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32화.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뙤약볕과 지독한 무더위에 모두가 땀을 흘리는 8월의 여름.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며 사람들 모두가 에어컨이 틀어진 실내에서 그 열기를 피하기 바쁜 한낮 오후 시간대였지만 나는 조금의 더위도 느끼지 않고 바깥을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흥~흥~ 나는야~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
이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미로 흙을 계속 뒤적이던 나는 이내 그곳에 아영이 어딘가에서 사 온 이름 모를 꽃 하나를 심으며 마나를 불어 넣어줬다.
우우우웅.
꽃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마력의 노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식물이었기에 별다른 반응은 없었지만, 나의 그 농밀하고 진한 마력에 노출되자 그 순간 장거리의 운송과 오랜 시간 동안의 영양 부족으로 시들시들했던 꽃잎이 힘차게 그 생기 넘치는 자태를 뽐내며 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좀 생명체가 살아갈 법한 환경이 조성되긴 했네.”
본래 그저 아무것도 없던 드넓은 들판이었던 부지.
하지만 나와 아영, 그리고 삼진 바이오 측에 맡겨두었던 조경 업체 인력들의 쉴 새 없는 노력 끝에 풀만 무성했던 이곳에는 어느새 꽤 그럴싸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물론······.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기겁할 정도로 중구난방의 숲이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이게 어딜 봐서 식물들이 살아갈 법한 환경이에요? 식생 환경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심어놓는 경우는 자기들도 처음 본다고 조경 업체에서 저한테 얼마나 뭐라고 한 줄은 아세요?”
나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옆에서 계속 투덜거리는 아영. 이 숨 막히는 더위에 땀을 질질 흘리며 천성에도 없던 농사일이 죽을 맛인지 그녀는 밀짚모자를 벗어 던지며 잔뜩 빨게진 얼굴로 죽겠다는 듯이 허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뭐라고 했는데요?”
“아니, 열대 기후의 작물들이랑 극지방의 작물들을 이렇게 한 곳에 심어놓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묻더라고요. 하우스라도 지어서 온도 맞춰주지 않으면 아마 한 해도 넘기지 못하고 싸그리 다 죽게 될 거라고 경고하던데요?”
전문적인 조경 업체의 인력을 빌려 수백······. 아니, 수천 그루의 나무와 수만 송이의 꽃과 풀들을 모조리 심어놓아 조성한 숲.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온갖 흔한 종의 식물부터 아주 희귀한 종까지 모조리 다 가져와 일단 심어놓고 본 나의 숲은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누더기 골렘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 이 망고나무랑 크랜베리들 보세요. 식생의 기후가 완전 상극인 녀석들인데 이 둘을 이렇게 같이 심어놓으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을 거예요. 아니면 둘 다 죽던가.”
망고나무나 크랜베리나 둘 다 한국에서 번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식생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짓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정신 나간 짓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것은 이 대지에 퍼져나가 있는 이 진한 마나를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국한되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영, 그거 알아요?”
“예? 뭐요?”
“방금 했던 그 이야기는 마나가 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가정이에요. 다른 땅에서 심었다면 그 업체에서 한 말이 틀린 게 아니겠지만, 제가 직접 마나를 불어놓은 이곳에서만큼은 그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아요.”
“······?”
살살이 풀의 출처에 대해서도 아직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던 나. 정확히 내가 계획하는 구상이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나는 연신 숲속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직접 두 눈으로 보여드리죠······. 잠깐 기다려보세요.”
“도대체 뭘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예요?”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 그리고 이내 초록빛의 이름 모를 식물 하나를 뽑아 들고는 아영에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보세요. 이거.”
“······? 이게 뭔데요?”
“보면 몰라요? 무잖아요. 무. 아니, 이제는 무였던 것이라고 해야 하나······?”
“예?”
무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는 이상한 뿌리. 무언가 작고 아담하고 또 특정한 형체를 띠고 있는 것을 보며 아영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사람······?”
두꺼운 몸통 부분에서 뻗어 나와 있는 4개의 잔뿌리. 마치 사람을 연상시키는 듯한 형태로 자라나 있는 그 모습을 보며 아영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중얼거리자 나는 손을 튕기며 말했다.
“빙고! 맞아요. 이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식물 중 하나죠. 맨드레이크······. 다른 이름으로는 만드라고라라고 하는데 뭐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적 있으시죠?”
“뭐······뭐라고요? 맨드레이크?”
“아, 그 어디 유럽인가 거기에 자생하는 그 맨드레이크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그냥 짝퉁이고 이게 진또배기 맨드레이크니까요. 지금은 덜 자라서 그렇지 만약에 다 자란 상태였으면 뽑자마자 괴상한 비명 지르면서 발버둥 치며 온갖 지랄발광은 다 했을걸요?”
본래라면 마력이 담긴 음파를 내뿜으며 강하게 저항하는 공격성 넘치는 종인 맨드레이크. 마나를 운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귀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식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형체만 만들어져 있을 뿐, 성장을 다 끝마치기에는 아직 흡수한 마나가 부족했기에 통째로 뽑혀나갔음에도 이 맨드레이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게 좀 위험해서 그렇지, 잘만 정제해서 사용한다면 아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종이죠. 보통 상급 이상의 약효를 가진 포션을 만드는 데에는 기본적인 재료로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이기도 하고, 또 이것만 그 자체로 활용한다면 아주 강력한 사랑의 묘약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맨드레이크를 곱게 심어주며 마나를 다시 흩뿌려주는 나. 그런 나의 행동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던 아영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럼 설마······. 살살이 풀도······?”
이제 그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기적의 식물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깨달은 아영.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가설을 확인시켜주었다.
“맞아요. 높은 농도의 마나에 노출되어 변이된 이 지구의 식물이죠. 마나에 대한 접촉이 거의 없다시피 하던 세상이라 그런지, 마나에 대한 반응성과 민감도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대략 수십 세대에 걸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변이인데 이렇게 즉각적으로 변화할 줄은 몰랐죠.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죠.”
꽃순이처럼 내가 직접 마나를 투여한 게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마나에 노출되어 변이가 이루어지는 수십, 수백의 식물들. 지금 당장은 그 수가 미미하기 짝이 없었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해서 시들고 새롭게 자라날 수많은 생명체와 이들을 통해 구축될 전혀 다른 마력의 생태계를 떠올리며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곳에서 자라날 생명체들은 앞으로 수많은 진화와 변이를 경험하게 되겠죠. 마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지구 생태계 속에서 유일무이한 마나를 품은 판타지 속 생태계가 탄생하게 되는 거죠. 그 어떤 인간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자연의 대원칙 아래에 새로운 생태계가 정립되는 거예요.”
지구 생태계의 판달리아 화(化).
그러한 나의 원대한 계획을 들은 아영의 얼굴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변해갔지만 용용이는 기발하다는 듯이 나를 칭찬하며 동시에 묘한 우려를 표했다.
[ 흐음······.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그러한 진화와 변이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걸? ]
“뭐가?”
[ 아니, 판달리아의 생태계를 생각하자면 인간들한테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거든.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죄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데? ]
마나에 노출된 생명체들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그것이 살살이 풀과 같이 인간들에게 유익한 방향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험난한 자연의 경쟁 속에서 자기방어의 수단으로서 진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줄기에서 험악하고 우람한 가시들이 솟아나며 주변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휘감아버리는 가시넝쿨부터 뽑히면 고막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강력한 비명을 내지르는 맨드레이크와 같이 말이다.
[ 만약 판달리아에 존재하는 그런 생태계가 이 지구에 조성된다고 한다면 꽤 머리 아픈 상황이 많이 벌어질걸? 조금만 스쳐도 죽을 정도로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커다란 들짐승이나 인간들도 잡아먹을 수 있는 육식 식물들도 엄청 많이 있거든. ]
마력에 노출된 식생들이 가득한 그 험난하고 가혹한 판달리아의 생태계를 경험하고 온 용용이. 언제 어디에서도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없는 수많은 포식자가 가득한 그 세상 속에서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던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게 뭐 어떻다고?”
[ 뭐······? ]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 왔어.”
이 지구의 자연을 그저 하나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보고 착취해왔던 인간들.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이룩해 온 과학 기술과 번영의 대가로 결국 멸망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들을 막아서기 위해서 고작 20년이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나에게 생태계 속 먹이사슬에서 인간의 지위란 고려할 대상조차 아니었다.
“인간에게 위협적인 종들이 탄생할 수 있다? 오히려 좋아.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도 몸소 깨닫게 되겠지. 이 거대하고 위대한 자연의 생태계 속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하찮고 비천한 존재였는지를 말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며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 비록 나 역시 그런 무지몽매하고 오만한 인간 중 하나였지만, 인류의 참혹한 미래를 경험하고 과거로 돌아온 나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인권? 그딴 건 개나 줘 버리라고 해. 그거보다 식물권이 더 중요해. 강력한 생명체들이 탄생함과 동시에 이 지구의 생태계와 자연은 고작 인간 따위가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만만하지 않은 존재로 뒤바뀌게 될 거야.”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태계 파괴의 현장들.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그곳에서 살던 모든 동식물을 몰아내고 나무를 모조리 잘라버리며 그곳에 도시를 지어버리고 베어낸 나무를 종이와 가구의 원료로 사용하는 그러한 모습은 마나를 통해 강화된 지구의 생태계 속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 ······. 인간인 주인이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모순적이긴 한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생각이긴 하네. 암, 그렇고말고. 인간 따위야 그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 내가 전에 판달리아에서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그때도 어디 시건방진 귀족 나부랭이가 감히······. ]
내 말에 쫑알거리며 관심에도 없는 어느 귀족 하나의 참교육 이야기를 늘어놓는 용용이.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아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경 업체에서도 요청한 묘목들만 심고 나면 작업이 완료된 곳에는 절대 출입하지 말라고 전달해 주세요. 만약 그랬다가는 목숨을 보장할 수 없거든요.”
“······.”
“아, 아영 씨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제가 같이 있을 때는 상관없는데 혼자 괜히 들어왔다가 비명횡사할 수 있어요. 그냥 앞으로는 이 숲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거에요.”
자그마치 80만 평에 달하는 부지.
이곳을 시작으로 전국팔도에 수십 개의 인공 숲을 조성하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을 들은 아영은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그녀는 이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식물권(?)을 주창하며 인권을 그 누구보다 경시하는 나의 광기 어린 발상은 도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 지구에 판타지 세계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식생들이 하나둘 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어느 소박한 크기의 부지 안에서 전혀 새로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