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31화.
전 세계 대부분의 종자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식량 기업. 모나토.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살살이 풀의 존재로 인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강력한 재생 효과를 통해 수많은 신약의 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 살살이 풀을 대량으로 재배할 계획을 전부 수립해 두었습니다. 최근 삼진 바이오에서 새롭게 조성한 생태 연구단지에서 현재 시범적인 재배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어렵지만, 수확량이 충분하다면 다른 기업에도 판매할 여지를 충분히 둘 생각입니다. ]
자신들조차 전혀 모르는 새로운 식물 종의 등장.
지금껏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했던 종자가 한국에 남아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하필이면 그 종자가 지금껏 이들이 확보했던 그 어떤 식물보다도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끄응······. 생각만 해도 부럽군······. 도대체 저런 식물은 어디서 구한 거지?”
현 모나토의 회장인 피에르.
그는 뉴스를 통해서 삼진 바이오가 앞으로의 계획을 떠들어대는 것을 보며 불편한 기색을 잔뜩 내비쳤다.
“이거 원······. 이사회에서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고 온갖 난리를 치겠군.”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상부에서도 저 삼진 바이오 때문에 내부 분위기가 아주 말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럴 테지.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상황이니까.”
세계적인 종자 회사인 모나토를 사들여 실질적인 소유주의 역할을 하는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메르. 그들은 이미 이번 사태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며 피에르를 비롯해 모나토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 도대체 저런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종자를 확보하지 않고 지금까지 뭘 하고 있던 거요? 지금 저 식물을 기반으로 한 약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당신은 알기나 하는 거요? 일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거요! ]
다양한 종자들의 특허권을 확보해 신약의 원료가 되는 천연물질들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추진된 인수합병. 정확히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들였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바이메르 입장에서는 모나토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흥, 우리가 무슨 신도 아니고, 이 지구상의 모든 종자를 어떻게 다 파악하고 확보할 수 있나? 터무니없는 요구도 적당히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이사회에서는 아무리 설명해도 들을 생각조차 없는 것을······.”
피에르 회장의 불평에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응대하는 비서. 그리고 그는 이내 몇 가지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살살이 풀의 종합적인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그런가? 어떻게······. 연구실에서는 좀 성과가 있었나?”
“그게 말입니다······. 조금 특이합니다.”
“뭐가 말인가?”
살살이 풀을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긴 모나토의 연구팀. 세계 최고의 종자 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능한 모든 것을 분석했지만 그 결과는 비단 이들에게조차도 생소한 것들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그 살살이 풀의 염기 서열과 유전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 기원을 파악할 수는 있었습니다.”
“오, 그런가?”
살살이 풀이라는 이 신비의 식물이 어디에서 탄생한 것인지를 확인했다는 말에 피에르의 눈에는 이채가 떠올랐다.
“예. 팔라이놉시스(Phalaenopsis)라고 하는 난초과의 식물에서 파생된 종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종과 정확히 일치하는 염기 서열을 다수 확인했습니다.”
팔라이놉시스······. 일명 호접란이라고 불리는 관상용 식물.
보통 흔하게 장식용으로 화분에 심어져 장식품으로 쓰일 정도로 대중적이고 흔한 식물이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자였기에 피에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어내려갔다.
“유전자 변이······. 그러니까 재조합이나 조작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건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조작해 개량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식물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삼진 바이오에서 진행하려는 대량 재배와 신약 개발을 막아설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기에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런 피에르의 물음에 비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연구팀의 의견으로는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비슷한 유전체를 확인할 수 없고, 또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도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연적인 변이(變異)로 인해 탄생한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가······.”
돌연변이.
자연에서 돌연변이의 탄생은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아주 희소한 가치를 지닌 종자로 완전히 재탄생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어마어마한 사건. 그것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약효를 가진 종자라면 모나토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재배는 불가능한가?”
“정확한 생육 조건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일반적인 식물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 자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이미 수십 번의 과정을 거쳐서 시도한 재배 실험.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린 살살이 풀은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특유의 붉은색을 잃어버리고 노랗게 말라 시들어버렸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는 원산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정확한 그 조건이 무엇인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비서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책상을 두들기며 상념에 잠긴 피에르 회장.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서에게 말했다.
“삼진 바이오 측에 연락하게.”
“예? 종자 제공과 관련한 이야기라면 이미 협의를 끝냈는데 어쩐 일로······.”
삼진 바이오에서 살살이 풀과 관련한 협의를 전면 보류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모나토를 비롯해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이 그저 앉아서 손가락만 빨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내가 직접 한국에 찾아가지. 거절해도 좋으니까 그냥 앉아서 이야기나 한번 하자고 해.”
“예······?”
*
- 긴급 속보. 세계적인 종자 기업. 모나토의 회장. 삼진 바이오에 파격적인 방문 제안.
- 살살이 풀과 관련한 사안 논의? 삼진 바이오 측. 구체적인 언급 없어.
- 한국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살살이 풀. 삼진 바이오의 독점 행위가 옳은가?
- 높은 울타리와 철저한 보안으로 비밀에 감춰진 삼진 바이오의 생태 연구단지. 심층 취재
- 농림축산식품부. 새로운 종자에 대한 세부 정보 공유에 관한 공문 삼진 바이오 측에 전달.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기업인 모나토의 회장. 그가 직접 한국에 방문해 삼진 바이오의 관계자를 만나고 싶다는 공개적인 구애와도 같은 제안 때문에 삼진 바이오는 또다시 언론에 도배되었다.
뉴스, 신문, 방송, 인터넷, 뮤튜브.
그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모든 매체를 통해 도배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일반 대중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 캬. 삼진 바이오 주식 개떡상하는 거 보소.
- 영차! 영차! 100만 원 가즈아!
- ㅋㅋㄹㅃㅃ. 가슴이 웅장해진다
- 내가 살다 살다 저런 다국적 기업이 일개 한국의 기업한테 굽신거리러 오는 건 처음 본다
- 마! 삼진이 일개 기업 수준이냐?
- 바이오만 보면 어지간한 중소기업보다 못할걸? 작년 매출 적자가 수천억 수준인 건 암?
- 아 그딴 거 몰라. 주모! 문 열어! 오늘 나 집에 안 가!
- 캬아. 국뽕 한 사발 오랜만에 들이키고 간다.
한국에서 발견된 식물 하나 때문에 시끄러워진 전 세계. 물론 풀 매수한 주식 가격이 올라서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저 묘하게 밀려오는 애국심에 뿌듯해하며 좋아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삼진 바이오의 성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만큼은 똥 씹은 얼굴로 손에 든 술잔을 내던졌다.
“씨발!”
챙그랑.
무어라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TV 화면에 적중하며 산산이 깨어진 크리스탈 잔. 그리고 그 소리에 놀란 눈으로 들어온 비서들은 이내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진수 사장과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난 TV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다시 황급히 방을 나섰다.
“하······. 진짜 세상이 아주 그냥 지랄 났네. 그깟 풀떼기 하나가 뭐라고 다들 저렇게 호들갑인데?”
자신과 삼진 전자의 야심 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완전히 무산시키고 거하게 엿을 먹인 삼진 바이오. 그게 의도한 일이든 아니든, 이번 일로 인해서 입게 된 손해가 막심했기에 이진수 사장은 자신의 이 비참함과 다르게 매일 같이 TV 화면에 나와서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기자들 앞에서 무어라 입을 여는 동생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심사가 뒤틀려 죽을 것 같았다.
[ 수많은 종자를 보유하고 있는 모나토의 미첼 피에르 회장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고 있던 분이라 이렇게 먼저 삼진 바이오를 찾아와서 앞으로 종자 개발 연구에 같이 협력하자는 제안을 해 주신 점에 대해서 저 역시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우리 삼진 바이오가 모나토와 함께 만들어갈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정확히 무슨 거래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순간에 자그마치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금 명목으로 모나토에게서 받아낸 삼진 바이오. 지금까지 그들이 까먹었던 수조 원이 넘는 적자를 단 한 방에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아낸 것을 보며 이진수 사장은 깨달았다.
모나토에게서 받은 이 자금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 X발······.”
삼진 바이오 성공은 곧 이용수 사장의 성공.
그 말은 즉, 그와 후계 경쟁을 하는 자신의 패배이자 몰락이라는 말과 같았기에 이진수 사장의 표정에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걸 이렇게 가만히 두고 봐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획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현재 삼진 전자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삼진 바이오를 능가할 수 있는 아무런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을 그때.
누군가가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들어와.”
이진수 사장의 최측근이자 어린 시절부터 보좌해 온 수행비서.
사람들에게 소위 김 실장이라고 부르는 그는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들어온 것인지 고개를 잠깐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이내 조용하지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흥분해서 자제심을 잃으셨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비서실 내부에도 회장님께서 심어놓은 자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최고 경영자의 자리. 이러한 그의 모습들이 이호준 회장의 귀에 전부 들어간다면 좋을 것은 없었기에 김 실장은 그에게 조언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 듯 벌게진 얼굴의 이진수 사장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흥! 어차피 나보다 그 새끼한테 눈이 돌아가신 노친네인데. 이런다고 뭐 신경이나 쓰겠어?”
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얼굴로 소파에 풀썩 눕다시피 하는 이진수 사장. 그리고 그는 한탄하는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 틀렸어! 씨발! 이용수 그 새끼가 회사 말아 처먹든 말든. 난 몰라! 그 무능한 새끼가 운만 좋아서는······.”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 절망한 그와 다르게 김 실장은 달랐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사장님.”
“뭐?”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방법이 있다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똑바로 앉으며 이진수 사장은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뭔데?”
그리고 그런 그의 물음에 김 실장은 무언가를 꾸미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사장님께서는 모르셔도 됩니다. 아니, 모르셔야 할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그. 도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김 실장의 그 알 수 없는 싸늘한 미소를 보며 이진수 사장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너 설마······?”
그리고 그런 그의 표정에 김 실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삼진 바이오에 조만간 엄청나게 큰 사고가 하나 일어날 텐데 사장님께서는 그저 보고만 있으시면 됩니다. 제가 문제없이 책임지고 확실하게 처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