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37화 (37/203)

37화 세대 교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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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가 시작하기에 앞서 LA다저스의 스카우트 에릭 화이트는 주변을 둘러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양키스, 레드삭스, 컵스, 필리스까지? 저 얼빵한 얼굴은 휴스턴의 메튜잖아.’

메튜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에릭이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한 것처럼 이번 브리즈번 올림픽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방문했다.

이유는 단 하나.

허하준을 보기 위해서였다.

‘당장 2년 뒤 포스팅이지만, 허 정도 되는 투수는 쉽게 찾을 수 없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최근 3년, 앞으로 2년 동안 FA 선발 투수를 통틀어도 허하준만 한 투수는 없었다.

심지어 나이도 어리다.

그만큼 빅마켓이라 불리는 구단들은 거의 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허하준을 주목하고 있다.

허하준 외에도 최정윤이라는 투수가 있긴 했지만, 관심을 두기엔 포스팅까지 아직 한참 남은 투수다.

차라리 최정윤보다 지금 포수 마스크를 낀 루키가 신경 쓰였다.

“킴이라....”

18살의 루키.

하지만 1군에 올라오자마자 리그 폭격 수준의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 허하준의 능력을 100%, 아니 그 이상까지 끌어낸다는 평가를 받는 포수.

“이딴 걸 믿으라는 거야?”

한국에서 보내온 자료를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부산 마린스 팬이 보낸 자료를 읽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포수 전향한 지 고작 2주, 그런 포수가 허하준의 공을 완벽하게 받아 낼 수 있다고?

차라리 그동안 마린스의 포수가 쓰레기 같아서 평범하게만 잡아도 허하준이 잘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더 그럴듯했다.

하지만 같이 한 세 경기, 노히트 노런과 3연속 완봉승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보면 알겠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좋았다.

즉, 강기호가 은퇴한 뒤 가끔 밖에 볼 수 없었던 허하준의 진짜 실력을 오늘 보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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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첫 경기였지만 솔직히 별로 안 떨렸다.

내 1군 데뷔 경기는 주 포지션도 아닌 포수였고, 중간에 노히트 노런 경기도 있었으니 예선전에 불과한 이번 경기에서 떠는 것도 이상했다.

거기에 투수도 허하준이다?

무서울 게 없지.

그건 그렇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전력은 메달권엔 가까웠지만, 우승권이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난 올림픽 4등이라는 치욕적인 등수를 기록해 심기일전으로 출전했다는 일본이나, 메이저리그 25인 외에 선수들로 가득 찬 미국이 우승에 가까웠다.

하지만 야구는, 특히 단기전에서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스포츠다.

“스트라이크!”

지금 이 경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강팀이라면, 네덜란드는 상대적 약팀이니까.

“스트라이크!”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초구 볼 이후 공격적으로 볼카운트를 따내고, 마지막에 헛스윙으로 마무리했다.

2회 초 네덜란드 공격은 그렇게 끝이 났다.

3회까지 벌써 삼진 5개.

네덜란드 선수 중 누구도 1루를 밟지 못했다.

이번 이닝은 비교적 편하게 풀어갔다.

확실히 1번부터 6번까지 전력이 집중돼 있다는 평가가 맞았는지 이번 이닝은 공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번 평가전에 허하준의 공을 상대해본 경험이 확실히 도움이 됐다.

타자 입장에서 어떤 게 까다로운지 알게 됐다랄까.

물론 허하준의 공은 가운데 던져도 치기 쉬운 공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점수 좀 뽑고 싶은데.

3회 말 공격, 선두타자는 황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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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타석에서 황인재를 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고작 작년 얘기라 옛날이라기엔 어폐가 있지만, 고등학교 때 보통 황인재가 4번, 내가 5번을 쳤으니 비슷하긴 했다.

물론 상황은 많이 달랐다.

상대 투수는 메이저 3선발까지 했던 스티브 위즐러.

우리 앞 타선 6명을 전부 잡아낸 걸 보면 쉽게 볼 수 없는 투수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140km 중반의 투심과 다양한 변화구는 노림수를 가져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볼!”

황인재가 초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오늘 작전은 최대한 공을 보는 것.

굳이 초반부터 무리하지 말고 투수의 약점인 약한 유지력을 노려서 중반에 승부수를 던지는 게 목표였다.

-따악!

“파울!”

물론 방금처럼 실투는 쳐야 했다.

황인재가 아쉬운지 잠깐 타석을 벗어났다 돌아왔다.

황인재의 강점이라면 역시 힘.

스치면 장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장사였다.

“볼!”

-따악!

볼 하나를 더 골라낸 황인재가 결국 3유간을 꿰뚫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워낙 공이 빠르기도 했고, 애초에 2루까지 갈 코스도 아니었다.

무사 주자 1루.

선취점을 중요시하는 김목근 감독님 특성상 당연히 번트 사인이 나왔다.

-딱.

예전에 2군에서 번트 연습했던 게 확실히 도움이 됐다.

힘이 완전히 죽은 채 3루로 굴러가는 걸 확인하고 1루로 뛰었다.

“아웃!”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잘했다.”

“감사합니다.”

“번트도 잘 대네!”

돌아오자마자 장비를 차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선취점은 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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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군. 타격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에릭 화이트가 짧게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꽤 놀란 상태였다.

‘허하준의 공을 완벽하게 잡아냈어.’

허하준의 공은 완벽했다.

오히려 지난 정보를 수정해야 할 정도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스플리터는 최소 65점 이상.’

포심도 비슷했다.

만약 이 모습을 시즌 내내 보여줄 수 있으면 최소 5점씩 더해야 했다.

정보를 수정한 에릭은 옆에 자그마한 표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맨 위에 KIM이라고 적었다.

“재밌겠군.”

허하준의 공을 완벽하게 잡는 것도 흥미로운데 더그아웃에서 따로 사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즉, 포수가 사인을 낸다는 뜻.

‘저게 18살이라고?’

예전에 다저스에서 뛰었던 강기호보다 더한 괴물이 있었다.

물론 타격 실력은 물음표였지만, 만약 타격만 평범하게 쳐준다면 꽤 좋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약간의 여흥이긴 했지만, 수년간 단련된 냉정한 시선으로 김수호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포구는 완벽하군. 그나마 프레이밍이 아쉬워.’

4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커트 보츠카가 결국 볼넷을 골라 나갔다.

허하준이 아예 볼넷을 안 내주는 투수도 아니었고, 오히려 견제 능력을 볼 수 있는 기회니 기꺼웠다.

1번 타자답게 보츠카의 주력 점수는 65점.

‘견제도 완벽하군.’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는지 선을 넘었다 싶으면 곧바로 1루로 공이 날아갔다.

결국 보츠카도 한발 양보했다.

‘무조건 뛰겠어.’

에릭 화이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스톱워치를 꺼냈다.

김수호는 어제 엔트리가 등록된 선수.

네덜란드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을 리 없다.

사실 있더라도 고작 3주에 불과한 기록이 전부이니 보츠카의 발을 믿고 한 번 걸어봄직했다.

허하준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2구를 던진 그 순간, 보츠카가 곧바로 2루로 향해 달렸다.

‘1.97초.’

정밀한 기계로 잰 게 아니라 약간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팝 타임은 딱 평균 정도.

하지만 공이 날아가는 속도와 방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2루수가 공을 잡자마자 보츠카의 손이 글러브에 닿았다.

“아웃!”

“와아아아!”

주변에 빨간 옷을 입은 한국인들의 환호에 에릭 화이트의 짧은 감탄이 묻혔다.

“팝 타임이 의미가 없는 송구군.”

그걸 본 에릭 화이트의 펜이 움직였다.

‘팝 타임 50점, 송구 70점. 팝 타임은 발전의 여지가 있음.’

자기가 써놓고 어이가 없어 실소한 에릭 화이트가 다시 지우려다 그냥 내버려 뒀다.

이제 한 달 차 포수.

발전의 여지가 과연 팝 타임에만 있을까?

‘어차피 튀어나올 송곳이었군.’

그리고 그 생각을 한 건 구장에서 에릭 화이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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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보츠카가 2루에서 아웃당했을 때 아까처럼 그 말을 외쳤을까?

궁금했지만 발음도 하기 힘들어서 물어보진 못했다.

“나이스 송구!”

공을 정확히 받은 최건우와 더그아웃에서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고 돌아왔다.

도루자 이후 나머지 2명을 삼진과 땅볼로 처리해 결국 이번에도 세 타자만에 끝이 났다.

4회 말.

이제 슬슬 중반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타석엔 2번 타자 최건우.

하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티브 위즐러에 막혀 뜬공으로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김규완도 마찬가지로 뜬공.

계속 공이 뜨는 걸 보니 한 방을 기대해도 좋은 타이밍에,

4번 타자 강주호 차례.

-따아악!

“갔나?”

“오오!”

모든 선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하지만 넘어가는 줄 알았던 타구는 담장 상단을 때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까비!”

“주호 형님, 늙긴 하셨네. 예전이었으면 무조건 홈런인데.”

“그거 말해도 되지?”

“미쳤나. 이런 말 한 거 알면 나 죽어.”

2루에 들어간 강주호는 더그아웃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고 세레모니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5번 타자 김민주의 타석.

-따악!

날카롭게 12간을 빠져나간 타구였지만, 상대 우익수는 어깨가 좋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결국 강주호의 발로는 들어올 수 없었고, 우오준이 땅볼을 치면서 결국 또다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열리게 돼 있다.

그건 네덜란드 선수들도 마찬가지인지 포심에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그래서 오늘 경기에서 쓴 적 없는 체인지업과 커브를 활용하니 방망이들이 내 눈앞을 계속 지나가더라.

그렇게 5회도 깔끔하게 마무리.

5회 말 선두 타자는 황인재.

그리고 이번에도 황인재는 깔끔한 안타를 뽑아냈다.

이거 어쩐지 데자뷔 느낌이 드는데.

더그아웃에서 나온 사인은 역시 번트.

3루수가 대놓고 들어오면서 혹시 페이크 앤 슬래쉬 사인이 나오나 더그아웃을 봤지만, 변동은 없었다.

이번에도 완벽하게 숨을 죽인 타구를 만들어내면서 임무를 완료했다.

“번트 제대론데? 규영아, 너보다 더 잘 대는 거 같은데?”

“오케이. 인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칭찬은 칭찬이니까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번트도 재능 있네.”

“놀리지 마세요.”

허하준의 웃음기 가득한 말에 괜히 툴툴거렸다.

“아쉬워?”

“그렇죠. 근데 뭐, 이해는 합니다. 솔직히 제가 감독님이라도 번트 지시했을 거예요.”

오늘 경기에 선발로 나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고작 번트 2번에 마음이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서도하와 이규영이 범타로 물러나면서 결국 상대 투수는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러면 마음이 꺾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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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준은 7회를 채우고 내려갔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투구 수 제한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게임이 참 답답하게 흘러갔다.

7회 공격마저 안타가 나왔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안타가 벌써 7개가 넘었지만 무득점.

그리고 황인재는 7회에 또 선두타자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안타.

누가 보면 리드오프인 줄 알겠다.

공교롭게도 같은 상황이 세 번 연속 나를 찾아왔다.

어, 세 번 연속? 이건 좀 그런데···.

스포츠의 전설 중에 삼연벙이 있다면 나는 삼연번이었다.

삼 연속 번트.

그 와중에 내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잘 대긴 했다.

그래도 이번엔 서도하의 안타가 나왔다.

하지만 우익수의 엄청난 송구로 홈에서 황인재가 아웃.

이규영이 출루에 성공하면서 2사 주자 1, 2루 기회가 이어졌지만, 결국 득점에 실패했다.

반대로 상대 타선은 허하준에 꽁꽁 묶이면서 2안타 1볼넷 무득점.

같은 0점이었지만, 내용이 달랐다.

8회 초엔 오상엽이 등판했다.

이쯤에서 최필주와 교체될 줄 알았는데 계속 마스크를 쓰게 됐다.

오상엽과 한국에서부터 계속 공을 받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았다.

리그 2위 마무리다운 터프함을 느끼면서 8회도 무실점.

8회 말 공격도 역시 안타가 있긴 했지만, 무득점이었다.

6번 타자 우오준 타석에 대타까지 썼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야구를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되자 덕아웃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진짜 굿이라도 해야 하는 날인가.

하스라도 있었으면 레타쿠 신이라도 불렀을 텐데.

결국 9회 초, 프렌즈의 마무리이자 리그 세이브 1위인 김형주가 등판해 깔끔하게 이닝을 끝냈다.

확실히 훈련 중에 공을 받아본 게 큰 도움이 됐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정규이닝, 9회 말.

선두타자는 황인재였다.

“차라리 그냥 홈런 쳐줘.”

마음 편하게 홈런을 응원했지만, 거짓말처럼 다시 한번 안타를 쳐내면서 1루로 살아나갔다.

마음을 비우고 타석에 들어섰다.

번트를 대려다가 공이 빠지는 것 같길래 한 번 접었다.

“스트라이크!”

“예? 이게요?”

내 눈엔 공 반개는 빠져보였는데.

한국어로 항의해봤자 통하지도 않았고, 그냥 포기하고 방망이를 눕혔다.

그때, 새로운 사인이 나왔다.

‘페이크 앤 슬래쉬.’

수비는 당연히 번트를 댈 거로 생각해 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

수비 위치만 봐도 살짝 툭 쳐도 곧바로 안타가 되는 거였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방망이를 세우고 그대로 정 가운데로 오는 공에 정확히 맞춰 때렸다.

-따아아악!

어, 좀 멀리 가는데?

“진짜 미친놈이냐!?”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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