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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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에서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시즌 종료까지 단 11경기만을 남겨둔 채 발생한 그 기현상은 유독 사직구장에 집중됐다.
내야보다 외야가 먼저 매진되고, 외야에 온 사람들은 전부 글러브를 하나씩 챙겨왔다.
목표는 하나.
김수호의 홈런볼을 잡는 것.
이제부터 치는 김수호의 홈런은 전부 기록이다.
이미 돌핀스전에서 2연속 홈런을 치면서 한국 최다 홈런 기록 타이에 올랐다.
이제 1개만 더 치면 한국 신기록이었고, 아시아 최다 홈런까진 6개가 남았다.
쉽지 않은 기록이었다.
투수들은 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김수호와 승부를 피할 거다.
순위가 정해진 팀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아직 순위 경쟁이 한창인 팀들에겐 김수호는 기피 대상 0순위다.
물론 욕을 조금 먹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마! 마! 마! 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조금 수준이 아니었다.
김수호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자 박수 대신 투수를 향해 야유와 비난이 쏟아진다.
결국 챌린저스 감독이 볼넷을 내준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심판에게 항의했고, 심판이 겨우 중재한 끝에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두 타석 연속 볼넷은 후폭풍이 거셌다.
“마! 공 똑바로 안 던질끄믄 끄지라!”
“저런 놈이 무슨 투수라고. 투수란 놈이 자존심도 없냐!”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물론 챌린저스 박민준은 이런 걸로 흔들릴 만한 연약한 멘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결국 세 번 연속으로 김수호를 거른 박민준과 챌린저스는 마린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하지만 후폭풍이 너무 거셌다.
가장 중요한 건 5강이고 승리를 위해 거르는 게 맞았다는 주장은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쏙 들어갔다.
그나마 챌린저스는 양호했다.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심지어 박민준의 개인 SNS에 극성팬들이 테러까지 저질렀지만 이제 더 이상 마린스와의 경기는 없었다.
그나마 김수호가 경기가 끝난 뒤 ‘볼넷도 경기의 일부. 승리를 위한 선택을 존중한다.’는 인터뷰를 남겨 겨우 진화에 성공했다.
문제는 마린스와 경기가 남은 다른 팀들이었다.
이미 김수호를 거를 때 어떻게 됐고, 박민준이 무슨 욕을 먹은 지 봤다.
자팀 팬들도 승리를 위한 선택이란 건 알지만 딱히 내켜 하는 여론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잔여 경기가 10경기로 줄어들었을 무렵 마린스에서 공지가 나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김수호의 57호 이후 홈런공을 구단과 선수에게 돌려주는 팬들에게 김수호와의 만남, 친필 사인이 적힌 방망이, 미트, 유니폼, 공 등을 증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주호의 은퇴 경기에 초청 및 강주호도 나서서 사인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기록이 되는 공이 중요하지, 그 이전 공은 그다지 큰 가치는 없었다.
추가로 공을 반납했는데 김수호가 더 이상 홈런을 못 쳐서 그게 기록 공이 될 때는 추가로 한국시리즈 시구 및 초청이라는 보상을 걸었다.
물론 김수호의 홈런공을 노리는 사람들이 전부 마린스 팬들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마린스 팬들에게 유효한 보상이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작년 한국시리즈 시구 후기]
(사진)
-다들 알겠지만 난 작년 한국시리즈에 시구했었음. 김수호랑 마운드에서 내려오면서 대화도 하고 사직 만원 관중이 나를 향해 해주는 환호는 진짜 평생 못 잊을 추억이다.
거기에 경기까지 이긴다? 진짜 마린스 팬이라면 평생 술안주다. 개꿀임.
물론 그 가치가 돈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라고 얘기는 못 하겠지만 평생 자랑거리 + 술안주값이라면 충분하지 않겠냐?
이어서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했던 박민수의 글이 올라오면서 꽤 큰 호응을 얻었다.
“여보! 어디가!”
“공 잡으러! 수아야! 아빠가 꼭 김수호 만나게 해줄게!”
그것 외에도 마린스 팬인 어린 자식을 둔 부모나 원년 때부터 마린스의 팬들 역시 고민을 시작했다.
김수호와 만나게 된다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니까.
물론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공을 잡아야 할 수 있는 고민이지만, 로또를 사면 당첨금으로 뭘 할지부터 고민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경쟁을 줄이긴커녕 오히려 더 불타오르게 했다.
그리고 한껏 불타오르는 사직에 프렌즈가 마린스를 상대하기 위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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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연일 축제 분위기다.
거의 날마다 축하할 일이 터져 나오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린스가 승리하면 역대 최다승, 김수호가 홈런 치면 역대 최다 홈런.
물론 모두가 기뻐하진 않았다.
특히 챌린저스의 김수호 3연타석 볼넷으로 한창 예민한 지금, 바로 다음 상대인 프렌즈 선수단은 고민에 빠졌다.
김수호를 어떡할 것인가.
정답은 금방 나왔다.
“부산까지 온 팬들이 꼬리 말고 도망치는 걸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겠지?”
이미 프렌즈는 총력전을 예고했다.
올스타전 직후 마린스에 충격의 스윕패를 당하면서 사실상 1위를 포기했다.
그나마 이후 다시 만난 3경기에서 한 경기는 취소, 1승 1패를 나눠 가지며 체면을 살렸다.
문제는 마린스와의 상대 전적이 처참했다.
현재까지 4승 10패.
우승을 두고 다퉜던 1·2위 팀답지 않은 전적이었다.
특히 3연전 중 스윕패 1회, 루징 시리즈 3회로 위닝시리즈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시리즈에 가기 전 반드시 기세를 끌어올려야 했다.
프렌즈의 목표는 이번 2연전을 전부 승리하고 김수호도 홈런 없이 시리즈를 마치는 것.
그걸 위해 1, 2선발인 사무엘 우즈와 다넬 제이스가 대기 중이었고 타선 역시 완벽했다.
거기에 최근 분위기도 좋았다.
타선은 타선대로, 투수는 투수대로 제 역할을 해내며 4연승, 2위인 이유를 증명했다.
그리고 1회 초, 10일에 달하는 긴 휴식을 즐기고 복귀한 허하준을 상대로 선취점을 뽑았다.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선두타자 김혁이 번트 안타로 출루, 서도하가 다시 유격수 깊은 곳으로 타구를 보냈다.
이주학이 몸을 날려 잡고 1루까지 좋은 송구를 보여줬지만, 서도하의 발이 더 빨랐다.
기록은 내야 안타.
그리고 오대현이 작전대로 번트를 시도했다.
“아웃!”
3루 라인 선상을 따라 흐르는 완벽한 번트를 대면서 1사 주자 2, 3루.
-따아악!
그리고 페드로 산체스가 외야로 타구를 날렸다.
“아웃!”
잭 미켈이 공을 잡은 동시에 3루 주자인 김혁이 뛰었고 강한 송구가 홈으로 향했지만, 김혁의 발이 더 빨랐다.
그 사이 서도하가 영리하게 3루까지 들어가면서 2사 주자 3루.
“미켈한테 다시 말해. 이런 타구는 홈을 노리는 것보단 2루 주자를 묶는 데 집중하라고. 안 고쳐지면 치호나 주호가 콜하면서 조절해보고.”
오늘 경기, 양 팀 모두 주전과 1선발이 나왔다.
이정훈 감독도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경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프렌즈, 호올스 트레이드의 중심이었던 강신이 타석이 돌아왔다.
“강신이! 안타!”
소수의 프렌즈 팬들은 강신이가 한 방을 쳐주길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추가 득점은 없었다.
그래도 1점, 그것도 허하준을 상대로 선취점을 냈다.
그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다.
프렌즈의 선발인 사무엘 우즈 역시 마린스의 타선을 꽁꽁 묶었다.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김수호가 큰 타구를 날렸지만, 서도하의 글러브에 그대로 안착했다.
이후 두 투수는 별다른 위기 없이 경기를 끌고 갔다.
스코어는 계속 1대0.
4회 말, 사무엘 우즈가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 들어온 김수호를 노려봤다.
‘아까 내 구위가 먹혔다.’
사무엘 우즈는 구위에 자신 있는 투수였다.
특히 홈인 잠실을 쓸 때는 구위로 찍어누른다는 말이 어울리는 투수였다.
하지만 사직, 그리고 김수호는 달랐다.
언제, 어디서든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
평소라면 조심스럽게 접근했겠지만 1회의 기억도 있고 마린스 팬들에게 홈런이 무서워 쫄아서 도망쳤다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사인을 내던 박희준이 계속된 사인 거부에 의도를 눈치채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투수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포수는 몇 없었고, 특히 에이스이자 외국인 선발 투수인 사무엘 우즈의 의견은 존중해야 했다.
결국 원하는 대로 포심 사인을 내고 자리를 잡았다.
강타자에게 빠른 공, 사무엘 우즈가 구위에 자신 있을 때 종종 하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자만은 한 끗 차이.
예상이라도 한 듯 김수호는 망설임 없이 휘둘렀고 공은 사직의 높은 담장을 순식간에 넘겨버렸다.
프렌즈가 겨우 뽑은 한 점은 김수호의 한 번의 스윙으로 맞춰졌다.
[김수호! 한국 신기록! 대단합니다! 시즌 57호 홈런을 치며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30년 만에 한국 최다 홈런을 경신했다.
“내가 주웠다! 와아아아아!”
57호 홈런공을 주운 팬은 흥분에 휩싸여 포효를 내질렀다.
혹시 기증 의사가 있나 찾아온 구단 직원에게 고민 좀 해보겠다고 돌려보냈다.
이후 사무엘 우즈가 흔들리지 않고 투구를 이어갔다.
다만 허하준은 그걸 넘어선 투구를 할 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1점을 내준 이후 12타자 연속 아웃.
1회의 실점은 쉬는 기간이 길어서 그랬을 뿐이라며 압도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이어서 6회 말, 마린스의 공격.
이규영이 안타를 치면서 만든 김수호의 세 번째 타석.
2사 1루의 기회에서 프렌즈 배터리는 이번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이전 타석에 홈런을 맞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볼넷으로 내보내면 2루에 주자가 간다.
부담스러운 상황에 볼 카운트는 2-1.
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진 커브가 존을 향해 급속도로 꺾여 들어갔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대처하기 까다로운 공.
하지만 김수호의 방망이와 공의 궤적은 정확하게 수평을 이뤘다.
-따아아아악!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수호야! 미쳤다! 와아아악!”
광란의 사직구장에서 천천히 베이스를 돌고 있는 김수호 넘어 이번에도 공을 잡아 흥분한 팬이 화면에 잡혔다.
동시에 57호 공을 잡았던 팬은 급하게 주변에 있던 구단 직원을 찾았다.
“공 지금 반납해도 김수호 만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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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김수호 선수! 정말 영광입니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나이 지긋하신 어른이 나를 향해 저런 말을 하는 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튼 공을 기증해주시다니,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같이 온 가족들에게 전부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찍은 뒤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58호 공은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지만 딱히 미련은 없었다.
사실 홈런 기록에도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지금 하고 싶은 건 공약으로 내세웠던 100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서 두 가지 모두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시즌 97승째,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올 가장 유력한 팀인 프렌즈에 승리.
오늘 경기가 한국시리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없겠지만 아무래도 정규시즌 전적이 압도적이라면 분위기가 좋으니까.
그건 프렌즈도 마찬가지인지 다음 날에도 타순의 변경은 있었지만 전부 주전을 내세웠다.
오늘은 프렌즈와 시즌 마지막 경기.
즉, 오늘 이기는 팀이 마지막까지 기세를 가져갈 가능성이 컸다.
다만 우리는 라인업에 변화가 있었다.
우리 선발은 웰링턴.
웰링턴도 거의 10일 가까이 쉬며 체력을 보충한 상태였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건 내가 아니라 김성준이 하게 됐다.
나는 지명타자로, 강주호가 1루수로 출전했다.
불안함이 없진 않았다.
아무래도 웰링턴의 커브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적이 오가는 경향이 있어서.
더그아웃에서 지켜본 김성준의 포구는 꽤 안정적이었다.
다만 가끔 커브를 조금 끌어올리려다가 공을 놓치는 모습이 조금 보이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았다.
“굿! 성준이, 많이 늘었는데?”
강기호도 마음에 드는지 김성준을 칭찬했고 1회 초는 무실점으로 끝났다.
웰링턴도 꽤 만족한 눈치였다.
이제 1회 말 공격.
이규영이 당연하다는 듯 타석으로 향했고 이주학이 방망이를 챙겼다.
오늘 김성준이 들어오고 박은성 대신 이준이 선발로 출장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최치호가 2번으로 들어가지만, 여러 가지 타순을 실험하기 위해 이주학이 2번으로 들어갔다.
“볼!”
-따악!
이규영은 깔끔하게 볼넷으로 출루했고 이주학은 오랜만에 들어간 2번 타선에 꽤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큰 문제 없이 스윙을 해냈다.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쳐내면서 무사 1, 2루.
박희준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에 따라 내야수들이 위치를 조정했다.
코너 내야수들은 장타 방지를 위해 라인에 붙었고 2루수, 유격수는 평소보다 넓게 위치했다.
외야수들도 거의 담장에 닿을 정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장타를 의도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이 보인다.
번트를 댈 상황도 아니고 웬만한 뜬공은 전부 저 수비수들을 피하기 어려울 거다.
근데 한 가지 문제는.
-따아아악!
담장 위에 떨어지는 공을 잡을 수 있는 시프트는 이 세상에 없었다.
물론 담장 위에 있는 관중 중 한 명이 글러브로 안정된 포구를 선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저건 아웃이 아니다.
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어째 프렌즈가 아웃을 잡았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저분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