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울컥하는 마음에 밥을 제대로 못 먹자 사모님이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왜 음식이 입에 안 맞아요?”
“아뇨. 너무 맛있어서요. 사실 저 이렇게 따듯한 집밥을 먹어 본 게 거의 몇 년 만인가 그래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믿기 힘들지.
“네?”
“제가 혼자 자취 생활을 오래 했거든요.”
“자취하더라도 집에는 가끔 갔을 거 아니에요.”
“저 혼자거든요. 갈 집이 없어요.”
말하는데 또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밥 한 끼 가지고 나 왜 이러냐?
“미안해요. 계시는 동안 맛있게 해 드릴 테니 많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시 젓가락을 들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다들 말없이 식사만 하였다. 더 먹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민박집 밖으로 나가자 손병수가 차에 기대어 서 있다가 나를 보고 인사하였다.
“나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타십시오.”
“네.”
차에 탔다.
“오늘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센소지와 나카미세도리로 갈 겁니다. 이곳은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오다이바 해상공원을 갔다가 시부야, 신주쿠 순으로 갈 겁니다.”
“덕분에 도쿄 구경 제대로 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도쿄에 오셨는데 가 볼 곳은 가 보고 돌아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네.”
핸드폰을 꺼내 일본 헤드헌팅 회사로 전화하려는데 손병수가 물었다.
“일본으로 전화하시는 겁니까?”
“네.”
“그 핸드폰 일본에서 개통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한국에서 개통한 거예요.”
“전화 요금 많이 나올 테니 제 핸드폰을 쓰십시오.”
“아니에요. 괜찮아요.”
“회사용이라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병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J 맨파워입니다.)
상대가 일본어로 말했지만, 영어로 말하였다. 알아들으려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션의 진민재라고 하는데 야마다 유키 이사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영어 할 줄 아네.
(안녕하십니까? 야마다 유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정우 회장이 미리 이야기했나 보네.
“안녕하세요? 회사에 방문하려고 하는데 언제 괜찮습니까?”
(언제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럼 지금 가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손병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하였다.
“사찰 가기 전에 잠깐 들를 곳이 있어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J 맨파워인데 회사 주소가…….”
명함을 보고 주소를 불러주려는데 손병수가 말하였다.
“거기 어딘지 압니다.”
* * *
원래 헤드헌팅 회사는 다 이런가? 여기도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이렇게 꾸며 놓으면 보통 사람들은 위화감 때문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것 같았다. 나도 살짝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까.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문 옆에 있던 여직원이 일어나며 공손히 인사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안내데스크가 사무실 안에 있네.
“야마다 유키 이사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직원을 따라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남자가 일어나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야마다 유키 이사입니다.”
40대 후반 정도였고 키가 작았다.
160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나랑 키 차이가 20cm 이상 차이가 나 어색한 광경이 펼쳐졌다.
손을 맞잡았다.
“진민재입니다.”
“앉으시죠.”
“네.”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는데도 앉은키 차이가 났다. 왜 이렇게 키가 작아?
“오션에서 일본에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곧 일본 법인을 설립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시장이 매력적인 곳 중의 하나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자 하는 겁니다. 일본 법인의 CEO를 구하고 있는데 능력 있는 인재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일본에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J 맨파워는 지금까지 수많은 외국계 기업들에 능력 있는 인재를 추천하여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오션도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기대되네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근데 소프트 뱅코 손 회장님을 잘 아시는 겁니까?”
“미국에서 투자 문제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친해졌습니다.”
“그렇군요. 손 회장님이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하여 제가 신경 많이 쓰고 있습니다. 손 회장님의 부탁 이후로 우리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풀가동하여 괜찮은 인재를 한 명 찾았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벌써 찾았다고? 빨리 빨리는 한국인의 특징인데. 근데 내가 원하는 조건도 안 물어보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 건가?
“일단은 보죠.”
“잠시만요.”
일어나 책상에서 서류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받아 보았다.
나이는 50세이고 동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다가 센다 테크라는 회사의 CEO로 이직하여 5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었다.
“센다 테크는 어떤 회사인가요?”
“90년도에 설립된 일본의 컴퓨터 회사로 현재 일본 컴퓨터 회사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기업입니다. 다이스케가 93년도에 센다 테크 CEO로 이직하며 5년 동안 매출을 30배 이상 신장시킨 능력자입니다. 처음 시작하는 오션에 가장 적임자라 판단했습니다. 만약 오션의 CEO가 된다면 센다 테크처럼 매출을 급격히 증대시킬 겁니다.”
종합상사와 컴퓨터 회사에서도 일한 경력도 있고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쉬고 있는 건가요?”
“네. 작년에 그만두고 지금은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종합상사에서 근무했기에 영어가 아주 유창합니다.”
“추천해 주실 분이 이분 한 분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분씩 추천해 드리는 것이 원칙이며 최종 결정을 할 때까지 계속 한 분씩 추천해 드립니다.”
“그렇군요. 이분 제가 만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연락하여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장소는 회사로 하시겠습니까?”
“회사에서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회사 내에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회사는 딱딱하고 부담되어 밖에서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밖에서 만나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결과는 바로 통보해야 하나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일찍 알려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이곳에만 의뢰했다고 소홀할 수도 있기에 경각심을 주는 것이 좋을 듯하였다. 실제 고진욱도 면접 대상이니까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지.
“제가 다른 곳에서도 소개받기에 그곳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계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그 다른 곳이 유비소시어스입니까?”
경쟁 업체인가 보네.
“그건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가 원하는 조건은… 입니다.”
“알겠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최고의 인재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와 손병수와 함께 도쿄 관광을 하였다.
* * *
예상보다 빠르게 약속이 잡혀 오늘 면접자를 만나러 약속 장소에 왔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안에 들어오자 작은 찻집 같은 곳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올 곳은 안 되고 나이 있는 사람들만 올 곳 같은 분위기였다.
다야마다 유키 이사가 조용하게 이야기하기 좋다고 하여 추천해 준 곳이었는데 말대로 손님이 두 테이블밖에 없었다.
한 테이블에는 중년 남녀가 앉아 있었고 한 테이블에는 한 남자만 앉아 있는데 저 사람인가?
그 앞으로 갔다.
“혹시 다이스케 되십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히 깍듯이 고개 숙여 나에게 인사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다이스케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앉으시죠.”
“네.”
자리에 앉아 차를 주문하였고 곧 차가 나왔다.
잠시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지다가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오션을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오션은 1994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미국에 서비스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새 오션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나 보네. 오션의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잘 아시네요.”
“인터뷰를 보러 가는 해당 기업에 대해 아는 것은 기본입니다. 저도 예전 회사에서 면접을 많이 봤지만, 기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오는 면접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으로 왔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긴 면접의 기본이기는 하지.
“만약에 오션 일본 법인의 사장이 된다면 오션을 어떤 식으로 경영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지사이기에 미국 본사의 경영 방침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율적으로 경영할 생각입니다. 우선 오션의 최대 수익이 광고이기에 광고의 다변화를 시행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계획입니다.”
“광고의 다변화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센다 테크에서 일할 때 컴퓨터 주 고객이 대부분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만을 상대해서는 매출을 증대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기업에 판매하는 컴퓨터 사양을 다운하여 가격을 저렴하게 하여 개인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하여 매출이 급격히 성장했었습니다. 이 경험을 살려 오션에도 적용할 생각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미국 본사의 검색 광고는 주로 기업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수많은 자영업을 상대로 저렴한 광고비를 내세워 적극적인 영업을 펼쳐 광고를 유치할 생각입니다.”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네.
이제는 고속 인터넷이 가능하기에 자영업에 대한 광고 영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어 미국 본사에서도 자영업만을 상대로 하는 영업부서가 작년 12월에 새로 신설되었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미국 본사에서 자영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는 있지만, 아직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 실적이 적은 것뿐입니다. 아마도 올해부터는 조금씩 달라질 겁니다. 다음은…….”
한동안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인터뷰는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결정되면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이스케이 갔지만 난 그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깍듯이 공손히 대하기는 하였지만, 저 모습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본인 속성이 두 얼굴이라 앞에서는 저렇게 해도 되돌아서면 표정이 싹 바뀐다. 그거 외에 이야기를 해 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힘든 종합상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 매출 올리는 데는 잘할 것 같았다.
한 명 면접 보고 바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손병수가 준 핸드폰을 들었다.
직통 전화라 바로 야마다 유키 이사가 받았다.
“진민재입니다.”
(만나 보셨습니까?)
“네. 방금 끝나고 전화 드리는 겁니다.”
(어떠셨습니까?)
“나쁘지는 않았지만 한 분만 보고 바로 결정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다른 분도 또 봤으면 합니다.”
(당연합니다. 제가 또 능력 있는 분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경력도 뛰어나시고 원하시는 조건에 부합하니 매우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 보시고 인터뷰하고 싶으면 연락 주십시오.)
다른 곳에서도 추천받는다고 하니 급해졌나 보네. 진작에 그렇게 나와야지.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