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세대 교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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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이 부상 당했을 때 누구보다 철렁 인 사람은 당연히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하지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저 개새끼가!”
강주호가 고질적인 무릎의 통증도 잊은 채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왔다.
“야! 말려!”
다급한 김규완의 말에 선수 여럿이 강주호에게 달려들었다.
“놔! 이 새끼들아! 놓으라고!”
하지만 한번 눈이 돌아간 강주호는 자신을 붙잡는 선수들을 밀치면서 사건을 일으킨 곤잘레스에게 가려고 했다.
그 역시 덩치로 따졌을 때 강주호에 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눈을 벌겋게 뜨고 선수 여럿이 말려도 기어이 자신에게 눈을 떼지 않는 모습에 절로 움츠러들었다.
“도... 도깨비!”
언젠가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존재를 떠올린 곤잘레스가 오금이 저릴 무렵.
“선배님! 일단 양준 선배부터 괜찮은지 확인해야죠! 제발! 선배님!”
거의 절규에 가까운 김규완의 말에 강주호가 눈을 잠깐 감았다 떴다.
“놔.”
“서... 선배님.”
“놓으라고.”
“진짜 사람 치시면 안 됩니다. 선배님, 제발.”
“알겠으니까 놔.”
김규완을 비롯한 선수들이 조심스럽게 강주호의 몸에서 손을 뗐다.
천천히 강주호의 몸이 양준 쪽으로 움직이자 심판조차 움찔거리며 강주호에게 다가왔다.
“헤이, 캉. 오랜만이야.”
“예. 미스터 존슨.”
“제발 오늘 하루만 참아주면 안 될까?”
“알겠습니다.”
“정말이지? 오케이. 내가 저놈한텐 잘 말해 두겠네. 고마워.”
메이저리그 심판 출신인 존슨은 강주호의 전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하면 상대 선수의 이빨이 한두 개씩 사라졌던 그 전설.
아무튼 모두의 만류 끝에 강주호가 조치를 받고 앉아있는 양준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어. 늙어서 그렇지 뭐.”
한창때 어떤 선수가 홈으로 와도 밀리지 않았던 양준은 세월을 체감했다.
“나도 인제 그만둘 때가 됐나보다.”
“그런 말 할 정도면 괜찮네. 일어나라. 나이 먹고 그러고 있으면 후배들 보기 쪽팔린다.”
“얼씨구. 이럴 땐 부축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무릎 다쳐봐서 아는데 그 정도면 멀쩡한 거야 인마.”
툴툴거리면서도 강주호가 양준의 팔을 목에 감싸고 일으켰다.
지나가면서 곤잘레스를 한 번 훑고 그대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절뚝이는 다리로 전설을 부축하는 전설의 모습.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선수들은 두 명이 모두 더그아웃에 들어가고 나서야 양 팀 선수들이 소란스러운 장내를 정리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더그아웃까지 다가가자 안절부절못하는 최정윤이 보였다.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넘쳐나지만, 만약을 대비해 벤치 클리어링에서 선발투수들은 전부 나오지 말라는 감독의 명령이 있었다.
강주호는 양준을 최정윤한테 떨궈놓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수호 그놈, 덩치가 너무 작아.’
아무리 홈 충돌 규정이 있다지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게 포수다.
메이저에선 포수를 그냥 밀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포수는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결국 본인의 몸은 본인이 지켜야 하는 법.
그걸 위해서 반드시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강주호가 그렇게 생각할 때, 김수호는 영문 모를 한기를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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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국가대표 초비상! 양준, 쿠바와의 경기에서 곤잘레스와 홈 충돌.]
ㄴ 미친 쿠바새끼들 진짜 뒤질래? 홈 충돌 규정 어따 갖다 팔았냐?
ㄴ 시발, 양준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던데 괜찮은 거임???
ㄴ 야알못인데 양준이라는 선수가 그렇게 중요한 선수임?
ㄴ 까고 말해서 국대 전력에 50%라고 볼 수 있음.
ㄴ 와 ㅅㅂ. ㅈ된거 아님?
ㄴ 이 개새끼들아. 40먹은 양줌마 데려갔으면 몸 성히 돌려보내야지. ㅠㅠㅠㅠ
ㄴ 이제 우리 포수 누구냐?
ㄴ 최필주 주전에 김수호 백업인데... 솔직히 ㅈ된 거 같다.
ㄴ 근데 진짜 강주호 존나 무섭더라.
ㄴ 주장님 미국에 있을 때 별명이 치과의사였다.
ㄴ ? 먼 뜻임?
ㄴ 벤치 클리어링 때마다 상대 선수 이빨 무료로 발치해줌 ㅋㅋㅋㅋ
ㄴ 이거 하이라이트도 있음
ㄴ 와, 방금 보고 왔는데 개무섭데 ㄷㄷ
[양준 2주간 부상, 양준 대타 임시 포수 김수호는 누구?]
ㄴ ㅋㅋㅋㅋ 20살 경력 3주 포수가 국대? 지리네.
ㄴ 그래도 인성은 ㄱㅊ은 듯 기사 보니까 궂은일 도맡아서 했다잖아.
ㄴ 야구 선수가 야구나 잘해야지 ㅋ
ㄴ ㅅㅂ 쉴 시간에 예비라는 명목으로 데려가서 잡일 시켰으면 응원이나 쳐해 ㅡㅡ 솔직히 말이 예비지 양준 부상 아니었으면 존나 시간 낭비 아님? 그 시간에 쉬거나 훈련이라도 하는 게 낫지.
ㄴ ㅋㅋ 위에 꼴린스 팬 화났네. 아무튼 틀린 말은 아님. 걍 응원이나 합시다.
ㄴ 근데 최필주 평가전에서 허하준 공 흘리는 거 보면 김수호 얘 좀 수비에 재능 있는 듯? 허하준이랑 27이닝 포일 0개임.
ㄴ 아 허하준 전담으로 데려간 거구나?
ㄴ 맞음. 그런 느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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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이 전력의 50%라고 했던 말은 과장 조금 보태 맞는 말이었다.
현대 야구가 발전할수록 포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이런 큰 경기에선 더더욱.
다행히 쿠바와의 경기는 최지용의 호투와 강주호의 홈런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양준의 이탈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양준은 뛸 수 있다고 했지만, 최소 2주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내려왔다.
결국, 조직위의 동의하에 엔트리 교체를 감행했다.
IN 김수호 OUT 양준
김목근 감독이 보고 있는 종이 밑에 적힌 글씨.
그걸 보면서 김목근 감독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투수진에 신뢰를 쌓은 게 도움이 되긴 됐군.’
그나마 다행인 건 양준의 이탈로 가장 흔들릴법한 투수진이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김목근 감독의 주문이긴 했지만, 김수호 본인이 나서서 투수들의 공을 자청해서 받는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애초에 김수호에 대한 허하준의 신뢰도는 거의 100에 가까웠고, 최정윤이나 오상엽 등 많은 선수가 김수호에게 공을 받는 걸 부탁할 정도로 김수호는 투수들과 신뢰를 쌓았다.
블로킹은 애초에 허하준의 공을 한 번도 안 빠트렸다는 점에서 합격.
이제 남은 건 큰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였다.
U-18 대회의 기록이 있긴 하지만 올림픽은 급이 다른 대회였다.
큰 대회 경험도 시킬 겸 만약을 대비해 허하준의 전담 포수로 데려온 포수였지만, 최필주 혼자 남은 경기를 전부 소화하기엔 아직 남은 경기 수가 꽤 됐다.
“하준이 좀 오라 그래.”
김수호를 데려와야 했던 결정적 이유.
내일 네덜란드와 경기에 선발로 예고된 투수였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전에 오를 투수기도 했다.
“감독님. 허하준입니다.”
“어. 들어와.”
허하준이 들어와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앉자 김목근 감독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다음 경기, 수호랑 한 번 합을 맞춰보는 건 어떠냐.”
“예. 저야 좋습니다.”
4번째 경기인 도미니카와의 경기에서 내정된 선발은 스타즈 투수 이민수.
스타즈 포수인 최필주와 항상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김수호가 들어가기 껄끄럽다.
그다음부턴 하루 쉬고 곧바로 8강 전이니 그 전에 김수호가 선발 출장을 한 번쯤 하긴 해야 했다.
그러면 남은 경기는 네덜란드 전뿐이다.
어차피 김수호를 데려온 이유가 허하준 때문이었으니, 타이밍도 좋았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양준이 늦게 부상 당한 것보단 나았다.
허하준 역시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 수호를 잘 이끌어 줘라.”
“예. 아, 근데 제가 이끌 것 같진 않습니다.”
“어?”
“감독님이 걔를 모르셔서 그런데, 그놈도 욕심이 상당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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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이 부상을 당했을 때, 솔직히 남 일 같지 않았다.
결국 포수는 항상 저런 부상의 위협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당장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이미 최정윤이 가 있다고 들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선수는 전부 오지 말라는 양준의 말도 있었고.
그리고 내 올림픽 첫 출전 경기가 결정 됐다.
내일 하루 쉬고 다음 날, 네덜란드와 예선 3차전.
그나마 다행인 게 팀당 하루씩 있는 휴식일이 바로 내일이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사실 허하준이 선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반쯤 직감했으니.
“부담되냐?”
“조금요. 아무래도 내일 제 모습이 전부 양준 선배님이랑 비교되잖아요.”
“그럼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보통 투수와 포수가 있으면 포수가 투수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허하준과 있으면 반대가 된다.
내가 이 사람을 진정시킬 일이 있을까?
“뭘 그렇게 봐?”
“진짜 사람 맞죠? 외계인 아니죠?”
“시답잖은 소리 말고.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비교될 일은 없을 거야.”
“완봉승이요?”
내 말에 허하준이 피식 웃었다.
“좋네, 완봉승.”
4연속 완봉승이 기록에 있으려나?
그 전에 국제전도 포함되나?
허하준과 대화하면서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할 정도로 긴장은 사라지고 여유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올림픽 데뷔전의 날이 밝았다.
오늘 우리가 경기할 구장, 비티콘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낯선 구장이었지만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었다.
어느 구장이든 야구만 잘하면 장땡이다.
물론 호성적을 자신할 만큼 네덜란드는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사실상 네덜란드 본국보다 퀴라소, 아루바라는 네덜란드 속령에 속한 선수가 많은 팀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한국, 일본, 미국 등 유명한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오늘 나온 상대 선발 투수, 스티브 위즐러도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3선발로 뛰었던 선수였다.
선발 라인업에도 몇 번씩 들어봤던 선수들의 이름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도 꿀리지 않았다.
양준 대신 내가 8번에 들어간 걸 제외하면 우리도 최고의 선발 라인업이었다.
왜 9번이 아닌지 의아했지만, 9번 서도하의 작전 수행 능력이 워낙 좋으니 찬스를 상위 타순으로 연결하려는 감독님의 뜻 아닐까?
뭐, 타순에 관한 생각을 집어넣을 때가 됐다.
“갈까?”
“예.”
오늘 경기는 우리나라가 말 공격으로 진행된다.
1위로 진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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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가 강호긴 하지만, 약점이 없는 팀은 아니다.
1번부터 6번까지는 흔히 AAAA급으로 평가 받는 메이저리거와 유망주, 그리고 7~9번은 마이너 또는 자국 리그 팀 선수였다.
그만큼 1회, 2회만 순탄하게 넘기면 이후는 편해질 거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선두타자로 나온 커트 보츠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왼쪽 타석에 바짝 붙어 섰다.
대놓고 우리를 압박하면서 바깥쪽 공을 치겠다는 생각인데, 굳이 뜻대로 해 줄 필요 없었다.
‘몸쪽에 꽉 찬 포심.’
-퍼억!
“스트라이크!”
판정을 듣고 보츠카가 심판을 살짝 노려봤다.
타자의 몸과 거의 공 한두 개 차이 나는 거리였지만, 그건 보츠카가 워낙 가까이 붙어서 그런 거였고 공은 홈플레이트 끝에 잘 들어왔다.
판정에 불만 있으면 떨어져 서던가.
하지만 보츠카는 꿋꿋이 아까와 같은 위치로 타석에 섰다.
다시 한번 기 싸움을 거는 모습, 절대 밀리면 안 된다.
이번에도 몸쪽 포심, 하지만 아까보다 높게.
내가 아는 허하준은 이런 걸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역시 망설임 없이 다리를 들었다.
“볼!”
“Godverdomme!”
뭐라는 거야.
솔직히 정상적으로 섰으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공이었다.
하지만 보츠카처럼 타석에 붙었을 땐 위협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심판에게 항의하는 대신 날 노려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대충 욕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이게 국제전의 재미인가 싶다.
서로 욕을 해도 못 알아먹으니 그냥 넘기면 그만이었다.
승부는 다시 한번 몸쪽.
-딱!
“파울!”
존에 살짝 안쪽으로 들어오는 타구는 그대로 보츠카의 몸쪽으로 휘어 들어 왔다.
컨택이 되긴 했지만 내버려 뒀으면 볼이 될 수도 있었던 슬라이더.
이걸로 볼카운트 1-2.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타자가 원하던 코스로 던져주기로 했다.
바깥쪽에 포심처럼 날아오던 공이 순식간에 아래로 뚝 떨어졌다.
허하준에 대해 연구했겠지만, 실제로 처음 보면 속을 수밖에 없는 스플리터.
어떻게든 떨어지는 궤적에 맞추기 위해 방망이가 따라갔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공은 가랑이 사이에 낀 내 미트 속으로 정확히 들어왔다.
공을 잡고 살포시 태그를 하니 마치 인형처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Godverdomme!”
경기 끝나고 네덜란드 욕이라고 구글에 치면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