했던 말.
-명심해라. 이번 일의 성패는 마차들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에 있다는 것을.
당조정 역시 그 말에 수긍했다. 이모의 전략은 이를테면 박리다매라고 할 수 있었다.
열 대의 마차. 그중 절반만 촉도관에 도착해도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당조정은 이모의 명을 충실히 수행했다. 열 대의 마차를 시간차를 두고 출발시켰던 것이다.
“다음 마차는 잠시 대기하라.”
마차 한 대가 장원을 나선 뒤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난 뒤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당조정은 두 번째 마차를 출발시켰다.
“이제 출발하라.”
무림인들은 당조정의 명령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각자도생의 촉도관행.
서로 돕지 말라는 명이 떨어진 이상 거리가 멀수록 좋다. 누군가 위험에 빠져도 모른 체하고 가 버릴 수 있지 않은가.
길을 떠나는 순서는 대문 쪽에 있던 자들부터였다.
그 바람에 자시에 가장 먼저 장원에 도착했던 서백과 왕이삼은 정반대로 마지막에 출발하게 되었다.
순서야 상관없지만 둘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서백과 왕이삼 차례가 왔다.
장원을 나서는데 서백은 등에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당조정이군.’
사천당문의 인물인 그가 약관도 안 된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삼 층 방에서 비무장을 지켜보던 것도 저자로군.’
서백은 그렇게 추측했다.
‘아마 이모란 자도 함께 있었겠지.’
이윽고 마차가 장원을 나가자 대문이 닫혔다.
끼이이익. 쿵.
횃불도 밝히지 못하는 길.
다행히 하늘에 달이 밝게 떠 있었다. 서백과 왕이삼은 달빛에 의지해서 마차를 몰았다.
왕이삼이 마차를 덮은 검은 천을 보며 말했다.
“저기 있는 게 대체 뭘까?”
“위험한 물건이겠죠.”
“얼마나 위험하길래 보지도 말라고 하는 거지? 궤짝 속에 독약이라도 들었나?”
“그럴 리가요.”
“왜? 사천당문은 독공으로 악명 높지 않은가? 독약이 있을 법도 하지.”
왕이삼이 수긍하지 않고 반문했다.
하지만 다음 서백의 말이 왕이삼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독약은 누가 가져도 위험한 물건입니다. 음식에 독을 타는 게 가능하다면 어린 아이라도 고수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번 일의 보수는 은원보 두 개입니다. 저 궤짝들이 전부 독약이라면 은원보 대신 저걸 훔치는 게 더 큰돈이 될 겁니다.”
“자네 말은 스무 명 중에 도둑이 나올 거란 소리인가?”
“아닙니다.”
서백은 고개를 저었다.
“사천당문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 안 했을 리 없습니다.”
“그럼?”
“마차에 실린 건 귀중품이 분명하지만 설령 도둑맞더라도 무림인들에게는 소용없는 물건일 겁니다. 무림인들에게 선뜻 물건 운송을 맡긴 것은 그래서겠죠.”
“그렇군.”
왕이삼은 서백의 설명에 혀를 내둘렀다.
“자네 도대체 몇 살인가? 아는 것도 그리 많고.”
“전 그저 이치대로 따져 보았을 뿐입니다.”
“허, 할 말 없게 만드는군. 그래, 나는 이치도 모르는 무지렁이 도검수일세!”
왕이삼은 투덜거리며 마차 앞으로 걸어갔다.
서백은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하지만 곧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이번 일에서 위험한 것은 물건이 아니다.’
마차에 실린 물건은 물론 위험한 것이리라.
하지만 사천당문의 주의 사항을 지켜야 하는 이상 어차피 물건을 볼 수는 없다. 걱정해 봐야 소용없는 일.
서백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마차 한 대당 은원보 두 개? 사람 한 명당이 아니고?’
당조정의 그 말은 위험천만했다.
만약 죽는 사람이 나올 경우, 그자의 마차를 대신 끌고 가도 보수를 지불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당조정은 남이 죽든 말든 마차만 운송하라고 했다.
마치 서로 죽이고 강한 자가 마차를 독차지해도 상관없다고 유혹하는 듯한 말.
스승은 사천당문이 사특한 뱀이라고 했다.
‘뱀을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역시 과욕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서백은 스승에게 고백하듯이 생각했다.
만약 스무 명의 무림인 중 누군가 마차 한 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낸다면?
촉도관행은 아수라장이 될 터!
‘이번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스무 명의 무림인.
열 대의 마차.
하나의 목적지, 촉도관.
서로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져서 길게 줄을 이은 행렬이 한밤중에 소리 없이 촉도관을 향해 나아갔다.
* * *
사천당문을 떠난 지 어느새 반 시진이 지났다.
불을 밝히지 못하고 어둠 속을 걷자니 갑갑했다. 그나마 하늘에 달이 휘영청 떠서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 주고 있었다.
왕이삼이 교대로 불침번을 서자고 제안했다.
“마차에서 눈 좀 붙이게. 한 시진 뒤에 깨울 테니까 교대하자고.”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근데 선배님보다 제가 먼저 눈을 붙여도 괜찮겠습니까?”
“뭘 모르는군. 불침번은 먼저 선 다음 해 뜰 때까지 자는 게 최고지. 내가 선배이니 나중에 잘 걸세.”
“제가 한 방 먹었군요.”
서백은 뒤로 돌아간 뒤 마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검은 천이 덮인 궤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한편, 무림인들의 촉도관행을 훔쳐보는 자들이 있었다.
자격 시험에 불합격하고 앙심을 품은 자.
바로 장씨세가 장우명과 검객들이었다.
객잔에서 서백을 본 장우명은 계책을 떠올렸다.
무림인들의 행선지는 촉도관.
사천당문에서 촉도관으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먼저 길을 나선 뒤 매복해 있다가 중간에 소년의 마차를 급습한다!
장우명은 검객들과 함께 자시가 되기 전에 출발했다. 그리고 무림인들보다 먼저 길 중간에 도착한 뒤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숲속에서 얼마나 오래 숨어 있었을까.
어느새 마차 아홉 대가 그들 앞을 지나갔다.
“그 꼬마 놈 아직 안 왔지?”
“네. 못 봤습니다.”
“무림인 스무 명이 두 명씩 조를 짜서 가고 있군. 마차 아홉 대가 지나갔으니 꼬마 놈은 마지막에 올 거다.”
“마침 잘됐군요.”
그런데 검객 중 하나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천당문 일을 맡은 자들을 건드려도 괜찮을까요?”
“걱정 마라. 다 생각이 있으니까.”
장우명이 기세등등해서 설명했다.
“꼬마 놈을 죽이고 마차를 빼앗아서 우리가 촉도관에 가는 거다. 그럼 내가 사천당문의 의뢰를 맡아서 마차를 운송한 셈이 되는 것 아니냐?”
“아아…….”
“마차들이 서로 떨어져서 가고 있으니 도울 사람도 없을 거다.”
“역시 공자의 계책은 대단하십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장우명은 파락호답게 평소 잔머리 굴리는 것 하나는 빨랐다.
두 형과 나이 터울이 커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장우명.
그는 어려서부터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방문을 보자마자 사천당문에 온 것도 공을 세워서 무림에 이름을 높이려는 허영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약관도 안 된 소년에게 밀려서 불합격이 되었으니…….
충족되지 못한 허영심은 증오로 변했고, 증오는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서백을 향했다.
‘두고 보자. 나 대신 꼬마 놈을 뽑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다.’
장우명은 사천당문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고 마음먹었다.
잠시 후.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 마차를 몰고 장우명 패거리가 숨은 곳을 향해 다가왔다.
“낮에 본 놈입니다. 저 수염난 놈이 꼬마랑 함께 있었습니다.”
“좋다. 다들 준비해라.”
스릉. 장우명이 검을 뽑았다.
검객 셋은 서로를 쳐다본 뒤 마지못해 검을 뽑았다.
무림인의 일, 그것도 사천당문의 일에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다니.
그들은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장우명은 한 번 결심한 일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단번에 달려들어서 끝장을 내자.
검객들은 그렇게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 *
왕이삼은 밤하늘에 뜬 달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한 시진쯤 되었겠군.’
캄캄한 건 여전했지만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서 그럭저럭 앞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때 길 앞에서 세 명의 인영(人影)이 튀어나왔다.
왕이삼은 손을 내려 박도를 잡았다. 숲속에서 나온 걸 보면 매복을 하고 있었다는 뜻.
‘대체 어떤 놈들이지? 녹림인가?’
선두에 선 자의 얼굴을 보고 왕이삼은 혀를 찼다.
‘비무장에서 난동을 피우던 파락호 놈?’
장우명이 시험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은 비무장에 있던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사천당문의 일에 끼어들 줄이야.
‘겁대가리가 없는 놈이군.’
장우명이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멈춰라! 마차를 두고 가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왕이삼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웃기는군. 누굴 호구로 아나.’
아무리 파락호라고 해도 사천당문의 일을 방해하는 게 어떤 뜻인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훗날 사천당문에 소문이 들어가면 장씨세가는 멸문지화를 당할 일.
즉 놈들은 사람을 죽여서 입을 막는 살인멸구를 시도할 것이다!
“후배, 일어나라.”
왕이삼은 마차 뒤쪽을 향해 속삭였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없었다.
“후배, 일어날 시간이라니까…….”
왕이삼은 흘깃 뒤로 시선을 돌리다가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궤짝에 몸을 기댄 채 자고 있던 서백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뭐야? 어디 간 거야?’
왕이삼이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자 장우명 패거리가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못 들었냐? 마차를 버리고 항복하라니까!”
왕이삼은 정신을 차리고 적을 살폈다.
장씨세가의 파락호는 걱정할 것 없었다.
그간 경험으로 보아 무명 세가의 공자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입만 살았지 무공은 형편없었으니까.
문제는 장우명의 좌우에 있는 검객 둘.
그들은 단순한 장씨세가의 식객으로 보기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왕이삼을 조용히 훑어보는 날카로운 눈매.
‘나 같은 도검수군.’
명문정파의 고수가 아닌 이상 왕이삼도 질 생각은 없었다. 도검수 둘이라면 이기지는 못해도 적어도 합을 겨룰 자신은 있었다.
게다가 서백이 있으니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인데…….
‘이녀석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건 사천당문의 마차다. 좋게 말할 때 길을 열어라.”
왕이삼은 혹시나 해서 경고를 해 봤다. 하지만 장우명은 말을 들을 인물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 사천당문의 마차를 네놈 같은 천한 것들에게 맡길 수야 없지.”
장우명의 말은 단호했다.
이제 한바탕 드잡이질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선제공격으로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최선!
왕이삼은 슬며시 박도 자루를 쥔 채 기회를 노렸다.
일단 도검수 중 하나에게 달려들어서 벤다. 검이 하나 줄어들면 파락호도 생각이 달라지리라.
‘왼쪽? 오른쪽?’
왕이삼이 둘을 살피며 저울질할 때였다.
갑자기 등 뒤의 수풀에서 인영이 튀어나왔다.
‘이런 제기랄.’
그제야 생각났다. 장우명은 검객이 모두 셋이었다.
장우명은 검객 하나를 시켜서 마차 뒤쪽을 급습하도록 작전을 짠 것이다. 검법이 형편없는 놈들이 잔머리는 잘 굴린다더니…….
쉬이익.
검객이 왕이삼의 등허리를 향해 검을 꽂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왕이삼은 절망한 나머지 무심코 소리쳤다.
“꼬마 놈아, 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여깁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은 어두운 하늘이었다.
팟. 휘이이잉.
한 차례 질풍이 어둠을 가른 찰나, 서백이 공중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검객의 목을 뎅겅 베어 버렸다.
검객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막 검을 찌르던 몸은 목을 잃자 동작을 멈추더니 통나무처럼 옆으로 넘어갔다.
툭. 털썩.
서백이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