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43화.
“그래서······ 삼진 그룹에서 천만 평의 용지를 추가로 매입해주기로 했다고요? 그것도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나눠서요?”
“네. 아마 조만간 아영에게 관련한 계약서를 보낸다고 했으니 그쪽에서 연락이 올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미 조율이 끝난 상태니까 그냥 세부적인 것들만 거기 비서실이랑 협의해서 결정하고 처리하시면 될 거예요.”
“······.”
천만 평.
자그마치 3,300헥타르에 달하는 방대한 넓이의 부지를······. 삼진 그룹에서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는 아영. 그녀로서는 도저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도······. 도대체 삼진 그룹에서 왜 그렇게 많은 땅을 또 제공해줘요? 아니, 그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삼진 바이오에서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 않아요?”
지금 현재 조성되고 있는 80만 평의 생태 부지 하나만 하더라도 조 단위의 자금이 투입된 것만이 아니라 삼진 그룹이 가진 영향력을 총동원해 온갖 법적, 제도적 허점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이들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생태부지의 자그마치 10배에 달하는 추가적인 땅을 제공하겠다는 삼진 그룹. 그 상대가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이해득실 판단이 빠른 기업이었기에 아영은 도무지 무슨 정신으로 이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삼진 바이오에서 약속했대요?”
“······? 그럼 누가 한 약속인데요?”
“삼진 그룹의 이호준 회장이요.”
“예······?”
삼진 그룹의 총수이자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들어온 거목과도 같은 일인자인 이호준 회장.
그가 직접 한 약속이라는 나의 말에 아영의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
“이호준 회장이랑은······. 또 언제 만나고 다닌 거예요?”
“꽤 됐어요. 저번에 내 소중한 숲 태워 먹었을 때 직접 가서 깽판 좀 치고 왔거든요.”
“정말이지······. 그런 걸 저한테 숨기면 어떻게 해요?”
나를 째려보며 무어라 구시렁거리며 투덜대는 아영. 하지만 이내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을 듯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자······잠깐만요. 그럼 지금 방금 말한 그 천만 평이 농담이 아니라는 소리잖아요?”
“그럼 제가 언제는 농담으로 이런 소리 했어요? 일단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고 점진적으로 하나씩 늘려나가자고 했으니 너무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돼요.”
“그러면······. 진짜 이 생태부지 같은 곳들을 10개나 더 만든다는 말이에요? 그것도 100만 평이나 하는 무지막지한 규모로······?”
경기도에 자리한 이 생태부지를 시작으로 충청, 강원, 전라, 강원······. 심지어 제주도까지.
이 대한민국 곳곳에 오롯이 자연과 동식물들을 위한 생태계가 번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성역이자 금인(禁人)의 구역인 ‘멀린의 정원(Merlin's Garden)’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이 야심 가득한 계획을 5년 내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죠. 앞으로 아영이 저를 대신해서 많이 신경 좀 쓰셔야 할 거예요.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땅의 소유자이자 책임자가 아영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세금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다하고 복잡한 법적인 절차와 문제들이 있을 건데 삼진 그룹에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너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무지막지하게 귀찮고 성가실 뿐이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멀린 님. 저는 그냥 일개 뮤튜브 편집자인 거는 아시죠?”
고작 뮤튜브 영상을 편집할 줄 아는 게 전부였던 아영.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너무 과한 일들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부당하다는 듯이 그녀는 나에게 따져 물었지만 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되물었다.
“엥······? 편집자이면서 제 전속 매니저 아니었나요?”
“아니거든요? 그냥 다짜고짜 이 세상이 멸망할 거라면서 일방적으로 멀린 님이 하는 일에 동참하라고 강요했잖아요!”
좋은 꿈이나 꾸라면서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이 세상이 멸망하는 최후의 순간을 악몽으로 꾸게 했던 그. 그러기에 아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따져 물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뻔뻔하게 답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뭐 안 하실 거에요?”
“······.”
“서~얼마. 일 시키는 게 너무 많고 힘들어서 이 세상에 멸망하든지 말든지, 70억의 인구가 싹 다 죽어서 인간이 멸종하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안 쓰고 그만두겠다는 말 아니죠?”
나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아영.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실현하고 있는 꿈만 같은 일들이······. 그리고 그 생생했던 꿈에서 보았던 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질 20년 후의 그 끔찍하고 참혹한 최후가 모두 사실이자 앞으로 벌어질 이 인류의 미래라는 것을.
그렇기에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는 가불기에 걸린 아영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그때. 나는 그녀에게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아주 달콤한 당근 하나를 던져주었다.
“자요.”
“이게······ 뭐에요?”
“뭐긴 뭐에요? 신용카드잖아요.”
딱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광택으로 빛나고 있는 검은색의 카드. 그 카드를 받아들고 유심히 살피던 아영은 이내 그곳에 새겨진 이름을 읽고는 경악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이호준······. 설마 이호준 회장님······?”
“그럼 누구겠어요? 어디 옆집 동네 사는 호준이 아저씨 카드겠어요?”
삼진 그룹의 총수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부를 거머쥐고 있는 사람. 그의 이름이 새겨진 ‘더 블랙 오브 프레스티지’ 카드를 받아든 아영의 손은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카드 한도는 뭐 따로 정해진 건 없다고 하더라고요. 돈 써야 할 일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자유롭게 쓰라고 하시니까 원하는 대로 아무거나 사 쓰세요. 명품 가방을 지르고 다니던 최고급 외제 차를 타고 다니든 강남 아파트 한 채를 모조리 사들이든 전 전혀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정말로요······?”
개인 자산으로만 최소 100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호준 회장. 그런 그의 사재를 마음껏 털고 다니라는 내 말에 아영은 몽롱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럼요. 어차피 아영이 죽기 살기로 돈을 쓰고 다녀도 제가 하는 이 위대한 대업으로 삼진 그룹이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을걸요? 이번에 제공한 마법진만 해도 수십 조······. 아니, 수백 수천조 원은 더 벌어들일 거 같은데.”
이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혁신.
그 초석이 될 기술과 지식을 전수해 준 나는 소중하게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를 매만지고 있는 아영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마법진······? 또 저 모르게 뭘 하고 다닌 거예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다녔냐며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나를 추궁하는 아영.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삼진 전자 주식이나 좀 사두세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엄청 재미 볼걸요?”
*
미래 연구소.
삼진 전자를 비롯해 삼진 그룹 전체의 미래를 위한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이루어지는 시작점이자 모든 혁신이 이루어지는 곳인 이곳은 이호준 회장이 가장 아끼는 연구소 중 하나였다.
“어떻게 됐나?”
수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가장 오래된 동료이자 모든 비밀과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우인 연구소장.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내려놓으며 침음성과 함께 허탈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군······.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눈으로 직접 보고 온갖 첨단 장비와 정밀 기구들을 총동원해서 수십, 수백 차례의 실험을 통해서 분석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호준 회장이 가지고 온 그 스마트폰의 원리와 작동 방식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지금껏 인류가 이룩한 과학 기술만을 맹신하며 철저히 과학과 공학의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업적을 쌓아왔던 그였기에 지금 이호준 회장이 가지고 온 이 기물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인류를 지탱해왔던 모든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가지고 온 소년은 마법이라고 하더군.”
“마법······. 허허허······.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마법.
과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개념.
하지만 동그란 원 안에 기하학적으로 새겨져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기호와 수식들로 채워져 있는 이 기묘한 문양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약한 전력은 마법······. 아니, 기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되긴 했나 보네. 살다 살다 이제는 마법이 존재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까지도 인정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말이야.”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이 상항을 설명할 수 없기에 허탈함에 가득 찬 얼굴로 중얼거리는 연구소장.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이호준 회장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말게. 자네가 없으면 내가 이런 물건을 어떻게 믿고 맡기겠나?”
“하긴······. 이런 기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아마 산업 스파이로 여기만 아니라 삼진 그룹 전체가 뒤집히기는 하겠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그야말로 신기술. 그 누구보다 스마트폰의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던 연구소장이기에 그는 이 기술이 지금까지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던 한계점을 완전히 보완하는 걸 넘어 무궁무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산이 가능하겠나?”
“일단 해당 문양······. 아니, 그 마법진이라는 것이 전력을 발생시키는 데에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건 아니었네. 그저 나에게 가져왔던 그대로를 새겨넣으면 자연적으로 알아서 전력이 발생하더군. 마치 응당 그래야만 하는 법칙이라도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네.”
“그렇다는 말은······.”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에 해당 문양을 새겨넣으면 자체적으로 기기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 자네가 원하는 대로 양산이 가능하네. 그것도 원한다면 일주일 내로도 가능할 정도로 아주 간단한 일이야.”
“······.”
일주일.
고작 일주일 만에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연구소장의 말.
그 말에 이호준 회장은 한참을 그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광기 어린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
수십, 수백조를 쏟아 넣으며 어떻게든 세계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십 년을 거쳐왔던 그 험난했던 삼진 전자의 과거. 그때의 모든 노력과 고난, 그리고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이 고작 이 자그마한 애들 장난 같은 문양 하나로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현실에 그는 밀려오는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한참을 웃었다.
“이 사람이 원······.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주제에 눈빛만큼은 여전하구먼. 그래.”
이제 60을 넘어서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 누구보다도 뜨겁고 강렬한 야망에 가득 차 있는 이호준 회장. 그런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보며 연구소장은 툴툴거리면서도 물었다.
“그래도 그만큼 보안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거야. 이 마법진이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되면 곧장 다른 경쟁사에서도 써먹을 수 있을 수준으로 단순하니까.”
그 어떤 고도의 복잡한 기술이나 공정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연구소장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호준 회장에게 툭 던지듯이 경고했다.
“걱정하지 말게. 찾아내려고 해도 찾아낼 수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법진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형태만을 동일하게 유지한다면 문제없이 작동한다고 했지 않았나?”
“그랬지······?”
“알아낼 수 있으면 어디 한번 알아내 보라고 하게.”
이호준 회장은 호기롭게 미소를 피워올리며 연구소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탁자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반도체 하나를 집어 들고는 말했다.
“5나노로 반도체 부품 하나에 새겨넣은 그걸 어느 회사가 찾아낼 수 있을지 정말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