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0화 -수정본
“정 그러면 요술봉이라도 들고 찍든가. 마법사라면서 왜 마법 지팡이도 없는 건데?”
조언이라기보다는 놀리듯이 던진 누나의 한 마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머릿속에 커다란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 그래서 그런 거였나······?”
별생각 없이 던진 이야기였지만, 나는 머릿속에 밀려오는 커다란 깨달음에 벌떡 일어나 미친놈처럼 연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나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야! 나는 오늘이랑 내일까지 해서 연구실에서 밤샘 실험해야 하니까 집에 안 들어올 거야. 밥 알아서 잘 챙겨 먹고 영상 제작은 적당히 하고 공부도 해 놔라. 설거지 꼭 하고! 또 저번처럼 어지럽혀둔 채로 내버려 두면 진짜 죽는다!”
자신이 할 말만 남기고는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린 영희.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나는 이내 누나의 경고를 싸그리 무시한 채 미친 사람처럼 온 집 안을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어디지······. 분명 어디서 봤었는데? 없나?”
[ 주인? 뭘 그렇게 찾으려고 온 집안을 뒤집어대고 있는 거야? ]
내 방을 비롯해 누나의 방과 온갖 옛날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창고를 헤집어대기 시작한 나. 분명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느 옛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서 나는 맹렬하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의 수색 끝에서야 비로소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아주 옛 잡동사니들의 무더기 속에서 나는 그토록 찾던 물건 하나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색이 다 바랜 핑크빛 하트 모양의 요술봉.
씨크릿 쮸쮸의 마법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이 장난감은 딱 5살 여자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블링블링하고 귀염깜찍한 외형과 자태를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와······. 이거 혹시 버렸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완전 걱정하고 있었는데 진짜 다행이다. 역시 뭐든 버리지 말고 보관하고 있으면 다 쓸 데가 있다니까?”
쓰레기라는 단어 말고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물건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고 웃고 있는 나에게 용용이는 무언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 ······? 주인······. 그게 도대체······. 뭐야······? ]
“아, 이거? 씨크릿 쮸쮸라고 예전에 엄청 인기 많던 만화영화 하나 있었거든? 거기서 주인공인 쮸쮸가 들고 다니던 마법봉이야.”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여자아이들을 비롯해 남자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인기 만화영화. 특히 내 누나가 어릴 때 한동안 푹 빠져서 온종일 들고 다녔기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그 낡은 요술봉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햐······. 진짜 그때 생각하면 누나도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유치하긴 했었네. 무슨 초등학교 6학년이 이런 요술봉을 들고 다녀?”
다른 여자애들은 아이돌을 보며 오빠라고 소리치며 다니며 사춘기에 빠질 시기에 나랑 같이 만화영화를 보며 동심에 푹 빠져 있었던 영희. 그 때문에 온갖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었기에 내 기억 속에서는 그런 그녀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그녀의 치욕스러운 최악의 흑역사이기에 그 누구의 앞에서도 절대 꺼낼 수 없는 그런 금기와도 같은 이야기였다.
[ 아니, 그게 궁금한 게 아니라. 도대체 그런 기괴한 물건을 왜 찾아다녔냐고. ]
그딴 시답지 않은 이야기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내 말을 끊으며 되묻는 용용이.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뭐긴 뭐겠냐는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뭐긴 뭐야? 앞으로 내가 가지고 다닐 마법 지팡이지.”
영희의 조언대로 마법사로서 응당 가져야 할 장비인 마법 지팡이로 시크릿 쮸쮸의 마법봉을 선택한 나. 하지만 그런 나의 결정에 용용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 그딴 게 도대체 어떻게 마법 지팡이가 되는 건데? 아니, 그보다 주인이 왜 마법 지팡이가 필요해? 이제 고작 1 서클 밖에 안 됐잖아! ]
마나석을 비롯해 온갖 값비싼 마법 재료들을 가지고 온갖 복잡한 마법적 조치와 각인 과정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최고급 아티팩트이자 고위 마법사들만이 가지고 다니는 무기.
마법 지팡이(Staff).
최소 5 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가 되지 않은 이상은 쉽사리 가질 수 없는 그 값지고 진귀한 물건을 고작 1 서클 따위가 들고 다니겠다는 소리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주인이 들고 있는 물건은 절대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마법 회로의 각인도, 마법적 처리도 전혀 되지 않은 물건이잖아. 아니, 그보다 그거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튼튼하기는 한 거 맞아? 마나의 흐름을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수준의 재질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 거야? ]
아티팩트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다며 연신 투덜거리며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 용용이. 하지만 그는 나의 한마디에 할 말을 잃고 한참을 침묵했다.
“아니? 그딴 게 왜 필요해?”
[ 뭐······? ]
“그냥 장식품으로 쓸 건데?”
[ ······? ]
“왜. 간지 나잖아. 이거 들고 마법 쓰면 뭔가 있어 보이지 않아?”
[ ······. ]
기본적으로 마법 스태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인 마력 증폭도, 마나 안정도······. 하물며 시전 속도 증가와 같은 그 어떤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그저 장식품이자 눈요깃거리에 불과한 씨크릿 쮸쮸의 마법봉.
생긴 것조차 유치찬란하게 생겨 먹은 아이들 장난감을 들고는 진지하게 마법 지팡이라고 하는 내 행동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용용이는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내가 도대체 전생에 뭔 죄를 지었다고 이딴 놈을 내가 주인이라고······. ]
뭔가 지난 자신의 용생(龍生)에 대한 깊은 회한을 느끼는 듯한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절망과 자조 섞인 한탄을 한 귀로 흘리며 진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휴대폰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내 영상에 부족한 게 뭔지 알겠어. 어차피 믿을 새끼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나름 화제를 몰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못 받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어차피 내 영상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볼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 하지만 그 어그로가 제대로 끌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와닿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나한테는 광기가 부족했던 거야. 미칠 거면 진짜 제대로 미쳐야 하는데, 어중간하게 미친 척하니까 사람들이 안 보는 거지.”
[ 뭐······? ]
이미 고이고 고여 지독한 레드 오션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한 2022년의 뮤튜브.
어지간한 수준의 자극과 어그로 정도로는 이미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나는 고작 마법이라는 콘텐츠 하나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잘 새겨들어. 뮤튜브에서 나 같은 하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요소가 필수적이야.”
손가락을 세 개를 펴 보이며 나는 현대 문물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용용이를 향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맨몸운동을 한다고 진짜 맨몸으로 발가벗고 운동하는 미친놈과 같은 진짜 광기.”
“노란 딱지가 붙든 말든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생각 없이 노빠꾸로 할 수 있는 패기.”
“그리고······. 수천, 수만 개의 매운맛의 댓글과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오는 인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고소장을 보낼 수 있는 단단하고 굳건한 멘탈.”
그 세 가지가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범람하는 영상들 속에서 나의 영상을 화려하게 빛낼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미친놈의 개소리로밖에 치부될 수 없는 영상들.
하지만, 그러한 영상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진지하게 미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 너도 내 영상에 제대로 참여한다. 용용아. 앞으로 잘 해보자고.”
펄럭.
인터넷에서 5천 원을 주고 산 별무늬가 가득 박혀있는 마법사의 망토와 고깔모자.
마치 할로윈 분장이라도 한 것 같은 유치찬란함이 가득한 마법사의 복장으로 변신한 나는 한 손에는 용용이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과할 정도로 블링블링한 시크릿 쮸쮸의 마법봉을 들고서 거울 앞에 섰다.
“오우. 보기만 해도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네.”
이제 15살의 중학생 2학년으로 성장이 다 마치지 않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앳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5살짜리 어린애도 하지 않을 법한 모습을 한 지금의 내 모습은 일반인이라면 절대 용인할 수 없는 그런 기괴함이 가득한 상태였다.
[ 진심이야······? 이렇게 입고 다니겠다고······? ]
“물론. 내가 무슨 농담하는 줄 알아? 미칠 거면 그냥 미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미쳐야 한다니까?”
용의 미적 감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인 모습.
그야말로 같은 일행조차도 자신과 같은 일행임을 부정할 정도로 주변의 삼자가 부끄러워지는 이 모습으로 나는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첫 멘트를 거침없이 날렸다.
“반갑다. 이 미개하고 무식한 인간 새끼들아. 형은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이다.”
[ 주인······? 도대체 뭘 하는 거야······? ]
이전의 그 친절하고 가식이 가득한 영업용 미소는 던져버리고 시작부터 오만하고 거만한 자태로 나를 다시금 소개하자 용용이의 당혹감과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구독자가 19명밖에 안 되는 비루한 수준의 채널이라 실시간으로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앞으로 이 영상을 보게 될 수천, 수만······. 아니, 수십억 인류 전체를 떠올리며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인사해라. 여기 이 녀석은 판달리아에서 온 드래곤 로드. 용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펫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지. 앞으로 이 채널의 마스코트 같은 녀석이니까 알아서 잘 떠받들어라. 참고로 팬아트 같은 거 그려주면 아마 좋아할 테니까 참고하고.”
[ ······? ]
이전의 조금 이상한 중딩 마법사의 컨셉을 완전히 깨부수는 그야말로 천박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소개.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곧장 심장을 맴도는 마나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하나의 마법을 발동했다.
화르르르륵.
내 손 위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주황빛의 불꽃.
1서클 마법. 파이어.
그 어떤 설명도, 이해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아무 말 없이 마법부터 먼저 갖다 박으며, 나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첫 멘트를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마법의 위대함을 알지도 못하는 무식하고 미개한 너희들을 위해서 이 대마법사께서 친히 마법 강의를 시작하겠다. 영광으로 알고 귀를 똑똑히 열고 경청하도록.”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뒤바뀌었다.
생긴 건 멀쩡하지만 조금 정신이 이상한 중학생에서······.
아주 제대로 미쳐버린 갱생 불가능의 광기 어린 중2병 말기의 중딩 새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