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37화.
삼진 그룹의 계열사인 호텔 백제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초호화 호텔. 백제스테이.
하루 숙박에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 때문에 어지간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감히 출입하지도 못하는 곳이었지만 나는 이 호텔에······. 그것도 최상층에 자리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혼자만의 식사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음~. 이거 맛있네요. 역시 죽기 전에 한번은 와 봐야 하는 곳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듣던 대로 경치가 아주 환상이고.”
입에 넣기만 해도 녹아내리는 아주 야들야들한 스테이크를 시작으로 온갖 종류의 듣도 보도 못한 고급스러운 음식들. 한 끼에만 얼마가 들어갈지 모를 비싼 음식들이었지만 나와 다르게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은 도무지 식사가 입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
이호준 회장과 이용수 사장.
나와의 만남을 위해서 하루 매출만 억 단위가 우스울 이 식당을 통째로 비워놓은 둘은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연신 나를 살피며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둘을 위해서 나는 먼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제가 줬던 당근은 마음에 들었나 보죠? 그렇게 하루 만에 제가 요구했던 사항들을 처리하는 걸 보니?”
내가 주었던 당근.
그것은 바로 불타버린 나의 소중한 숲에 남아있던 마력으로 인해 변이했던 생명체 일부였다. 내가 일전에 언급해주었던 그 효능들이 진짜인지를 이미 확인해 본 것인지 내가 던진 물음에 이용수 사장은 이내 나이프를 내려놓고는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일전에 주셨던 샘플들을 확인한 결과 전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미확인 생명체들이었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효능이 검증된 건 아닙니다만······. 일부 확인된 것들은 말씀하셨던 그대로고요.”
살살이 풀과는 다르지만,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경제성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분을 품고 있는 식물들. 만약 이 식물들을 이용해 전부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살살이 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변혁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용수 사장이 아니더라도 이호준 회장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첫째를 단호하게 내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겠죠. 제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두 사람 데리고 사기나 치고 있겠어요? 그럴 거면 그냥 우리 용용이랑 뮤튜브 영상 하나 더 찍고 말지. 그치 용용아?”
“······.”
내가 앉은 의자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용용이. 그 귀엽고 순박한 눈망울과 삐쭉 내민 혀는 보기만 해도 동심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는 그 인형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거는 나를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호준 회장은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자네와 관련한 뒷조사를 해 보았네. 철수 군.”
그래도 대한민국의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삼진 그룹의 회장답게 그 뛰어난 정보력으로 나의 신상정보를 이미 알아낸 듯한 이호준 회장.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숨겨봤자 어차피 이들이 가진 힘이라면 그걸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 말이다.
“뭐 그랬겠죠. 삼진이 어디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후계자 하나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날려 먹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미 나의 모든 것을 파악했을 이호준 회장. 그는 비단 삼진 바이오에서의 일만이 아니라 그는 사대 중학교에서부터 있었던 일부터 나의 모든 행보를 알고 있었다.
“이상한 점이 한가득하더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던 중학생에 불과하던 자네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서 학교 폭력에 휘말리고, 또 마법을 강의한다면서 뮤튜브 방송을 시작하고······. 우리에게 접근해 그 모든 일을 벌이고 말이야.”
그냥 말로만 들었다면 추호도 믿을 수 없을 허무맹랑한 이야기.
하지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을 눈앞에 마주한 그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 속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믿어보기로 했네. 자네가 말한 그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야.”
그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설정이자 소재에 불과한 마법.
그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호준 회장의 발언에 나는 이채를 띤 눈으로 중얼거렸다.
“호오······. 역시 대기업의 회장님은 회장님이네요? 일반적인 사람이면 그렇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텐데?”
“자네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네. 그 증거물들이 없었다면 아마 믿지 않았겠지.”
“하긴······. 마력에 노출되어 변이된 생명체들을 두 눈으로 보고도 마법이 실존함을 믿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멍청한 거긴 하죠.”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내 주머니 속에서 USB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시원시원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들어서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죠. 자요.”
“······. 이게 뭡니까······?”
USB를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는 이용수 사장. 그런 그에게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현재 제가 조성한 숲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한 거예요. 보면 알겠지만, 은근 돈이 될 법한 것들이 엄청 많으니까 원하시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살살이 풀처럼 대량으로 재배해서 팔 수 있도록 제가 특별하게 같은 조건으로 계약해 줄 테니까요.”
생태 부지 외곽에 내가 조성한 4개의 인공 숲. 그곳에서 자라나고 또 번성하고 있을 생명체들의 사용을 허락한 나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이용수 사장을 향해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숲에 멋모르고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거기 위험한 녀석들도 엄청 많거든요. 요번에 침입했던 녀석들처럼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누구 죽어도 전 책임 못 집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죽음의 숲이 되어버린 곳. 마력을 품고 보다 강력해진 식물과 벌레들이 이미 숲속 곳곳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에 이용수 사장은 나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듯 굳은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이 선물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뭘요. 삼진 바이오가 벌어들일 수익의 30%는 온전히 제 몫인데요. 다 상부상조죠.”
“그······. 수익금은 대리인분에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그게 좋겠죠? 제가 이래 보여도 아직은 미성년자 신분이라서요. 아영 씨가 제 편집자이면서 동시에 매니저 역할도 하고 있으니까 계약이라거나 뭐 자잘하고 귀찮은 건 요청하실 거 있으면 저한테 말고 전부 그쪽에다 전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아영이 들었다면 거품을 물 일이었겠지만 이미 뮤튜브 편집자 수준은 넘어선 나의 전담 비서가 되어버린 그녀. 나를 대신해서 건설 현장 확인과 살살이 풀의 관리를 위해서 거의 매일 같이 생태 부지를 드나들고 있었기에 이용수 사장은 별다른 물음 없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부차적인 것들은 다 정리된 것 같으니 이제 본론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본론······말입니까?”
“네. 앞으로 저와 삼진 그룹이 나아갈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해 봐야죠.”
이호준 회장에게 진한 미소를 흘리며 나는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는 마법을 숨기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최대한 빠르게 이 세상에 마법의 존재를 알리고 싶죠.”
“······?”
“그게 무슨······?”
“이 세상은······. 아니, 정확히 우리 인류는 과학 기술이 주는 풍요와 안락에 매몰되어 눈이 멀었어요. 그렇기에 이 대자연이 가지는 잠재력과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마나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완전히 개무시하고 있죠.”
생명력을 점점 잃어 죽어가는 이 지구의 시급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맹목적인 개발과 약탈적인 자원 착취에 여념이 없는 인간들.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막아서기 위해서라도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이 세상을 개혁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세상에 마법을 빠르게 전파할 생각이에요. 무지몽매하고 미개한 인간들에게 마법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고 또 완전히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이 세계를 완전히 뒤바꿀 생각이죠.”
마나라는 에너지와 마법이라는 학문의 체계 아래에서 새롭게 구축될 이 지구.
머나먼 미래에 소위 마법 혁명이라고 불리게 될 그 혁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삼진 그룹을 첫 번째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런 계획을 실행해나가기에 앞서서 지금 두 분께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죠. 제가 만들어갈 혁명에 삼진 그룹이 앞장서서 동참하고 힘을 빌려주세요. 가끔은 너무 허무맹랑하고 또 터무니없는 요구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저를 위해서 노력하고 봉사해준다면······.”
말꼬리를 흐리며 잠깐 이호준 회장과 이용수 사장을 바라보는 나. 그런 나의 말에 잠깐 침을 꿀꺽 삼키던 이호준 회장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준다면······?”
“이거 하나는 약속드리죠.”
집안싸움으로 인해 첫 단추가 삐끗했지만, 뭐가 되었든 대한민국에서는 명실상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삼진 그룹.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생각보다 수월해질 수 있기에 나는 이들에게 협력에 대한 대가를 고민하다 이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삼진 그룹을······.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강력한 부(富)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어주도록 하죠.”
일개 개인이······. 아니, 그 누구도 감히 장담할 수 없는 약속.
하지만 그 광오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에 이호준 회장은 아무런 의심도 가질 수 없었다.
쿵쿵쿵.
지금껏 자신을······. 아니, 삼진 그룹을 숱한 위기에서 구해내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원동력인 그의 본능이자 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미친 듯이 심장을 뛰게 만들며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반쯤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 아이야말로 자신이······. 그리고 삼진 그룹이 언제고 꿈꿔왔던 그 망상과도 같은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크크크······. 크허허허허허.”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회장님······?”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당황한 듯이 이호준 회장을 바라보는 이용수 사장. 하지만 그는 웃음을 그치더니 이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나?”
“눈으로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고작’ 바이오산업 하나만 가지고도 마법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지금도 내 머릿속에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수많은 마법 지식들.
그것들을 접목하면 지금 정체되어있는 수많은 산업과 기술들에 얼마나 획기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알기에 나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 못 믿겠으면 거절하셔도 좋아요. 그럼 뭐 미래 그룹이나 찾아가 보죠. 거기는 자동차가 주력이죠? 그쪽부터 좀 몇 군데 만져주면 아마 삼진 그룹 시총은 한 3년이면 추월할 거 같은데 그때 가서 후회해도 별 소용 없습니다?”
단순한 블러핑이나 마음에도 없는 협박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거절해도 상관없기에······.
그리고 내가 말한 그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 자신이 있기에 나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했다.
“허허허······. 정말 당돌하군. 내가 꿈에도 그려왔던 그 미래를 제안해놓고 거절하면 바로 다음 기업에 찾아가겠다니.”
내 선택 하나에 대한민국의······. 아니, 전 세계의 기업 서열이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는지 이호준 회장은 너무나도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두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