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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61화 (161/203)

161화 오늘은 000날, 우리들 세상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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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어제도 사인 원정을 나섰던 이주학과 이호민과 일찍 만나 구장에 도착했다.

“와, 진짜 개떨리네.”

“나도. 어제 진짜 잠도 못 잤어. 수호야, 넌 어땠냐?”

“나도 비슷해. 그래도 하스가 말해준 대로 열심히 했잖아. 이제 경기만 열심히 하자.”

지난 새벽. 하스의 조언을 듣고 나름 노력하긴 했는데 이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스가 특별한 조언을 해준 건 아니었다.

정론이라면 정론이다.

진짜 그런 저주가 있다면 그 당사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게 먼저라는 말을 해줬고, 우리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아무래도 어린이날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니겠냐는 마음에 경기 전에 아이들을 찾아 열심히 사인을 해줬고, 경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보일 때마다 다가갔다.

“근데 어제 진짜 가슴이 좀 찡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간질간질한 그런 거 못 느꼈냐?”

“어? 너도? 나도.”

둘의 말처럼 사실 어느 순간부턴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주 같은 건 잊고 사인에 몰두했다.

시간상 사인만 해준 게 미안할 정도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오히려 힘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상대적으로 피곤한 몸에 비해 마음은 편안했다.

경기 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이제 남은 건 경기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우리 셋 중에 오늘 선발로 나서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거 정도?

“하, 왜 하필 최정윤 선배가 선발이냐. 운도 지지리 없지.”

이호민이야 얼마 전에 등판했으니 당연히 못 나왔고 이주학은 상대 선발이 최정윤이라 타선에서 빠졌다.

이주학의 전체적인 성적은 괜찮지만, 그건 전부 우완 투수를 상대로 뽑은 기록이다.

좌완이 나왔을 때 성적 차가 좀 심했다.

특히 최정윤은 현재 리그 좌완 선발 투수 중 탑을 달리는 투수.

비시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봐도 한 단계 스텝업을 한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주학아, 손 좀 줘봐.”

“어? 손?”

이호민이 이주학의 손을 잡더니 내 뒤로 왔다.

무슨 짓을 하나 지켜보니까 갑자기 내 등에 손바닥을 댔다.

“자. 수호야. 네가 오늘 우리 몫까지 하는 거다?”

“...뭐하냐?”

“뭐긴. 기 주는 거지. 우리가 어제 한 걸 썩히는 건 아깝잖아. 야. 힘 좀 더 줘봐.”

“힘? 오케이.”

둘의 생쇼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오케이. 됐다. 너 이제 우리 덕분에 오늘 홈런 3개 친다.”

“3개? 고작?”

“와, 나 지금 박탈감 느꼈어. 3개? 고작? 미친 내가 지난 시즌에 겨우 한 개 쳤는데?”

그렇게 놀면서 경기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김수호 선수? 이주학 선수? 이호민 선수?”

“여기 있어요.”

“아, 여기 계셨네요?”

목소리만 들을 땐 몰랐지만 얼굴을 보니 누군지 알았다.

구단 마케팅 직원인데 갑자기 우리를 찾을 일이 있나?

“무슨 일이세요?”

“혹시 새벽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보셨나요?”

“아뇨? 오늘 낮 경기라 일찍 잤는데. 왜요? 뭐 올라왔어요?”

“아, 예. 안 좋은 건 아니고 이런 내용인데요.”

“야. 같이 봐.”

“나도.”

직원이 건네준 핸드폰에 우리 셋의 시선이 고정됐다.

[김수호 선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7살, 4살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저와 제 와이프 모두 마린스를 좋아했고, 아이들도 저희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마린스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실 야구 때문에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더 많았지만, 어제 있었던 일 덕분에 아이들이 정말 좋은 추억을 남기게 됐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어제 김수호, 이주학, 이호민 이 세 선수가 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줬고 저희 아이들 역시 사인을 받았습니다.

일이 바빠 와이프만 같이 구장에 보낸 게 미안했는데 선수들 덕분에 아이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됐습니다.

지금도 유니폼을 입고 사인 공을 손에 쥐고 잠을 자고 있네요.

다행히 어린이날엔 쉴 수 있어서 가족끼리 야구를 볼 수 있게 됐는데 지든 이기든 행복한 관람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큰 추억을 만들어주신 선수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ㄴ 캬. 진짜 실력 되지 외모 되지 인성 되지. 못 참겠다. 바로 유니폼 사러 간다.

ㄴ 응~ 유니폼 못 사~ 이미 품절이야~

ㄴ 이호민도 퍼펙트게임 때문에 품절이네. 하. 걍 주학이 유니폼 하나 샀다.

ㄴ 나도 어제 직관 갔는데 셋이서 아이들만 발견하면 사인해주겠다고 하는 거 존나 보기 좋더라.

ㄴ 경기 끝나고도 끝까지 남아서 해주던데? 걍 세 명 다 갓갓갓임.

ㄴ 그래. 야구 좀 못하면 어떠냐. 좋은 추억만 만들어주면 됐지. 걍 어린이날 11연패 해도 우리 1등이니까 부담 없이 응원이나 하자.

ㄴ 진짜 어릴 때 저렇게 해주면 평생 팬 되지. 나도 강주호 신인일 때 사인 해준 거로 맨날 욕하면서 야구 봄 ㅋㅋㅋㅋㅋ

ㄴ 엌ㅋㅋㅋ 나는 오연석ㅋㅋㅋㅋ

ㄴ 진짜 이런 거 다른 선수들도 보고 배워야 한다. 아직도 사인 피해 다니는 놈들 있더만.

ㄴ ㅇㅈ. 어른은 몰라도 어린애들은 무조건 해줘야 한다고 봄.

댓글까지 전부 읽고 핸드폰을 돌려줬다.

그 글을 본 소감은 좀 멋쩍었다.

사인을 해준 의도는 그리 건전한 의도가 아니었다.

전부 어린이날의 패배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한 거니까.

이주학과 이호민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쳤다.

“세 선수분 덕분에 저희가 오늘 아침부터 깜짝 놀라서 급하게 출근했거든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전혀 죄송할 필요 없으세요. 아, 맞다. 지금 단장님이 찾으시는데 혹시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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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예민한 건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만원 관중이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오게 됐지만 성적이 안 좋을 땐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일 정도로 큰 이벤트였다.

보통 그 한 번은 어린이날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프론트 입장에서도 어린이날 성적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어린이날 10연패를 겪으며 상처받은 마린이(마린스 어린이)가 부지기수다.

그런 만큼 올 시즌은 더더욱 열심히 어린이날 이벤트를 계획했다.

지금까지 성적도 좋았고 연패를 끊으면서 분위기도 좋다. 이제 이기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 찾아온 것이 바로 삼인방의 사인회였다.

“난 진짜 전생에 거북선 조타수였을 거다. 마린스, 거북선. 잘 어울리네. 아니지, 단장이니까 조타수보단 함장이 어울리나?”

마린스 단장 오민찬이 혼자 있는 단장실에 앉아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만큼 오민찬의 기분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다른 무엇보다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팬들의 생각이 괜히 어린이날에 갔다가 지면 어떡하지가 져도 괜찮다로 바뀌었다.

사소한 변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야구팬들이 패배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팀이 1등을 달리고 있어도 이기면 하루가 행복하고 지면 다음 승리까지 불행한 게 야구팬 아니던가.

그만큼 선수들도, 직원들도 안고 있던 부담감을 한층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단연 이 상황을 만든 김수호가 이뻐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기엔 오민찬이 가진 야망이 너무 컸다.

오민찬이 생각을 정리하며 세 선수를 기다렸고, 마케팅 직원이 선수들 데리고 왔다.

“오셨습니까? 하하하하. 여기 앉으시죠.”

오민찬은 원래 마린스의 대대적인 리빌딩을 위해 선임된 단장.

때문에 선수들에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시작한 존댓말이 어쩐지 오늘만큼은 마음에 안 들었다.

마음 같아선 꽉 껴안고 고맙다고 하고 싶지만, 체면상 꾹 참고 선수들을 마주 봤다.

오민찬이 셋을 찾은 건 간단했다.

응당 큰 배의, 그것도 마린스라는 배를 운영하는 함장으로서 언제 물이 들어오는지, 노를 저어야 하는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그 시기는 바로 오늘이었다.

“자그마한 이벤트 하나 생각 중인데 선수분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현실적으로 당일에 갑자기 이벤트를 추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원래 있었던 이벤트에 스리슬쩍 끼워 넣는 건 큰 무리가 없다.

단장의 설명을 들은 이주학과 이호민이 먼저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늘 선발 출장이 아닌 만큼 부담이 덜 했다.

어제 사인을 하면서 느꼈던 기쁨도 선택을 쉽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경기 전에 가장 바쁜 포수인 김수호는 상황이 달랐다.

오민찬이 김수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수호 선수는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어차피 잠깐 하는 건데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팬들을 설레게 할 깜짝 이벤트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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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는 각 구단이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대부분 어린이를 위해 진행되는 이벤트였고 그걸 즐기기 위해 가족들은 이른 시간부터 구장에 도착했다.

전날 장문의 글을 쓴 박수호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날 마린스에서 기획한 이벤트는 여러 가지, 페이스 페인팅, 어린이를 위한 솜사탕, 그리고 사직구장 한쪽에 마련된 곳에서 캐치볼을 즐길 수 있게 해놨다.

차례대로 신나게 즐긴 가족이 마지막으로 캐치볼을 하기 위해 줄을 섰을 때였다.

“이호민 왔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갑자기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바로 솜사탕을 나눠주는 곳에 이호민이 등장해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다른 곳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이주학이래!”

이번엔 페이스 페인팅을 이주학이 직접 해주는 이벤트였다.

당연히 퀄리티는 처참했지만, 최선을 다하며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만 박수호 가족은 캐치볼에 줄을 선 상황.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눈치를 살핀 아빠가 의아해했다.

“애들아. 괜찮아?”

“네! 어제 사인도 받았잖아요!”

다행히 어제 사인을 받았던 게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꿋꿋하게 캐치볼 줄을 기다린 가족이 입장할 때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김수호다!”

설마 싶은 마음에 가까워지는 김수호를 바라본 가족이 점점 떨리는 심장을 이겨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예. 맞습니다.”

김수호가 웃으면서 미트를 꺼냈다.

“어, 수호야. 안녕? 또 보네?”

“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행운을 거머쥔 박수호와 박수한 형제가 김수호의 손을 잡고 캐치볼을 하러 가는 동안 부부는 그저 생각했다.

‘김수호 유니폼 더 사야겠다.’

‘용돈 좀 아끼지 뭐.’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의 대가치곤 저렴한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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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 정말 멋지던데?”

“예?”

“들었어. 경기 전에 아이들이랑 캐치볼 해줬다며? 만약 엘리가 그런 추억을 쌓았으면 절대 잊지 못했을 거야. 나한테도 말했으면 같이 하는 건데.”

“저야 구단에서 제안해서 한 건데요 뭐. 그리고 웰은 경기 준비해야죠.”

“다음엔 꼭 불러달라고.”

“넵. 구단에 말해둘게요.”

“오케이. 브로, 이제 나랑 캐치볼 해줄 준비가 됐어?”

“얼마든지 다 받아줄 테니까 편하게 던지세요.”

얼른 공을 던지고 싶어 하는 웰링턴보다 먼저 마운드에 올라 나한테 공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용기의 다섯 살 된 아들과 시타를 나선 오상엽의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결정구인 포크볼처럼 뚝 떨어지는 공을 던진 시구가 끝나고 드디어 마운드에 웰링턴이 올라갔다.

오늘 경기 한참 전부터 엘리를 위해 던지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만큼 경기 시작 직전에 가족이 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최근 웰링턴의 모습을 보면 걱정은 없지만, 투구할 때 힘이 들어가면 제구가 흐트러질지 모른다.

약간 긴장을 한 채로 사인을 보냈고, 초구가 날아왔다.

-퍼어억!

“스트라이크!”

걱정이 기우라고 느껴질 만큼 좋은 공이 미트 속으로 들어왔다.

웰링턴 특유의 위에서 아래로 찍히는 듯한 포심.

“스트라이크!”

연이어 위력적인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다음 공으로 커브를 요구했다.

이렇게 포심이 힘이 좋은 날엔 커브도 덩달아 위력이 올라간다.

“스트라이크 아웃!”

거기에 타자들은 웰링턴의 높은 릴리스포인트만큼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존 한참 아래로 떨어지는 공에 스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첫 타자 삼구삼진을 포함해 삼자범퇴로 첫 이닝을 마무리한 웰링턴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굿 리드. 브로. 덕분에 1회부터 깔끔하게 시작했어.”

“리드보다 공이 더 좋아서 그렇죠.”

“아니, 리드가 더 좋아서 그래.”

“아뇨? 공이 더 좋아서 그런 건데요?”

“그럼 그냥 둘 다 좋아서 그런 거로 할까?”

“그렇게 하죠? 생각해보니까 리드도 좋은 거 같긴 해요.”

“좋은 리드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준비한 게 있는데 경기 끝나고 보여줄까?”

“뭔데요?”

“이번에 엘리가 정확하게 브로의 이름을 말했어. 그거 찍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무 좋죠.”

어린이날에 딱 맞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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