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인류 최초의 마법 학술 연구 및 교육 기관. 우로보로스.
인류 최초라는 수식어와는 다르게 전체 교직원은 채 2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에다가 정식 개교한 지는 불과 1년이 조금 넘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 우로보로스의 위상은 이미 세계적으로 오랜 전통을 쌓아 오고 뛰어난 인재를 무수히 배출해 낸 명문 학교들을 제친 지 오래였다.
[ 최근 교육부에서 중‧고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부모들이 자녀를 가장 진학시키고 싶은 학교로 ‘우로보로스’를 점찍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에 전문가들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마법을 체계적인 교육하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게다가 현재 산업계와 기업들 사이에서도 각성자들과 마법사들에 대한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때이기에 그만큼 진학 열풍도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
[ 전 세계가 우로보로스의 2기 신입생 모집 공고 발표에 촉각을 기울이며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인원을 뽑을지, 그리고 큰 논란이 있었던 국가별 쿼터제가 이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추측과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우로보로스는 아직도 이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들을 양성하는 양성소. 과연 이곳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은 어떤 꿈과 목표를 그리고 있는 걸까요? 모든 것이 베일에 감싸여진 학교. 우로보로스. 그 신비로움에 전 세계의 많은 학생이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 모든 학비와 수업료가 전부 무료인 것 역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지요. ]
전 세계에서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학교로 거듭난 우로보로스.
그 우로보로스의 학장으로서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온 나를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아주 실전적이고 맹렬하게 교육에 열중하고 있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이었다.
“이 멍청한 것들아!!! 피하지 말고 상성 우위의 원소 마법으로 상쇄시키라고!”
“물! 불! 불! 물! 번개! 바람!”
“끄…… 끄아아악! 너……. 너무 빨라요!”
“이게 빠른 거면 너는 그냥 뒤져라. 이 빌어먹을 새끼야!”
온갖 속성을 가진 볼트류 마법을 난사하는 선생님과 이를 막아 내느라 허덕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옛 추억이 떠올라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야……. 저 훈련 방법 내가 전에 게이츠 저 녀석한테 했던 거 아니었나?”
내가 가르쳤던 제자 중에서 가장 마법 발현이 늦었던 게이츠를 데려다가 속성으로 교육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 그대로 전승되어 정식 수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황. 비록 내가 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느리고 가르치는 인원수도 현저히 적었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뒤지던 학생이 나름 어엿한 마법사로 성장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미묘한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역시…….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인내심을 갖고 가르치면 어엿한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끄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어느 한 학생이 덜렁거리는 양 팔을 부여잡고 쓰러져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단단한 돌덩이로 이루어진 볼트 마법이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양팔을 올려 막은 결과,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지며 죽는 것은 간신히 면할 수는 있었지만, 팔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탓에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온 게이츠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제 팔이!”
만약 일반적인 교사라면 당장에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응급치료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식으로 대처했겠지만, 그의 대처 방식은 일반적인 방법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괜찮아. 죽을 만큼 아파도 안 뒤져.”
“……?”
“그리고 누가 멍청하게 팔로 막으래? 나 같으면 그냥 얼굴 들이밀어서 깔끔하게 죽었다. 그렇게 팔로 막으니까 어설프게 살아서는 아프기만 하고 더 이상 훈련도 지속해서 못 하잖아.”
다친 사람을 앞에 두고 인성이 완전히 파탄 난……. 아니, 아예 소멸한 수준의 발언들을 내뱉는 게이츠. 하지만 주변에 있는 학생들 그 누구도 그의 발언에 동요하거나 경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현재 상황을 지켜보며 시큰둥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 어? 이깟 팔 부러진 것 따위는 비명은커녕 인상도 못 썼어. 내가 이 훈련 통과하기 위해서 멀린 님한테 자그마치 1,329번을 죽었어. 알아?”
“으으으…….”
아파서 정신도 못 차리겠는데 게이츠가 오히려 광기 어린 표정으로 고함을 내지르며 울분을 토해 내자 잔뜩 겁이 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신음하는 학생. 그런 그에게 게이츠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력을 운용했다.
“팔다리가 날아간 고통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진정한 마법사다.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로 삼도록! 자 다시 간다!”
마치 신이 난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광소를 내뱉으며 또다시 마력을 끌어 올려 주변의 학생들을 향해 마법을 쏟아 내는 게이츠. 그의 마법은 부상 여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무자비하게 모두를 향해 동등하게 쏟아졌기에 사방에서 온갖 고통 섞인 비명이 가득했다.
“끄아아아악!”
“끄으으으…….”
“쿨럭……!”
아주 바람직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굴리고 있는 게이츠의 교육 방법.
이성적으로는 전지의 권능이 아주 효율적인 훈련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아주 익숙하고 소름이 절로 돋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왔으면 누나한테 왔다고 인사부터 해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내 친누나이자 이 우로보로스의 부학장이지만 실질적인 최고 결정권자. 김영희.
그녀가 마법사 복장을 한 채로 내 뒤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응……?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
언질도 없이 몰래 찾아온 건데 어떻게 내가 온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자 영희는 황당하다는 듯이 손에 든 지팡이를 흔들려 말했다.
“……. 네 녀석이 주고 간 이 녀석이 알려 주는데 모를 리가 있냐.”
“아. 맞네. 그게 있었구나?”
이 우로보로스를 지탱하고 작동시키는 원천 마법. 크로노스 시스템.
그 마법을 관리하고 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마스터키나 다름없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영희가 내 잠입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던 일은 잘 마무리하고 온 거야?”
“대충은?”
마무리되기는커녕 앞으로 계속해서 개입해 오게 될 천사와 악마들의 세력에 대한 대비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괜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져다가 푸념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아끼자 영희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 그러면 됐으니까 일단 따라와.”
“왜? 어디 가려고?”
“학생 식당.”
“거기는 왜……?”
갑자기 식당에 가자는 말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나도 끔찍한 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하나뿐인 동생이 왔는데 밥은 먹이고 보내야지.”
“식당에다가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까 얼마 안 걸려. 너무 오랜만에 실력 발휘하는 거라서 녹이 슬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네. 호호호.”
“…….”
신이 난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영희.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다 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발을 끌며 걸음을 옮겼다.
누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조리한 특제 집밥을 먹기 위해서 말이다.
* * *
“많이 먹어. 평소에 채소 안 먹고 다닐 거 같아서 일부러 채소 요리도 많이 했으니까.”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12첩 반상을 내어놓고 마주 앉는 영희.
그런 그녀의 말 없는 재촉에 젓가락을 들어 가장 무난해 보이는 콩나물무침을 집어 들어 입에 넣어 보았지만, 상상도 못 한 맛이 내 혓바닥을 엄습했다.
“누나…….”
“응? 왜?”
“콩나물무침이 왜 이렇게 시큼해……?”
“아, 이거? 아마 식초 넣어서 그럴걸?”
“식초를……. 콩나물무침에 놨다고……?”
“왜. 맛있기만 한데.”
너무나도 태연하게 콩나물무침을 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입에 넣는 영희.
본인이 직접 먹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더 킹받는 부분이었지만, 괜히 음식 가지고 또 딴지 걸었다가 무슨 반응이 나올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젓가락으로 반찬들을 헤집으며 먹는 척만 했다.
“우로보로스는 저번 침임 사건 때 네가 미리 언질을 준 덕분에 큰 문제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어. 관련해서 이호준 대통령님이 힘을 써 주셔서 조용히 넘어가는 거로 마무리해서 수사 기관 조사도 형식적으로 넘어가고 언론에 정보 유출도 막아서 이곳의 실상은 아무도 몰라. 또…….”
아직 크로노스 시스템에 관한 내용은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황. 언젠가는 알려지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관련 사항을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었기에 영희는 참 다행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며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아, 이번 2기 신입생들도 거의 학교생활에 적응한 것 같고 슬슬 이제 네가 말했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도 어떨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
“벌써?”
“그래. 류명한 교수하고도 논의해 봤는데 나랑 같은 생각이야. 얼추 교육 과정으로 준비해 놓으신 것도 있는 것 같더라고.”
우로보로스의 교육 개혁 2.0
아직은 내가 구상하는 그 안을 밀어붙이기에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이나 그 수준이 너무 처참할 정도로 낮기에 한 5년 정도는 기다릴 생각으로 묻어 두었던 방안이었는데, 영희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3 서클까지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공통적인 내용을 배우지만, 그 이후부터는 자신이 관심 있는 특화된 부분의 영역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잖아. 그건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래서 처음부터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배정했던 거고.”
“그건 그렇긴 하지.”
현실의 교육 시스템과 비교하자면 3 서클까지는 고등학생에 가깝다.
모두가 공통적인 내용을 공부하고 평이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마법을 학습하고 경험해 보는 단계. 하지만, 어엿한 마법사라고 불리는 4 서클부터는 모든 마법을 배우고 학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생물학, 화학, 물리학, 지구 과학…….
그 커다란 범주 안에서도 수십, 수백 개의 갈래로 나누어지는 방대한 깊이의 학문인 과학과 같이 마법이라는 학문 역시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들어가면, 그 종류만 아무리 크게 잡아도 수십 가지가 넘어갔다.
그렇기에……. 그 이후부터는 자신만의 전공……. 즉, ‘학파’를 정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교직원 사이에서도 이제 슬슬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는 의견들이 거세게 나오고 있어. 모두가 같은 영역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가끔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고, 아무튼 이제 슬슬 가능하면 서로의 영역을 나눠 놓을 생각이야.”
지금까지는 모두가 똑같은 신병 훈련소처럼 이 우로보로스를 운용했다면, 이제는 대학교처럼 세부 전공에 따라 저마다의 연구와 수련을 자유롭게 허용할 생각이라는 영희.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찡그리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 지금 당장 나눈다고 한다면 몇 개의 학파로 나눌 수 있는데?”
“대략 생각해 둔 건 6개야. 내가 전담하게 될 디멘션 학파. 류명한 교수가 일임할 매직 크래프트 학파. 김두식 교수가 가르칠 힘 법사……. 아니, 워 메이지 학파. 거기에 다른 교수진들이 공통으로 겹치는 엘리멘탈 학파와 일루젼 학파랑 그리고 프로텍트 학파 정도?”
“흐음……. 나쁘지는 않은데…….”
시공간. 아티팩트 제작. 물리(?). 원소. 환상. 보호.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학파들을 콕 집어서 나누어 가르치겠다는 영희의 계획.
그걸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이내 영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누어서 가르치려고 한다면 학생들을 더 많이 뽑아야겠는데?”
“그렇지. 안 그래도 류명한 교수님은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일단 매직 크래프트 학파는 머리가 아주 뛰어나고 출중한 학생들 사이에서 뽑고 싶다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시지.”
“그것도 맞긴 해. 매직 크래프트 학파라면 서클이 높은 것보다는 마법 회로에 대한 이해도와 마법 지식이 거의 99.9%를 차지하는 영역이니까.”
동감한다는 듯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자 영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금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우로보로스의 학장이자 창립자로서 너의 대답은?”
최종 결정을 내려 달라는 영희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콜. 단,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조건이 있다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 오는 영희.
그런 그녀에게 나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번 신입생 입학시험과 선발에 관한 전부를 내가 주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