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어떻게 보면 틈새시장을 노린 아이디어였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우린 우리대로 나가면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아! 그 MP3 CD 플레이어 가격이 얼마인가요?”
“19만 9천 원입니다.”
오션팟 1기가는 110달러, 2기가는 130달러로 책정하였다.
지금 환율이 많이 하락하여 1,190원대라 국내 가격은 1기가는 12만 9천 원, 2기가는 14만 9천 원으로 책정하였다.
“우리 오션팟보다는 비싸네요.”
“그렇습니다.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사용법이나 제품 디자인이며 크기 면에서 오션팟이 압도적입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오션팟 광고는 오션을 통해서 할 거예요. 광고 송도 준비했어요.”
“벌써 말입니까?”
“네.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한번 들어보시고 마음에 들면 바로 녹음 작업 들어갔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해 주시고 시제품이 나오면 바로 5개 정도 저한테 보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더 없죠?”
“네. 현재는 없습니다.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션팟을 나와 커피숍으로 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이주희예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지금 커피숍이세요?)
“아뇨. 밖에 나와 있어요.”
(그럼 일 다 보시고 오실 수 있어요?)
“지금 갈게요. 무슨 일인데요?”
(라니지와 서머위즈 워 어제부터 정액제로 전환했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3개월 동안 무료로 운영하다가 어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료로 전환하였다.
원래는 난 한 달 정액제를 24,000원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내부적으로 IMF 시기인데 너무 비싸 신청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난 예전 기억으로만 가격을 생각한 거였는데 시차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격론 끝에 초창기라 가격을 더 낮추어 유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입어 대폭 낮추어 최종 10,000원으로 결정하였다.
달러로는 8달러로 정하였다.
또한,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라니지나 서머위즈 워 따로 정액제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액제를 한번 신청하면 두 게임 다 할 수 있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게임당 5,000원이 되는 거였다.
아마도 이 전략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되었어요? 많이들 유료 신청했나요?”
(오시면 알려드릴게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많이들 신청한 것 같았다.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화를 끊었다.
“배 대리님! 네이브로 가요.”
“알겠습니다.”
* * *
이주희 대표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매우 밝은 것을 보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고 새해 인사 등 잡다한 이야기만 꺼내었다.
내가 궁금해서 먼저 꺼냈다.
“이제 결과를 말씀해 주시죠?”
“고문님은 얼마나 신청했을 것 같으세요?”
“글쎄요?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 대략 5,000명 정도 신청했을 것 같은데요.”
“한국은 1만 명이 신청했어요. 1만 명이면 1억 원이고요. 대박인 것은 미국이 6만 명이나 신청했다는 거예요. 또 유럽과 남미, 일본을 전부 합치면 15만 명이에요. 전부 계산하면 22억 원이라는 거예요. 그것도 하루 만에요. 앞으로 더 가입할 테니 한 달 예상 수입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100억 원이에요. 세상에 게임으로 한 달 매출이 100억 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 정도 매출이 발생한다는 말이잖아요.”
계속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그렇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라니지는 이미 검증된 게임이고 서머위즈 워도 재미있다고 하니 더욱더 가입자가 늘어날 것 같았다.
더구나 한국에서만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하는 거라 더욱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무료 게임이 많이 출시되기에 유료 게임을 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 매출이 급속히 하락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계속 유저들을 잡아둘 전략이 필요하였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왜요?”
“지금은 단체로 하는 온라인 게임이 별로 없어서 돈을 주고 게임을 하지만 앞으로는 무료인 게임들이 많이 나올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무료인 게임을 많이 하지 유료인 게임을 많이 할까요? 그렇기에 유저들을 계속 잡아둘 뭔가가 필요해요. 지금은 한 달 정액제밖에 없지만, 앞으로는 3개월, 6개월, 1년 정액제를 도입하여 가격을 낮추는 것도 필요해요.”
“그렇겠네요. 앞으로 매출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그렇기에 유저들을 잡아둘 만한 재미있는 게임들을 계속 개발해야 해요.”
“그래서 송 팀장이 벌써 라니지 버전 2를 개발한다고 한다는 거였네요.”
“맞아요. 게임이 단시간에 개발되는 것이 아니기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PC방이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네. 들어는 봤어요. 요즘 PC방 창업 광고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PC방이 초창기라 적지만 앞으로는 PC방 열풍이 불어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집보다는 인터넷 환경이 좋은 PC방에서 게임을 많이들 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정액제가 아이디로 가입하지만 PC방은 아이디로 가입하기 힘들기에 아이피로 가입할 수 있게 하여 PC방에 방문한 사람들이 게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거예요. 앞으로 PC방 매출이 크게 성장할 거예요.”
“정액제를 신청하지 않은 아이디라도 PC방에서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죠. PC방은 아이디가 아니라 아이피로 가능한 거죠. 그래야 PC방에 사람들이 와서 게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미국이나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인가요? 오션에 알려줘야 하지 않아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PC방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그리고 외국에 PC방이 생기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외국은 좀 더 있어야 해요.”
“알았어요. 송 팀장하고 상의해서 미리 준비할게요. 고문님 말씀을 들어보니 너무 들뜬 제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나 세상에 쉽게 돈 버는 것은 없나 봐요.”
“그래도 게임 사업은 앞으로 유망하고 많은 매출이 발생할 거예요.”
“저도 이번에 게임에 대해 많이 공부했는데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네이브는 게임 쪽으로 특화했으면 하는데 고문님 생각은 어떠세요?”
네이브는 오션 2중대로 만든 건데. 게임 쪽으로 특화해도 종합 포털 사이트로 계속 유지하면 되기는 하였다.
“한 마리보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더 좋겠죠. 게임 쪽에 특화하더라도 종합 포털 사이트도 함께 발전하면 좋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만큼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 * *
네이브를 나와 커피숍에 오자 강성중과 신상철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어떻게 됐어요?”
“뭐가?”
“어제부터 정액제로 전환했잖아요. 결과가 궁금해서요. 많이들 신청했어요?”
신상철도 많이 궁금한지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상철아! 넌 어땠을 것 같아?”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별로야?”
“한국은 1만 명이 신청했고 전 세계적으로 포함하면 총 22만 명이래.”
강성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22만 명이면 많이 한 거예요? 별로예요? 저는 가늠이 안 되네요.”
“초대박은 아니고 대박 정도는 되는 거야.”
“정말요?”
“그래.”
“와! 사장님! 상철이 형 축하해요. 오늘 같은 날 한 턱 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뭘 쏴? 매일 네 점심 내가 사 주는데.”
“그렇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오늘 점심은 저번에 갔던 운정 가요. 그 집 맛있잖아요.”
저번에 한번 가 보고는 지금까지 가지 않았다.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도 못하고 내가 누군지 말할 수도 없고 엄마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를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면 기쁘고 애절한 감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되기는 하였다.
근데 이놈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너 그 집 딸 때문에 가자는 거지?”
“절대 아닙니다. 음식이 맛있어서 가자는 겁니다.”
꿈 깨라. 내 동생은 절대 너한테 줄 생각이 없다.
“가도 없을 거야. 그래도 가?”
“아니라니까요. 사장님은 제가 여자에 환장할 줄 아시나 봐요.”
사실이면서. 오랜만에 한번 가 볼까?
“알았어. 가자.”
“그럼 지금 가시죠.”
“그래.”
넷이서 운정 식당에 갔다.
오늘은 카운터에 엄마가 있었고 반갑게 우리에게 인사하였다.
여전히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서려 있었고 미모도 여전하였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신상철이 대답하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들 기억하세요?”
“그럼요. 커피숍 식구들 아닌가요?”
“맞아요. 사장님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장사하다 보면 다른 것은 기억 못 해도 손님들 기억은 잘해요.”
“맞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건 맞는 말이다. 강성중은 한번 온 여성 손님은 다 기억하고 다음에 오면 아는 척을 한다. 다만 남자 손님은 기억하지 못한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네.”
의자에 앉자 오늘은 엄마가 직접 주문을 받으러 오셨다.
“주문하시겠어요?”
“저는…….”
주문을 다 하였다.
가려던 엄마가 나를 보고서는 물었다.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이 낯이 익어요. 혹시 집이 어디세요?”
핏줄이라 당기는 건가?
“이 근처에 살아요.”
“아 그렇군요. 지나가다 봤나 보네요.”
“나이는 몇 살이에요?”
“한국 나이로 27살입니다.”
뭔가 느꼈는지 움찔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부모님하고 같이 사시나요?”
신상철이 대신 대답하였다.
“사장님은 미국 사람이에요. 미국에서 와서 혼자 삽니다.”
“아 네.”
왠지 실망하는 얼굴이었다. 혹시 나를 알아보고 묻는 건가? 그럼 이름을 물어봤어야죠. 엄마!
어쩌면 엄청난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름을 안 물어볼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음식 빨리 준비해 드릴게요.”
“네.”
엄마가 가자 강성중이 홀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서희를 찾는 것 같았다. 이러면서 아니라고 하기는.
* * *
퇴근하고 집에 와서 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낮에 식당에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슬프고 아련한 눈빛이었다.
내가 처음 식당 간 날 나를 알아본 것일까? 그랬으니 오늘 갔을 때 기억하고 물어본 거겠지.
근데 그때는 왜 나를 보고 아무 반응이 없었던 걸까? 긴가민가했을 수도 있겠지.
내가 누군지 눈치챘을까? 강성중이 내가 미국 사람이라고 했으니 아니라고 생각할까? 어쩌면 엄마나 나를 위해 모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부담 없이 식당에 가도 될 것 같았다. 자주 가야지.
맥주를 한입에 다 마시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에릭 슈밋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게임 유료화 소식 들었습니까?)
“네. 첫날이기는 하지만 성공적이라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생각보다 두 게임 다 미국에서 인기가 많아 미국 언론에서도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요? 언론에서 뭐라고 하는데요?”
뭐가 웃긴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