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끄아아아아아!!!”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자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 익숙한 풍경.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먼지가 잔뜩 쌓인 책상. 그리고 시큰한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불과 베개에 둘러싸여 식은땀을 질질 흐르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었어······?”
뇌리에 너무나도 생생하게 남겨진 기억. 과거로 돌려 보내줄 테니 앞으로 닥쳐올 멸망의 미래를 바꿔보라는 그 제안은 너무나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있던 어린 시절의 내 방 안에서 세월의 풍파를 겪어본 적 없는 탱탱하고 파릇파릇했던 나의 예전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며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진짜······. 과거로 돌아왔다?”
한참의 시간 동안 거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던 나는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마룻바닥을 뒹굴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2020년 5월 12일······.”
화면에 선명하게 찍혀져 있는 현재의 시간. 그것은 정확히 이 지구가 자멸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날로부터 20년 전의 과거였다. 이제 태어난 아이가 어엿한 성년으로 자라날 정도로 기나긴 시간을 다시 되돌아온 상황.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마치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는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부여잡았다.
벌컥.
“어? 네가 웬일로 알아서 일어났냐?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는지 오븐 장갑을 낀 손으로 찌개를 내려놓으며 희한하다는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얼굴. 하나뿐이었던 유일한 가족이었던 누나 김영희. 기억도 희미해질 정도로 오래전에 잃어버린 혈육을 마주한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얼어붙었다.
“······.”
치기 어린 시절에는 수백 번을 상상하고 떠올렸던 상황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어 멀쩡히 마주한 누나를 보며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 하지만 그런 내 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누나는 벌써 자리에 앉아 우물거리며 자신의 밥을 해치우고 있었다.
“뭘 그런 멍청한 눈으로 보고 있어? 밥 안 먹을 거야?”
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보며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물어오는 누나. 그런 누나의 말에 문득 정신이 다시 돌아온 나는 너무나도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 앉았다.
“응? 아냐! 밥 먹어야지! 야! 맛있겠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그래?”
내 격한 반응에 황당하다는 듯이 피식 웃는 누나에게 나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누나가 정성 들여 해 준 찌개를 한 숟가락 입에 물었다.
그리고 아예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누나······.”
“응? 왜?”
“찌개가 너무 짜······.”
“죽을래? 아침부터 반찬 투정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처먹어라.”
“······.”
우리 누나는 요리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더럽게 못 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나의 누나이자 사상 최악의 요리 실력의 소유자. 김영희.
분주하게 나갈 채비를 하며 부산스럽게 집 안을 돌아다니는 그녀를 연신 곁눈질하며 나는 머릿속으로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누나가 갑자기 죽었던 시기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으니까······. 앞으로 2년.’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예상도 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갔던 영희. 어느 날 늦은 밤에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죽은 그녀의 사인은 다름 아닌 과로사였다.
‘예전에는 그냥 기구한 운명인 줄 알았었지······. 하지만 분명 뭔가 있다.’
경찰 조사와 부검에서도 아무런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사망처리로 끝나버렸던 사건.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벌어졌던 누나의 죽음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 그래도 누나는 꽤 재능은 있어서 나중에는 대성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나쁜 일에 얽매여서 일찍이 죽어버렸네. ]
나쁜 일에 얽매여 일찍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브의 이야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한 이야기였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누나를 뒤에서 빤히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어떤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처럼 어수룩하게 넘어가지는 못할 거다.’
앞으로 2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누구라도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면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할 정도로 처절한 복수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런 나의 깊은 생각을 알지도 못한 채, 나갈 채비를 끝마친 누나는 무성의하게 소리쳤다.
“야! 나는 오늘 실험 있어서 늦게 들어올 거니까 알아서 밥 먹어라.”
“오늘 토요일인데 늦게까지 실험을 한다고?”
“대학원생한테 주말이 어딨어? 그것도 이제 막 석사 시작한 1학년한테.”
그 처참한 요리 실력과는 다르게 머리는 꽤 똑똑했던 누나. 그 덕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전공 교수와 여러 선배의 열렬한 러브콜을 속에서 석사 과정에 장학금 전액을 받으며 들어간 그녀는 거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적당히 좀 해. 들어간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사람을 그렇게 빡세게 굴리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너 안 그래도 이번 중간고사 성적 박살 났더라?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하길래 반에서 뒤에서 3등인데.”
“뭘 어떻게 하긴. 그냥 놀았지.”
아무 생각 없는 단순한 중학생 시절. 공부라고는 던져놓고 여느 남자애처럼 공 차고 게임 하느라 바빴던 시절이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 이 자식이 왜 이렇게 당당해? 너 다음 기말에서도 그렇게 받아오면 용돈 반으로 삭감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 앞으로 성적 가지고 잔소리는 못 하게 될 테니까.”
“어쭈······? 너 뭐 잘못 먹었냐?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다?”
반응에 이채를 띤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영희. 하지만 그녀는 이내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더니 다급하게 나가면서 소리쳤다.
“밥 먹고 설거지 꼭 해 놔라!이번에도 또 안 해 놓고 빈둥거리고 있으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예. 예. 어련하겠습니까.”
성의 없는 답변에 나를 잠깐 노려보다 이내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의 진동음에 황급하게 나가버리는 영희. 그녀가 나가고 나자 조용해진 집안의 그 적막함을 잠깐 즐기던 나는 이내 거실에 놓인 소파에 몸을 맡기고는 풀썩 드러누웠다.
“후······. 머리 아프네······. 하필이면 왜 이런 애매한 시기로 돌려보낸 거지?”
정확히 20년의 여유 시간이 주어진 2020년.
인류의 멸망이라는 미래를 막아설 준비를 위해서는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대였지만, 문제는 이 시간대에서의 내 나이였다.
“15살······. 아직 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생이라니······.”
군대는커녕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못한 파릇파릇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호르몬의 노예. 아직 의무교육도 마치지 못한 나이로 되돌아온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곤란한데. 이 나이로는 뭘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잖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미래의 벌어질 커다란 변화들. 물론 복권 당첨 번호 같은 세세하고 자잘한 것들은 그 어떤 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굵직굵직하게 뉴스를 장식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들을 대비하자고 한다면······. 음······.”
예전에는 관심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시기였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내 중학생 시절은 생각보다 꽤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였다.
[ 다음 뉴스입니다.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에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그에 따른 여파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아파트 시세가 연이어 폭등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소위 ‘벼락 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패닉 바잉(Panic-Buying)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부동산 전문가들은······. ]
[ 잇따른 경기 침체로 인해 기업들이 해마다 추진하던 대규모 공채를 대폭 축소하려는 추세입니다. 그중에서 미래 자동차가 앞으로 공채를 완전히 폐지하고 상시 채용의 형태로 전문성과 경험을 보유한 뛰어난 인재를 선별해서 채용하겠다고 밝혀 공채를 준비하던 청년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
[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벌어진 젠더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출산율과 결혼율은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
빈부격차와 청년 실업. 그리고 성별 전쟁까지······. 그야말로 혐오와 차별, 갈등과 싸움만이 가득한 세상.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온갖 암울한 소식들을 전하는 뉴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TV를 껐다.
“주식을 하고 싶어도 미성년자라서 누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데다 어차피 당장 내년이면 죄다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니 의미가 없고······. 부동산은 이미 오를 대로 올라서 끝물이고······.”
딱 몇 년만 더 과거로 돌려 보내줬으면 어떻게든 써먹을 것들이 있었겠지만 이미 기회라는 기회들은 지나가 버린 애매한 상황. 그렇기에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려는 내 고심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으음······. 딱히 뭐가 없네······.”
그저 한낱 평범한 중학생의 신분인 상황. 일단 나이가 어리면 무시부터 하고 보는 이 동방예의지국의 꼰대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내가 앞으로의 미래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행동의 크나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 어딘가에서 갑자기 괴상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아악! 이······이게 뭐야! ]
“음······?”
무척이나 당황한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집 안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기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소리가 나는 출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는 누나 방인데······?”
[ 내 육체 어디 갔어! 아니, 도대체 어디에 영혼을 집어넣은 거야! 이······이런 법이 어딨어! ]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꽥꽥거리며 소란스럽게 들려오는 괴성. 그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누나의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다급함과 반가움이 혼재되어있는 목소리가 나를 불러댔다.
[ 이······인간! 너! 거기 못생긴 놈! 여기야! 여기! ]
“······?”
누나의 방 한쪽 구석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는 언제 산지도 모를 꾀죄죄한 아기 공룡 똘리 인형.
딱 한 손에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로 귀엽게 웃고 있는 형태의 앙증맞고 귀여운 그 인형에서 꽥꽥거리는 비명이 들려오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인형이······. 말을 해······?”
[ 뭐······. 이······인형? 지금 너 뭐라고 그랬냐? 인형이라고······? ]
[ 나는 위대한 황금의 일족. 드래곤 로드이자 판달리아의 마지막 수호자. 페르도스다! 어디 감히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지금 누구를 보고 인형이라고······! ]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잘 모르는 듯한 똘리 인형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그 인형을 잡고는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추어 주었다.
그러자 발광하듯 꽥꽥거리며 소리치다 문득 거울을 보고는 할 말을 잃고 이어진 침묵.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똘리 인형은 갑자기 거의 울부짖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 이······. 이 XXXXXXXXXXX!!!!!!! ]
그렇게 그날 이후 나는 미친놈이 되었다.
초등학생이나 들고 다닐 법한 귀여운 똘리 인형을 하루도 빠짐없이 가지고 다니며 혼자서 그 인형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다니는 진짜 광기 어린 미친놈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