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30화.
전 세계에 퍼져나간 살살이 풀의 샘플.
비단 제약 회사만이 아니라 저명한 의학 연구소와 생태학과 식물학자들에게도 보낸 결과, 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 최근 삼진 바이오에서 한국에서 자생 중인 것으로 확인된 미발견 식물 종 하나를 발견했다고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이 식물의 이름을 한국의 설화 속에 나오는 꽃의 이름을 따 ‘살살이 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
[ 살살이 풀의 성분에서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천연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질이 지금껏 발견된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회복 효과와 재생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유력한 신약 개발 후보군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
[ 살살이 풀. 도대체 어디서 발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이런 독특한 외형의 식물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을 수 있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여기에 이 독특한 진한 붉은색의 외형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강렬한 원색은 자연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직 자세한 내용은 조금 더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이건 정말 이례적인 발견입니다. ]
전 세계에서 여러 학계의 전문가들이 살살이 풀에 대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뉴스를 가만히 휴대폰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 그럼. 우리 꽃순이가 얼마나 귀엽고 유능한 녀석이었는데? 꽃순이 주니어들 역시 효과 하나만큼은 끝내주지.”
비록 꽃순이는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해 시들었지만, 그녀의 자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꽃순이 주니어들이 수천, 수만 송이가 드넓은 대지에 피어 그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삼진 바이오가 사들인 80만 평의 땅 한가운데에 조성된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그 살살이 풀들의 무리. 최소 만 평 이상에 조성된 밭에서 그 진한 핏빛은 보는 사람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 정도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야말로 엄마 같은 사랑스러운 눈빛 그 자체였다.
[ 어휴······. 진짜 무슨 블러디 허브를 저렇게 무식하게 키우냐? 저러다 싹 다 죽는다? ]
하지만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용용이는 뭐가 그렇게 답답한지 연신 딴지를 걸기 바빴다.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잔소리야?”
[ 주인 눈에는 저게 안 보여? 땅에 있는 생명력이 싹 고갈되고 있잖아. ]
고작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눈으로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어라 계속 쫑알거리며 설명하는 용용이.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살살이 풀은 마나를 더럽게 많이 먹는다.
그리고 살살이 풀은 마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양분이 있어야 한다.
블러디 허브를 기반으로 한 지식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살살이 풀이 가진 특성과 다를 바가 딱히 없었기에 나는 용용이의 쫑알거리는 잔소리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래서 판달리아의 마법사들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죄다 실패했다고. 마나도 마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땅의 생명력을 강제로 회복시키려면 최소 중급 이상은 되는 땅의 정령을 부려야 하는데 그러면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인건비조차도 안 나온다고. 저렇게 다닥다닥 붙여서 심으면 아마 하나도 안 남고 모조리 다 죽을걸? ]
예컨대 깊은 산속에서 하나씩 자라나는 산삼과도 같은 존재인 살살이 풀.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아마 여기가 판달리아였다면 아마도 싹 다 죽었겠지.”
[ 헹. 그래. 이제야 내 말을 이해······. 뭐? ]
땅의 지력(地力)을 회복시킬 방법이 고작 똥오줌을 들이붓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지극히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판달리아의 세계.
하지만 이미 그런 단계는 거의 한 세기 전에 지나버린 이 현대 세계에서는 달랐다.
“하지만 여기는 판달리아가 아니거든.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설마 그런 것도 대비하지 않고 이런 계획을 세웠겠어?”
[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 ]
쿠르르르르릉.
용용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1톤 트럭.
정확히 내 앞에서 멈춰선 그 트럭 안에서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아영이었다.
“정말이지······. 왜 여기 들어와 있는 건데요? 갑자기 연락받고 기사 아저씨 쫓아내고 제가 운전하겠다고 하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아세요?”
공식적으로 나와 아영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삼진 바이오. 혹시라도 관계자들에게 내 존재를 보였다가 생길 귀찮은 일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한 내가 이 부지에서 얼쩡거릴 때만큼은 그 누구의 출입도 못 하게 막아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중간에 물건을 싣고 오다가 급하게 아영이 끼어들게 된 상황. 트럭 한번 몰아본 적 없을 그녀였기에 삼진 바이오에서 얼마나 해괴한 눈으로 아영을 바라봤을지를 떠올리며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전 이미 다 가져다 놓은 줄 알았죠. 그래도 어떻게 1톤 트럭은 처음 모시는 걸 텐데 사고도 안 내고 잘 운전해서 끌고 왔네요?”
“······. 그런 건 묻지 마세요. 안 그래도 머리 아프니까.”
내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휙 돌아서는 아영. 그리고 나는 옆면에 깊숙이 패여 있는 거대한 사고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물건은 다 가지고 왔어요?”
“예. 가장 효과가 좋은 제품으로 준비해달라고 했어요. 기사 아저씨 말로는 이게 제일 잘 나가는 제품이라고 하던데요?”
“흠.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능은 확실하다니 믿어보죠.”
화물칸에 한가득 쌓여 있는 비료 포대들. 그것들을 보며 내 손에 들려 있는 용용이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 주인, 저게 뭐야? ]
비료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판달리아의 용용이. 그런 그를 집어 들고 눈을 마주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보라고 용용아. 비록 자멸해버리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래도 과학 문명이 가지고 있던 저력이 얼마나 개쩔었는지 보여주지.”
자그마치 70억의 달하는 인구의 식량을 책임지던 화학 비료의 저력을 말이다.
*
세상에 적나라하게 공개된 살살이 풀의 존재.
물론 그 소식이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했지만, 관련 학계에서는 이미 살살이 풀이 가진 그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지금까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반응을 보이며 삼진 바이오를 향해서 연락을 걸어오고 있었다.
“예? 어디요? 하버드 연구소요?”
“살살이 풀을 활용한 공동 개발 연구를 제안하고 싶다고요? 어디요? 노바맥스라고요?”
“아무리 보건복지부라고 하셔도 살살이 풀의 추가 제공은 어렵습니다. 예.”
“지금 당장 찾아오시겠다고요? 아무리 서울대라고 해도 이런 막무가내식으로는 곤란합니다.”
한국을 벗어나 전 세계의 기업, 연구소, 재단, 언론사에서 살살이 풀과 관련해서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하이에나처럼 어떻게든 살살이 풀과 관련한 공동 연구나 개발······. 정 안되면 추가적인 샘플이라도 얻어내려고 온갖 단체와 기관들이 앞다투어 달려들고 있었지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용수 사장과 문석호 상무는 차분했다.
“역시, 예상한 대로 곧장 시끄러워지는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효과라면 모르겠지만, 살살이 풀은 적당한 수준은 아득히도 벗어난 규격 외의 가치를 지닌 식물이니까요. 그들도 이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겠죠.”
이 살살이 풀의 성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신약이 공개되는 순간.
지금까지 오랜 시간 구축된 바이오산업의 모든 구도가 완전히 새롭게 정립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삼진 바이오에게 살살이 풀을 받아본 모든 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일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닌가 싶긴 하네.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2달 만에 살살이 풀을 기반으로 한 신약까지 전부 개발을 완료한다니.”
“그건 최근에 임상 시험에 실패한 스피노데트에 관한 연구 자료가 충분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냥 살살이 풀의 생약 성분만 추출하면 그 자체가 그냥 신약이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신경 치료와 관련해서 비교의 대상이 없는 압도적인 효과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직 동물실험에 그치기는 했지만, 손상된 신경 세포를 완벽하게 재생시킬 수 있는 기적의 치료제의 완성. 임상 2상을 넘어서지 못했던 그 비운의 신약. 스피노데트를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신약을 앞에 두고 문석호 상무는 말했다.
“새롭게 개발한 이 신약에 대한 심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어차피 살살이 풀의 공개는 필수적인 사항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떠한 천연물을 원료로 하고 무슨 제재를 통해서 약효를 가지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사용되는 약물이기에 지극히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FDA의 신약 심사. 그 심사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살살이 풀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해버리는 선제 대응을 취했다.
“그렇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샘플을 받은 다른 전 세계의 연구기관에서도 앞다투어 관련 논문을 쏟아낼 테니 FDA도 그에 대해서 쉽사리 문제 삼지 못하겠지.”
삼진 바이오만이 아니라 수백, 수천 개의 기관과 연구자들에게서 쏟아지게 될 논문. 비단 FDA만이 아니라 생물학과 의학계 전체에서 검증받게 될 살살이 풀은 그 누구도 감히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공인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독보적이고 압도적인 재생·치료 효과를 가진 약초로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 부지는 어떻게 됐나?”
이미 울타리로 완전히 둘러싸인 생태부지.
철통 보안의 상태로 보호받고 있는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살살이 풀의 사진들을 몇 장 보여주며 문석호 상무는 말했다.
“현재 정확히 1만 2천 214포기의 살살이 풀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저희가 보낸 일꾼들이 물을 주고 비료도 뿌려주고 관리를 하고 있으며 대략 1달 후면 1차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아가씨는······?”
“매일 부지에 출입해서 살펴보기는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습니다. 특이한 동향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만나는 주변인들까지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남몰래 확인하는 이들. 비단 감시의 목적도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은 다름 아닌 그녀의 신변 보호였다.
“혹시라도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잘 지켜보게. 뭐가 되었든 그녀는 현재 유일하게 살살이 풀을 재배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네.”
“알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영 수확이 없나?”
“그렇습니다. 이게 저명한 식물학자 말로는 현존하는 그 어떤 재배법으로도 키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만······. 그냥 땅에서 이렇게 잘 자라는 걸 보면 뭔가 그녀만의 특별한 재배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자체적인 양산을 하려고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뼈아픈 실패만을 받아든 삼진 바이오. 그렇기에 이주용 사장은 입맛을 다시며 철부지 같은 아영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원······. 종자 유출은 걱정 안 해도 되니 다행이라고 좋아해야 하나······.”
종자를 빼돌리더라도 다른 곳에서 대량으로 재배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물론 종자의 특허권을 삼진 바이오가 주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살살이 풀을 길러다가 파는 꼴은 도무지 보고 싶지 않았기에 묘하게 안심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그쪽에서 살살이 풀 판매 단가와 관련해서 연락이 왔습니다.”
살살이 풀을 전량 위탁 생산하고 삼진 바이오가 사들이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아영과 삼진 바이오. 하지만 그 가격을 아직 정확하게 결정하지 않았었기에 그 판매 단가를 아직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였다.
“오, 그런가? 얼마를 부르던가?”
“그게 말입니다. 조금 머리 아픕니다.”
“뭐? 설마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그럼······?”
“비율 정산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살살이 풀을 기반으로 한 신약의 총 판매 수익 중 30%를 요구해왔습니다.”
“뭐······뭣?”
비율 정산.
삼진 바이오가 벌어들인 수익에서 일정 파이를 떼먹겠다는 정신 나간 제안. 이게 진심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용수 사장. 그런 그에게 문석호 상무는 잔뜩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아가씨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크흠······. 정확히 ‘혼자 다 처먹으려고 하면 배 터져요. 그러니 치사하게 고정급만 주려고 하지 말고 사이좋게 같이 나눠 먹죠.’라고 하더군요.”
“······?”
뭔 이딴 미친놈이 다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문석호 상무와 이용수 사장. 하지만 그저 앵무새처럼 어느 정신 나간 중학생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전한 것뿐인 아영은 죽을 만큼 억울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