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38화.
“그러니까, 여기서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해서 한번 느껴보라니까요? 마나가 이 대기 중에 떠다니고 있다는 걸 우선 인지할 수 있어야 그걸 가져다가 심장에 쌓든지 말든지 하죠.”
살살이 풀이 잔뜩 심어진 생태 부지. 내가 설치한 마나 집약진의 영향 덕분에 다른 곳보다 자그마치 5배나 진한 마나 농도를 가진 곳이었기에 마나를 느끼기에는 이 지구상에서 최적의 장소였지만 아영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했다.
“우으······. 모르겠어요.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아니, 어떻게 이걸 못 느껴요? 여기 일대에 깔린 게 마나인데? 지금도 아영 씨 눈앞에 나돌아다니고 있잖아요.”
무릇 대기와 같이 형체란 것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그녀의 주변에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아영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느껴지는 거라고는 풀냄새랑 바람 소리밖에 없는데······.”
“아니······. 하······.”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 줘도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듯한 아영.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며 답답함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용용이는 그런 나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었다.
[ 헹······. 내가 말했지? 주인은 스스로 자기가 하는 짓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
무색무취에······. 아니, 형상이라고 할 법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형(無形)의 에너지이자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원에 가까운 존재인 마나. 이 마나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연······. 아니, 드넓은 대우주 전체를 통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밟는 단계이기에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 일반적인 재능을 가진 인간을 기준으로는 1년······.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차고 넘친다 하더라도 최소한 3개월은 잡고 수련하는 것들이야. 그것도 지금 이것보다 마나 농도가 최소 10배는 더 높은 환경을 기준으로 잡은 거니 고작 일주일 정도 연습한 거로 마나를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되지. ]
“그 정도로 오래 걸린다고······?”
[ 당연하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인간들 전부가 마법사였게? 애초에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신의 축복을 받은 우월한 생명체인 우리 일족을 위한 것들이지 미개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고. ]
[ 게다가 마법은 그냥 머리만 좋으면 될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기도 해. 기본적으로 인간들이랑 우리 일족이랑은 마나를 축적하고 또 활용할 수 있는 영자기관의 격 자체가 완전히 다르거든. 드래곤 하트(Dragon Heart)처럼 무한정 마나를 쌓을 수도 없고, 또 한 번에 운용할 수 있는 마나의 출력도 한참 못 미치잖아? ]
“으음······. 이거 생각보다 머리 아프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법에 대한 난이도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을 아득히도 초월하는 수준인 상황.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말을 들으면서도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아니, 이렇게 쉬운 걸 도대체 왜 못하겠다는 거지?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나의 의지에 따라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 중을 떠돌다 우르르 모여드는 마나. 그리고 그걸 본 용용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 그게 쉽다는 게 이상한 거야. 일반적으로 인간 중에서 자연적으로 흩어져 있는 무형의 마나를 그런 식으로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주인이 하는 건 기본적으로 이 대자연과 자아를 동일시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야지 가능한 경지라고. ]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는데? 너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들어는 봤냐?”
[ ······. 그건 또 뭐야? ]
“있어 그런 게.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라고.”
[ ······? ]
선현들의 가르침 속에서 이미 대자연과 내가 하나 됨을 익히 예전부터 알고 있던 나. 물론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수업을 착실하게 잘 듣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개념이겠지만, 오밀조밀하게 응축된 마력의 구체가 은은하게 뿜어내는 그 푸른빛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아영을 보며 나는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이제 보여요. 헤에······. 이런 거구나. 신기하다······.”
“눈으로 보고 나서 인지하지 말고 평소에 대기 중에 떠다니고 있는 마나를 느끼라고요. 제가 통제하고 있는 마나를 느껴서 뭐 하게요?”
“알겠어요. 한번 계속 노력해볼게요.”
내 잔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마나를 구경하는 데 온 정신이 팔린 아영.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답답함을 느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영이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나름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놈들까지 죄다 이러면 머리 아프긴 하겠네······.”
[ 그러니까 별 기대를 하지 말라고. 기본적으로 천재라고 온갖 기대와 칭송을 받는 인간들도 고작 5 서클을 넘지 못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 한계를 뛰어넘어 6 서클 이상을 넘어가는 인간은 나라마다 한 백 명도 안 됐다니까? ]
“그래······?”
6 서클만 넘어가도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부여받았을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마법. 그렇기에 마법사는 판달리아의 세계에서도 언제나 최고급 인력으로서 대우받고 또 소위 기득권이자 지배계층으로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가진 세력이었다.
“그거 재밌네.”
[ 뭐가? ]
“아니······. 그 말은 마법사가 나름 판달리아에서 엄청나게 희소성 있는 전문직이었다는 말이잖아. 이 세계에도 그런 직종들이 몇 있거든.”
[ 그래······? 여기는 특별한 이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지 않았나? ]
“그렇지. 그래도 나름대로 여기도 아무나 못 하는 그런 일들이 좀 있거든. 시험을 보거나 엄청 오랜 시간 공부해서 자격증 따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아무튼 뒤에 ‘사’가 붙은 직업은 엄청나게 대우받고 있지.”
의사. 판검사. 변호사, 회계사······.
남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고 어디에서든 존중받고 대우받는 삶을 살기에 소위 타인의 부러움을 한몸에 사는 직종들. 그렇기에 이 대한민국의 학부모들 대부분은 어떻게든 자기 자식이라도 그러한 성공의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해서 그 뜨거운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 속에 자식들을 떠밀고 있었다.
“킥킥······. 그러고 보니 마법사도 ‘사’가 붙었었네.”
마법의 존재가 이 세상에 드러나고 난 이후. 마법사가 가진 잠재력과 그 가치를 전 세계가 알게 된 이후에 펼쳐질 미래를 상상하던 나는 문득 전국 학원가에 붙을 ‘마법 학원’의 간판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무슨 태권도장처럼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게 되면 그것도 문제긴 하겠네······. 마법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디 알지도 못하는 사기꾼이 가르쳤다가는 또 온갖 사고가 다 터져나갈 테니까.”
멋모르고 마나를 갖고 장난질을 치다가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사고.
특히 마나 폭주의 경우에는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 아무리 잘해도 반신불수 이상의 심각한 육체적 손상을 입을 만큼 위험한 것들이었기에 기본적으로 강력한 안전장치와 전문가 없이 야매로 이루어지는 마법 교육은 그야말로 사람 잡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 그런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해? ]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나는 마법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줄 뿐. 그것을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건 각자 개인의 문제니까······.”
나는 뮤튜브를 통해서 이미 기본적으로 마법을 처음 배우는 입문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제반적인 것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려놓았다. 그 어떤 제한도, 제약도 두지 않고 마법에 대한 개념을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상황.
하지만 무릇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위대한 혁신과 동시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듯이, 이 마법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가져올 변화와 그로 인한 문제는 불 보듯 뻔했다.
“아마 어마어마한 혼란이 일어날 거야. 고작 마법 조금 배웠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깝죽거리면서 물 흐리는 마법 조무사 새끼들도 생겨날 테고, 내 경고는 죄다 무시하고 이상한 헛짓거리 하다가 마나 폭주로 심장 터져서 뒤지는 놈도 있겠고······.”
“마법을 좋은 쪽으로 쓸 생각은 안 하고 온갖 범죄나 저지르고 다니는 흉악범이나 테러리스트들도 생겨나겠지. 아니면 마법에 욕심을 가지고 또 이상한 망상을 꾸며 전쟁까지 벌이려는 지도자들도 나타날지도 모르고. 원래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잖아? 그 끝없는 욕심과 오만 속에서 스스로 비극을 만들어내고 똑같은 역사를 반복해나가지.”
마법은 죄가 없다.
하지만 마법이 가진······. 마나가 품고 있는 그 무한한 잠재력과 가치에 눈이 멀어 온갖 기상천외하고 정신 나간 짓을 벌이게 될 인류. 그리고 그들이 저지르게 될 위선과 그로 인한 비극을 떠올리며 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학 기술을 통해 쌓아 올린 이 문명만 봐도 그래. 과학은 죄가 없어. 그걸 사용하는 인간들이 문제지. 별 헛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기술만 잘 발전시켜나가면 다른 행성도 개척하고, 어? 우주로 진출해서 문명 전체가 번성할 수 있을 텐데 인류를 넘어서 이 행성 자체를 절멸(絶滅)시킬 수 있는 무기들을 만들어놓고 결국에는 실제로 행동에 옮기게 되잖아?”
20년 후 자멸하는 인류 문명.
과학이라는 개념 아래에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 무지몽매한 인류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나는 마법이 가져올 수많은 혼란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수많은 희생이 동반될지도 모르는 변화. 그렇기에 용용이는 나의 자조 섞인 이야기에 조금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 흐음······. 그렇게 되면 조금 곤란하지 않아? 내가 봐 온 인간들은 보통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면 보통 배척하고 탄압하던데? 판달리아에서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고. ]
최악의 경우에는 마법을 불법화하고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척살 당하는 미래가 그려질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기에 용용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판달리아의 몇 가지 사례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겠지. 마법이 없는 이 세계에서조차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마법사들 잡아다 죽이던 때도 있었는데 진짜 마법이 존재하던 너희는 더하겠지.”
[ 그래. 결국에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8 서클에 오른 마법사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모든 마법사를 결집해서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버렸지. ‘마탑’이 생긴 이후로는 쉽사리 건들 수 없게 된 이후로는 조금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전대 로드의 기억을 보면 그 당시에는 마력 적성이 있는지 6살이 되면 검사하고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죄다 죽이던 국가도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주인도 조심해야 해. 그냥 무턱대고 마법을 공개했다가는 오히려 커다란 반발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
그야말로 반(反)마법이 팽배하던 암흑 시기.
그 시기가 이 세계에도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용용이는 나에게 조금은 신중해야 한다며 조언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뭐······? ]
“마법의 갑자기 등장하게 된다면 벌어질 문제점은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그건 감수할 생각이야. 차근차근 진행하기에는 나에게······. 이 세상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
고작 20년.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도래할 멸망의 날을 떠올린다면 평화적으로 차근차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개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급진적이고 과격할 정도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얼굴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마법을 부정하고 또 거부하는 건 좋아. 알아서 자연적으로 도태되겠다고 하는 걸 굳이 억지로 말릴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 누구라도 내가 만들어가는 변화와 개혁을 방해하고 탄압하려고 한다면······.”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모조리 다 재기도 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밟아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