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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44화 (4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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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독을 품은 용족의 심장」.

「키메라의 독낭」이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이걸로 바뀌었다.

그냥 드레이크도 아니고 포이즌 드레이크 이상 되는 용족 몬스터가, 그것도 엘리트 몬스터 라인쯤 돼야 극히 낮은 확률로 드롭하는 아이템이었다.

단순히 먹기만 해도 독성 저항이 올라가고, 장비나 비약 재료로도 쓸 수 있는 고오급 재료였다.

문제는 지금 당장 쓸 수 없다는 것이지만.

“독성을 제거하는 쪽으로 가공하면 효과가 떨어질 거고… 그렇다고 그냥 먹으면 바로 비명횡사할 거고. 음, 이건 100레벨쯤 돼야 입에 넣어 보겠네.”

혹시나 하고 인벤토리에서 심장을 꺼낸 도진은 치이익 하고 순식간에 타들어 가는 장갑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이걸 지금 먹었다가는 아무거나 주워 먹고 주화입마에 빠져서 벽에 똥칠하는 무협 머저리가 될 각이다.

“뭐, 나중에 돈 급하면 팔아치워도 되니까.”

어쨌든 키메라의 독낭과 비교하면 급이 몇 단계는 휙휙 뛴 물건을 얻었으니 그걸로 됐다.

먹을 수 있게 되면 먹어서 독 내성을 올려도 좋고, 운 좋게 독 관련 특성이 생기면 더 좋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팔아치워서 돈으로 바꿔도 된다.

이런 물건은 꼭 유저가 아니라도 마법사 탈을 쓴 놈들한테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이 정도면 인벤토리에 얼마가 생길까가 아니라 통장 잔고가 얼마나 바뀔까를 고민해야 하는 아이템이니 무조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인 메뉴는 이게 아니었다.

[흑룡 송곳니 단검]

분류만 ‘용족’이 아니라 진짜 ‘용’의 부속으로 만들어진 「흑룡의 송곳니 단검」이 바로 이번 전리품 정산의 주인공이었다.

도진은 떨리는 가슴으로 흑룡의 송곳니로 만들어진 단검의 상세정보를 띄웠다.

[흑룡의 송곳니 단검]

레벨 제한: 53

등급: S

공격력 및 마법 공격력: 150

고유 발동 스킬: 흑룡의 독니

어감만으로도 뭔가 비싸 보이고, 좋아 보이고, 왠지 모르게 뭘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만 같은 그 단어.

S급.

「흑룡의 송곳니 단검」은 도진이 모르는 단검이었지만, 툴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거, 아주 물건이다.

일단 ‘용’이란 단어가 포함된 주제에 레벨 제한이 말도 안 되게 낮다.

아마도 원래 보상인 「하베르칸의 송곳니 단검」의 레벨 제한이 적용돼서 그런 것 같았다.

레벨 제한 말고는 다른 제한도 없고, 또 페널티 옵션이 없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물공과 마공을 심플하게 다 올려 줘서 수요층이 많은 것도 장점이었고.

무엇보다 S급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발동 스킬이 떡하니 붙어 있다.

[흑룡의 독니]

저주받은 흑룡의 독니로 적을 중독시킨다. 중독된 대상에게 매초 고정된 피해를 입히며, 저주가 완성되는 순간 독 폭발을 일으켜 입힌 피해의 3배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입힌다.

지속 시간: 3분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

“…….”

스킬 설명을 읽은 도진은 경악했다.

고정 배율에 고정 피해만 해도 엄청난데, 그건 그냥 심어 넣은 저주를 완성하는 과정일 뿐.

진짜배기 공격은 독과 저주가 완전히 퍼지고 완성되어 터지는 3배의 버스트 대미지다.

독에 저주를 더해 대처하는 것도 힘든데, 어영부영 지속 시간을 채워 버리면 시한폭탄이 뻥! 하고 터지는 아주 잔혹한 공격이었다.

이렇게 이중으로 악랄한 스킬은 이런 데 특화된 트리를 타며 성장한 마법사나 주술사도 6성 스킬쯤은 돼야 등장할 정도다.

4성 마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도진이 단검 하나로 6성 마법에 준하는 재주를 뿌려 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배율도 이상한데?”

상세 페이지에서 정확한 수치를 확인했다.

3분 동안 들어가는 도트딜, 거기에 추가로 터지는 3배짜리 폭발 딜을 더해 보니, 마나를 풀로 때려 박아 시전하는 「섬광창」 10발이랑 비등비등한 대미지였다.

도진은 왠지 단검의 날에서 찬란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칙칙한 검은색 날인데, 그냥 빛이 나는 것 같다.

“이건 거의 S+급이다.”

같은 등급에서도 성능이 특출 난 것들이 있는데 이게 그런 물건이었다.

입술에서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도진은 냉큼 무기를 갈아 끼고 혹시라도 놓친 것이 없나 주변을 살폈다.

이미 모든 시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라 탐색은 어렵지 않았다.

“유혈 놈들이 제대로 된 걸 안 떨군 건 아쉽네.”

죽은 놈들이 떨군 아이템도 남김없이 쓱싹하려고 했던 도진이지만, 아쉽게도 유혈 길드원들이 죽은 자리에는 효과가 사라진 축성부만 남아 있었다.

레벨이 50 언저리만 돼도 1시간짜리 축성부가 최소 300만 원은 할 텐데. 역시 돈 많은 놈들이 모인 길드답다고 해야 할지.

결과적으로 보면 죽었을 때 경험치 소모를 절반으로 줄여 주고 아이템 드롭을 막아 주는 축성부 덕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니 놈들 입장에선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좀 아쉽게 됐지만.’

마지막으로 조용해진 공간을 슥 둘러보며 복수의 여운을 즐긴 도진은 발걸음을 옮겼다.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곳을 향해.

* * *

이렇다 할 특산품도 없이, 밀 농사만으로 먹고 사는 작은 마을 트리우드.

물질적으로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그냥 그런 마을이지만, 그래도 해맑게 뛰어다니는 동네 꼬마 아이들은 내세울 만한 것이었다.

“꺄하학!”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냅다 달리는 아이.

그 뒤로 몇몇 성난 꼬마 숙녀들이 앞선 아이를 쫓는다.

“기드! 잡히면 죽을 줄 알아!”

“흥, 내가 잡힐 줄 알고!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시지! 뚱땡이 돼지들아!”

용감한 꼬마 기드의 도발에 꼬마 숙녀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겨우 10살도 안 된 아이들이 쓰기에는 과하게 잔혹한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요약하자면, 기드는 잡히는 순간 가죽과 살과 뼈가 분리된 상태로 물고문을 당할 예정이었다.

기드는 숨도 안 쉬고 달렸다.

이제 7년. 세상에 태어난 지 7년 만에 저승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정말 실수였는데…….’

달리는 기드의 얼굴이 침울함으로 물들었다.

어제 잔뜩 놀려서 울려 놓은 에이델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들꽃도 잔뜩 땄다. 에이델이 좋아할 거 같아서.

그런데 찾아갔더니 뒤에 숨긴 들꽃을 꺼내 보기도 전에 이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속으로는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 친구가 아니니 말도 걸지 말라는 말에 욱해서 에이델의 짧은 머리를 잡아당기며 놀리고 말았다.

‘흥, 나도 남자 새끼처럼 머리 짧은 너랑은 친구 안 해!’

에이델은 대장장이 하이루스 아저씨의 막내딸이다.

원래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대장간에서 놀다가 머리카락이 홀랑 타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남자아이처럼 머리가 짧았다.

그걸로 우울해하는 걸 보고 웃겨 주려고 놀린 건데.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에이델 너는 머리가 짧든 길든 예ㅃ……. 아니, 이건 아니야.

달리는 와중에 고개를 휙휙 저은 기드는 확 하고 방향을 틀었다.

에이델과 달리 에이델의 언니 1, 2, 3은 정말 포악하고 힘이 세다.

잡히면 에이델을 울린 값을 과하게 치러야 할 것이기에, 기드는 힘껏 골목길로 달렸-

퍽.

기드의 눈이 번쩍했다.

방향을 트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친 것이었다.

“악!”

사람이랑 부딪친 건 맞나? 무슨 통나무 같은 게 아니라?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기드는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 주저앉았다.

기드는 자신이 뭐랑 부딪친 건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히이익!”

그리고 엉금엉금 뒤로 기었다.

자신과 충돌한 게 검은색 로브를 입은, 아주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어서였다.

차림만 봐도 불길해 보이는데, 얼굴은 더 위험해 보였다.

잘생기긴 했는데 뭐랄까 그냥 성격이 매우 더러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일단 튀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그런데.

“기드!”

“후후, 드디어 잡았다.”

골목 저편에는 오크 워리어 1, 2, 3이 나타나 있었다.

어느새 쫓아온 건지. 에이델과 달리 대장장이 아빠를 쏙 빼닮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들이다.

‘어, 어쩌지?’

전방은 사랑하는 막내를 울린 대역죄인을 가죽, 살, 뼈로 소분하려 드는 잔혹한 오크들.

후방은 난생처음 보는 위험해 보이는 사람.

일생일대의 기로에 선 기드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그때였다.

“위험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까?”

위험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겉모습과 달리 뭔가 친절한 듯한 목소리였다.

약간 웃음기도 느껴지고.

그래서 기드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기드의 요청을 받은 남자, 도진은 손가락을 꺾어 대며 다가오는 꼬마 숙녀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얘들아.”

그러자 분노에 눈이 돌아가 제3자의 존재를 인식도 않고 있던 삼인방이 도진을 발견했다.

온통 까무잡잡한 마을 남자들과 달리 새하얀 피부를 가진 도진을 본 꼬마 숙녀들이 움찔했다.

“누, 누구세요?”

가장 키가 큰 첫째가 물었다.

기드를 벌하고자 할 때와 달리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아, 나는 이 꼬마랑 아는 사이인데… 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거 같아서.”

도진의 말에 기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도진은 눈치 없는 꼬마의 머리를 꾹 눌러 말을 막았다.

“기드… 랑요?”

당신 같은 분이 저런 촌스런 꼬마랑 아는 사이시라고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는 첫째. 나란히 선 둘째 셋째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도 도진의 분위기가 분위기이고, 무엇보다 하얗고 잘생긴 남자를 정말 난생처음 보는지라 에이델의 언니들은 당장 기드를 분해해야 하니 넘겨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이걸 줄게.”

망설이는 사람의 선택에 힘을 실어 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최고였다.

도진은 꼬마 1, 2, 3을 향해 인벤토리에 굴러다니는 잡템이나 다름없는 장신구를 하나씩 주었다.

“헉!”

그것도 염동력으로 띄워서.

둥실둥실 떠서 다가오는 반지에 시선이 꽂힌 꼬마들이 비명처럼 물었다.

“마, 마술사예요?”

도진은 웃으며 답했다. 비슷한 거라고.

어쨌든 신기한 기술에 예쁜 반지까지. 꼬마들의 도진에 대한 호감도는 순식간에 수직 상승했고, 덕분에 기드는 도진에게 양도되었다.

도진은 반지 세 개로 산 꼬마를 대롱대롱 들고 마을 뒤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래 봬도 마을을 세 바퀴나 돌며 찾은 아이였다.

‘이런 장난꾸러기일 거라고는 상상 못 했지만.’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하베르칸에게 처참히 짓밟힌 폐허 속에서 싸늘하게 죽어가던 아이의 얼굴에서 이런 모습을 떠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한 도진은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마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름이 뭐냐?”

우물쭈물 눈치만 보던 기드가 작게 대답했다. 기, 기드요. 하고.

피식 웃은 도진은 기드를 보며 물었다.

“무슨 장난을 쳤길래 그렇게 쫓겨 다녀?”

“…몰라요. 그냥 걔들이 난폭한 거예요.”

“아닌 거 같던데.”

도진은 기드의 꼭 쥔 손을 봤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지만, 꽉 쥐고 있는 건 어떻게 봐도 꽃이었다.

“꽃가게에서 꽃이라도 훔쳤냐?”

“네?”

도진의 말에 기드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거든요?”

“그럼 고백하다가 차였어? 아니지, 고백한 게 죽을죄는 또 아닌데.”

“…….”

말이 없어진 기드를 본 도진은 하하하 유쾌하게 웃었다.

그냥 저 아래 마을을 보고, 이 꼬마를 보고, 이렇게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전생에는 처참히 부서졌던 곳. 그런 곳이 내가 바꾼 미래로 인해 숨을 쉰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엄마를 부르며 죽어가던 아이가 장난을 치고, 풋사랑 같은 들꽃을 손에 쥐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만들었다.

심장 부근이 간지럽고, 가슴 한편이 따뜻한 무언가로 채워지는, 그냥 좋은 느낌이었다.

“저 아래 보이지? 너 오기만 기다리는 쟤들.”

도진은 언덕 아래에서 이쪽을 구경하는 중인 셋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아.”

“어차피 내려가면 또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거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얘기해 봐. 인생 선배인 형이 들어줄 테니까.”

“아저씨가요?”

“너, 저기 밑에 있는 애들한테 넘겨 버린다?”

“…형이요?”

기드는 결국 한숨을 쉬고는 도진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진은 평화로운 마을을 내려다보며 기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평범한 꼬마의 첫사랑 이야기를.

그 이야기가 끝날 때쯤.

마을 저편에 석양이 걸렸다.

때마침 한참이나 안 보이는 친구를 찾아 언덕 아래서 작은 아이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꼬마의 첫사랑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일 아이가.

도진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잘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짧은 인사를 건넨 도진은 마지막으로 마을의 전경과 작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눈에 새긴 뒤 걸음을 떼었다.

그런 그를, 운명이 바뀐 소년은 이상한 사람을 보듯 한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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