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44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주류 강자인 앰플과 삼진 전자.
단순한 시장 점유율만을 보고 따진다면 삼진 전자가 매번 분기마다 가장 많은 출하량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자세히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었다.
[ 삼진 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꾀하는 전략은 기본적으로 박리다매입니다. 막대한 보조금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앰플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출시해 많은 판매량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죠. ]
[ 하지만 그러한 전략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과 한계점은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은 블루홀과 앰플폰 둘 중 어느 제품의 브랜드를 더 가치 있게 보냐는 질문에 있어서 하나 같이 앰플폰을 선택할 겁니다. 블루홀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해서 많은 판매량을 분기마다 경신할지 몰라도 그로 인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나빠지죠. ]
이익을 포기하고 손실까지도 감수할 정도로 판매량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는 삼진 전자. 하지만 그로 인해서 눈에 보이는 실적은 분명 앰플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 판매량보다 영업 이익을 놓고 비교해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겁니다. 앰플의 작년 영업 이익만을 놓고 따지자면 전 세계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영업 이익 전체의 자그마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전 세계의 스마트폰 시장을 앰플이 독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수치죠. 아, 참고로 삼진 전자는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앰플에게 자그마치 5배나 밀리고 있는 이 부끄럽다 못해 치욕스럽기까지 한 성적표에 삼진 전자는 이를 악물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모든 수를 다 써왔다. 물론, 그 결과가 성공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최악의 수였지만 말이다.
- 삼진 전자 올해 스마트폰 2분기 판매량. 점유율 20% 붕괴.
- 점점 하락하는 블루홀과 상승하는 앰플. 앰플의 시장 독점 체제의 시작인가?
-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앰플의 고급화 전략. 가격보다는 품질이 우선
- 배터리 폭발 사건부터 POS 사태까지. 매번 논란에 휩싸이는 삼진 전자.
삼진 전자의 자존심이자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는 점유율 20%가 붕괴하고 소비자들의 여론과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 앰플의 신제품인 앰플폰 20이 큰 인기를 끌며 기록적인 판매량을 경신한 영향도 있겠지만 점점 두 회사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미 수치로 모든 것이 증명됐기에 금융 시장은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반응했다.
- 삼진 전자 주가 하루 –5% 하락. 9년 만에 최대폭 급락.
- 최근 발생한 POS 사태로 인한 집단 소송과 부진한 2분기 실적에 따른 어닝쇼크로 인한 결과로 추정.
- 금융 전문가들. 삼진 전자의 주가는 지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전망.
- 추락한 주가로 뿔난 주주들. 삼진 전자에 대응책 마련 요구.
전액 환불 요구와 소비자원에 민원 신고만이 아니라 집단 손해배상 소송 같은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집단적인 움직임까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러한 삼진 전자의 고전과 불행을 보면서 그 누구보다 기쁘게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크크크. 이거 참 한심하기 짝이 없군. 다른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 성능 조작을 통해서 우리랑 경쟁하려고 들었다니.”
앰플의 총괄 대표이사인 피터 쿡.
그는 수많은 임원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서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지금 현재 논란이 되며 여론의 분노 어린 폭격을 맞고 있는 삼진 전자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현재 삼진 전자의 제품인 블루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한 상태입니다. 이번 문제를 장기적으로 계속 끌고 간다면 해당 브랜드에 타격을 주고 저희 앰플 브랜드에 가치를 더욱 높일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흥. 블루홀 같은 그런 저급한 제품이 우리 앰플의 제품과 비교 대상이라는 것부터가 예전부터 모욕적이었지. 그저 싼 값에 많이 팔면 된다는 그 한심한 생각으로 우리를 이기려 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던가?”
마케팅 총괄 이사의 보고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피터 쿡. 그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설명을 듣다 이내 귓가에 들려오는 하나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따라서, 현재 올해 초에 출시한 신제품에 대한 광고를 조만간 대대적으로 시작할 예정인데 현재 삼진 전자의 사태를 비꼬는 마케팅을 진행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고 판단해서 적절한 캐치프레이즈를 구상해보고 있습니다.”
“캐치프레이즈?”
“······.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광고나 선전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하는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문구.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 잘 만들어진 캐치프레이즈는 유행이나 일종의 밈이 되어서 수십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있기에 때로는 상상 이상의 마케팅 효과를 불러오기도 하기에 마케팅에서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나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네.”
자신이 그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했다는 피터 쿡.
그리고 그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회의실 안에서 이제 곧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뿌려질 다음 앰플폰의 대표 슬로건을 결정했다.
“No Lie. Be Perfect.”
*
[ 언제나 믿고 살 수 있는 제품. 그리고 완벽함. 그것은 앰플이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신제품. 앰플폰 20에서 그러한 가치를 느껴보세요. ]
[ No Lie. Be Perfect. 앰플폰 20. ]
미남 미녀의 배우들이 등장해서 최신형 앰플폰을 들고 도발적인 대사를 하는 앰플의 최신 광고.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으로 이 광고가 깔리자 사람들은 이들의 문구가 누구를 저격하는지 굳이 직접 그 대상을 언급하지 않아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 크······. 구라 안 치고 완벽한 제품. 캐치프레이즈 하나는 기깔나게 뽑았네.
- 이거 대놓고 거기 저격하는 거 아님?
- 삼진 전자 피눈물 잼 ㅋㅋㅋㅋㅋ
- 주가 떨어져서 주주들 통곡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ㅎㅎㅎ
- ??? : 삼진아 그거 해봐 그거. 삼진 : 님 폰 접힘?
- 폰이 접히고 나발이고 삼진은 그냥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함.
- ㅋㅋㅋㅋ 소비자 우롱하고 개돼지 취급하는 쓰레기 기업.
삼진 전자의 최근 사태를 공개 저격하는 앰플의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구와 마케팅으로 앰플을 저격하고 공격해 온 것은 삼진 전자였기에 소비자들은 이러한 앰플의 마케팅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다.
가장 기본적인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으며 연일 악화하는 삼진 전자. 하지만 사태가 벌어진 지 거의 2달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후속 대응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그때. 삼진 전자에서 주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하나의 보도자료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POS 사태에 대한 공식 기자회견 발표?”
“이호준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나 보네?”
“뭐 공개적으로 사과라도 하려는 거 같은데 특별하게 뭐 적혀진 건 없네?”
짤막하게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내용만 적혀져 있을 뿐, 그 이외에는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알 수 없는 보도자료.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상세하게 후속 대응책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까지 기삿거리로 공유해주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삼진 전자의 움직임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취재를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자회견에서 이호준 회장의 솔직하고도 과감한······. 그리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사과문을 들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 최근 삼진 전자에서 출시해왔던 스마트폰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와 실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책임을 통감하며 또 송구함을 느낍니다. 과거, 삼진 전자를 책임지던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과 선택으로 제가 추구하던 가치와 경영 철학들이 많이 훼손되고 빛이 바랬다는 것을 저 역시 처절하게 느끼고 있으며 또 앞으로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혁신을 이루어야 삼진 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상처받은 고객님들과 주주 여러분, 그리고 삼진 전자의 임직원 모두에게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과거 그의 자식이자 삼진 전자를 책임졌던 이진수 사장을 언급하며 고개를 숙이며 진솔하게 사과를 하는 이호준 회장. 그의 입에서 공식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들이 나오자 기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에 나올 후속 대책을 기다렸다.
[ 따라서 이번 POS 문제에 언급된 제품들에 대한 전면적인 환불 및 교환 조치를 진행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이 조치는 비단 블루홀 10의 모델만이 아니라 성능 조작을 한 것으로 판명된 블루홀 9, 블루홀 8, 블루홀 7까지 포함해 최근 3년 동안 출시되었던 삼진 전자의 모든 모델을 대상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뭐라고?”
“이런 미친······. 그 많은 제품을 전부?”
그 말에 요란하게 술렁이기 시작한 기자회견장. 그도 그럴 것이 해 봤자 고작 이번에 문제가 터진 블루홀 10에 한정해서 환불이나 교환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 설마 최근 3년 동안 판매된 모든 제품을······. 그것도 기종이나 모델과 상관없이 모조리 다 바꿔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일순간 기자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동시에 흥분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기······기사 얼른 보내.”
“예. 부장님. 지금 삼진 전자 기자회견장인데요······.”
1초라도 빨리 이 내용을 속보로 내보내기 위해서 눈치싸움을 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회견장을 오가기 기자들. 하지만 이들이 뭘 하든 이호준 회장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 소비자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내린 결단입니다. 수조······. 아니, 수십 조의 손해를 보더라도 이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저 삼진 그룹의 총괄 회장인 이호준의 이름으로 반드시 방금 내린 결정을 이행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무지막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치들. 도대체 저런 걸 무슨 생각으로 실행하겠다는 건지 기자들조차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호준 회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 혹시라도 환불이 아니라 저희 삼진 전자를 다시 믿고 새로운 제품으로의 교환를 원하는 고객님들이 계신다면, 그분들에게는 내년에 출시될 신제품. ‘타임리스(Timeless)’를 사전 제공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교환 신청은 오늘을 기점으로 2주 동안 신청을 받을 예정이니 혹시라도 교환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정해진 기간 내로 신청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환 신청······?”
“설마 이 상황에서 교환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 환불해 달라고 하겠지.”
“그러게 둘이 바뀐 거 아냐? 환불을 2주 동안 받고 나머지는 다 교환으로 해도 모자랄 판에.”
상식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최대한 환불 방어를 하기 위해서 일정 기간의 시간제한을 두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이상하게 이호준 회장은 완전히 정반대의 조치사항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결정을 내린 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기자들에게 이호준 회장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번 앰플의 새로운 신제품 광고를 매우 인상 깊게 봤습니다. No Lie, Be Perfect.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그 문구를 보니 제가 다 부끄럽고 양심이 찔리더군요.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들고 또 앞으로 저희 삼진 전자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아주 좋은 문구였습니다. ]
의도적으로 삼진을 능욕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문구를 언급하며 오히려 칭찬하는 이호준 회장. 어쩌면 불쾌할 수도 있는 그 문구를 직접 입에 담으며 반대로 웃고 있는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서······. 저도 내년에 출시를 준비하는 우리 삼진 전자의 신제품. 타임리스의 문구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그리고 삼진 그룹이 가진 기술을 총동원한 역작이 될 테니까요. 저희 삼진 전자 신제품의 캐치프레이즈는 바로······. ]
그리고 그날.
이호준 회장의 발언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 No Battery. Be Absolute.
- 블루홀의 이름을 벗어던진 삼진의 신제품. 타임리스
- 앰플에 도전장을 내민 삼진 전자.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