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38화 (38/203)

38화 세대 교체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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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서 하는 얘기지만 이번 경기에서 만약 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3회부터 9회까지 주자가 안 나간 적이 없었고, 8, 9회를 제외하고 전부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었다.

잔루는 총 9개.

승리했으니 된 거 아니냐고 하기엔 경기 내용이 너무 답답했다.

이기고도 욕먹는 경기가 딱 이번 네덜란드전을 말하는 거였다.

타자 중에 유이하게 욕 안 먹은 선수가 있다면 나와 황인재 정도?

[결국, 막내가 해냈다! 황인재 4안타, 김수호 끝내기 홈런!]

ㄴ 오늘 경기 봤더니 저혈압이 완치됐어요 ^^ 국가대표 감사합니다.

ㄴ 김수호 왜 데려갔냐고 까는 놈들 다 아닥해서 기분 좋네

ㄴ 중반에 졸려서 잤다가 9회 말만 본 내가 승자

ㄴ 진짜 타선 존나 역겹더라. 그리고 김목근 번트 좀 그만 대 ㅡㅡ 저런 홈런 치는 애한테 번트만 시키냐. 존나 보는 눈 없네.

ㄴ ㅇㅈ. 솔직히 페이크 앤 슬래쉬 홈런은 지렸다.

ㄴ 팩트는 김목근 감독이 김수호 선발했죠? 그거 보고 욕한 놈들이 여기 태반이죠?

ㄴ 변비 타선 보니까 답답해 뒤지겠던데 20살 아가들이 잘하니까 기분은 또 좋네.

ㄴ 드디어 양준 후계자 나왔다.

ㄴ ㅡㅡ 강기호 후계자지 먼 양준이야.

기사와 댓글을 봐도 그랬다.

내 욕은 당연히 없었지만, 팬들이 꽤 많이 화났나 보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1점만 냈어도 편히 봤을 텐데, 결국 9회까지 마음 졸이면서 봤을 테니까.

이왕 본 김에 다른 기사들도 읽었다.

[한국, 네덜란드에 끝내기 승리! 허하준 7이닝 무실점, 김수호 끝내기 홈런.]

[허하준과 김수호 배터리, 국제전에서도 무실점 기록 이어가, 현재까지 34이닝 무실점.]

[답답한 경기력,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다.]

[4번의 번트, 묵묵히 수행한 김수호. 이것이 국가대표다.]

[올림픽 데뷔 경기 끝내기 홈런! 알고 보니 데뷔 첫 타석도 끝내기 홈런!]

[김목근 감독 승리 인터뷰]

차마 마지막 인터뷰는 제목만 봤을 뿐 읽지 못했다.

댓글에 얼마나 많은 욕이 달려있을지 짐작이 안 됐다.

기사들을 보다 보니 곧 내가 원하던 기사가 올라왔다.

[김수호 승리 인터뷰!]

홈런을 치고 나서 워낙 흥분했던 터라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가 올라오길 기다렸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대충 훑어보니까 이상한 말을 한 건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중요한 걸 몇 가지 읽었다.

Q. 홈런을 친 소감은 어떤지.

김. 사실 페이크 앤 슬래쉬 작전 때문에 공에 맞춘다는 것에만 집중해서 넘어갈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Q. 동갑인 황인재가 계속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를 쳤다. 본인은 무려 3연속 희생번트를 댔는데 분하지 않았는지.

김. 제가 처음에 번트를 너무 잘 대서 시키신 것 같습니다. (웃음) 농담이고 아마 오늘 투수가 허하준 선배라 1점을 뽑으면 이긴다는 생각으로 그러신 것 같다.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뛰는 이상, 다음 경기에서도 언제든지 번트를 댈 준비가 됐다.

사실 인터뷰에서 전부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분하지 않았으면 거짓말이다.

나름 올림픽 데뷔전인데 번트만 댄다니.

하지만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다섯 번째 타석에도 번트를 대야 했으면 군소리 없이 댔을 거다.

자존심은 상하겠지만, 내가 보여준 것도 없으니 1점 승부에선 감독으로서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싫다면 실력으로 나를 증명하면 되는 일이다.

감독에게 번트가 아닌, 강공했을 때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면 된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뭐가 됐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우승이니까.

그렇게 짜릿했던 하루가 끝이 났다.

다음 날 훈련장.

“수호야, 물 마실래?”

“감사합니다.”

“아이구. 날도 더운데, 고생이다. 여기 에어컨 있는 데로 와라.”

“감사합니다.”

“어제 공 받느라 피곤했을 텐데, 내가 마사지라도 해줄까?”

“선배님, 그···. 진짜 괜찮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부담 갖지 마.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 수호야. 이럴 때 즐겨.”

훈련장에 오자마자 이규영이 달라붙어서 계속 무언가를 해줬다.

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는데, 이젠 진짜인가 싶다.

“너 아니었으면 어제 역적으로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선배님도 그만 누워 계시고 여기로 오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수호야, 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유격수 우오준이었다.

어제 이규영의 성적은 4타수 1안타.

하지만 그 1안타마저 황인재가 홈에서 잡히는 바람에 빛을 못 봤다.

우오준 역시 4타수 무안타로 6번에서 계속 아웃당해 황인재가 선두타자로 나오게 된 원인 제공자였다.

“선배님, 근데 수호 파란색 유니폼 좀 잘 받지 않습니까?”

“맞네. 수호야, 너 약간 여름 쿨톤이다?”

“오, 그런 것도 아십니까?”

“당연하지. 선수들도 관리하고 그래야지. 요즘 길거리만 나가도 사복 패션 다 찍히는데.”

“근데 그거치고는 좀···.”

“뭐? 이 새끼가!”

우오준이 장갑을 던지자 이규영이 휙하고 피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아오. 저 저, 예전에 신인 때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 대가리만 커가지고.”

그러더니 날 빤히 쳐다봤다.

“수호야, 너 진짜 파란색 잘 어울린다. 그 좀 남색에 가까운 파란색 유니폼은....”

“그래? 그럼 난 무슨 색 유니폼이 어울리디?”

우오준이 녹이 슨 로봇처럼 삐걱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하. 형님은 당연히 검은 유니폼이 최고죠. 아, 감독님이 찾는다고 하셨는데 전 이만 가보겠습···.”

“어디서 되지도 않는 영업을 하고 있어. 얘 FA 될 때면 넌 은퇴야 인마. 이상한 거 하지 말고 방망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라.”

“형님, 아아, 수호도 있는데 이건 조, 아악!”

강주호가 우오준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눌렀다.

겨우 풀려난 우오준이 이규영처럼 도망쳤다.

“어후, 저런 놈이 국대인게 말이 되냐? 나이를 먹어도 변하질 않아.”

“그래도 풀 죽어 있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어제 기사에서 저 두 명을 욕하는 글이 얼마나 많던지.

그래도 이주학이었으면 벌써 기죽어서 구석에 박혀 있을 텐데 1위 팀에서 나오는 여유인지 지난 경기를 훌훌 털어버리는 저 멘탈은 부러웠다.

“오늘 선발인 거 들었지?”

“예. 아까 봤습니다.”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장하게 됐다.

하지만 포수는 아니었다.

오늘 경기는 양준이 멀쩡했어도 최필주가 선발 포수였다.

선발 투수인 이민수와 몇 시즌 내내 합을 맞춘 최필주 대신 다른 포수를 쓸 이유는 없었다.

오늘 내 포지션은 1루수, 그리고 7번 타자.

강주호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다.

강주호가 더위 때문에 힘들어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는지라 관리를 할 수 있으면 좋았다.

“스읍. 너 키가 몇이냐?”

“원래 183이었는데, 지금은 184cm입니다.”

“흠. 기호 그놈이 186이었으니까···.”

나를 보면서 무언가 생각하던 강주호가 나한테 말했다.

“한국 돌아가면 나랑 어디 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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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B조의 순위는 한국이 3승 무패로 1위, 도미니카 공화국이 2승 1패로 2위, 네덜란드가 2승 2패로 3위, 대만이 1승 2패로 4위, 그리고 쿠바가 전패로 꼴지다.

네덜란드는 대만에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어제 경기로 3위를 확정 지었다.

이제 남은 건 1, 2등 자리와 4, 5등 자리.

한국이 이기면 전승으로 1위, 도미니카에게 지면 승자 승 원칙에 따라 2위였다.

쿠바와 대만은 이기는 팀이 4등, 지는 팀이 탈락이다.

어제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 2등을 확정지은 게 큰 힘이 됐다.

사실 1등과 2등은 큰 차이 없었다.

미국과 일본도 1, 2위를 다투고 있었고, 1, 2등으로 올라가면 맞붙어봐야 4강이니까.

하지만 2등과 3등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언젠가 만날 팀이라 해도 나중에 만나는 게 무조건 좋다.

그래도 이왕이면 1등으로 올라가는 게 그림이 좋았다.

그건 도미니카 공화국도 마찬가지인지, 우리처럼 라인업에 큰 변화는 없었다.

상대 선발은 로드니 히메네스.

150km의 빠른 포심과 체인지업, 그리고 싱커를 던지며 일본의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약 중인 투수였다.

우리 선발 투수인 이민수는 언더핸드 투수로 투심과 싱커가 주 구종이다.

언더핸드가 익숙하지 않은 도미니카에 적합한 선발이었다.

“플레이 볼!”

심판의 콜과 함께 우리 공격부터 경기가 시작됐다.

“선배님. 제가 기깔나게 밥상 깔아 놓겠습니다.”

어제 테이블세터로서 역할을 못 한 게 아쉬웠는지 이규영이 큰소리치고 타석으로 나갔다.

그리고 본인이 한 말을 지켰다.

“볼넷!”

“상대 선발, 불쌍하네.”

“그러게요.”

물론 특유의 컨택과 함께 공개수도 9개나 뽑아냈다.

상대 팀일 땐 정말 상대하기 싫었지만, 같은 팀이 되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이번에도 선취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최건우가 번트를 대면서 주자를 2루에 보냈다.

어제와 과정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김규완의 완벽한 스윙에 걸린 공이 그대로 담장을 때렸다.

이규영은 홈으로, 김규완은 2루에 안착.

그리고 오늘 강주호 대신 4번 타자로 나온 김민주가 기술적인 타격으로 짧은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순식간에 2대0으로 앞서갔다.

5번 타자는 황인재.

-따아악!

청량한 타구음이 들리고, 1루에 있던 김민주가 타구를 확인하고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황인재는 배트를 집어 던지고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왔다.

스코어 4대0.

“나이스!”

“어제부터 미쳤네!”

황인재가 홈런을 쳤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황인재가 애지중지하는 머리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모습을 1열에서 직관하니 꿀잼이었다.

애초에 지금은 같은 팀이기도 하고.

“잘 쳤더라.”

“어.”

아무 말도 안 하기 뭐해서 그냥 저렇게 말했다.

황인재도 딱히 기대한 표정은 아니었고.

구석에 앉아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지는 걸 보니 오늘 홈런 하나 더 쳤으면 좋겠다.

또 망가지는 거 보게.

아무튼 벌써 4점을 냈다.

6번 타자 우오준은 깔끔하게 삼진.

2아웃 주자 없는 상황.

이미 4점이나 낸 상태라 출루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오늘 포심이 완전 별론데? 제대로 하나 돌려봐.”

우오준의 조언을 듣고 타석에 섰다.

나도 대기타석에서 공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벌써 이닝이 시작한 지 한참 됐다.

나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지 모르지만,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7번 타자를 상대로 길게 끌고 나가고 싶지 않을 거다

내가 노리는 건 초구.

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진 포심이었다.

-따아아악!

그런 타구들이 있다.

치자마자 넘어갔다고 느낌이 오는 타구.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배트를 던져버리고, 그대로 1루로 뛰었다.

“나이스!”

“배트도 넘기겠더라!”

“빠던 제대론데?”

머리 위로 쏟아지는 축하를 받으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황인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잘 쳤더라.”

“그래. 고맙다.”

나는 황인재가 머리 망가지는 거라도 봤지, 황인재는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

유치한 생각이지만, 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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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5점의 리드를 얻은 이민수는 적극적으로 공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유격수 우오준, 2루수 최건우 키스톤 콤비의 명품 수비와 외야 어디든 커버하는 중견수 이규영의 수비 범위는 상대 타선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특히 2회 담장에서 점프로 잡아낸 수비는 하이라이트에 나올법한 수비였다.

“어때? 선배의 위대함이 좀 느껴지냐?”

이규영이 돌아오면서 말하자, 말없이 엄지를 들었다.

“그래? 그럼 가서 물 좀 떠와 봐. 아, 에어컨 자리 좀 비워놓고, 마사지도 부탁해.”

사실 경기전에 나한테 저것들을 해준 건 본인이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나름 합리적인 의심인 게, 황인재와 나를 제외하면 이규영이 타자조 막내였다.

즉, 저번 WBC까지만 해도 국가대표에서 이규영이 막내 생활을 한 거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왜 황인재한텐 안 그러세요?”

“뭐가?”

사실 우리가 만난 건 저번 돌핀스전이 전부.

그때 서로 인사하고 얘기도 몇 마디 나누긴 했지만, 장난까지 칠 사이는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황인재와 더 많이 만났을 거다.

“지금 저한테 하시는 거 있잖아요.”

“아, 재미없잖아.”

“아···. 네.”

심플하지만, 단번에 이해되는 말이었다.

고등학생 땐 선배라고 해봤자 전부 황인재한테 아무 말도 못 했다.

고교 최고의 재능이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한테 뭐라 했다가 구설수에 오를 바에 차라리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전국 대회 우승이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선배라고 해봤자 어린애들.

아무리 황인재라도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럼 저는요?”

“너? 너는 툭 건들면 쏟아져 나오잖아. 재밌어.”

음.

좋은 건가?

아무튼, 여기서 황인재의 이미지는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실력 좋지만 무뚝뚝한 막내.

나름 정답을 얻고 타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규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동기, 좀 그래.”

“뭐가요?”

“피닉스 소문도 그렇고, 음, 아니다. 넌 몰라도 돼.”

이규영에게 더 말해달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뭐야, 찝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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