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갑작스러운 접촉
(19/80)
19화. 갑작스러운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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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갑작스러운 접촉
2023.01.03.
신난다, 첫 보정이다.
아침에 연습한 골든래트리버 똘이와 크기가 달라 처음에는 조금 애먹었지만, 치와와도 얌전해서 다행히 귀 청소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너무 꽉 잡지 않도록 주의하며 설희는 배운 대로 행동했다. 진료를 위해 치와와를 살피던 은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 근데 귀 쪽 보니 말라세지아가 좀 심하네. 약 좀 가져와야겠습니다.”
“제가 가져올까요?”
“아뇨, 내가 금방 가져올게요. 솜털이 진찰대에서 안 떨어지도록 잘 보고 있어요.”
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설희는 치와와를 잡았다. 하얀색 털의 자그마한 치와와는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깜빡깜빡. 눈을 깜빡이며 얼마나 얌전한지.
“끼잉.”
옥 선생님이 나가도 문제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솜털이를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탁. 옥 선생이 나가고 문을 닫자마자 갑자기 상황은 돌변했다.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 있던 치와와가 크게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높였다.
“멍!”
크게 짖더니, 진찰대에서 나가려고 앞으로 돌진했다. 작은 다리가 허우적대며 보드라운 흰털이 설희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왜 이래, 솜털아, 조금만 참아봐.”
몸이 작은 치와와가 진찰대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다간 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거야. 그렇게 되면.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강아지도 생명이 위험해지고, 나에게 보정을 맡긴 옥 선생님도 난감해질 거고.
“멍멍!”
“가지 마, 솜털아.”
당황해서 설희가 앞으로 뽀르르 달려 나가는 작은 엉덩이를 두 손으로 쥔 순간, 치와와가 인상을 찌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나아가는 걸 방해하는 그녀의 왼손을 꽉 물어버렸다.
“아야!”
높은 비명이 진료실에 울려 퍼졌다. 밖에 잘못하면 들릴 것도 같은데,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엄청난 통증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작은 치와와인데, 얼마나 사나운지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솜털아, 제발, 응? 제발.”
왜, 왜 이렇게 안 떨어지지?
고작해야 몸의 길이가 삼십 센티도 안 되는 치와와인데 힘이 장사였다. 아무리 손을 빼내려 해도 꽉 물은 입은 벌어질 줄 몰랐다. 발버둥 쳐봤자 날카로운 이빨이 오히려 살에 더욱 파고들기만 했다.
“크르르릉!”
오른손으로 치와와의 입을 벌려 겨우 치와와의 입에서 왼손을 뺄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진정을 시키고 나서야 겨우 물린 손을 확인했다.
“큰일 났네.”
왼손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3㎝도 넘게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아까 아침에 보정 연습을 하면서 채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물리거나 개가 다치거나 하면 그건 다 보정 잘못한 사람 책임이거든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다 내 책임.
분명히 옥 선생님이 알면 엄청 혼나겠지. 설희는 밖에서 누가 들어오나 목을 길게 빼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갑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옥 선생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다행히, 자신이 비명을 지른 것을 들은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오케이. 아직 안 오는구나. 아직 기회가 있어! 완벽범죄를 저지르자.
치와와 솜털이를 오른손으로 안은 채로 그녀는 서둘러 휴지를 가져왔다.
“으르르르릉.”
치와와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틈만 나면 설희를 물려 했다. 마치 한 마리의 상어처럼 이를 드러낸 채 머리를 휘둘렀다.
크앙, 크앙.
무섭기도 해라.
“얘,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우리 병원에는 너보다 더 무서운 저승사자가 있거든.”
그렇게 중얼거리며 휴지로 진찰대며 바닥에 뚝뚝 떨어진 피를 닦아 냈다. 아픔보다도, 은우에게 무능력하게 보일까 봐 두려웠다. 이제 겨우 수습 딱지를 뗐는데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왜 아까 그렇게 화를 냈니? 아파 죽는 줄 알았잖아.”
언제 은우가 진료실로 들어올지 몰라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치와와에게 말을 걸자, 솜털이는 여전히 화를 냈다.
“으르렁.”
다시 짖으려는 그때, 옥 선생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 약을 든 은우가 설희와 설희가 품에 안고 있는 치와와를 바라보았다.
뚝.
아까까지만 해도 설희를 당장이라도 물으려고 으르렁대며 날뛰던 솜털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옥 선생이 진료실에 들어오자 입을 꼭 닫고 얌전하고 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솜털이 너,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둘이서 괜찮았어요?”
옥 선생의 말에 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았죠, 당연히.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아, 최 선생님이 뭐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셔서.”
“아아, 그렇군요. 하하.”
설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왜 웃어요?”
옥 선생이 수상하다는 듯 묻자, 설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저는 웃는 거 좋아하잖아요.”
설희는 혹시나 손이 보일까, 주머니 안쪽으로 깊숙이 왼손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옥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닌데? 유설희 씨 병원에서 내 앞에서는 절대 안 웃잖아요. 맨날 긴장한 얼굴이면서.”
그거야 병원에서는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특히 옥 선생 앞에서는 절대로.
들키지 않기 위해, 설희는 안고 있던 솜털이를 진료대 위에 내려놓고 옥 선생에게 밀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흐음.”
“죄송한데, 지금 화장실이 사실 너무너무 가고 싶은데요, 다녀와도 될까요? 옥 선생님이 너무 안 오셔서, 지금 너무 급하거든요.”
그리고 쌩, 밖으로 향했다.
옥 선생이 안 보는 것을 확인하고 설희는 고개를 숙여 서둘러 상처를 확인했다.
“아야…….”
아까는 옥 선생한테 들킬까 봐 아픈 것도 몰랐지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상처가 욱신욱신 아팠다. 찢어진 단면에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힝.”
지금 시간 6시. 앞으로 한 시간이면 병원 문을 닫는다. 그러고 나서는 청소하면서 옥 선생에게서 떨어질 수 있어. 한 시간만 참자.
서둘러 상처를 물로 씻고, 밴드를 찾아 손에 붙였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얼른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 머리를 쓴 덕택에 들키지 않고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청소 시간이 되자, 설희는 겨우 한숨 돌렸다.
“안 들켰다.”
서둘러 은우에게서 멀어진다. 청소 시간이니까, 바닥 물걸레질을 하는데, 걸레 자루를 밀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 아팠다.
얼른 해야지. 얼른 하면 얼른 집에 갈 수 있어. 내일 왜 다쳤냐고 하면 집에서 칼로 수박 썰다가 손까지 썰어버렸다고 하자.
거의 청소가 끝날 무렵 문이 벌컥 열리고 은우가 들어왔다. 아까 분명히 접수대 쪽에 있었는데, 여긴 왜 왔지.
은우가 눈을 얇게 뜨고 설희를 바라보았다.
“유설희 씨.”
“네.”
“나한테 지금 숨기는 거 있죠?”
미심쩍은 그의 말에 설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요? 제가 선생님께 숨기는 게 뭐, 뭐가 있다고요. 저는 진실한 사람이에요.”
“아닌 것 같은데.”
은우가 손을 뻗어 등 뒤로 숨기고 있던 설희의 왼팔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단단하고 큰 손안에 설희의 손이 갇혔다.
뜨거운 체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망했다. 안 들키려고 했는데, 결국 알아챘구나.
은우는 설희의 손을 들어 밴드가 붙어있는 곳을 확인했다.
“이 상처, 왜 생긴 거예요? 도대체 언제?”
그의 미간이 좁아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설희가 가능한 한 환히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추임새를 넣어가며 소리를 높여 종알댔다.
“어, 어제 수박 썰다가 잘못해서 손가락을 썰었어요. 바보 같죠?”
이 시즌에는 자주 있는 일이에요. 워낙 수박을 좋아해서.
태연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긴장해서인지 자꾸만 말을 더듬었다. 말투도 어수룩하다. 설희가 서툰 변명을 시작하자, 은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닌데.”
“…….”
“아까 설희 씨 낮에만 해도 왼손에 아무 상처도 없었지 않았나.”
내 왼손은 또 언제 봤지. 진짜 관찰력 하나는 세계 최고이다.
설희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 다시 말했다.
“정말인데요. 어제 난 상처예요.”
그의 눈동자가 설희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파르르, 눈치도 없이 눈동자가 떨린다.
“좀 볼게요.”
곧 은우가 조심스레 상처에 붙어있던 밴드를 뜯었다. 약간 아팠지만, 부드러운 손길 때문인지 참을 만했다. 찢어진 상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깊었다.
“유설희 씨, 나 바보 아니에요.”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무언가 체념한 말투에 입술을 깨물었다. 칼로 썰린 예리한 상처와 개에게 물린 둔탁한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수의사인 그가 상처까지 확인한 이상, 몰라볼 리 없었다.
결국 설희가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아까 환견에게 물렸어요.”
어차피 혼날 거면 그냥 혼나자. 더 거짓말하다가는 일만 커져.
아니, 이미 커졌는지도 모른다.
“언제 물렸습니까? 나랑 같이 계속 있었는데.”
“아까 치와와 솜털이…… 말라세지아 약 가지러 가셨을 때요.”
“왜 말 안 했어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기껏 온 기회를, 다소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작업의 실수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혼날까 봐 그랬습니까?”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 말을 삼키자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소독은 했어요?”
설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쪼록 옥 선생에게 들키지 않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냥 간단하게 밴드만 붙었다. 은우는 여전히 그녀의 왼손을 잡은 채 진료실로 들어갔다.
작고 얇은 설희의 손과는 다른 크고 강인한 손. 늘 섬세하게 수술을 하지만 강한 남자의 손에 긴장이 차올랐다.
화났나? 그랬겠지? 보정도 잘 못 한다고. 기껏 맡겼는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그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속이 탔다.
그러나 발을 동동 구르는 설희와는 달리, 은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처를 소독했다. 소독을 바라보다 보니, 저절로 그의 손을 바라본다.
남자답게 관절이 튀어나온 손. 손가락이 참 보드랍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손위를 쓸었다.
살결 위에 파동이 스쳐 지나간다. 간지럽다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뭔가 찌르르 흐르는 전기 같은 감각.
움찔, 몸이 흔들렸다.
“왜, 왜요?”
왜 손을 쓸었을까. 뭔가 상처가 이상하기라도 한 걸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굴을 쳐다봤으나 그의 표정에는 미동이 없었다. 담담한 얼굴로 설희의 상처를 다 닦아주고는 고개를 들었다.
은우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긴장되어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호흡을 크게 들이켤 때마다 그의 향기가 폐부로 스며들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