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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3화 (3/242)

3화.

3화.

환상 속의 동물이라고 불리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설과 신화 속의 존재.

드래곤(Dragon).

소설을 비롯해 영화와 게임 심지어 아동용 만화영화까지 판타지 장르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 드래곤은 나쁜 놈과 좋은 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역할로 등장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끄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책임졌던 아기용 똘리.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혓바닥을 낼름 내밀고 있는 초록빛의 앙증맞고 귀여운 이 인형을 손에 든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진지하게 인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그 판달리아인지 뭔지 하는 판타지 세상에서 온 거란 말이지?”

[ 그렇다! ]

“원래는 드래곤 로드인가 뭔가 하는······. 아무튼 엄청나게 강하고 잘난 놈이었고?”

[ 그렇다고!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알아듣는 거냐 인간! ]

“으음······.”

쨍알쨍알 소리를 질러대는 아기용 인형.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어린이용 인형처럼 생겼지만, 나의 귀청을 터트릴 것처럼 시끄럽게 들려오는 이 소리는 상상 속에서 들려오는 환청이 아니라 진짜배기였다.

[ 말이 돼? 나 같은 지고의 존재를······. 그것도 드래곤 일족 중에서도 가장 고귀했던 존재인 나에게 어떻게 이런 치욕스러운 짓을······! ]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지 연신 혼잣말로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투덜거리고 있는 인형. 그리고 그런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 이브라는 의문의 존재의 정체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판달리아라는······. 그러니까 네가 살아가던 세계도 멸망했다고?”

[ 그래.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실이지. 그 멍청하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 놈들이 마왕을 강림시켰다. ]

마왕의 강림과 함께 대대적으로 시작된 마계 침공. 페르도스를 비롯해 드래곤 일족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마계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지만, 이들의 그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 하필이면 내가 왜 로드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마왕이 강림하냐고! 가장 수적으로 많은 인간 새끼들은 용사라고 내세운 놈들은 죄다 약해 빠진 벌레 같은 놈들밖에 없지.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기적으로 자기들 하나 살자고 여기저기 내빼느라 바쁘지. 하여간 인간 새끼들은 하나 같이 무능해서 마음에 안 들어! ]

인간인 내 앞에서 가감 없이 인간 혐오의 가치관을 설파하는 아기용 인형. 하지만, 일족 전체가 인간들의 환상적인 트롤링에 죽었다고 하니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결론은 죽어버린 너에게 그 이브라는 아이가 접근했다는 거지?”

[ 그래. 나한테 거래 하나만 하자고 제안하더라. ]

“거래?”

나와 비슷하게 죽음 이후에 나타나 거래를 제안했다는 이브. 그리고 그녀는 페르도스에게 나한테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개념을······. 마법으로 완전히 바꿔놓으라고 하더라고. ]

“뭐······? 마법······?”

[ 그래. 마법. 마나도, 마법도, 그 어떤 이능(異能) 존재하지 않는 이 이름 모를 차원 속 세상에서 그 위대하고 고귀한 마법의 위대함을 선보이고, 아둔하고 멍청한 필멸자들을 계몽시키라고 하더라고. ]

마치 마법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냐? 라고 비웃는 듯한 페르도스. 그리고 그는 생각만 해도 빡이 친다는 듯이 또다시 으르렁거렸다.

[ 그래놓고 이딴 인형 따위에 영혼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영자기관도 없는 이런 무생물의 형태로 마법을 어떻게 쓰라는 건데? ]

자신이 처한 이 엿 같은 상황을 한참 동안 푸념하던 페르도스. 하지만 뇌리에 직통으로 박혀드는 그의 쫑알거림은 나의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근.

강하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이질적인 정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어스퀘이크 ]

[ 블리자드 ]

[ 헬 파이어 ]

[ 기가 라이트닝 ]

위대한 대마법사가 사악한 악당을 상대로 사용할 강력한 위력의 공격 마법이.

[ 데드 라이즈 ]

[ 데스 필드 ]

[ 키메라 제작법 ]

[ 데스나이트 소환술 ]

[ 저주. 노화 ]

악랄한 네크로맨서와 같은 악당들이 사용할 법한 음흉하고 사악한 흑마법이.

[ 힐 ]

[ 정화 ]

[ 블레스 ]

[ 레저렉션 ]

위대하고 존귀한 신의 사자라며 추앙받는 성자와 성직자들이 사용할 법한 신성 마법이.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수많은 마법의 지식이 나의 머릿속에 마치 누군가가 새겨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 이건······.’

마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가득 부풀어 오른 듯한 기묘한 기분. 하지만, 조금 거북한 느낌 정도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 그래서······. 이 지고의 존재가 친히 너에게 가르침을 선사하기로 했다. 영광으로 알아. 내가 가끔 심심해서 재능 있는 인간 몇 놈을 데리고 스승 놀이를 가끔 해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제대로 마음먹고 가르치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르고 나자 들려오는 페르도스의 제안. 하지만 나는 그 오만함과 거만함에 가득 찬 그 인형을 들어 눈높이를 맞춘 채 진지하게 물었다.

“야. 용용아. 나 하나 물어볼 게 있다.”

[ 뭐······? 뭣······? 요······용용이? 지금 설마 그걸 내 이름이라고······? ]

자신의 그 위엄이 절로 흘러나오는 품격 가득한 이름을 두고 유치찬란한 이상한 이름으로 멋대로 부르는 건방진 인간에게 페르도스는 드래곤의 그 더러운 성깔의 무서움을 한껏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질문에 그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살아가던 세상 속에서도······. 신이라는 존재는 있었어?”

[ 신······? 그런 당연한 걸 왜 묻지? ]

“당연해······?”

신이 존재하냐는 질문 하나로 완전히 반으로 나뉘어 치열한 설전을 벌일 수 있는 그 오묘하고 심오한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코웃음을 치는 용용이. 그리고 그는 황당하다는 듯이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 그럼? 너는 영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줄 알아? 뭐······. 생명이란 것이 없는 세계라면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의 지성을 갖추고 자아를 각성한 문명은 신성의 개입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

“······.”

마치 수천 년에 걸쳐 벌어졌던 종교 분쟁을 단 한 번에 종식할 수 있을 법한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용용이. 특히 지금까지 과학과 이성만을 굳게 믿으며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도무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였기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 뭐야? 그 표정은? 이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신성이 없어? ]

그런 나의 반응을 보며 오히려 당황한 목소리로 되묻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곰곰이 곱씹어볼 뿐이었다.

[ 내가 너한테 원하는 거? 그냥 내가 너에게 선사하는 개념을 이용해서, 최대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가며 가능한 칠 수 있는 깽판은 모조리 치고 다니는 것. 그게 전부야. ]

자신을 ‘관리자’라고 칭하며 개념을 빌려주겠다고 이야기했던 이브. 그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끝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마법의 지식을 통찰하며 나는 비로소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그렇기에 그들은 전지(全知)하고 전능(全能)하다.

마법에 관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

이브(Eve).

그녀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마법에 관한 전지의 권능을 허락받은 나는 그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마법사였다.

우우우우웅.

나의 손짓에 떨리며 공명하는 무형의 힘. 마나.

지금껏 존재했지만, 그 어떤 형체도 존재하지 않아 그 존재(存在)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 미증유의 힘을 이제는 분명하게 인식하며 나는 웃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앞으로 벌어질 이 세상의 멸망을 막아내라······.”

20년 후에 닥쳐올 종말의 미래.

그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거대한 변수를 손에 거머쥔 나는 고작 주식이나 부동산 조금 매입하며 돈 몇 푼에 쩔쩔매려던 이전의 계획이 얼마나 초라하고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재밌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계획과 발상들을 떠올리며 나는 묘하게 밀려드는 도전 정신과 승부욕, 그리고 자신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디 한번 두고 보라고. 이 망할 놈의 세계······. 내가 뒤지기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흡기를 붙여두고 말 테니까.”

[ 갑자기 왜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사는 세상에는 신이 없냐니까? ]

말을 하다 말고 이상한 딴소리를 하는 나를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어오는 용용이.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용아. 네가 살던 세상에서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유명한 말이 하나 있어.”

[ 어떤 말? ]

“신은 뒤졌다.”

내가 죽기 전. 지구 전체를 휩쓸었던 핵폭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절망과 비탄 속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구원을 갈구해도 아무리 절박하게 그 어느 때보다도 그를 필요로 했지만, 신이라는 작자는 이들에게 답하지 않았다.

내가 이름 모를 어떤 빌어먹을 새끼들한테 뜯어먹히는 신세가 되는 그 순간까지.

그렇기에 나는 용용이의 물음에 염세적이고 또 지독히 냉소적으로 답했다.

“네가 살던 세계에서는 모르겠지만, 이쪽은 달라. 신이라는 작자가 존재는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있었더라도 아예 오래전에 뒈졌을걸? 만약 지금도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창조물이 다 죽어가는데도 콧방귀 하나 안 끼는 빌어먹을 개새끼겠지.”

무신론을 넘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는 거침없는 발언. 하지만, 현실에 펼쳐진 그 지옥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 나에게 있어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 그래······? ]

“직무 유기나 하는 신 따위는 있어봤자 필요 없어. 바로 내가······.”

“이 세상의 신이 되어 그 역할을 대신할 테니까.”

있는지도 모를 이 세계의 신을 대신해서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는 중대한 과업을 수행하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다짐하며 나는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과 함께 기묘하고 또 섬뜩한 기운이 밀려들자 무심코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뭐······? 신이 돼?”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영희. 그리고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

그렇게 마치 영원 같이 느껴지는 1분의 시간이 지난 후. 영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설명 좀 해 보시지?”

“뭐······뭐가?”

“숙녀의 방에 허락도 없이, 그것도 나 없는 틈을 타서 런닝에 팬티 차림으로 들어와서는······. 내 인형을 들고 신이 된다느니 뭐니 하는 이상한 개소리를 혼잣말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이유 말이야.”

“그······그게 말이지······.”

“뭐. 말을 해.”

“그게······. 이 인형이 나한테 말을 해서······.”

“······?”

“아니, 그게 아니라······. 앞으로 20년 후에 세계가 멸망할 거라서······.”

그 말에 더욱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영희. 더욱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아 나는 애써 다급하게 추가로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내 하나뿐인 망할 동생아······.”

오랜 시간이 지나 꾀죄죄한 낡은 인형을 손에 쥐고 인형이 말을 한다느니 세상이 멸망한다느니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동생을 보며, 영희는 진지하게 물었다.

“중학생 되더니 그 중2병인지 뭔지 걸려서 진짜 제대로 미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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