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어젯밤 늦게까지 운정 식당에서 엄마랑 그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를 한을 풀 듯 오랫동안 나누었다.
서희 아빠가 야식까지 만들어 주어서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난 엄마가 놓인 상황과 입장을 잘 알았기에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없었다고 그동안 생각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면에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아쉬움, 안타까움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엄마에게 나서지 못하고 나 자신을 속였던 것 같았다.
그래도 어제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을 다 풀 수가 있었다.
엄마 또한, 그동안 나에게 가졌던 미안함, 자식을 버렸다는 죄의식 속에 살던 마음을 다 풀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
어제 만남으로 인해 이제는 서로 모든 쌓였던 앙금을 전부 풀고 새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나에게 다시 소중한 가족이 생긴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일어나면서부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며 모든 게 정답고 행복하게만 느껴지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생긴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엄마뿐만 아니라 새아빠도 여동생도 남동생도 졸지에 생겼다.
남동생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름은 나한수로 군대 제대하고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 날 집으로 초대하여 전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약속하였다.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강성중입니다.)
이놈이 나한테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아침부터 왜 전화지?
“어 성중아! 왜?”
(사장님 커피숍으로 오실 겁니까?)
“응.”
(오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 난리입니다. 제가 커피숍 문을 열기 전부터 커피숍 앞에 사람들도 인산인해였습니다. 지금 매장 안에는 사람들도 꽉 차 있고 밖에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나 때문에?”
(네. 맞습니다. 미나 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나 때는 젊은 남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젊은 여성들도 꽤 많고 그뿐만 아니라 남녀 연령층이 다양하고 기자들도 엄청 많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내 인기가 많은가? 난 연예인도 아닌데.
“그 정도야?”
(네.)
“내가 미나보다 인기가 더 많은 거야?”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게시판에 내 이야기가 올라간 건가?”
(제가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고 몰려온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절대 커피숍에 오지 마십시오. 사장님 오면 진짜 커피숍 난리 납니다. 저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커피숍 문을 열자마자 나영이한테 연락하여 오라고 해서 둘이 있는데도 벅찹니다.)
“상철이는 뭐해?”
(늘 똑같지 않습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게임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놈이야.
“알았어. 커피숍 가지 않을게. 희수는 나왔어?”
(네. 예전에 커피숍 알바도 해 봐서 지금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희수 보고 나 역삼동으로 갈 거니까 지금 내 집 앞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이제 커피숍은 다 갔네. 한동안 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오겠지. 이제는 커피숍은 가끔가다 가야겠네.
준비를 마저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아파트 현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상도가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바로 역삼동으로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희수도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 잠시 기다리죠.”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희수가 왔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좋은 아침! 커피숍은 어때?”
“엄청나요. 아침부터 손님들이 엄청 왔어요. 항상 한가하다가 커피숍에 그렇게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예요. 기자들도 많이 왔는데 고문님 언제 나오냐고 자꾸 물어봐요. 오늘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자꾸 언제 나오냐며 귀찮게 해요.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재수가 없어요.”
기자다운 기자도 있겠지만 기자도 예전과 같이 정의나 사실 보도나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흥미 위주로 기사를 쓰는 기레기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나의 뇌피셜이지만 한국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기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정치를 잘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기자들이 기자 정신으로 잘못된 것들을 비판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기레기들이 앞장서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조장하니 정치적, 사회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는 거다.
어쩌면 압박이 심했던 80년대 기자들이 더 기자다운 것 같았다.
“맞아. 기자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고 밥맛도 없지.”
“호호호. 맞아요. 저는 기자들을 오늘 처음 겪었는데 재수가 없다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며느리 희수도 소개해 주어야 하는데.
아들이 선택한 여자인데 설마 희수가 고아라고 반대하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 설마?
“당분간은 역삼동으로 출근할 거야. 가자.”
* * *
역삼동 사옥으로 가는 도중에 오션 염중섭 대표에게 전화가 와서 도착하자마자 염중섭 대표에게 갔다.
차를 앞에 두고 앉았다.
“고문님!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왜요?”
“처음 볼 때부터 표정이 환하고 계속 싱글벙글합니다.”
엄마 때문인 것 같았다.
“요즘 좋은 일이 계속 생기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GN 소식 들으셨습니까?”
“아뇨. 무슨 일 있어요?”
“저도 조금 전에 들은 소식인데 어제 미국에서 GN이 대유 자동차 인수를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어쩐지 아침에 출근하니 정부에서 채권단에서 연락이 와서 대우 자동차 매각 협상을 빨리 진행하자고 하여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GN이 대유 자동차 인수를 포기하니 급해졌나 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 애태우고 시큰둥하더니만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내 예상대로 GN이 오션과는 척을 지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 같았다. 잘 선택한 거지.
GN 입장에서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나 안 하나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텐데 오션과 경쟁하며 무리하게 인수할 필요는 없겠지.
“GN이 현명한 판단을 했네요.”
“저라도 그렇게 결정했을 겁니다. 수소 내연 기관이 개발되었는데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그동안 정부나 채권단에서 애를 먹였나요?”
“말도 마십시오. 제가 판단하기에도 대유 자동차나 한국 경제에도 오션을 선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텐데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으로 나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도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채권단은 확실히 오션 편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 하여도 GN이 포기한 이상 이제는 선택지가 없어졌으니 상황이 바뀐 거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으니 제가 좀 애를 태우고 싶습니다.”
“적당히 애만 태우세요. 우리도 빨리 대유 자동차를 인수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근데 대유 자동차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알아보니 유럽 등 해외에 몇 곳이 있습니다. 앞으로를 위해서 그곳도 인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우즈베키스탄에도 있기는 하지. 한국 대유 자동차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 인수하면 좋기는 하지.
“해외 공장은 대유 자동차이기는 하지만 지분 관계가 현지 기업과 정부와 얽혀 있을 거예요, 먼저 자세히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것은 없죠?”
“네. 없습니다. 아! 그리고 수소 내연 기관 제대로 테스트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대유 자동차를 인수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낭패이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지금 미국에서 전문가들을 모아 시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아마도 한두 달이면 수작업으로 만든 거지만 세계 최초로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공장이 없어서 쉽지 않을 텐데 가능은 합니까? 제가 기계 쪽은 잘 몰라서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로버트 크레나 박사가 공장 인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시제품을 먼저 직접 생산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크레나 박사는 나이가 있다 보니 마음이 조급한 것 같았다. 자신이 살아생전에 꼭 수소 내연 자동차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엔진 등 기존 부속들은 기존 자동차를 이용하면 되고 우리는 수소 내연 기관만 만들어 조립하면 그다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어렵지 않다고 하여 에릭 주도하에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필요한 연구원들은 로버트 크레나 박사가 몇 명을 데리고 와서 해결하였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소 내연 기관만 만들고 나머지는 전부 기존 자동차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빨리 시제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시제품이 출시되면 그때는 믿을 겁니다. 또 수소 내연으로 차가 움직인다면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 겁니다.”
“그럴 거예요.”
염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염 대표 사무실을 나오자 비서실에 희수와 배상도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희수랑 배상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네. 난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그전에는 이곳에 오면 배상도 자리가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는데 자리가 있으니 보기가 좋았다.
배상도 앞으로 갔다.
“이곳이 배 대리님 자리예요?”
“네. 그렇습니다.”
“진작에 마련해 주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네. 좋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무척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나름 외국 기업이고 고문 비서로 취업했는데 정식 사무실도 없고 자기 자리도 없고 맨날 커피숍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정식적인 사무실과 자리가 생기니 나 같아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희수는 나랑 같이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을 거다.
“당분간은 계속 여기로 출근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내 사무실로 들어와 소파에 앉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도진입니다. 지금 커피숍에 왔다가 고문님이 안 계셔 전화 드리는 겁니다.)
“지금 커피숍 어때요?”
(사람들이 많아서 무척 놀랐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제가 그곳에 있다는 게 알려져서요. 저를 보려고 온 사람들이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 지금 역삼동 사옥에 있거든요. 이쪽으로 오실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박도진이 와서 소파에 앉았다.
“고문님 인기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저 인기 많다는 거 이제 알았어요?”
“네. 그렇습니다. 고문님이 젊고 잘생기고 능력도 많고 재벌이니 당연할 겁니다.”
난 농담으로 말한 건데 정색하며 대답하냐? 민망하게끔.
“농담이에요. 보고할 게 뭔가요?”
“오전에 알게 된 소식인데 검찰에서 진성 진동훈 회장에 대한 출석요구서가 발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압수 수색한 결과가 나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