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수지 투자가 아니야. 먹으려면 크게 먹어야지 적게 먹을 거면 하지도 않아.
투자자들 반응은 어때?”
“서로 투자하려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내가 봐도 탐이 날 정도니 그만한 투자처가 없기는 해. 돈들은 많은 데 갈 곳이 없으니 기회다 싶겠지.
아마도 오션의 투자는 성공할 거야. 내가 장담해.”
“맞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오션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야호는 투자 실패의 사례로 인식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검색에서는 오션에 밀리고는 있지만 대신 야호는 다른 분야로 덩치를 불리고 있잖아?
이메일 업체도 인수하여 이메일 서비스도 시작하고 계속 덩치를 키울 생각인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투자자들이 야호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보아 외형을 키워서 상장한 후에 투자 자금을 회수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볼 게이트가 심하게 인상을 구겼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자기들 손해 안 보려고 그 손해를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다니.
내가 이래서 내가 투자자 놈들을 좋지 않게 보는 거야. 내가 MSS를 창립할 때도 거저먹으려고 했던 놈들이야.
내가 왜 악동이 되었는데? 사람이 좋게 보이니까 만만하게 보이는지 뒤통수만 치려고 해. 거머리 같은 놈들.”
한이 얼마나 맺혔는지 이를 부드득 가는 볼 게이트였다.
***
강의가 끝나 핸드폰 전원을 켜자 핸드폰 멜로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어디일까? 스티브 애스틴 교수에게 부탁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투자 회사들로부터 투자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투자자들을 전부 모아 투자 설명회를 하고 투자 제안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쉬울 것이 없기에 개별적으로 연락을 받아 큰 투자 회사 몇 곳하고만 개별 면담을 하여 투자 회사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작은 투자 회사는 규모가 작기에 간섭이 더 심하고 투자 금액도 적기에 피라미 여러 마리 잡는 것보다는 월척 한 마리가 더 경제적이었다.
(여보세요.)
(실례지만 진민재 학생입니까?)
(네. 제가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리암 인베스트의 에디 쉐리던 이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꽤 큰 회사에서 연락이 왔네.
(안녕하세요? 리암 인베스트에서 저한테 왜?)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회사에서 오션에 관심이 아주 많아 투자하고 싶어 연락 드렸습니다.
먼저 우리 회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전 생에서 구골에 투자한 회사 중의 한 곳이라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들을 필요는 없지.
(설명은 됐어요.)
내 말에 당황하는 듯하였다.
(아닌 그래도 회사에 대해 알아야 결정하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믿지 못할 투자 회사들도 많습니다.)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
(말이 아니라 실제로 리암 인베스트는......)
다시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것보다 투자 조건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또 말이 중간에 끊기자 당황하는 것 같았다.
(투자 조건은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협의했으면 합니다.)
(얼마를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투자에 관한 모든 것은 직접 뵙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지만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다른 투자 회사보다는 우리 회사가 투자 조건이 더 좋을 겁니다.)
(언제 시간 되시나요?)
(네?)
(직접 만나서 협의하자면서요?)
(3일 뒤 어떠십니까?)
(급한 마음이 없으신가 보네요.)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뉴욕에 있어서 그럽니다.)
(알았어요. 그럼 3일 뒤 목요일 오후 3시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만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네. 그때 뵙죠.)
전화를 끊자 옆에서 내 통화를 듣던 학생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하지. 자신들은 아직 미래가 불안한 학생인데 누구는 투자하겠다고 전화통에 불이 나니.
저들 또한 창업이 꿈인 예비주자들이기에 내가 그들의 롤모델이 되어 모두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같이 주말 파티를 즐겼다고 좀 친해진 마크가 다가와 물었다.
“진! 투자 회사 전화야?”
“응. 리암 인베스트라는 회사래.”
“그 회사 내가 좀 아는데 월가에서 유명한 투자 회사이고 믿을 만한 곳이야. 웬만하면 투자받아.”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약속 잡은 거지.
사업하려고 노카아 주식을 팔기에는 아직 이르다.
본격적인 상승은 1998년부터이고 처음 매수할 때 보다는 올랐지만, 아직 2달러도 안 되어 지금 팔면 그만큼 손해다.
또한, 앞으로 노카아를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하지도 않았고 대주주의 지위를 성급하게 포기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지분 조금 주고 거액을 투자받으면 편한데 다른 일로 사업 자금을 마련하고 싶지도 않았다.
미국 땅에서 홀로 사업하는 것보다는 투자받아 투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전략적으로 선택하려는 거다.
“생각해 볼게. 고마워.”
“진 대단해. 큰 회사에서 투자하겠다고 연락도 오고. 부러워.”
“너도 기회가 있을 거야.”
근데 MSS에서는 연락이 안 오네. 투자에는 관심이 없나 보네. 그렇다고 내가 매각할 수는 없으니까.
먼저 연락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에디 쉐리던 이사는 바로 사장실로 향하였다.
“사장님!”
“표정이 왜 그래?”
“말도 마십시오. 방금 오션의 개발자인 진민재 학생하고 통화하였는데 통화하면서 이렇게 황당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왜?”
“그게 말입니다. 글쎄............”
통화한 내용을 대충 설명하였다.
“중간에 말을 두 번씩이나 끊어 거절인가? 걱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제 시간 되냐고 하니 황당하였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제멋대로인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천재라는 말이 있는데 천재들이 그렇듯이 진민재도 괴짜인 것 같습니다.
투자하더라도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괴짜든 아니든 간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이익을 주는 가야. 이익을 많이 준다면 난 괴짜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괴짜라서 이익을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 친구들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사업에 소홀할 수도 있겠지. 해결책은 하나야.
그럴 땐 전문 경영자를 붙여 줘야지.”
“받아들이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러면 당연히 반발하겠지. 이 사업은 단기간에 이익을 볼 수 있는 사업이 아니야. 최소 3년 이상을 봐야 해.
그동안은 적자이겠지. 그때 밀어붙여야 반발이 적은 거야.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3일 뒤에 만나기로 했으니 잘 준비해서 가.”
“알겠습니다.”
에디 쉐리던 이사는 3일 뒤에 만나 어떻게 협상을 할지 지금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였다.
협상은 정상적인 사람과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최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 같은 부류였다.
잠깐의 통화였지만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
사람이 살다 보면 평소와 달리 운수 좋은 날이 가끔 있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았다.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바로 문이 열렸고 학교에서는 오늘 교수님이 팀별로 프로젝트를 내주었는데 난 제외되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내가 팀에 포함되면 다른 팀원들이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힘들고 다른 팀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고 하여 내 의사를 물어 난 당연히 오케이 하였다.
골치 아프게 프로젝트에 매달리 필요가 뭐가 있겠어?
한동안 프로젝트에 매달린 학부생들을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 그런 과정을 겪었고 그만큼 고생하면 피와 땀이 되고 실력이 쑥쑥 느는 거란다. 열심히들 해라.
팀원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을 보면 강의실을 나왔다.
시계를 보니 리암 인베스트 에디 쉐리던 이사와 약속 시간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매점으로 가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하나 먹었다.
커피 두 잔을 사서 약속 장소로 나가자 에디 쉐리던 이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찍 왔네.
다들 젊은 학생인데 정장 차림의 40대 중반의 남자가 혼자 있으니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 앞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진민재입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무턱대고 인사하자 놀라면서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자기를 알아본 것에 놀라고 내가 동양인이라서 놀란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화 통화한 리암 인베스트 에디 쉐리던 이사입니다.”
“저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들고 있던 커피 한잔을 건넸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저쪽으로 가시죠. 따라오세요.”
앞장서 교정 벤치로 향하였다.
벤치 바로 뒤로 큰 나무가 있어 그늘져 있고 너무 외진 곳도 아니고 복잡하지도 않아 내 전용 벤치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샌드위치도 먹고 지나가는 학생들 구경도 하며 나만의 여가를 즐기는 보금자리였다.
“여기서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시죠. 조용히 이야기 나누기에 이곳만 한 곳이 없거든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백 번 협상하였지만 이런 곳에서 협상하기는 난생처음입니다.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젊은 혈기가 막 샘솟는 것 같아 기분도 좋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곳보다는 훨씬 좋을 겁니다.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 맛도 일품입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말을 마시고는 확인하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쉐리던 이사였다.
“커피 맛이 좋습니다.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얻어먹습니다.”
“누가 사는 게 중요한가요? 즐겁게 맛있게 마시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혹시 어디 출신입니까?”
“한국입니다.”
“근데 왜 핀란드에 있었던 겁니까?”
“핀란드 헬싱키 대학으로 유학 갔다가 여기 대학원으로 유학 온 겁니다. 대학 재학 중에 오션을 개발한 겁니다.”
“그렇군요. 오션의 개발자가 핀란드에 있다고 해서 저는 핀란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투자 제안을 했을 겁니다.”
“지금 오셨잖아요? 그럼 된 거죠. 어떤 제안을 하실지 생각은 해보셨나요?”
“물론입니다. 내부 회의를 거쳐 좋은 투자 조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얼마나 좋은 조건이길래 자신 있게 말하는 거지?
“그럼 좋은 제안 들어볼까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보시지요.”
서류를 받아 읽어보았다.
첫 페이지는 거창하게 오션 프로젝트 투자 제안서라고 되어 있었다. 큰 회사라 그런가? 다음 장을 넘겼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그리 나쁜 조건은 절대 아니어서 미래의 오션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리암 인베스트 투자 회사 또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이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나에게는 한참이나 부족하였다.
마지막 장을 덮자 쉐리던 이사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네요.”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눈이 커지며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네? 뭐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이 정도 조건이면 업계 최고의 조건입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하면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일방적으로 내 주장만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을 잘 알지만 내가 왜 이런 조건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가 원하는 조건을 관철해야 한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