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9화. - 수정본.
하나의 학문······. 아니, 이 드넓은 대우주를 넘어서 무한으로 갈라진 다중차원을 지탱하는 개념 그 자체인 마법은 감히 인간의 시각으로는 그 깊이와 한계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으며 또 방대했다.
“일반적으로 마법이라는 학문은 대자연의 순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통찰하고 나아가 그 법칙을 조작해 자신의 의지를 이 세상에 구현하는 것을 의미해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연법칙을 따르며 특정 부분에서는 현대의 과학 기술을 뛰어넘을 정도로 아주 고도로 발전된 학문이죠. 어디 무당이나 사이비 종교에서 병이 나으라며 기도하고 굿판을 벌이는 것처럼 유사 과학을 떠올리면 안 돼요.”
과학과 그 방식과 방향성은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조작한다는 본질만큼은 다를 바가 없는 마법. 그렇기에 아주 기초적인 마법부터 시작해서 상위의 초월 마법들은 그 수식부터 놀라우리만큼 현대 과학의 이론을 따라가고 있었다.
“시공간을 조작하는 디멘션 학파의 경우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물리학자의 뺨싸다구를 좌우로 신나게 후려갈길 정도로 오히려 현대 물리학보다도 진보한 편이죠.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정말로 시공간을 왜곡하고 또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시공간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마법. 헤이스트.
그 수식을 잔뜩 적어놓은 간이 화이트보드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는 열렬하게 마법의 위대함을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모든 이들을 향해 설파했다.
“여기 아주 간단한 예를 보시죠. 우리가 일종의 버프 마법으로 알고 있는 헤이스트. 어디 흔하게 게임 속에서 볼 수 있는 마법이죠? 하지만 이건 단순하게 민첩성이나 속도를 높여주는 그런 마법이 아니에요. 매우 한정적인 영역에서 적용되긴 하지만 엄연히 ‘시간 가속’의 개념이 들어간 마법이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가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어느 특정 개인만 빠르게 흐르도록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지 말이에요. 특정 상황에서는 분명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시합이나 시험이 있는 그런 상황들 말이죠.”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나 하나만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그 순간을.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번개같이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공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날아드는 총탄을 하품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잡아버릴 수 있는 폭발적인 움직임과 속도를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상황들을 말이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마법의 위대한 모습.
하지만 물론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채팅창에 올라오는 몇 안 되는 반응들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 ㅋㅋㅋㅋㅋㅋ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 엌ㅋㅋㅋㅋ 디멘션 학파 ㅋㅋㅋㅋㅋ 헤이스트 ㅋㅋㅋㅋ
- 무슨 영어 쓰면 다 간지 나는 줄 알지? 중딩 새끼야
- 어디 소설 쓰심? 뭐 이상한 영상들만 찍고 있냐
- 야. 흑염룡 드립 한 번만 쳐 봐. 그럼 형이 후원해드림.
총 시청자가 고작 10명도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꽤 격렬하고 뜨거운 반응의 채팅들. 하지만 그 반응이 전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자. 일단 오늘 마법 강의는 여기까지만 하죠. 그럼 내일 또 같은 시간에 만나도록 하고 꼭 전에 올린 영상들 복습하면서 마나를 느끼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세요. 여러분이 1서클에 오르는 그 날까지 저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좋아요! 구독! 알림설정까지 눌러주시고~ 그럼 마바!”
그렇게 교과서적인 영업 멘트와 오늘의 할당량을 마치고 영상을 난 후 나는 곧장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으아!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뮤튜브가 만만한 게 아니었어.”
처음에는 구독자 100만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곧장 달성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나는 불과 일주일 만에 그게 얼마나 아둔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언제나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는 뮤튜브의 세계.
그 치열하고 숨 막히는 경쟁이 매일 매 순간 벌어지고 있는 이 험난한 야생 속에서 마법이라는 하나의 콘텐츠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 ]
조회 수 : 4923회.
구독자 : 19명.
총 시청 시간 : 3.2시간.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씩 꼬박꼬박 영상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처참할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든 상황. 뮤튜버로 성공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수칙들을 빠짐없이 지키며 조잡하지만 그럴듯한 영상 편집 기술까지 모조리 쏟아부었기에 그 허탈감은 더욱 컸다.
“하아······.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역시 제목 때문인가? 아니면 썸네일?”
관리 모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채널에 관련한 여러 가지 분석 정보들.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현재 채널의 지지부진한 성장세에 관련한 여러 가지 요인을 확인해 볼 수 있기에 나는 면밀하게 그 수치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클릭은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상을 넘겨버린다······.”
영상마다 최소 10분에서 많게는 30분 정도의 길이로 편집해 놓은 상황.
그렇기에 조회 수와 다르게 극단적으로 적은 영상의 시청 시간을 서로 종합해보면 평균적으로 내 영상을 30초 정도만 보고는 넘어가 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마나란 무엇인가? ]
[ 마나를 축적하는 법. 마나 심법! ]
[ 마법의 기초. 룬어를 Araboza. ]
[ 마법진 기초 설계법. ]
마법이란 학문에 처음 입문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정보들만을 엄선해서 만든 콘텐츠.
이미 마법에 관해서는 만년에 가까운 짬이 있는 용용이나 전능한 지식을 얻고 있는 내가 생각할 때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기초적인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처음 접하는 과학 문명 기반의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느 정신병자의 개소리에 불과했다.
[ 마나라는 힘은 말이죠. 일단 기본적으로 저와 여러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에 가까운 순수한 에너지를 말해요. 다른 이름으로는 에테르라거나 뭐 암흑 물질이니 힉스 입자니 온갖 잡다한 방식으로 불리기도 하긴 하는데, 그딴 건 그냥 유사 마법에서나 하는 개소리니까 무시하세요. 그냥 마나에요. ]
[ 마나가 가진 가장 중요한 점은 에너지의 완전성과 효율성이죠. 열, 빛, 전기······. 그 어떤 에너지로도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어떠한 손실이 발생하지 않아요. 100% 온전히 그 힘을 활용할 수 있죠. 게다가 나중에 그 수준이 높아진다면 중력이나 전자기력, 심지어 강력과 약력 같은 상위의 에너지로도 전환할 수 있어요. ]
마나라는 에너지에 관한 심오하고 복잡한 정의를 시작으로 해서.
[ 저를 따라 해 보세요! 후! 하! 후! 하! ]
숨쉬기 운동을 통해서 마나를 쌓을 수 있고······.
[ 제가 원래 그림을 잘 못 그려서요. 너무 삐뚤빼뚤하긴 하지만 일단 대충 기초적인 룬어 10,000단어만 정리했으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외워야 해요. 영어 단어보다는 외우기 쉽죠? ]
어디 기괴한 지렁이들을 만 개나 그려놓고 외워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 말이다.
하지만, 미친 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30분이나 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정성껏 한 덕분인지 형편없는 구독자 수와 시청 시간과는 다르게 수많은 댓글이 내 노력에 대한 성원을 아낌없이 보내주고 있었다.
- 씹ㅋㅋㅋㅋㅋ. 진짜 정신병도 가지가지다.
- 어떻게 이런 개소리를 쉬지도 않고 30분이나 하지? 진짜 이것도 능력이네.
- 머글 앞에서 이런 마법들을 알려주는 건 분명 마법사 협정 위반인데요? 님 아즈카반 가쉴?
- 와······. 진짜 어마어마하다. 도대체 이딴 쓰레기 같은 영상을 몇 개나 찍는 거야?
- 진짜 컨셉질 하나 지랄 맞네. 이딴 걸 누가 봄?
- 뭐긴 뭐겠냐. 딱 봐도 어디 정신 빠진 중딩 새끼 같은데 생긴 건 멀쩡한데 미쳤나 봄
- 한X리 정신병원 연락처. 0XX-232X-3413
마법을 믿지 않는······ 동심이 이미 메말라버린 가련한 불신자들의 악의가 가득 담긴 댓글이 수백 개가 넘어가는 상황.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아무도 안 믿네······?”
아무리 정신 나간 소리라고 짚고 흘려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마나라는 에너지원과 마법에 관련한 기초적인 틀과 이론을 제시한 나의 영상. 하지만 자그마치 30분이나 되는 그 영상을 차근차근 들어보고 판단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흑염룡이 가장 많이 울부짖는 중학생 정도의 내 외형 역시 이러한 상황에 크게 작용했고 말이다.
“흐음······. 이 정도면 조금 더 대놓고 움직여봐도 되려나······?”
내가 뭘 해도 절대 마법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생각보다 그 반응이 너무 과할 정도로 냉담해서 당황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나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어차피 나중에 가면 그 가치는 전부 다 인정받게 될 테니까······.”
“뭘 인정받아?”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는 그 순간 갑자기 내 뒤에서 들려오는 영희의 목소리.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피곤에 찌들어있는 누나의 등장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인터넷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손보다 영희의 눈이 더 빨랐다.
“뭐야? 이게? 마법사가 되는 법?”
이미 내 얼굴이 드러난 영상 목록과 제목까지 전부 다 봐 버린 상황. 그리고 그녀는 이내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눈치챈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얌전히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뭔 이상한 영상이나 찍으면서 지금까지 허송세월하던 거야?”
좋은 일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를 두들겨 패고 징계를 받고 한 달을 쉬게 된 상황. 그렇기에 누나는 이 시간이라도 내가 의미 있게 보내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내가 한 짓을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그게 아니라······. 누나. 내가 말이지.”
“시끄럽고. 저리 비켜봐.”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으며 나와보라는 영희. 그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채널의 영상과 댓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내가 찍은 영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흠······.”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고 콧김만 내쉬는 영희. 마치 이 망할 동생 새끼를 어떤 방식으로 죽여야 가장 고통스러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 누나를 보며 나는 애써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다.
“누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괜찮네.”
“뭐······?”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오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얼어버렸지만, 영희는 의외로 생각보다 진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게임만 하고 있었다면 진짜 혼 좀 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나름 생산적인 일은 하고 있었네. 공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뮤튜브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너무 조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상편집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노력한 티도 나고.”
“누나······.”
뭐가 되었든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지만 않으면 됐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희. 그리고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지만 확고하게 나를 향해 말했다.
“그 대신, 약속한 대로 시험 성적 받아오지 못하면 그때는 뮤튜브고 뭐고 없을 줄 알아!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공부.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말래도.”
공부 정도야 전혀 걱정 없기에 자신만만한 태도로 경고를 받아들이는 내가 영 맘에 안 드는지 영희는 나를 잠깐 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일어나 내 방을 나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런데 너 마술은 언제 배운 거야?”
“뭐? 무슨 마술······?”
“지금 찍은 것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술 몇 개 보여주는 영상으로는 인기 끌기 어려울 것 같아서 사람들 어그로 끌려고 이런 컨셉 잡은 거 아니야?”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진짜 마법이지만,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영희. 그저 마술의 일종이라고 착각하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별다른 부정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뭐 그런 거지.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자 영희는 무언가를 잠깐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심드렁하게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방문을 나섰다.
자신의 발언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정 그러면 요술봉이라도 들고 찍든가. 마법사라면서 왜 마법 지팡이도 없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