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우로보로스의 제3기 신입생 공개 선발 모집 계획.
이 발표가 나자마자 우로보로스에는 그야말로 미친 듯한 규모로 어마어마한 서류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이게 전부 다 몇 명분이에요? 진짜 장난 아니네…….”
“아무런 제한도 없이 선발하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신청서가 들어올 것이라는 건 예상하셨었어야죠. 그래서 작년처럼 그냥 국가별 쿼터제 적용하고 알아서 각국 정부가 선별하고 엄선해서 보낸 몇 명만 받자고 제가 그랬잖아요.”
우로보로스의 여러 자질구레한 행정을 대신해서 전담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 정부.
이 두 정부에서 파견된 직원들을 모두 총괄하고 있는 에밀리는 커다란 회의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입학 신청 서류들을 보며 입을 벌리는 나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것도 지금 엄선하고 엄선해서 고른 인원들이라고요. 지금 공고 올라간 지 불과 7일 만에 우리 쪽으로 들어온 입학 신청 서류의 양만 자그마치 1,250만 명이에요. 1,250만 명.”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성자를 포함해 일반인까지도 전부 수용하겠다는 공지.
마법이라는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 끈기만 있다면, 그 누구든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에 정말 어중이떠중이를 포함해 정말 아무나 지원서를 일단 써 보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과한 수준인데요? 우로보로스를 들어와야지만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세상에 마법의 개념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인 나.
그렇기에 우로보로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법을 배울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했다.
“제 뮤튜브를 보면서 스스로 독학해도 되고, 그거 아니더라도 이미 나라마다 마법을 차세대 필수 교육으로 지정해서 전폭적으로 밀고 있지 않아요? 그 어디냐……? 영국에서는 이미 마법 학교를 아예 자체적으로 세웠다고 하던데.”
마법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마법과 마나라는 새로운 이능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말도 안 되는 기적과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깨달은 국가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자체적으로 마법사를 양성하기 위한 대규모 국책 사업을 시작했다. 재능 있는 각성자들을 모아 자체적인 마법 학교를 세운다거나, 마법과 관련한 국립 연구소를 신설한다는가 하는 등의 사업들을 말이다.
하지만……. 에밀리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사업의 결과는 생각보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국에서 새롭게 설립한 왕실 마법 아카데미(Royal Kingdom Academy of Witchcraft and Wizardry)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 최근에 엄청 난리 난 거 못 들으셨어요?”
“엥? 왜요?”
“마나 수련하던 학생 1명이 수업 도중에 마나 폭주를 일으켰는데 하필이면 화염 마법을 연습 중이었는지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내며 폭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이구…….”
“그래서 그 폭발에 휘말려 총 18명이 사망했고, 그 일 이후로 학교는 잠정 폐쇄되고 영국 내에서는 마법 수련과 관련해서 안정성 논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태죠. 영국 왕실에서 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라서 아마 내부에서도 수습하느라 꽤 머리 아파하는 상황일 거예요. 모르긴 몰라도 당분간은 다시 개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걸요?”
“게다가 그 마법 방송도 어지간한 일반인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 못 하는 내용들이 태반인데 그 영상 하나만 가지고 혼자서 따라오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죠. 지금 미국 내에서도 저명한 학자들이란 학자는 죄다 달라붙어서 멀린 님이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들 하나하나 쪼개 가면서 분석하고 해설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얼마나 진땀을 빼고 있는 상황인지 알기나 하세요?”
“하긴……. 가끔 너무 과하게 철학적인 내용들도 있고 현대 과학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이 조금 뒤섞여 있는 건 사실이죠.”
학계의 뛰어난 학자들도 어떤 내용들은 손사래를 치며 손도 못 댈 정도로 난해한 지식들. 현재 과학 기술의 이해 범주를 아득히도 뛰어넘는 상위의 개념들도 여럿 존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에밀리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마법을 성공적으로 배우고 습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은 이 지구상에 이곳 우로보로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지원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거죠.”
“흠……. 그래서 그랬군요.”
예상은 했었지만, 아직 마법이 모습을 드러낸 지 채 4년도 되지 않은 상황.
어중간한 수준의 각성자들이 겉핥기식으로 내 강의를 조금 듣고 난 뒤에 마법사 행세를 하는 소위 ‘야매’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마법 교육이 이루어질 리가 만무했다.
“결국, 우로보로스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도 넘어선 지원자들을 최대한 걸러 내는 작업은 거치는 건 필수불가결한 문제라는 점이죠.”
지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와중에도 수십 명도 넘는 직원들이 앉아 바쁘게 서류를 뒤적이며 지원자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1,250만 명 중에서 1차에만 5,000명 선발이라…….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군요. 총 600명을 뽑을 예정이었는데 단순 경쟁률만 해도 20,000:1인 건가요?”
“그래도 말이 1,250만 명이지 일반인들을 제외하고 각성자들만을 놓고 계산한다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대충 2만 명 정도에서 선별하니 30:1인 수준이죠.”
다행히 일반인들도 입학이 가능한 매직 크래프트 학파의 전형을 제외하면 지원한 각성자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에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 왔다.
“그래서……. 입학시험은 어떻게 치르실 생각이신데요? 이제 슬슬 저희에게도 말을 해 줘야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죠.”
멀린이 직접 준비하는 입학시험.
과연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 별달리 준비할 건 없어요. 입학시험은 아주 간단하게 치러질 계획이거든요.”
“네……? 그게 무슨…….”
자그마치 5,000명이 치르게 될 입학시험.
인원도 인원이니만큼 아무리 단순한 시험을 치르게 되던 그 규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내 말에 에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못 믿겠으면 한번 경험해 보실래요?”
“그게 뭔데요……?”
은은한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는 팔찌를 건네주자 무언가 수상한 눈초리로 나와 팔찌를 번갈아 쳐다보는 에밀리.
그런 그녀에게 나는 손짓으로 재촉하며 말했다.
“한번 착용해 보시면 알아요. 아, 혹시라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시면 꼭 ‘나는 의지박약의 똥멍청이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세요.”
“네……?”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되묻는 에밀리.
우우우우웅.
하지만 그녀는 착용한 팔찌가 푸른빛을 내자 쏟아지는 졸음에 비틀거리며 하던 말을 전부 다 마무리하지 못했다.
* * *
“으으으……. 머리야.”
문득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뜨고 일어선 에밀리.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일순간 당황한 채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
눈을 떠 보니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에밀리는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고는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멀린이 또 무슨 마법을 쓴 건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에밀리. 하지만 그녀는 이내 허공에 떠올라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이내 눈을 끔뻑거렸다.
“이건……?”
[ 우로보로스 제3기 입학시험 ]
지원하고자 하는 전형을 선택해 주세요.
선택한 시험을 중도 변경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중도 포기를 원할 시, ‘나는 의지박약의 똥멍청이다!’를 크게 외쳐 주세요.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상태창 같은 문구들이 허공에서 반짝이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밑에 선발하기로 한 6개의 전형이 마치 자신을 눌러 달라는 듯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기에 이내 에밀리는 이게 멀린이 준비한 시험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설마 그럼……. 이게…….”
자신이 꿈……. 아니, 무언가 철저하게 준비되고 통제된 환상 속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에밀리. 그리고 그 안에 구현된 멀린의 시험을 보며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떨리는 손가락을 천천히 가져가 시험 하나를 선택했다.
[ 워 메이지 학파 시험 전형에 도전하였습니다. ]
[ 당신에게 부여된 시련은 모두 3가지입니다. ]
[ 도전 제한 횟수는 무제한입니다. 제한 시간은 10년입니다. ]
[ 지원자의 합격을 기원합니다. ]
시험 하나를 선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 중 하나의 문구를 보며 에밀리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뭐……뭐라고? 10년……?”
무슨 시험 하나에 10년이라는 시간을 주냐며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그때.
에밀리가 서 있는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 첫 번째 시련은 오크 10마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기입니다. ]
“취익 취익?”
“크르르르르. 취익.”
에밀리보다 최소 2배는 되어 보이는 근육질의 험상궂게 생긴 초록빛의 몬스터 무리.
이상한 콧김을 내뿜으며 그녀의 몸통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커다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는 오크들을 생전 처음 본 에밀리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으……. 아……. 으…….”
긴급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서 냉철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혹독한 훈련과 교육을 받은 CIA 요원이었지만, 꿈에서조차 상상해 보지 못한 돌발 상황에 완전히 사고가 정지해 버린 에밀리.
이 모든 것이 시험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 괴물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도무지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취이이익!”
“꺄아아아아악!!!!”
뭉둥이를 들고 단숨에 자신의 머리통을 쪼개 버리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오크들에게서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 대며 뒤도 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한 에밀리.
하지만 그녀는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이내 나무줄기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취익.”
“크르르르르…….”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를 포위하고 마치 입맛을 다시는 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오크들. 그런 그들을 올려다보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을 그때, 에밀리의 머릿속에 멀린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시면 꼭 ‘나는 의지박약의 똥멍청이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세요. ]
상태창에서도 나와 있던 문구.
그것이 떠오른 에밀리는 자신의 얼굴을 뭉개 버리려고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뭉둥이를 바라보며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나……. 나는 의지박약의 똥멍청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정지하고는 마치 먼지처럼 흩어져 완전히 사라지고는 또다시 끝없는 백색의 공간만이 남았다.
[ 시련을 중도 포기하였습니다. ]
[ 제3기 우로보로스 입학시험에 불합격하셨습니다. ]
[ 당신은 의지박약의 똥멍청이입니다. ]
뭔가 자신을 놀리는 듯한 상태 메시지만을 남겨 두고는 말이다.
“이…….”
무언가 가슴 속에서 울컥하며 발끈하려고 했지만, 에밀리는 다시금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 *
“어때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일어난 에밀리.
그런 그녀에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 오자 에밀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누굴 놀려요? 설명이라도 잘해 주든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요.”
“까딱하면 이상한 괴물들한테 머리통 날아갈 뻔했다고요.”
“아, 워 메이지 학파 시험을 선택하셨구나? 의외네요. 매직 크래프트 쪽을 고를 줄 알았는데.”
콧노래를 부르며 에밀리가 사용한 팔찌를 회수하며 정리하고 있자 에밀리는 나를 힐끔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그 팔찌 도대체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 거예요?”
“음……. 여러 마법이 뒤섞여 있어서 조금 복잡하긴 해요. 대표적으로 [되풀이되는 환상] [깨어지지 않는 미로] [몽환 속의 악몽] [영원한 꿈의 행복] 정도인데, 기본적으로 환영 마법의 종류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던 에밀리는 이내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시험 내용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래요?”
“네. 처음 시험부터 무슨 괴물들 10마리랑 싸워서 이기라고 하던데 다른 시험도 만약 그런 거라면……. 잠깐…….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 듯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에밀리.
그런 그녀에게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 설마 눈치챘어요?”
“지금 이거……. 깨라고 만들어 놓은 시험이 아니죠?”
단순한 입학시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워 보이는 난이도.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자그마치 3개나 존재한다는 사실도, 거기에 시험 시간도 자그마치 1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우로보로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 시험을 통해서 멀린이 추려 내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에밀리는 깨달을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그 괴물들하고 싸우면서 버티라는 말이에요 지금?”
“에이, 엄밀히 말하자면 10년은 아니죠. 실제 현실에서의 시간은 고작 1시간에 불과할 테니까요. 그리고 10년 동안 그 환상 속에서 보내기 싫다면 시련을 모조리 클리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네요.”
“그게 무슨…….”
10년을 고통 속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 내거나.
아니면 신이 내려 준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활용해 터무니없는 시련들을 통과하거나.
그 두 방법으로 새로운 신입생을 추려 내려는 멀린.
그리고 그런 그의 방법은……. 너무나도 악랄하고 잔인한 것 같았지만, 이 우로보로스에는 너무나도 적합하고 절묘한 선발 방식이었다.
“우로보로스의 교직원들과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번에 선발한 신입생들에게서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일까에 관해서 물었어요. 그랬는데 모두가 똑같이 내린 결론이 뭔지 아세요?”
우로보로스의 전체 교직원과 학생들이 공통으로 내린 대답.
그것은 바로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죽어도 끝없이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버텨 내는 독기. 그 꺾이지 않는 마음을 입증하기에 이 시험은 아주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요?”
“…….”
그렇게……. 에밀리는 문득 생각했다.
이 세상에 만약 살아 있는 지옥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어쩌면 우로보로스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