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밝혀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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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밝혀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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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밝혀진 진실
2023.06.20.
화면을 보는 이현의 얼굴이 찌푸려 들었다.
“이게 뭐예요?”
“보는 그대로야.”
달칵, 달칵, 이현의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은우의 마우스가 여러 가지 자료를 띄웠다.
“지금까지.”
딱딱한 은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이현 선생이 우리 병원에 와서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 정리해놓은 겁니다.”
“……뭐?”
“일부는 이미 원장 선생님이, 일부는 부원장선생님이나 내가 지적한 거지만 어쨌든 다 정리했어. 아, 물론.”
은우가 고개를 들었다.
“어제 있던 투약 실수까지.”
“어제 그거…… 설희 씨에게 들은 거예요? 그건 설희 씨가…….”
“약 조제실에 CCTV가 설치되어있다고 처음 온 날 설명해준 것 같은데.”
동물병원은 탈의실과 화장실을 제외하면 1년 전부터 전부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첫날 고지받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현의 표정을 보니 그는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건…….”
달칵, 다시 한번 은우가 클릭을 하자 화면 속의 이현이 약을 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유난히, 파란 알약이 눈에 띈다. 파란 알약은 탈수를 막아주기 위해 쓰는 지사제였다. 그 알약이 든 봉투를 왼손에, 그리고 또 다른 봉투를 오른손에 든다. 봉투 안에 물건을 넣고는 그 상태로 설희에게 건네준다.
-이게 순순이 약이에요.
이현의 지시대로 파란 알약이 들었던 봉투가 그리고 순순이의 보호자에게로 전해졌다.
즉, 한 번도 설희는 실수하지 않았다. 애초에 봉투에 담기 전에 이현의 손에서 약이 바뀌어 있었다.
이현이 미간을 꿈틀했다.
“이건.”
“한 번의 실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약 봉투를 바꾸는 실수. 약의 종류에 따라 큰 재앙이 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이다 보니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의 문제는 두 가지였다. 실수가 너무 잦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떠넘긴다는 것.
특히 두 번째 문제는 심각했다.
“25일 날 오후에 한 실수는 네가 아니라 채린 씨가 한 거라고 말을 했었지. 어제 오후의 실수는 설희 씨가, 그 외에도 보호자의 실수라든지 이것저것 남에게 문제를 돌렸어.”
“어제 일은 내가 잘못했지만, 그렇지만…….”
다른 날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이현의 행동이 멈췄다. 은우는 말하지 않고 차근차근, 창을 띄웠다.
그의 근무일지. 이현이 대충 갈겨놓았다가 수정한 것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이걸 어떻게…….”
“수정 이력이 남기도 하고, 무엇보다 네가 그럴 것 같아서 체크했지.”
“거의 매일 같이 그랬다는 이야기예요?”
“그래.”
“…….”
은우는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다분히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증거는 차고 넘치도록 있어.”
“이걸 가지고 뭘 할 셈인데요? 여긴, 형 병원도 아닌 거 알죠?”
“원장 선생님과, 지금 휴직 중인 부원장선생님께는 어제저녁에 연락드렸어. 내용 다 말씀드렸고. 내 판단에 다 공감하셨지.”
“……어떤 판단인데요?”
“넌, 돌마래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야.”
차갑게 말이 떨어졌다.
“아니, 그냥 돌마래가 아닌 어느 병원에 가서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명에 대한 중요성은 하나도 모르고, 설렁설렁 일을 하고, 제 일에 책임지지 않고.”
은우는 화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네가 만약 네가 한 실수에 책임을 지는 태도였다면, 같은 실수를 여러 번 하지 않았겠지. 수술실 CCTV에서도 몇 번인가 수술 중 실수하는 걸 확인했어. 그 정도면 실수라고 해야 할까, 실력이라고 해야겠지.”
은우의 냉철한 지적에 이현은 말이 없어졌다.
“한 달 여유를 줄 테니, 나가줘야겠어. 이건 내 판단이 아니라 원장 선생님 판단이야.”
“……말이 돼요?”
“말이 돼. 그리고 앞으로는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거 피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또 무슨…….”
“네가 어딜 가든 내가 이 정보를 기꺼이 제공할 마음이 있거든.”
이현은 다른 일은 몰라도 동물병원에서만큼은 일해서는 안 됐다. 지금은 아직 큰 사고를 친 적이 없어도,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동물의 생명이 위태로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병원의 신뢰마저 깨뜨릴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현은 매끈한 외모에 현란한 언변, 그리고 확실한 학력이 있었다. 그 정도의 이력이면 제약회사나 화장품 회사 등에 수의직으로 쉬이 들어갈 것이다. 굳이, 병원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너라면 다른 회사에 금방 취직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이현은 쉬이 납득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겠지.
“……하, 형이 뭔데 그런 짓을 해요?”
“나? 아무것도 아니지.”
은우가 일어서며 말했다. 큰 키에 단단한 체구의 위압감이 이현을 짓눌렀다.
“근데 넌.”
“…….”
“넌 뭔데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했지? 이렇게 하고도 들키지 않을 줄 알았어?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은우의 말에는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다.
“내가 지켜볼 거야, 최이현.”
그는 완벽하게 진심이었다.
***
“최이현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두신다니 놀랐어요.”
이현의 퇴사가 결정된 것은 갑자기였다.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그는 어느 날 정상 출근을 하고 오후 진료를 보지 않고 그대로 그만두었다.
채린의 말에 매니저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게. 원장 선생님이 퇴사를 권유하긴 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보통 좀 있다 나가지 않나?”
“그러게요.”
“근데, 왜 채린 씨, 최 선생이 그만둔 게 섭섭해요?”
“아아뇨오. 전혀요.”
채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갑자기 그만둔 게 이상하기두 하고, 또 역시 예의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갑자기 그만두셔서 요즘 잘 나오지 않으시던 원장 선생님도 나오셔야 하고, 옥 선생님도 엄청 바빠지셨잖아요. 임신하신 부원장님까지 주에 1회 나와서 진료를 보시고.”
“그렇지, 아무래도.”
매니저가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좀 이상한 사람이긴 했어.”
“그러게요.”
매니저가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어, 근데. 채린 씨.”
“네?”
“그분, 오셔서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아.”
매니저의 말에 채린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유난히도 각지고 큰 차가 눈에 들어왔다.
진호였다.
“얼른 가봐. 다 했으니까.”
채린은 매니저와 같이 마지막 마감 작업 중이었다. 진호는 얼마 전부터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채린은 고개를 저었다.
“다 하고 갈게요.”
진호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 뻔했으므로.
***
“이렇게 늦게 끝나는 날은 먼저 가셔도 되는데.”
채린이 차에 타며 가장 처음으로 한 말에 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늘은 진료가 밀려 마감이 늦어질 것 같다고 아까 낮에 진호에게 연락한 참이었다. 하지만 진호는 1시간 넘게 병원 앞에서 기다려줬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요?”
“매일 기다리시는 게 죄송해서요.”
“난 하나도 안 귀찮은데요.”
지난번 채린의 집 앞에 이상한 남자가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채린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호에게 연락을 했었다. 연락도 하지 않다가, 다소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을 텐데도 진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로 달려와 줬다.
그날은 호텔에 가서 잘 잤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 수상한 남자는 한두 번인가 더 집 앞에서 목격됐다. 너무 무서웠고, 딱히 갈 곳도 없던 채린은 당장 살기 위해 저렴한 방을 구해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셰어하우스. 안전한 CCTV와 오토록이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너무 급하게 구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차로는 고작 15분이면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진호는 그녀에게 카풀을 제안했다. 마침 왔다 갔다 하는 길이라며.
그의 집의 위치를 듣고, 그가 일하는 원더풀랜드의 위치를 파악하자 확실히 그가 지나는 통로이긴 했지만, 언제나 출퇴근 시간이 딱 맞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채린이 기다리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공부나 다음 날 준비를 하며 동물병원에 남아 있겠건만, 보통은 진호가 늦게 끝나는 채린을 기다리는 일이 더 많았다.
카풀에 대한 소정의 비용도 지불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충분한 액수 같지는 않다.
채린이 미안함에, 가는 차 속에서 말이 적어졌다.
***
진호가 그녀를 데리러 온 이후, 채린은 차에서 말이 없었다.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경청을 하다 보면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가벼운 잡담을 스스로 꺼내던 채린이었다.
“부담스럽습니까?”
“아, 아니에요.”
진호가 본 채린은 가녀리면서도 강했다. 언제나 자신보다 남에 대한 배려가 많았고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진호에게도 한번, 늘 자신에게 배려해주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미안하길 바란 건 아닌데.
그저 진호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게 좋아서 온 건데,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부담이라면 여기서 멈추려고 했다.
답답한 진호의 마음과는 달리 차는 부드럽게 달려 채린의 집으로 향했다. 차가 멈춰서자, 채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채린 씨.”
“네?”
“나, 오늘 묻고 싶은 거 있어요.”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 2개월? 3개월?
이미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또 거절당하는 진호를 배려하기 위해 채린이 그러는 거라면, 부담스러운데도 어쩔 수 없이 카풀을 하고 있는 거라면, 이제는 놓아줘야 했다.
“네, 뭐요?”
“카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네?”
“아니면 나랑 만나는 거라든지. 혹시 거절하고 싶어서 말은 하고 싶었는데, 내가 부담스러워서 어려웠다면 미안해요.”
“아…….”
“……원래 나 같은 타입, 취향 아니었잖아요.”
진호의 말에 채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는 듯 잠시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왜.”
“오늘도 너무 미안해하길래. 채린 씨는 다른 사람보다 남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말 못하는 것 같아서.”
지난번, 처음 거절당했을 때도 채린이 얼마나 망설였는지 누구보다 진호는 잘 알았다. 병원 뒤에서, 자신에게 그만 연락하라고 했던 그녀가 손끝을 꽉 쥐고 하얗게 될 때까지 있었지.
어떠한 이유에서 자신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순간의 감정이었던 거다. 그건.
“그러니까, 그만 올게요. 내일부터는. 출퇴근은 이제 혼자 하셔야겠지만.”
안 그래도 체력이 부족한 채린이 아침저녁으로 통합 두 시간 걸려 출퇴근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진호의 말에 채린이 입을 열었다.
“……네, 출퇴근은 앞으로 혼자 할게요.”
끝났다. 진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쓰디쓰게 웃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귓가에 채린의 다음 말이 꽂혔다.
“하지만 앞으로도 진호 씨는 계속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