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인간의 가능성과 재능은 보통 세 가지로 구분된다.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남들 수준을 겨우 뒤따라갈 수 있는 수준에 그치는 둔재(鈍才).
꾸준한 노력만 수반된다면 남들과 비슷한 어느 일정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범재(凡才).
그리고…….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통달하고 다른 이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천재(天才).
대부분은 둔재와 범재의 재능을 타고난 채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지만 아주 극소수의 천재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곤 했다.
4살부터 한번 들은 음악을 완전히 외워 버리고 능숙하게 연주하는 악마적인 재능의 음악가나 10살 때 이미 기존 미술계의 화풍을 모조리 섭렵하고 나아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파격적인 형식의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는 화가. 그리고 고작 9살에 심심하다는 이유로 NASA의 보안 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자유자재로 서버를 돌아다니며 온갖 최첨단 로켓의 설계도를 열어본 프로그래머인 제이미 올리버와 같은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그 숨길 수 없는 특출한 재능을 세상에 마음껏 뽐내곤 했다.
[ 제이미 올리버는 이 시대 최고의 시스템 보안 전문가이자 동시에 가장 뛰어난 해커입니다. 그가 심심풀이로 만들어 낸 해킹 프로그램인 토끼굴(Rabbit Hole)로 가장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던 NASA의 시스템을 완전히 뚫어 버린 것은 고작 9살 때의 일이었죠. 그 일로 수사 당국에 붙잡힌 것은 우리 모두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는 전 세계에 악명이 자자한 무시무시한 사이버 속의 무법자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
[ 제이미가 만들어 낸 토끼굴은 만들어진 지 벌써 15년도 더 된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공격하려는 시스템이 가진 취약점을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보안망을 뚫어 내는 불세출의 프로그램이죠. 물론, 토끼굴에 대항해 그가 만들어 낸 보안 프로그램인 이지스 또한 맹활약하며 우리의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사이버 보안 업계의 가장 강력한 창과 방패가 한 사람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참 재밌으면서도 씁쓸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해커이자 보안 전문가로 명성이 드높은 제이미의 이야기를 하며 열띤 대화를 나누는 두 앵커는 이내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최근 큰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 과연 그가 최근 개발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목을 끌고 있는 마나 링크의 해킹에 성공하고 10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상금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
인류 최초의 마법사인 멀린이 전 세계에 공개한 서버.
정보 집약 네트워크. 통합사념망(統合思念罔).
그 누구든 이 시스템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억 달러를 주겠다고 공언한 멀린의 광역 도발에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보안망을 뚫어 보겠다고 치열하게 달려들어 문을 두드려 댔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와……. 저거 도대체 뭐 어떻게 생겨 먹은 코드들이냐?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 마법을 기반으로 만든 시스템이라고 하잖아. 애초에 마법 지식이 없으면 해킹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지.
- 하긴……. 아무도 이해 못 할 거라고 확신하니까 1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돈을 상금으로 내걸었지
- 에라이. 좋다 말았네.
0과 1의 이진수로 이루어진 기존 컴퓨터의 시스템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전혀 새로운 구조와 형태의 보안 시스템. 물론 호환성을 고려한 것인지, 작동 방식과 알고리즘에서는 기존 컴퓨터와 비슷해 보이는 익숙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체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원리를 파악하고 취약점까지 공략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 그래도 상금의 기한은 없는 것 보면 마법 지식을 공부하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 뭐…….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 10억 달러 주면 못할 것도 없지.
- 말리지는 않겠지만, 무조건 해킹에 성공하는 거 아니면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니냐?
그렇게 도무지 그 구조와 원리를 파악할 수 없는 난해하고 생소한 코드들에 속속들이 포기를 선언하는 유명한 개발자와 해커들. 난다 긴다 하는 유명인들이 중도 하차를 선언하고 나서고 있었지만, 제이미 올리버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제이미. 얼마나 오랜 시간 앉아서 해킹에 매진한 것인지, 그의 주변에는 이미 비워 버린 무수히 많은 커피와 카페인 음료수 캔이 나뒹굴고 있었고 제이미의 머리는 완전히 떡이 진 채 개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초록빛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작게 몸을 떨었다.
“실시간으로 바뀌고 진화하는 보안 시스템이라니…….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런 괴물을 만든 거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수백,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시스템의 공략을 시도한 제이미. 그 모든 시도가 모조리 무력화하고 실패하고, 자신이 공략에 실패할 때마다 시스템의 보안이 시시각각으로 강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불세출의 천재인 제이미 올리버. 그는 최근 개발 중인 자신의 인생 최고의 역작이 될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인 엘리스(Alice)와 너무나도 흡사하면서도 동시에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마나 링크의 보안 시스템을 보며 자신이 했던 수년의 노력이 모두 헛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고 있었다.
“크크크……. 정말이지 재밌군…….”
지금껏 그가 경험해 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렬한 호승심과 짜릿함이 밀려오는 순간.
일평생 호적수라고 할 법한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던 천재 중의 천재였던 제이미였기에 그는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으며 너무나도 킹받는 얼굴로 손을 까딱거리며 도발하던 멀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 자신 있는 새끼들은 다 드루와. ]
아직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도 않은 미성년자가 만들어 낸 보안망 하나 뚫지 못하고 쩔쩔매며 포기하기에는 천재로서의 자신감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이미는 결심했다.
“좋아. 내 모든 것을 걸고 기필코 만들어 내고야 말지…….”
“가장 견고한 방패를 꿰뚫는 날카로운 창을.”
방금까지 공략하던 마나 링크의 시스템을 포기하고는 뒤로 미뤄 두었던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 개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열성적인 자세로 매진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다다닥.
빠른 속도로 손을 놀리며 기존의 작업물들 대부분을 뜯어고치고 변형하기 시작한 제이미는 그는 어느 때보다도 흥미진진하고 기대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엘리스라는 이름은 너무 유약하니 이름부터 바꿔야겠군…….”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보안 전문가인 제이미가 아니라 과거 9살에 NASA를 휘젓던 사악한 악동이자 뛰어난 해커인 제이미의 모습으로 돌변한 그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 같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만들던 프로그램의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과 걸맞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래……. 그게 좋겠네. 게이볼그.”
그렇게 지금까지 무료함과 따분함 속에서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 영혼 없이 일하던 어느 한 불세출의 재능을 가진 천재가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불태우며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드래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시스템의 견고한 성벽에 구멍 한번 제대로 뚫어 보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다짐하며 말이다.
* * *
마나를 기반으로 한 정보 네트워크 마나 링크.
하지만 그 안에 용용이라는 초월적인 영혼까지 깃들어 버린 이상, 이 마나 네트워크는 단순한 시스템을 넘어서 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정보 집약체가 되어 버렸다.
정보 집약 네트워크. 통합사념망(統合思念罔).
마나 링크를 통해 흘러가는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지성체인 용용이를 통해 관조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사실을 나에게 직접 듣고 있는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은 그야말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가관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이 인형이……. 아니, 용용이가 마나 링크에 깃들어 있다 이 말인가?”
[ 위대한 일족을 이끄는 지도자였던 나에게 용용이라니! 앞으로 나를 부를 때에는 ‘용용이 님’이라고 불러라, 이 하등하고 미개한 인간. ]
레너드 대통령의 반응에 잔뜩 날 선 반응을 보이며 꽥꽥거리는 용용이. 이제는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한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과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신나서 저러고 있는 거니까 대충 흘려들으세요. 나중에 집에 가서 터보 모드로 한 3번만 돌려 주면 또 잠잠해질 거예요.”
“……?”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요구 사항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네는 미국이 직접 나서서 모든 네트워크를 마나 링크의 시스템으로 교체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그렇죠. 이번에 북한에서 저지른 해킹 사건만 보더라도 미국이 사용하던 기존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었잖아요? 이번 기회에 전 세계의 해커들이 덤벼들어도 조금도 뚫지 못했던 마나 링크로 넘어오면 다시는 그런 해킹 사태는 벌어질 수 없겠죠.”
북한의 일을 언급하며 마나 링크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나는 미국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달콤한 미끼를 넌지시 흘렸다.
“게다가……. 만약 미국이 먼저 마나 링크로 전환하고 다른 국가들도 따라서 전환하게 된다면, 그 말은 통합사념망……. 아니, 우리 용용이가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관조할 수 있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된다는 말이죠.”
“상상해 보세요. 가만히 앉아서 중국이나 러시아 내부의 기밀 자료들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게 되는 그 순간을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란이나 북한이 핵 개발을 한다거나 이상한 수작질하는 것도 사전에 모조리 잡아낼 수 있을걸요?”
“!!!”
그 말에 부릅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그럼요. 우리 마법 A.I……. 아니, 지구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영혼인 용용이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데요? 그치 용용아?”
[ 흥, 그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도 나에게는 매우 불쾌한 모욕이다. 주인. 드래곤의 저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
“그치. 그치. 우리 용용이가 얼마나 개쩌는데?”
한번 치켜세워 주자 잔뜩 신이 나서 거들먹거리고 있는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나는 경악한 얼굴로 얼어붙어 있는 레너드 대통령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무튼……. 마나 링크의 네트워크로 모든 통신망이 전환될 수 있도록 미국이 주도해서 나서 주신다면, 앞으로 국가 안보에 명백하게 위협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우리 용용이가 적극적으로 미국과 협력해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10년 전,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비밀 작전. 프로젝트 프리즘을 시도했었던 미국.
결국 그 프로젝트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 전 세계의 정보를 통제하겠다는 그 원대했던 목표는 완전한 꿈이 되어 버렸기에 지금 이 제안은 레너드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아, 그리고 이거 말고도 이 마나 링크로 전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다른 이유는 또 뭔가……?”
의아한 얼굴로 또 다른 이유를 물 어오는 레너드 대통령에게 나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마나 링크는 기본적으로 양자역학과 비슷하다고 했죠? 이론상으로 중계기 역할을 하는 두 마나석에 충분한 마나가 저장되어 있다면, 그 마나는 영자적 얽힘에 따라 엄청나게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인 정보의 교류가 일어날 수 있죠. 비록 시공간이 다른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도무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하고 복잡한 이론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멍청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레너드 대통령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겠네. 혹시 조금 더 간략하게 말해 줄 수 없겠나?”
핵심만 말해 달라는 레너드 대통령에게 나는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마나를 가득 충전한 중계기를 저 머나먼 우주를 탐험할 우주선에 탑재한다면 실시간 통신이 가능하다는 소리죠. 0.001초의 지연 시간도 없이 즉각적인 통신망 연결이 가능하다는 말이죠.”
“뭐……뭐라고?”
이제는 완전히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너무나도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요? 이래도 마나 링크가 별로 안 끌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