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45화 (46/271)

45

도진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쳇바퀴. 그래, 쳇바퀴를 닮아 있었다.

일어나서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고, 또 게임을 한다.

중간중간 짬을 내어 먹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홈 트레이닝도 하지만, 어쨌든 게임이 1순위였다.

수면마저도 가수면 모드를 활용하고, 진짜 잠은 정말 한계에 다다랐을 때만 잤다.

그 결과 도진은 많은 걸 손에 넣었다.

통쾌한 복수극 이후 직접 쓸 것을 제외하고 그간 얻은 것들을 처분하고, 새롭게 필요한 걸 구해서 내실을 다졌다.

급조했던 장비 세팅을 C급 이상 방어구 세팅으로 바뀌었고, 마법 쪽에도 적잖이 투자해서 1성부터 4성까지 제법 많은 마법들을 진리의 서에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돈이 꽤 남아서 통장에는 1천만 원,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는 돈이 3천 골드가 있다.

버는 족족 재투자를 하는 데도 이 정도가 남았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매우 풍족하다고 할 만했다.

이 모든 게 회귀한 이후로 단 한순간의 낭비도 없이 쉼 없이 달리고 달린 결과였다.

잘살고 있다. 나는 잘살고 있다. 그래, 잘살고 있… 나?

“뭔가… 이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로트라넷에 뜬 배너 광고를 보고 주문한 닭가슴살 큐브를 우물거리며 도진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뭘 빼먹었길래 이렇게 찜찜하지? 분명 레벨도 순조롭게 올라서 54레벨이 됐고, 장비도 업그레이드했고, 지저분했던 인벤토리도 싹 정리해서 현금과 골드로 깔끔하게 환금을 마쳤다.

일주일 가까이 걸린 정산을 끝내고 비로소 깨끗해진 템창을 보고 대청소를 마친 듯 뿌듯한 감정을 느낀 게 불과 이틀 전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로그아웃을 하고서 씻고 닭가슴살 큐브를 꺼내 먹고 있으려니 문득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위화감이 드는 건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도진은 불현듯 눈에 들어온 현관문을 보고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회귀하고 저 문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나?’

있긴 있다. 문 앞에 놓인 택배 들고 들어올 때랑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

물론 그걸 외출이라고 쳐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관문은 고사하고 방문조차 열지 않는 방구석 폐인이면 또 몰라도.

새 삶을 얻었을 때 분명 다짐했었다.

이번에는 가상현실, 게임, LOST, 로스타니아만 챙기지 말고 인간 도진, 지구에 사는 도진, 대한민국 20세 청년 도진으로서도 멋지게 살겠다고.

‘…계획은 완벽했어. 계획한 걸 그대로 실행해 옮기기도 했고.’

다만 문제는… 계획된 것을 실행한 곳이 전부 가상현실이라는 것.

현실에서도 멋지게, 아니 하다못해 사람답게 살기 프로젝트는 뒷전으로 밀리다 못해 아예 잊고 있었다.

실수를 깨달은 도진은 자신의 방을 둘러봤다.

입이 비뚤어져도 제대로 된 사람이 사는 방처럼 보이진 않았다.

넓지 않은 원룸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캡슐과 캡슐용 에너지팩은 그렇다 치더라도.

맛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부터 찾아야 할 것만 같은 칼로리와 영양성분‘만’ 따져서 잔뜩 사 놓은 식료품은 마치 벙커 안에 쌓인 생존 식량처럼 보였다.

아니, 잠깐만. 저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고양이 간식용?

“…….”

도진은 자신이 집어먹고 있는 닭가슴살 큐브가 사실은 고양이 간식용으로 나온 상품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왠지 더럽게 맛없더라.”

그래도 염분은 아예 없다시피 하고 단백질 함량은 높으니까 몸엔 좋겠지. 사람 음식을 고양이가 먹으면 탈이 나도, 고양이 먹으라고 나온 걸 사람이 먹어서 탈 날 일은 없을 거다. 아마도.

“어쨌든 이대로는 안 돼.”

보육원 출신에게 일부 월세 지원이 나온다는 이유로 선택한 임대 원룸에서 고양이 간식용 닭가슴살 큐브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건 멋진 삶이 아니다.

전생에 비하면 낫다고 자위할 게 아니었다.

전생, 전생.

그것보다 나쁘려면 진짜 관짝에 드러눕는 거 아니면 다 나은 삶이다.

도진은 당분간 게임을 좀 줄이고 현실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방법을 궁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계획도 다 세워 놨었다. 빌드업도 착실히 하고 있었고.

다만 실행하는 걸 미루다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시기도 딱 적당하네. 지금이 내 값이 가장 비쌀 때니까.’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했다.

도진은 보류되어 있던 계획 실행을 위해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녹화된 영상 파일을 확인했다.

그간 게임을 하면서 주요 장면마다 모아 놓은 영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도진은 그 영상들 중에서 하베르칸 솔로 레이드 영상을 골라 내서 전투 장면만 잘라 냈다.

“대충 채널 파서 영상 올린 다음에 로트라넷 익명 게시판에 링크 뿌리면 되겠지?”

현실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도진이 가장 먼저 하기로 한 일은 바로 유튜브 채널 만들기였다.

갑자기 유튜브라니. 영상 올리는 것과 삭막한 삶이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도진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람답게 살려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걸 다 챙기려면 너무 귀찮잖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도진에게는 당장 돈으로 모든 귀찮음을 스킵할 재산이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스스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좁은 원룸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돈만으로 해결되는 게 없었다.

집을 보러 돌아다니며 이사할 집을 찾아야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계약도 해야 하고, 이사 준비와 이사를 마치기까지의 귀찮은 과정도 있고, 하다못해 전입신고까지…….

도진은 그런 일체의 귀찮은 일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바로 유튜브다.

유혈 길드를 엿 먹인 사건으로 대중의 관심이 정점을 찍은 지금 영상을 올려서 어그로를 좀 끌어 주면 도진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온갖 곳에서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길드만이 아니라 MCN도 있을 거고, 에이전시나 연예기획사에서도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적당한 곳이랑 계약을 하고, 계약 조건에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매니저 하나만 붙여 달라고 하면…….

“귀찮은 걸 내가 할 필요가 사라지는 거지.”

노예만 하나 생기면 현실 환경을 개선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후후후. 사악하게 웃은 도진은 막 새로 만든 계정으로 영상을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테레사: 도진 씨, 안녕하세요. 저… 다름이 아니라 도진 씨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LOST 친구는 가상현실 네트워크와 연동되고, 이건 또 스마트폰, PC 같은 기기에도 연동이 된다.

테레사의 메시지가 PC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광산에서 함께 사냥을 한 뒤 테레사는 몇 번인가 메시지를 보냈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이, 그냥 안부 인사 정도였다.

그것도 최근에는 뜸해졌었는데… 갑자기 무슨 부탁이라는 걸까.

짐작 가는 바가 없어서 도진은 그냥 묻기로 했다.

뭐 심각한 일이라고 상대의 의중을 궁리해?

[도진: 무슨 일인데요?]

[테레사: 그… 좀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한데요. 그 영상에 나오는 마법사, 도진 씨 맞죠?]

아, 그 일인가? 하긴 LOST 관련 커뮤니티를 벌써 일주일 넘게 달구고 있는 영상이다. 테레사도 봤겠지.

[도진: 벌써 제 얼굴 까먹었어요?]

[테레사: 아뇨, 아뇨.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예요. 처음 보고 너무 놀라서.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니까요. 도대체 어떻게 레벨을 그렇게 빨리 올린 거예요?]

[도진: 사실은 쌍둥이 형이에요.]

[테레사: ?]

[도진: 진짠데.]

[테레사: 헉 진짜요? 하긴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저희랑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레벨이 올랐을 리가 없잖아요.]

“이걸 진짜 믿네.”

그냥 한 농담에 덜컥 걸려드는 테레사를 본 도진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도진: 그런데 그거 물어보는 게 부탁이었어요?]

[테레사: 아 맞다. 그건 아니고요. 그 영상 관련된 일로 소소가 연락을 좀 하고 싶다고 해서요. 아, 소소 기억하시죠? 파티 힐러였던 제 친구요.]

[도진: 당연히 기억하죠. 그런데 그분이 왜요?]

다른 둘과 달리 헤어질 때 친구 추가도 안 한 게 소소였다.

어차피 이 게임 오래 할 생각도 없다고.

그런 그녀가 지금 왜 튀어나온 걸까.

[테레사: 아, 그게요…….]

궁금증을 느낀 도진은 이어지는 테레사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 * *

라엘 그룹 김향기 회장.

올해 49세에 접어든 그녀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20대 초반에는 형제들과 피 튀는 상속 전쟁을.

30대 중반에는 이혼 소송 과정에서 서로의 뼈와 살을 노리는 아귀다툼을.

이제는 중견 기업의 회장으로서 사세를 확장하기 위한 살 떨리는 생존경쟁을.

이지적이고 세련된,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만 보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녀는 줄곧 전쟁터, 그것도 최전방에서 싸움을 해 온 여장부였다.

“어떻게 돼 가고 있니?”

그런 김향기가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정말 근황 보고나 해 보라는 듯.

그러나 질문은 받는 당사자, 주강희는 마치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진 듯한 기분이었다.

‘죽어도 말 못 해. 한 명도 못 건졌다고 말 못 해. 죽일 거야. 분명 향기 이모가 날 죽일 거라고!’

주강희에게 있어 김향기 회장은 아빠 같은 사람이었다.

아픈 엄마의 병원비는 물론이고, 자신이 자라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해 준 가족 같은 사람.

엄마를 몇 년이나 더 볼 수 있었던 것도, MBA 유학도, 전부 김향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주강희에게 있어 김향기는 은인이었다.

입사를 하면서도 다짐했었다. 꼭 은혜를 갚자고.

그런데 지금은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언제나 천사 같았던 향기 이모가 회장님일 때는 악마보다 더 무서웠다.

그래도 어쨌든 보고는 해야 했다. 향기 이모는 자신이 우물쭈물할 때 예쁘고 귀엽게 봐주었지만, ‘회장님’은 일할 때 버벅대면 바로 불호령을 내리니까.

“저…….”

“강희야.”

“네, 네?”

“이제 입사한 지 1년쯤 됐나?”

“네.”

김향기가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쉬었다.

“난 시간 낭비하는 걸 싫어해. 사원부터 착실히? 좋지. 그런 능력밖에 안 되는 사람한테는. 하지만 넌 아니잖아? 그래서 1년 만에 너한테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맡길 결심을 한 거고.”

“…죄송합니다.”

“아니, 탓하는 게 아니야.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대화를 좀 하려는 거지.”

“회, 회장님께서 왜 사과를…….”

“내가 널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능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괜한 기대를 하는 바람에 널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콱. 주강희의 심장에 비수가 꽂혔다.

역시 회장님일 때의 향기 이모는 혀가 칼로 된 악마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힘든 거긴 해. 지금까지 우리 라엘 그룹은 패션이랑 화장품 쪽이 주력이었으니까. 갑자기 에이전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갑자기 김향기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라엘 그룹 회장일 때의 목소리였다.

“그런 만큼 난 너한테 충분한 재량권을 줬다고 생각해. 다른 곳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좋다고. 손해를 봐도 좋고, 수익성이 없는 수준이어도 좋다고. 그러니까 라엘을 대표할 만한 얼굴을 섭외하라고. 연예인이든 누구든, 라엘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도움만 되면 된다고.”

잠시 여백을 둔 김향기 회장이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벌써 두 달째 한 명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이 없다?”

주강희는 슥 무릎을 꿇었다.

속으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무섭다.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강희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라엘 그룹이 패션이랑 화장품 그리고 주얼리 쪽에서 나름 힘 좀 쓴다지만, 그래 봐야 기획사로서는 그야말로 갓난아기다.

아니, 그냥 태아 세포 단계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몰랐다.

그런 곳으로 A급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끌고 오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다.

그래, 말하자. 이런 사정을 말하는 거야!

주강희가 고개를 든 순간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향기가 쓸쓸한 눈으로 선수를 쳤다.

“나한테 친딸은 소소 하나지만,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너도 내 딸이야. 내가 죽으면 내가 가진 거 너랑 소소한테 다 줄 거야. 싸울 것도 없어. 죽기 전에 딱 반으로 잘라서 줄 거거든.”

그런데 그러면?

“그냥 손에 쥐여 주면 그걸 어떻게 지키니? 제대로 일을 할 줄 알고, 일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가진 걸 지킬 수도 있어.”

주강희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딸 같다 해 주는 사람한테 징징거릴 뻔뻔함 따위 그녀에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방향을 트는 쪽으로라도 일을 진행시키자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제 좀 눈이 제대로 바뀌었네. 그래야 나랑 이수 딸이지.”

“…….”

죽은 엄마의 이름을 말하며 슬픈 듯 대견한 듯 바라보는 향기 이모.

무서운 사람이다. 이러면 죽을 각오로 일할 수밖에 없잖아.

김향기 회장의 사람 다루는 기술에 감탄하며, 주강희는 회사원으로서 보고를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신생 기획사, 그것도 아직 제대로 사업도 시작 안 한 기획사에 A급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영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기존 연예계의… 신뢰가 부족한 문화에 익숙한 자들이라 계약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뒤통수 맞고 때리는 거에 익숙하다는 소리네. 그래서?”

“욕심을 조금 내려 두고, 다른 부분을 노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화제성이라든지 미래의 가능성을 본 투자라든지.”

“내가 말만 번지르르한 거 싫어하는 거 알지? 미래를 위한 투자니 뭐니 하는 건 결국 이름 없는 신인을 처음부터 키우자는 건데… 이건 시간이 과하게 오래 걸려. 난 돈을 쓰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데리고 시작을 하고 싶은 거야. 그럼 남는 건 화제성인데… 이름 없는 인물로 화제성? 이게 가능한가?”

“낮은 확률이지만, 가능은 합니다. 요즘 꽤 화제성 높은 사람이랑 연결고리가 저희한테 있어서요.”

말하며, 주강희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블릿에는 일시 정지된 동영상 화면이 떠 있었다.

“잘생겼네. 그런데 복장이 왜 이래? 아, 게임이구나. 이게 그 요즘 유행한다는 LOST인가 하는 건가?”

“네. 그 사람이 요즘 그 게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그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방송사에서 난리를 칠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럼 경쟁자가 엄청 많다는 거네. 그런데도 이렇게 보여 준다는 건… 방법이 있다는 소리겠지?”

“방송사든 어디든 지금 그 사람을 찾으려고 난리지만, 찾을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입니다.”

“본론.”

“다음 화면에 있습니다.”

휙. 김향기는 화면을 넘겼다.

그러자 보인 건.

“…얘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이거, 레사 아니야?”

작게 찍힌 자신의 딸과 딸의 거의 유일한 친구 태레사의 모습이었다.

“거기 소소 앞쪽에 있는 검은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방금 그 사람이랑 동일인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방송가에서 찾고 싶어 하는 인물과 소소가 지인이라는 소리죠.”

씨익. 김향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소 불러.”

“소소 성격을 감안할 때 쉽게 협조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걔 입사해야 하는 게 언제지?”

“일주일이 안 남았습니다.”

“이 일 성사시키면 한 달 더 놀게 해 준다고 해.”

“넵.”

“화제성도 화제성이지만, 마스크가 마음에 드네. 잘생긴 건 둘째치고 느낌이 있어. 이번 겨울 신상 콘셉트가 늑대인데 딱 그런 느낌이야.”

이것이 테레사가 도진에게 메시지를 보낸, 정작 소소에게 부탁받은 테레사조차 제대로 모르는 전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