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위대한 수령 동지이자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 정권의 3번째 지도자인 김정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뇌출혈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며 비교적 어린 나이에 권력을 승계받게 된 그는 분명 역량이 부족한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북한의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처참했다.
무너진 경제. 극심할 정도로 부족한 자원과 물자. 거기에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동요까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차기 후계자로서의 승계 작업이 없이 갑작스럽게 모든 권력을 손에 거머쥐게 된 김정은이었기에, 그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사방에서 나타났다.
[ 크흠……. 아무리 백두혈통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북한 전체를 통치하기에는 많이 이른 것 같은데 차라리 당분간은 장성택 동지께서 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 내 김정은 동무께서만 허락해 주신다면, 정치권과 인민군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지도자 동무의 죽음으로 동요하는 우리 인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제가 당 행정부장으로 실무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
그를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이번 기회에 권력을 틀어쥔 실세로 자리매김하려던 이들. 하지만, 김정은은 이러한 수많은 정치적 모략과 노림수들 사이에서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 핵무기 개발은 우리 북조선 인민 모두를 위한 길이며 저 사악한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력갱생을 위해서 우리는 그 어떠한 협박과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가시밭길 속에서 반드시 미제 놈들의 앞마당에 핵을 투사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개발할 것입니다. ]
군부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군사적 내부 통제력을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와 핵무기 개발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김정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국 본토에 핵을 투사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반복해 갔고 그 덕분에 그는 비록 미국으로부터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받게 되었지만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전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암묵적인 묵인과 비공식적인 지원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오가는 아찔한 줄타기를 해 가며 핵 개발과 정권 유지를 이어 나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 발생한 사태는 분명 이제 12년이 되어 가는 그의 정치 인생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콰앙
“그게 도대체 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우리가 뭘 얼마나 털어먹어?”
미국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지목하고 아주 적나라한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그 방송을 뒤늦게 확인한 그는 정찰총국의 수장인 리창호 국장에게 직접 현재 상황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 정찰총국 산하의 그 라자루스인지 뭔지 하는 아새끼 놈들이 10억 달러가 아니라 240억 달러를 금융망을 해킹해서 탈취했다는 말인가?”
“본인들은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원래는 방글라데시로부터 10억 달러만 탈취하겠다는 것으로 작전을 보고받아 이를 직접 승인했던 김정은. 타국의 중앙은행을 해킹해서 외화 보유금 전체를 털어먹는 이 기상천외하고 극악무도한 작전을 그가 허락했던 것은 그 막대한 외화가 탐이 났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방글라데시가 털어먹어도 아무런 후환이 없을 약소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그 작전은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자금을 빼낸 곳이 방글라데시만이 아니라 미국 놈들을 비롯해 53개국의 은행에서 빼낸 것들이라고?”
“예……. 그 안에는 우리 북조선과의 우호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북한으로서는 정권 유지에서 반드시 필수적인 국가이자 강력하고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해 주는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우방이자 핵심 교역국인 두 국가가 이번 해킹 피해의 당사국 명단에 포함된 것을 보며 김정은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쌍간나 새끼들이…….”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김정은. 그도 그럴 것이, 한 나라도 아니고 전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을 상대로 거하게 엿을 먹여 버린 이 상황에서 제아무리 똥배짱으로 뻔뻔하게 외교 무대에 얼굴을 비춘다는 북한이라 할지라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최고 지도자 동지. 현재 관련자들의 신병을 최대한 확보해서 본국으로 송환 중입니다. 철저한 심문을 통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철저하게 파악하고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면목이 없다는 듯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리창호 국장.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인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이 날아갈까 두려운 듯, 연신 눈을 굴리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뾰족한 방도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정찰총국 내에는 숙청의 피바람이 또다시 세차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최악, 그리고 최강의 범죄를 저지른 최악의 유사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제대로 심어 놓으며 말이다.
* * *
[ 우리 북조선 인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할 정찰총국의 일부 반동분자들이 전 세계의 금융망을 불법적으로 해킹하고 다른 세계 인민의 소중한 재산을 탈취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위대한 조국을 위한 숭고한 과업이라며 부당한 방법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부정한 일을 저질렀으며,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로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당한 모든 당사국에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TV를 통해서 전 세계에 긴급하게 보도되고 있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도게자.
발뺌하려고 해도 도무지 발뺌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증거물들이 너무나도 명백했고, 게다가 미국을 비롯해 피해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에 아무리 뻔뻔한 북한이라 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 이들이 탈취하고 빼돌린 자금 추적과 범죄자들의 신병 확보에 있어 우리 북조선은 전력을 다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이들의 신병을 인도하는 것 역시 추후 논의를 통해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에 사라진 240억 달러의 자금과 관련해서 우리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환수하고 또 부족한 자금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전액 배상할 것을 최고 지도자의 이름으로 약속드립니다. ]
[ 북조선은 국제 사회의 법규를 존중하고 그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도 반대합니다. 반동분자들 일부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우리 북조선이 직접 저지른 것이라는 의혹에 단호하고 강력히 부정할 것입니다. 이러한 물의를 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온 것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며 유감을 표합니다. ]
어떻게든 일부의 잘못으로 몰아가며 책임을 덜어 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북한이었지만, 그런 그들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그 어디에도 없었다.
- ㅋㅋㅋㅋ. 일부 개인이 240억 달러를 털어먹어? 저게 말이 되냐?
- 이번 랜섬웨어 바이러스가 저 빨갱이 새끼들이 써먹던 북극성 바이러스랑 똑같다며?
- 북한이 핵 가져도 미국이 진심으로 빡쳐서 눈 돌아가면 어쩔 수 없네.
- 초고속 도게자 수준 ㅋㅋㅋㅋㅋㅋㅋ
- 아, 근데 저거 사과문이 아니라 4과문인 게 나는 왜 이렇게 킹받지?
- 저렇게라도 사과를 하는 게 어디냐? 저 새끼들 평소 하는 걸 보면 저것도 대단한 거 아님?
북한이 이번 해킹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공식적인 인정하며 배상과 더불어 미국에서 요구했던 사항들에 대한 이행을 약속하자 혹시라도 전쟁이 날까 걱정했던 사람들은 한층 완화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조금은 긴장을 풀며 안도하기 시작했고, 맥주를 마시며 관련 뉴스를 보고 있던 대학생인 원철과 형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 그래도 다행히 예비군으로 다시 군대로 끌려가지는 않겠네. 다행이다.”
안 그래도 취업 준비로 바쁜 4학년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원철. 그는 혹시라도 전쟁이 터지나 조마조마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사히 상황이 일단락되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그의 말에 친구인 형준이 무사태평한 얼굴로 화답했다.
“야, 미국이 직접 나서면 우리가 끌려갈 일이 있겠냐? 그냥 한순간에 평양 불바다 되고 게임 끝이지.”
“그래도 군대는 아마 끌려갈걸?”
“에이, 아니지. 전쟁 난다고 무조건 끌려가면 일은 누가 하냐?”
“그건 그렇고……. 북한의 사이버 해킹 능력이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네.”
시답지 않은 주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이내 화제를 돌리는 형준. 그리고 그 말에 원철은 동의한다는 듯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내 말이! 아니, 인터넷도 제대로 못 쓰는 것들이 어떻게 전 세계를 상대로 털어먹었지?”
“우리 교수님도 오늘 강의 시간에 진짜 침까지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하시더라. 이건 진짜 우리도 북한 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아무리 범죄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답도 없는 열악한 인터넷 환경 속에서 저렇게 뛰어난 능력의 인재들이 튀어나오는데 너희는 도대체 뭐냐고 아예 극딜을 박아 버리시더라?”
“그러게……? 넌 저런 거 불가능하냐?”
“……. 미쳤냐? 저건 빌 게이츠가 아니라 빌 게이츠 할애비가 와도 불가능해.”
“그건 당연한 소리고. 빌 게이츠 할아버지가 컴퓨터를 알기나 하겠냐?”
맥주를 마시며 유치한 농담 따먹기나 이어 가던 두 사람. 북한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들의 화제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취업 문제로 이어 갔고 이어서 진지한 얼굴로 서로의 고민을 토로하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어휴……. 진짜 취업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
취업난으로 인해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고심하는 원철.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형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 그런 소리 하면 토목과인 나는 뭐가 되냐?”
“뭐, 요즘 건설사들도 취업 잘 된다잖아.”
“뭐래? 부동산 경기 다 죽어서 지금 건설사들 전부 부도나게 생겼는데.”
“IT도 예전만큼 잘나가는 세상 아니다. 요즘 하도 흉흉한 세상이라…….”
“하긴……. 한 1년 전쯤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난 마법.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마법이 현실에 실제로 등장하자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 세상을 뒤바꾸어 놓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현재 이 둘에게까지 강력하게 미치고 있었다.
“지금 이호준 정부 들어서고 부동산 개발 관련해서 환경 규제를 전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걸어 놔서 지금 죄다 고사하는 중이다. 아마 운 좋게 어디 들어가도 한 10년 이내로 치킨집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IT는 뭐 좋은 줄 아냐? 지금 그 멀린이 무슨 마나 네트워크니, 양자역학이니 별말도 안 되는 이상한 헛소리를 해서 요즘 업계 분위기가 장난 아니야.”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혼돈의 폭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수많은 산업. 그중에서 최근 그 직격탄을 맞은 원철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형준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눈을 빛내며 물어 왔다.
“야, 원철아. 너 혹시 이거 관심 없냐?”
“뭐가……?”
“아니, 이거 오늘 우연히 뮤튜브에서 본 건데, 어쩌면 네가 관심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갑자기 맥주캔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형준.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은 바로 멀린의 뮤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한 영상이었다.
[ 뉴스 보니까 전 세계가 북한의 해킹 사태로 인해서 난리가 났던데 그걸 보면서 저는 솔직히 진짜 답답했어요. 도대체 왜 아직도 0과 1로만 이루어진 미개하고 원시적인 시스템을 고집해서 저런 일을 당하는 걸까? 그 누구도 해킹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보안성을 자랑하는 시스템이 이미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이 마나 링크를 이용하면……. ]
자신이 만들어 낸 최초의 새로운 통신 네트워크이자 시스템인 마나 링크를 들고 와서 한참을 홍보하는 멀린. 광고 영상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흥미가 떨어진 원철이었지만, 이어지는 멀린의 말에 그는 다시 귀를 쫑긋거렸다.
[ 제가 만들어 낸 이 시스템의 보안이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못 믿겠다고요? 아, 그럴 수 있죠. 인간이 얼마나 의심이 많은 동물인데 곧이곧대로 제 말을 믿을 거라고 애초에 기대조차 안 했어요. 그래서 말이죠……. 제가 한 가지 내기를 해 보려고 해요. ]
“내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영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는 마치 영상 속에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멀린이 마치 자신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도 달콤한 목소리로 원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 누구든 이 마나 링크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보안을 뚫는다면……. ]
[ 그 사람에게 세금까지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된 10억 달러를 상금으로 주도록 하죠. ]
10억 달러.
1조 원을 상금으로 내거는 저 정신 나간 멀린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도발적인 자세로 손을 까딱거리며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에게 광역 어그로를 시전했다.
[ 자신 있는 새끼들은 다 드루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