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45화.
삼진 전자에서 발표된 선제적이고 총체적인 리콜 계획안.
그것을 받아본 사람들은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 블루홀 10만이 아니라······. 기존 3년간 판매되었던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한다고······?
- 진짜 미친놈들이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정말로?
- 아니 근데 가능은 한 약속임? 그거 다 보상해주려면 비용이 이게 얼마야······.
조 단위는 우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손실이 예상되는 정신 나간 정책. 특히나 이미 법적으로 보증기간까지 만료된 제품들까지 모두 보상 범위에 넣겠다는 이호준 회장의 결심은 그룹 내부에서도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 이건 삼진 그룹 전체를 장악한 총수인 이호준 회장이 아니고서야 내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도대체 왜 굳이 보상해주지도 않아도 될 제품들까지 전부 포함해 주는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삼진 전자에 지금 당장 막대한 금전적 타격을 주는 행위를 스스로 하는 걸 그 어떤 주주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이호준 회장의 발표 이후 주가가 순식간에 –12%가 떨어진 걸 한번 보시죠. 최근에 하락한 5%가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시장의 충격이 어마어마했다는 증거입니다. ]
[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이라는 건 이해합니다만 아마 삼진 전자에게 있어서 이건 최악의 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선례를 남겨놓게 된다면 앞으로 소비자들은 삼진 전자의 제품을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거고 조금의 결점만이라도 있다면 바로 들불같이 일어나 지금보다 더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될 테니까요. ]
지금 당장 문제를 덮기 위해서 삼진 전자와 이호준 회장이 최악의 선택을 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어느 논평가는 장담하듯이 말했다.
[ 소비자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영악합니다. 지금 당장 이런 터무니없는 보상안에 삼진 전자에게 우호적이겠지만, 그런다고 소비자들이 삼진의 신제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다음에 출시하는 제품을 선택할까요? 아마 절대 아닐 겁니다. 그런 경우보다는 신나서 삼진 제품을 환불받고 그 돈으로 앰플의 신제품을 새로 구매하는 경우가 태반일 겁니다. ]
지금까지 쓰던 삼진의 제품을 버리고 앰플로 갈아타는 대규모 소비자 이탈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예언. 그리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 앰플폰 20으로 갈아탔습니다. ]
3년 동안 블루홀 7 써왔던 삼엽충입니다. 안 그래도 폰 바꿀 때가 돼서 약정도 끝나서 뭐 살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이걸 이번 POS 사태로 인해서 판매가 그대로 환불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상태가 막 좋은 편은 아니라서 한 20% 까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80%는 현금으로 돌려받아서 이 돈으로 앰플로 새로 질렀습니다. ㅎㅎㅎ 개꿀이네요.
블루홀을 써 오던 기존 이용자 중에서 이 기회를 틈타 최소 30만 원은 더 비싼 앰플폰으로 갈아탄 이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부러움에 가득 찬 질투어린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 와······. 진짜 개 부럽다.
- 이거 완전 배신 아니냐? 삼진이 이러라고 환불해 준 게 아닐 텐데?
- ㅋㅋㅋㅋ 환불한 돈으로 무슨 폰을 사든 알게 뭐임? 소비자 마음이지
- ㄹㅇ 꼬우면 환불 말고 교환만 해 줘야지.
- 블루홀 10 제외하고 다른 기종은 교환도 안 됨. 무조건 환불임.
- 진짜 이상하게 하네 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교환보다 환불이 이득 아님?
- 그게 다가 아님. 교환하려면 추가 요금으로 돈도 내라던데?
-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그걸 그럼 누가 교환함? 엌ㅋㅋㅋㅋ
교환은 오직 최신형 블루홀 10기종만으로 한정하고 거기에 추가로 20만 원의 비용을 내야지만 내년에 나올 신제품을 미리 받아볼 수 있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운 삼진 전자. 그렇기에 삼진 전자가 약속한 2주의 기간 동안 새로운 신제품으로의 교환을 신청한 경우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 삼진 전자가 약속한 2주의 기간 동안 교환 신청 기간이 오늘로 최종 마감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교환을 이용자는 모두 3,892명으로 이들에게는 이른 시일 내로 사전 제작된 신제품 타임리스의 프로토타입을 제공할 것으로 알렸으며, 추가로 내년에 공식 출시되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판매하거나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알렸습니다. 이에······. ]
3,892명.
정확히 그 신청자가 누구인지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삼진 전자에서 밝힌 내용을 보며 사람들은 이들을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 능지 수준······. 이걸 교환 신청한다고?
- ㅋㅋㅋㅋㅋ 진짜 저건 찐 삼엽충 새끼들 아닌가?
- 저 정도면 그냥 삼진 전자 대주주 아니겠냐? 누가 미쳤다고 돈을 더 얹어서 교환 받냐?
- 음머어~ 월월월 꿀꿀. 그냥 아주 흑우 개돼지 인증이네;;
- 어차피 신제품 나와봤자 앰플한테 무참히 발릴 텐데?
- 앰플폰 20 이번에 진짜 개 예쁘게 나왔더라. 진짜 역대급인 듯.
도무지 일반적인 소비자들의 상식으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선택. 하지만 이제 대학교 3학년인 미진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이러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뭐야? 너 설마 그 삼진 신제품인지 뭔지 그거 신청한 거야?”
자그마한 택배를 기숙사 안에서 열어보고 있는 것을 본 미진의 룸메이트. 그리고 그녀는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돈으로 받고 앰플로 갈아타라니까 그러네.”
“나 앰플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뭐. 전에 A/S 받을 때 직원이 엄청 불친절했다고? 야, 그거야 케바케에 완전 사바사지 겨우 그런 이유로 돈으로 안 받고 도리어 추가금까지 내면서 교환 신청했다는 게 말이 되냐?”
앰플폰을 사용하다 경험한 너무나도 불친절한 직원의 응대에 정이 뚝 떨어져 삼진으로 갈아탔다는 미진. 하지만 겨우 그런 이유 하나로 기어코 또 삼진을 선택했다는 것을 본 룸메이트는 너무나도 황당하다는 듯이 미진을 바라보며 면박을 줬지만, 그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하잖아. 도대체 무슨 신제품이길래 그러는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신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특권.
이런 특권을 평범한 대학생인 그녀가 가져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미진의 눈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긴······. 그건 그렇긴 하지. 얼른 꺼내봐. 이 기지배야. 나도 궁금하긴 하다.”
“잠시만······.”
룸메이트의 합세에 박스를 뜯어 제품을 꺼내본 미진.
그리고 지금껏 보지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보고는 미진과 룸메이트의 눈은 동그랗게 변했다.
“우와! 이거 뭐야? 엄청 예쁘잖아?”
“그러게······? 그보다 엄청 얇은데······?”
“대박! 삼진 뭐야? 무슨 일로 신제품을 이렇게 예쁘게 뽑았지?”
기존의 투박한 네모 사각형의 디자인이 아닌, 유선형의 곡선을 자랑하는 무언가 처음 보는 듯 생소하지만, 눈에 확 끌리는 형태의 스마트폰. 마치 디자이너들이 영혼을 갈아 넣은 것 같은 다시 없을 아름다운 디자인에 미진보다 룸메이트가 더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칠 정도였다.
“꺅! 진짜 이거 완전 대박 사건인데? 미진아 이거 나 사진 좀 찍어도 돼? 응? 진짜 이렇게 나오면 삼진도 나중에 고민해봐야겠는걸?”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지 모를 너무나도 얇은 형태의 디자인. 그리고 그 스마트폰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연신 찍어대는 룸메이트와 다르게 미진은 손에서 느껴지는 이 신제품의 촉감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너무······. 가벼운데······?’
기존의 제품이 마치 벽돌처럼 육중한 무게감과 그립감이 느껴졌다면 지금 미진이 들고 있는 이건 마치 속이 텅 비어있는 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가벼웠다. 농담이 아니라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에 미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그때. 상자를 뒤적이던 룸메이트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그녀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머, 그런데 충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네? 삼진 전자, 이 녀석들 설마 치사하게 제품만 주고 충전기고 뭐고 아무것도 안 준 거야?”
아무런 부속품이 없다는 것에 실망이라는 듯이 중얼거리는 룸메이트. 하지만 미진은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이곳저곳 살펴보고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벌렸다.
“뭐야 이거······? 충전 단자가 없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단자. 그것이 없고 오로지 스피커를 제외한 그 어떤 구멍도 없이 매끈하게 이어져 있는 금속 재질의 프레임을 연신 찾아보던 룸메이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지? 설마 이것도 불량품인 건가?”
“그런데 작동은 되긴 하는데? 이거 봐. 켜지잖아.”
“그러게? 뭐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는 있기에 뭐가 문제인가 싶어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며 의아해하는 순간. 그녀는 상자 위에 큼지막하게 금박으로 새겨져 있는 문구를 발견하고는 일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에 얼어붙었다.
“No Battery, Be Absolute······.”
“응? 뭐가?”
[ No Battery, Be Absolute. ]
앰플의 조롱 섞인 마케팅에 대응한다고 이호준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그 문구.
그중에서 앞부분인 ‘No Battery’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는 이야기가 계속 오갔지만, 아무도 정확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제품을 받아본 미진은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배터리가······. 없는 제품이라고?”
“뭐? 배터리가 없어?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그녀의 중얼거림에 황당하다는 듯이 딴지를 거는 룸메이트. 하지만 미진은 이내 황급히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그 제품 설명서를 꺼내 들고는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피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충전이 필요 없는 새로운 스마트폰. 타임리스(Timeless). ]
[ 배터리 걱정 없이, 사용 시간 걱정 없이, 무제한으로 마음껏 사용하세요! ]
충전도, 배터리 걱정도 할 필요 없이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타임리스.
그 제품의 설명을 읽은 미진과 룸메이트는 황당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지금 이걸 진짜 믿으라는 건가?”
“배터리 용량이 크다······. 뭐 그런 의미 아닐까?”
“야. 배터리 용량이 큰 걸 저렇게 과장한 거라고 치자. 그럼 충전은 어떻게 하는데? 애초에 충전 단자도 없잖아.”
“그러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삼진 전자의 신제품.
하지만 이 둘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제품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곧이곧대로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슨 영구기관도 아니고, 충전도 없이 무제한으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내 말이······.”
명색이 공대생인 둘. 기본적으로 삼진 전자의 제품 설명서에 적혀 있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있는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한번 시험해 보면 알겠지. 얼마나 가나 한번 볼까?”
“그래.”
그렇게 삼진 전자의 새로운 신제품을 두고 실험을 시작한 둘.
하지만 최대 밝기로 고성능의 게임을 하나 실행시켜두고 얼마까지 버티나 지켜보는 실험을 시작한 둘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야······?”
“어떻게······. 9시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돌아갈 수가 있지?”
아무리 배터리 용량이 크더라도 5시간도 버티지 못할 극한의 상황. 하지만 이 삼진 전자의 신제품이 하루······. 이틀······. 아니,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며 이 둘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삼진 전자······.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이건······. 이게······. 도대체가······”
이 세상에 어쩌면 영구기관이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