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맞아. 내가 생각해도 신은 불공평하고 세상 자체가 불공평하지.
자신의 의지나 뜻과는 상관없이 복불복처럼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고 누구는 흙수저로 태어나고 또 나처럼 과거로 오는 행운도 없을 테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의 시작이야. 그래서 내가 종교를 믿지 않잖아.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런 불공평한 것이 없었을 거야.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방관자 또는 게으른 신일 거야.”
“종교인들이 들으면 욕하겠습니다.”
“종교인들은 참 편한 것 같아. 잘 되면 무조건 신의 축복이고 잘못돼도 신의 뜻이라고 하면 되거든. 너는 종교 있어?”
“저는 없습니다만 엄마가 교회에 다닙니다. 사장님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 난 신은 있다고 생각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단세포에서 발전하여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기에는 우리 생명체는 너무 신비롭고 과학적이거든. 과학이 이렇게 발달해도 아직 인체에 대해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잖아. 난 신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야.”
“천재의 해석입니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 그걸 정확히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나중에 죽으면 알 수도 있고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불공평하다고 신을 원망하지 말고 현재 자신의 삶에서 다 나은 삶이 되도록 노력하란 말이야. 남이 나보다 앞서 출발했다고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네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어. 물론 너무 앞서 나간 사람은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그건 예외로 쳐야지.”
“사장님 같은 경우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난 네 말대로 사기 캐릭터니까.”
“알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게임하는 시간도 줄이고 그 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강성중, 하면 하는 강성중입니다.”
“그래. 열심히 해.”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분한테 오는 전화 아닙니까? 얼른 받으십시오.”
어휴! 저놈을?
“진민재입니다.”
(나 장서필이네.)
연락한다고 하더니만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서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했네.
“안녕하세요? 회장님!”
(한번 와. 언제 올래?)
한번 만날 거면 빨리 만나는 것이 좋겠지. 근데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또 아빠 연구 자료 이야기하려나?
이제 아빠 연구 자료 이야기는 지겨웠다. 작은 단서라도 있어야지 희망을 걸지.
“내일 오전에 가겠습니다.”
(그래.)
전화가 끊겼다. 뭐야? 그냥 끊게. 가지 말까 보다.
다음 날 아침 현도 자동차 회장인 장서필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장서필은 찻잔을 들고 마시면서 앞에 앉아 있는 진민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집에 초대한 이후에 진민재를 만나기 전에 자세히 알고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사하느라 이제야 연락을 하였다.
조사 결과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이 혼자 힘으로 한 거였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아버지가 천재라고 하는 이유가 충분하였다.
아버지는 진상규 박사가 남긴 연구 자료를 찾기를 원하지만, 국정원과 CIA에서도 못 찾는 것을 자신이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불가능한 것에 괜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진민재를 부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이놈을 수아의 짝으로 생각하고 있어 어떤 놈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네는 꿈이 무엇인가?”
난 아빠 연구 자료에 관해 물어볼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꿈이 무엇이라니? 그러고 보니 내 꿈이 무엇이지?
할아버지가 한평생 일꾼 진성 그룹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다시 찾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 지식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재벌이 되는 것일까?
난 무엇 때문에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일까? 당연히 성공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게 나의 진정한 꿈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꿈은 없이 맹목적으로 성공만을 위해 달린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게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난 특별히 추구하는 꿈은 없는 것 같았다.
“꿈이 없습니다.”
“뭐? 없다고?”
“한심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없습니다.”
장서필은 어이가 없었다.
보통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뭐가 되고 싶다 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아니면 소박한 꿈 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는데 이놈은 아예 없다고 한다.
천재라서 일반 사람들과 생각 자체가 달라서 그런가?
“꿈을 다 이루었기에 꿈이 없다는 건가?”
“지금의 제 위치가 꿈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에는 한참이나 낮습니다. 제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높다는 63빌딩의 10층 정도에 있는 것이고 앞으로 53층은 더 올라가야 합니다. 63층에 도달한다고 하여 제가 꿈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건 제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공도 꿈이 아니다! 그럼 자넨 왜 높이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건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회장님은 왕자의 키스로 깨어난 백설 공주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동화에서는 왕자와 백설 공주가 행복하게 산다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가?”
“제삼자 입장에서 본 모습이지 백설 공주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백설 공주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깨어난 것이고 어쩌면 잠들어 있었던 시간이 더욱 행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처럼 저 또한 타의로 인해 위로 오르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63층을 다 오르면 제삼자 입장에서는 제가 성공하고 꿈을 다 이루어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저는 행복할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저하고 63층에 다 오른 저하고는 분명 다를 겁니다.”
“타의는 누굴 말하는 건가?”
그 타의는 과거로의 회귀 또는 날 과거로 보낸 존재일 수도 있었다.
과거로 돌아와 미래 지식이 있는데 그걸 이용하지 않고 조용히 산다면 다들 바보라 생각하며 비난할 것이기에 무의식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달린 것일 수도 있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미지의 존재 또는 저의 무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타의에 의해 올라가기에 다 올라가도 후회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다 올라가 봐야 알 것이고 거기에 만족하고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후회하고 내려올 수도 있을 겁니다.”
장서필은 뭐가 복잡한지 이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듣기에는 배부른 소리만 하고 있었다. 배고파 봐. 당장 먹고살기 위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꿈도 못 꾸지.
고생 없이 쉽게 성공해서 그런 것인지 천재라서 모든 일이 너무 쉽게 보여 시시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통 놈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 큰 거물이 될 능력을 충분히 갖춘 놈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놈 말을 들어보니 양날의 칼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골치 아픈 놈이다. 이런 놈에게 애지중지 키운 딸을 주어야 하나? 고민이었다.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쉽게 살 수는 없는 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편하게, 쉽게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몰라도 있다면 가능하지. 노력해 보게.”
“알겠습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아빠 연구 자료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고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가 나왔다.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나에 대해 뒤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들은 전부 돈을 벌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었는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듯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미래의 지식을 이용하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면 행복할까? 그게 끝일까?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내일이면 또다시 늘 하던 대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또 보게 될 것이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할 것이 없고 내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것일 테니까.
그래 가는 데까지 가 보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만족할지? 후회할지? 더 욕심을 낼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끝에 가 보면 확실히 알겠지.
* * *
장서필 회장을 만나고부터는 왠지 의욕이 예전만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빨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사라지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출근하고부터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저팬 오션에 접속하여 새로 서비스를 시작한 만화 카테고리를 클릭하였다.
난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일밖에 안 되어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연재하는 만화가 생각보다 많았다.
연재 작품 수를 세어 보니 51 작품이었고 조회 수도 1,000 단위였다. 그중에 조회 수가 가장 높은 하나를 클릭해 보았다.
손으로 그린 만화책 같은 그림이었고 흑백이었다. 만화책을 스캔해서 올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구 만화였는데 일본어라 무슨 말인지는 몰라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림만 보면서 넘겼다.
“사장님! 손님 왔습니다.”
강성중 말에 뒤를 돌아보니 20대 후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오현서 대표가 전에 부탁한 작곡가가 오늘 온다고 했었는데 깜빡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오현서 대표님이 보낸 이한성입니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네.”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로 왔는지는 아시나요?”
“네. 압니다. 악보를 그리는 것이 아닙니까?”
“네. 맞아요. 제가 부르는 노래를 악보로 그려 주시면 됩니다.”
“부르시는 노래가 무슨 노래입니까? 오래된 노래입니까?”
생각해 보니 영어로 불러야 하는데 노래를 부르면 안 될 것 같았다. 가사는 빼고 음으로 불러야겠다.
“그게 아니라 갑자기 머릿속에 음이 막 떠오르는데 제가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걸 정리하기가 힘들어서요.”
“악상이 떠오른다는 겁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죠.”
“그 정도면 음악 실력이 꽤 뛰어난 것이 아닙니까? 그럼 직접 악보도 그릴 수 있을 텐데요.”
“그랬으면 부탁도 하지 않았죠.”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에 듣고 제대로 악보를 그릴 수 없기에 녹음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안 그러면 사장님이 여러 번을 불러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네. 미리 알았다면 내가 녹음했을 텐데.
“괜찮은 생각이네요.”
이한성이 작은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준비되시면 바로 녹음하겠습니다.”
“네.”
“아~ 아~ 아.”
가볍게 목을 풀었다.
“됐어요. 시작할게요.”
“알겠습니다.”
어떤 노래를 선택할까? 한동안 많이 고민했었다. 내가 아는 노래가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아는 것들은 인기가 있었던 노래였다.
인기가 많았기에 그만큼 많이 접할 수 있었으니까.
노래도 시대를 따라 가기에 지금 1999년도와 가까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노래로 두 곡 선택했다.
더 많이 하고 싶었지만, 노래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다.
녹음 버튼을 누르자 내 입에서 음이 흘러나왔다.
“음음음~ 음음~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