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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화 : 평화롭고 뜨거운 일상은. (71/80)


외전 1화 : 평화롭고 뜨거운 일상은.
2023.07.04.


퍼그 곰곰이의 하루.

내 이름은 곰곰.

까만색 퍼그로 나이는 8살이다. 원래는 저 멀리 마포구에서 살았는데, 어쩌다가 지금은 강남구에 살고 있다. 주인은 설희 누나.

우리 설희 누나는 완전 귀엽고 상냥하고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멋진 누나이다. 처음에 갑자기 누나랑 살게 돼서 너무너무 걱정되고 무서웠지만,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좋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아.”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한번 기지개를 크게 핀다. 찌뿌둥한 몸을 추스르고 나면 밤새 집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방을 한 바퀴 돈다. 설희 누나의 방은 그리 크지는 않아서 한 30초면 다 확인이 가능하다.

밤중에 침입한 사람은 없었는지, 혹시 무언가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보아야 한다. 물론,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지만 나는 매일 아침 빼먹지 않았다.

간밤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하고 나서야 나는 설희 누나의 발밑에 간다. 그녀의 발을 건드리다 보면, 작고 하얀 발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꿈틀, 꿈틀.

톡톡.


“으음.”

그래도 설희 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소리는 났으나 일어나진 않는다.

다시 한번 까만 발을 올려 톡톡.


“곰곰아. 누나 어제 늦게 잤어…….”

누나가 고개를 베개에 처박고는 웅얼웅얼 중얼거렸다.

설희 누나는 아침잠이 많다.

누나는 ‘저혈압’인가 뭔가라는데 왜 그거 때문에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지 나는 잘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식탐이 많아서 사료를 바닥에 두면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누나는 과식 방지를 해야 한다고 식사때마다 사료를 꺼내줬다.

그러니까 지금 꺼내줘야지, 누나, 나 배고프다고요.

그런데 누나는 아침마다 내가 이렇게 매달리면 인상을 찌푸리며 힘들어한다. 저녁이랑은 딴판이었다.


“끼잉.”

밥 주세요.

밥이요.

배고파요.

오리 맛 사료 주세요.


“끼잉.”

몇 번인가 울면서 누나의 발에 얼굴을 문댄다. 설희 누나는 발을 비비적거리다가 몸을 돌렸다. 아직은 더 자겠다는 의미.

이러다가 10분 정도 지나면 알아서 일어나서 밥을 준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나는 지금 배고프다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끼잉.”

까만 두 발을 모은 채 다시 한번 최대한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귀를 깔짝깔짝.

여전히 설희 누나는 움직이지 않지만, 내 재촉에 이불 속에서 다른 사람이 쑥 나왔다. 너른 어깨, 탄탄한 가슴근육, 갈라진 복근. 익숙하면서도 매일 봐도 설레는 얼굴이었다.

너무너무 멋진 옥은우 선생님이다.


“꺙!”

신이 나서 나는 다리를 들고 그를 반겼다. 돌마래 동물병원의 옥은우 선생님은 내가 병원에 갔을 때부터 나를 예뻐해 주셨다. 지금도,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몸을 구부리고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신다. 크고 따뜻한 손이 기분 좋았다. 그의 반듯한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곰곰이 일어났어?”

“끙.”

“누나는 어젯밤에 무리해서 잠을 좀 더 자야 할 것 같아. 조금 기다려. 내가 사료 가져다줄게.”

“끙.”

침대에서 내려온 선생님은 옷을 갈아입고 타박타박 걸어 사료통을 가져다주신다. 달칵달칵, 사료가 통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얼른, 얼른.

나는 점프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매달렸다.


“자. 맛있게 먹어.”

그릇에 솨아 하고 사료가 쏟아졌다. 허겁지겁 사료를 먹었다. 그런 나를 옥 선생님이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예전에는 설희 누나랑 둘이 살았는데, 요즘은 거의 매일 옥 선생님이 오신다. 그가 집에 오면, 설희 누나는 얼굴을 발그레 붉히고는 발끝을 까딱까딱 움직인다. 누나가 너무 좋을 때 하는 행동이다. 단 걸 먹었을 때, 맥주를 마실 때, 그리고 옥 선생님이 왔을 때만 까닥이는 발끝.


“곰곰아, 나도 조금만 더 잘게.”

“낑.”

알겠다는 의미로 소리를 내자, 옥 선생님이 싱긋 웃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팔이 설희 누나를 끌어안자, 설희 누나가 자는 상태로도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옥 선생님께 파고들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발끝이 까닥인다.

누나가 행복하다는 증거.

문득 두 사람 사이가 부러워져 나도 침대 위에 올라가 두 사람 옆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설희 누나는 손을 뻗어 내 머리 위에 올렸다.

옥 선생님은 잘생기고, 다정하고, 나에게도 정말 잘해준다. 가장 좋은 건 설희 누나가 그를 좋아하니까.

누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하니까.

나도 정말 옥 선생님이 좋았다.

***


 


“설희야.”

“…….”

“설희야.”

“으음.”

누군가가 설희를 부르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곧 꽉 닫혀져 있던 눈이 크게 떠졌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시야가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의 눈 바로 앞에 날카로운 남자의 콧날, 번쩍이는 눈동자, 그리고 다정하게 웃음 짓는 미소가 보였다.

은우였다.


“자기야…….”

반가운 그의 이름을 부른다. 방 안 온도가 높았는지 땀으로 젖어 있던 머리카락을 그가 쓸어 넘겨 주었다.


“잘 잤어?”

설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늦게까지 진료가 있었다. 안 그래도 예약환자가 많은 날이어서 난리였는데, 응급환자까지 여럿 들어와서 정신이 없었다. 모든 수술과 진료가 다 끝난 것은 10시. 입원환자를 챙기고 정리까지 끝낸 게 11시였다.

돌아와서 곰곰이 산책을 시키고 집을 정리하고 공부를 하려다가, 꾸벅거리며 은우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는 어떻게 온 걸까.

늘 그랬듯 은우가 두 팔로 안아서 옮겨준 걸까. 제 발로 걸어온 거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문득 은우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진 설희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왜?”

설희의 표정이 평소와 다른 것을 보고 은우가 물었다.


“어제도 그냥 공부하다 쓰러져 잔 것 같은데, 창피해서.”

“뭐가 창피해.”

“자기가 안아서 들어다 준 거 아냐?”

“그게 왜 창피해?”

정말 모른다는 듯, 은우가 고개를 기울이고 물었다. 미간이 좁아진다.

두 팔로 맨날 다 큰 어른인 자신을 드니 얼마나 무거울까. 그리고 맨날 책상 앞에서 손을 대고 자버리는 자신이 좀 칠칠맞게 보일 것 같아서 싫었다.


“이런 모습 보이기 싫단 말이야.”

설희의 그 말에 그가 픽 웃었다. 재밌다는 듯, 눈동자가 빛났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게 창피해?”

그와 함께 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언제나 설희는 은우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우리 사이라도 창피한 일은 있지.”

무엇보다.

그렇게 중얼거린 설희는 가만히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조금 전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촉촉한 그의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갈색의 섬세한 속눈썹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날카로운 콧날에는 굽음 하나 없다. 촉촉한 입술은 붉고 선명해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남자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 정도로 뭘 그래.”

그가 고개를 숙이면서 설희의 입술 앞에 바싹 다가왔다. 뜨거운 숨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빠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빤히 바라보고 있던 붉은 입술이 스칠 듯 가깝다. 부드럽게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겨우 안아서 옮기는 걸로 창피해하다니. 더한 것도 한 사이인데.”

그렇게 말한 남자가 천천히 설희의 귓불을 만졌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바싹 긴장이 흘렀다.


“아, 어제는 못 했지.”

그렇게 말한 남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 미묘한 뉘앙스에 설희의 등줄기에 짜릿한 감각이 흘러 내려왔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어제는 바빠서 아무것도 못 했지.”

그 흔한 키스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게.”

은우가 그렇게 말하고 손을 뻗어 설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그는 설희를 만졌다.

처음에는 머리카락만 스치던 손가락은 천천히 동그란 이마에서부터 콧날을 쭉 타고 내려와 설희의 입술을 매만졌다.

습기를 머금은 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그의 눈이 힐긋, 벽에 걸린 하얀 벽시계로 돌아갔다.


“출근 시간까지는 시간 아직 좀 있네.”

어제 너무 피곤해서 까무룩 잠이 든 탓일까. 늘 7시가 될 즈음 일어나는데 오늘은 6시쯤에 눈이 떠졌다. 곰곰이가 오늘따라 일찍 밥을 달라고 애교를 부려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출근 준비까지는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난 자신 없어.”

설희가 약한 소리를 속삭였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뚜렷이 알았다. 아침부터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은우와 함께 있는 시간은 더없이 좋았지만, 언제나 운동을 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은우와 달리 설희의 체력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죽을지도 몰라.”

그녀의 말에 은우는 손끝으로 설희의 턱을 쓸어올렸다. 턱이 저절로 올라가고, 입술이 반쯤 열린다. 그 입술 앞에 바싹 다가오며 그가 속삭였다.


“괜찮아. 넌 가만히 있어.”

마치 주문처럼 은우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할게.”

“그런 문제가 아니잖…….”

아.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설희는 말을 마저 끝내지 못했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그의 입술은 당연한 듯, 설희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흡.”

뜨겁고 거친 것이 이야기를 하느라 벌어졌던 입술 사이에 파고들었다. 아직 잠이 다 깨지도 않은 상태인데, 농밀한 그의 입맞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뒤로 넘어갈 것 같아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가 손바닥으로 설희의 목뒤를 고정했다. 그리고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으음.”

“설희야.”

“…….”

“유설희.”

남자는 비겁했다. 설희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눈빛을 하고, 부드러운 입술로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나지막하게 부르면. 거절할 수가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나의 설희야.”

아침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반쯤 열린 창문 밖에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오늘도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자극하는 옥은우라는 남자 때문에 설희는 결국 숨을 깊게 몰아쉬며 그의 옷깃을 잡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입술은 닫힐 줄을 모르고 그의 접근을 받아 냈다.

은우는 눈을 감은 채 그녀를 온통 다 빨아먹을 기세로 흡입했다. 옥은우는 아침인데도 거칠고도 급했다. 그는 가장 안쪽까지 들어와 도망가는 설희의 것을 쫓았다.

부드러운 배를 딱딱한 손가락이 쓸어내린다. 그 촉감이 간지럽고도 저릿해서 눈앞이 뱅글 돌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미 너무 잘 알았다.


“안 될까? 응?”

너를 너무나도 원하는데. 너무나도 원해서 죽을 것 같은데.

은우는 그렇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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