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올해 1999년은 1900년도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면서 20세기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요즘 따라 유독 종말론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과학이 발달한 20세기에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였다. 이런 현실이니 사이비 종교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파고드는 것이다.
가끔 뉴스에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것이 나오면 저걸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옛날 조선 시대라면 몰라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자신이 신이라고 하는데도 그걸 믿다니 어떻게 국민학생보다 판단력이 더 떨어질까?
근데 신도들을 보면 또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많다는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였다. 그런 사람들은 믿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었다.
내가 한국에 작년 1월 4일에 왔으니 거의 1년이 되었다.
1997년 키워드는 오션 상장과 더불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는 만큼 도약의 스타트로 정했고, 작년 1998년은 한국에 왔기에 안정적인 정착이라고 정했다.
한국에 무사히 정착했으니 끊임없이 나가라는 의미에서 올해 키워드는 전진이라고 정하였다. 올해 한 해는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아침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전화가 많이 왔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인간관계도 많이 늘었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 커피숍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강성중이 문을 열자고 하였고 나도 특별히 할 일이 없기에 열기로 하였다.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나가자 배상도가 서 있었다. 오늘 배상도는 쉬라고 했는데.
“안녕하십니까?”
“왜 왔어요? 오늘 쉬는 날이잖아요.”
“사실은 부모님께서 사장님 사정을 알고 떡국을 대접하겠다고 하여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에 떡국 안 먹은 지도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나까지 신경 써 주는 것이 고마웠다.
“안 그래도 되는데요.”
“먹는 김에 같이 먹으면 좋지 않습니까? 저도 아직 못 먹었습니다. 가시지요.”
“집으로 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분식집으로 갈 겁니다. 오늘 쉬시라고 했는데도 문을 열겠다고 해서요.”
“알았어요. 가죠.”
* * *
배 대리 부모님이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맛있게 떡국을 먹고 커피숍으로 왔다. 배 대리가 데려다준다는 것을 만류하고 내가 운전해서 왔다.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강성중이 능글맞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나도 화답하였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에는 꼭 여자 친구 생기길 바랄게.”
“감사합니다. 저도 올해에는 여자 친구가 꼭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떡국 먹고 나왔어?”
“아닙니다.”
“왜? 먹고 나오지.”
“설날 때 먹는 것이 진짜가 아닙니까? 사장님은 드셨습니까?”
“나야 맛있게 먹었지.”
난 자랑하듯 말했는데 강성중은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안하게.
“커피 드릴까요?”
“좋지.”
커피를 받아 내 전용석에 앉았다. 오늘은 나도 일하기가 싫어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신상철도 오늘은 나오지 않아 전원이 전부 꺼진 컴퓨터를 보니 왠지 쓸쓸해 보였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데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다들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있나?
“사장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정미나가 와 있었다. 아직 교대 시간이 안 되었는데.
“왜 일찍 왔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나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사장님! 제가 보낸 이메일 확인하셨어요?”
“아니. 오늘은 컴퓨터 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메일을 보낸 거야?”
“저 작곡 끝났어요.”
“그래서 일찍 온 거야?”
“네.”
“이메일로 보냈다면서 제시간에 오지.”
“빨리 들어보세요.”
“알았어.”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여 들어보았다.
20초가량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두 가지 버전의 연주였다. 처음 듣는 순간 뇌리에 확 닿았다. 가사도 오션팟을 잘 표현했다. 생각보다 잘했는데. 수정할 것도 없이 이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알바하면서 책은 안 보고 계속 악보를 그리더니만 한 건 해냈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 실력도 뛰어났다.
이런 애가 가수가 되어야 하는데. 한번 가수로 키워 볼까?
“피아노는 알겠는데 두 번째는 무슨 악기야?”
“실로폰이에요.”
이게 실로폰이라고? 단순하지만 맑은 소리라 듣기에는 실로폰이 더 좋았다. 가사 없이 멜로디만 들을 때는 실로폰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잘했는데.”
큰 두 눈이 더 커졌다.
“정말요?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그래. 그대로 사용해도 되겠어. 아주 마음에 들어.”
옆에 있던 강성중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듣기에도 아주 괜찮았어. 어느 CF 송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미나 다시 봐야겠어. 노래도 잘하더니 작곡도 잘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미나였다.
* * *
최종판이 나왔다고 하여 오늘은 오션팟에 왔다.
사장실에서 황정화 사장, 심용철 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흰색, 은색, 핑크색 오션팟을 보니 색상이 잘 어울렸다. 하나를 집어 살펴보았다.
저번에 보았을 때랑 외관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게 최종판이라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오션팟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제품입니다.”
“성능은 많이 향상되었나요?”
“작년 9월에 오셨을 때랑 비교해 보면 25% 정도 성능 향상을 이루었습니다. 더 향상시킬 수도 있었지만 단가가 높아지는 관계로 여기가 최선이었습니다. 가격 대비 가성비 효율은 아주 좋은 편입니다.”
“수고했어요. 심 과장님 노력 덕분에 오션팟의 성능이 더 좋아졌네요.”
“아닙니다. 진작에 완성했어야 했는데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제 욕심 때문에 늦어져 죄송합니다.”
원래는 10월 늦어도 11월까지는 완성하여 바로 생산하려고 했었는데 심용철 과장이 품질을 더 높이고 싶다고 하여 이제야 완성이 되었다.
거절했어도 되었지만 심 과장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기에 출시가 늦어져도 오케이했었다.
급하게 출시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고 이왕 출시하는 거 좀 더 성능이 향상되고 완벽하면 더 좋으니까.
“아니에요. 급하게 먹다가 체하는 것보다는 늦어도 안전하게 출시하는 게 더 좋죠. 그럼 이제 출시해도 이상은 없는 거죠?”
자신 있게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물론입니다. 테스트를 많이 거쳤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황정화 사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하죠.”
“알겠습니다.”
“바로 생산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기존 공장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인수한 공장 두 개다 전부 생산 시설까지 완료한 상태입니다. 직원들 교육까지 끝나서 바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자재 수급은 문제가 없나요?”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바로 생산하세요.”
“알겠습니다. 얼마나 생산해야 합니까?”
“먼저 미국에서 출시하고 그 이후에 유럽, 일본을 비롯해 세계 시장으로 확대할 거라 최대한 많이 생산하세요. 혹시 3교대 근무할 수 있나요?”
“3교대까지는 힘듭니다. 3교대 하려면 직원을 더 충원해야 합니다. 2교대로 연장 근무를 더하면 3교대 효과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하는 거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프로그래머라서 야근을 많이 하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많이 느꼈기에 될 수 있으면 야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연장 근무는 몇 시간을 더 하나요?”
“보통 3~4시간입니다.”
“한두 번은 가능해도 매일 하면 건강이 안 좋아질 거예요. 직원을 더 충원하는 방향으로 해요. 어쩔 수 없이 연장 근무하게 되면 최대 2시간까지만 하고 수당은 꼭 챙겨주시고요.”
“직원을 더 충원했다가 매출이 저조하게 되면 그때는 직원들이 남게 됩니다.”
대히트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히트할 오션팟이라 절대 그럴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생각한 것처럼 인기가 적더라도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에 공장 세 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소화하지 못할 그런 상황은 되지 않는다.
한번 실패하더니 새가슴이 되었다.
“심 과장이 섭섭하겠어요.”
내 말에 심 과장이 말하였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션팟입니다. 엠피고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분명 오션팟은 히트할 겁니다. 고문님 말씀에 따르시면 될 겁니다.”
불안한 눈으로 심 과장을 한번 보고서는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직원을 더 충원하겠습니다.”
대답하고서는 뭔가 생각난 듯 말하였다.
“그리고 고문님! 며칠 전부터 MP3 CD 플레이어가 출시된 거 아십니까?”
아!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기 전에 MP3 CD 플레이어가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
“그런가요? 어디서 출시한 거예요?”
“레이컴이라는 회사에서 출시했습니다.”
레이컴 회사도 오랜만에 들어보네.
레이컴은 한때 MP3 플레이어 점유율 대한민국 1위, 세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잘나가던 회사였지만 아이팟이 출시하고 희대의 스마트폰이 출시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웃긴 게 레이컴이 MP3 플레이어를 생산할 때 원천기술 특허가 없었기에 무단으로 특허를 침해해 생산하였다는 거다.
그 당시 레이컴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였고 대기업인 사성 전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이 당시 원천기술 특허는 서한 미디어에서 분사한 엠피맨닷컴이 50%를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50%는 디지털 카스트가 미국 기업에 넘겨 미국 기업이 가지고 있었다.
웃긴 게 뭐냐면 원천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던 엠피맨닷컴은 특허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생산한 업체들에 뒤져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는 거다.
한마디로 정품보다 짝퉁이 더 잘나갔다는 거였다.
뒤늦게 엠피맨닷컴이 이들 업체를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걸었지만, 소송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게 되는 어이없고 슬프고 황당한 일도 발생하였다.
이후 레이컴이 파산한 엠피맨닷컴을 인수해 특허권 50%를 확보했고 그 후 미국 기업의 특허권도 확보하여 100%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걸 보면 특허권을 가진 회사들은 전부 망하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뭔가 순서가 뒤바뀐 막장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MP3 저주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로 인해 바뀌어 저주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닌가? 디지털 카스트가 없어졌으니까 진행 중인가?
레이컴에서 지금 MP3 CD 플레이어를 출시했으니 한동안은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오션팟을 출시하면 나중에 MP3 플레이어를 출시할까?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고. 내 예상으로는 경쟁이 안 되기에 출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출시하면 난 소송을 할 것이고 소송비가 없어 파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기는 하지만 일단 크기가 크고 시디를 구워야 하는 불편도 있어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오션팟이 출시되면 있던 인기도 가라앉을 거예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들고 다니기 불편할 겁니다. 우리 오션팟은 작아서 티셔츠 윗주머니에 넣어도 쏙 들어갈 정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