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26화 (26/203)

26화 첫인상 - 3

#

마린스의 단장실 안.

마린스 단장 오민찬은 근 몇 년 동안 단장들이 해본 적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외국인 투수···. 바꿔야 하나?”

야구의 계절 중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여느 때와 같이 마린스의 등수는 아래에서 가장 첫 번째.

하지만 벌써 포기하기엔 5위가 너무 가까웠다.

“10경기면 할만하지.”

차이가 많이 나는 건 맞다.

하지만 지금이 시즌 막바지도 아니고, 이제 고작 절반 조금 넘겼을 뿐이다.

만약 지금 같은 기세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격차는 아니다.

그렇다면 단장으로서 팀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했다.

시즌 중 전력 상승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 교체.

“트레이드는 안 되고.”

이번 시즌이 역대급 혼전이라고 불리는 만큼 트레이드 문의는 뚝 끊겨있다.

정확히 말해서 허하준과 김수호 등 되지도 않는 문의만 있을 뿐이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을 검토할 차례.

현재 마린스의 용병 구조를 보면 여느 팀처럼 2명의 선발, 1명의 타자가 있다.

그중 안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타자 잭 미켈뿐.

투수인 브릭 웰릭스와 요그 하스는 언제 바뀐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나마 요그 하스는 포스트 시즌을 간다는 전제하에 특유의 흔들림 없는 멘탈이 플러스 요인이다.

마린스가 포스트 시즌을 갈 수 있을지는 차치해도 팀 내 최다승이기도 했고, 직전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도 긍정적이었다.

내일 있을 수원 나이트와의 경기에서도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거다.

“이 친구가 문젠데.”

하지만 브릭 웰릭스는 상황이 다르다.

15경기 5승 8패 5.41 ERA.

바로 전 경기에선 시즌 최악투와 더불어 스스로 무너져 방어율이 망가졌다.

제구가 그리 좋지 않은 투수가 평점심을 잃었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오늘 경기는 올림픽 휴식기 전 웰의 마지막 공식 선발 등판.

아마 오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평소의 마린스였다면 돈이나 아끼자는 마인드로 교체를 안 했겠지만, 지금은 구단주가 관심을 보인다.

“저 복덩이 녀석.”

그 변화의 중심에 김수호가 있다.

만약 오늘 브릭 웰릭스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조금 더 고민해볼 법하다.

한 번으론 부족하지만, 7월이 끝나기 전 기회는 더 있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김목근 감독에게 받은 제안을 생각하면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더 있으니까.

물론 그 기회는 오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주어질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을 브릭 웰릭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야구계에서 용병에 빗대어 한 해 농사를 좌우한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까보기 전엔 모른다는 뜻도 있다.

그건 용병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과 떨어지고, 낯선 이국땅에 와서 도전하는 건 보통 마음으론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침부터 웰릭스와 통역이 나를 찾아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루키, 아, 아니지. 가디언. 네 도움이 필요해.”

“그 가디언이라는 말만 안 하면 도와줄게요.”

하스가 말한 건가?

하지만 옆에 있던 통역이 내 눈을 피하는 걸 보니 범인이 여기 있었다.

“오케이 킴.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몰라.”

“오, 그 노래를 어떻게 알아요?”

“뭐라고?”

아버지가 자주 들으셨던 어쩌면이라는 노래에서 저런 가사가 있었는데.

내 설명을 듣자 안 그래도 그늘이 짙던 웰릭스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야.”

“나도 알아요 웰. 단지 아직 경기가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굳어있어서 그랬어요.”

“후. 그래, 고마워. 일단 걸으면서 얘기할까?”

웰릭스의 얘기를 요약하면 자신은 한국에 오래 있고 싶고, 내년엔 가족까지 데려올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망치면 가족은커녕 남은 기간에도 잔류를 장담할 수 없다.

최근 한국에 오는 용병들은 크게 세 가지 케이스가 있다.

첫 번째는 마이너리그보다 편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 해서.

보통 20대 중반인 선수들이 많이 선택한다.

돈도 많이 주고 일정도 마이너리그보다 훨씬 널널하다.

그렇다고 메이저에서 관심을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니 생각보다 많은 선수가 이런 케이스였다.

우리 선수 중 잭 미켈이 여기에 속했다.

두 번째는 재능의 한계를 느껴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경우.

AAA급~AAAA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서른이 넘고 결혼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꾀하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다.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외국인 선수는 일본이나 한국에 좋은 조건으로 잔류할 수 있으니 많이 선호하는 걸로 알고 있다.

웰릭스가 이 경우고.

마지막은 기량 하락으로 마이너 대신 한국을 선택한 케이스.

하스는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웰릭스는 지금 성적으론 한국에 계속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 거다.

‘고민이 바로 해결됐는데?’

나야 이렇게 날 찾아와주니 좋았다.

오히려 저번 주에 같이 경기를 안 뛴 게 도움이 됐다.

어제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으면서 고민한 건 마운드 위에서 웰릭스의 고집이 너무 강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예민했고.

먼저 말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웰릭스가 부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럼 우리 저번에 했던 약속 지키러 가볼까요?”

“약속?”

“예. 노히트노런이요.”

#

웰릭스도, 나도 오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라면 애초에 진귀한 기록이 아니겠지.

그래서 우리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갖기로 했다.

일단 처음엔 첫 타자, 첫 이닝에 집중하기.

“우리가 아까 한 얘기 명심해요.”

“알겠어. 걱정하지 마.”

어제 걱정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웰릭스는 리드를 잘 따라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저번 경기에서도 3회까지는 잘 막았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커브로 삼진으로 잡고 포효하는 웰릭스의 모습.

볼넷을 내주며 제구가 흔들리긴 했지만, 정타는 허용하지 않으며 무실점.

2미터가 넘는 오버핸드 투수가 던지는 커브란, 정말 매력적인 공이다.

하지만 이 전전 공도 충분히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프레이밍, 빨리 배우고 싶은데.’

하지만 강기호가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배우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시즌이 끝나고 배우기로 했다.

“웰, 미안해요. 좀 더 빨리 잡을 수 있었는데.”

“응? 아니 전혀. 만약 이전 포수였다면 방금 공도 볼로 만들었을걸?”

음,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 달랐다.

사실 웰릭스가 예민한 게 아니라 우리 포수가 문제였던 거 아닐까?

“그래도 미안하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

아쉽게 첫 타석에서 미안함을 갚지 못했다.

2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타석에 들어와 좌익수 뜬공.

5회 초, 무사 1루에 타석에 들어와 볼넷을 골라냈지만, 후속타 불발로 무사 1, 2루 무득점.

웰릭스 역시 2이닝에 하나꼴로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어제 경기는 양 팀 선발투수들이 완벽한 투구를 하면서 타선을 잠재웠다면 오늘은 타선이 답답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7회 초, 6번 타자 김민석이 타석에 들어섰다.

“악!”

하지만 투수의 초구가 손에서 빠졌고, 김민석은 허벅지에 공을 맞고 출루.

무사 1루 상황.

2:2 동점 상황에서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거 알아? 오늘도 김목근 감독님이 오셨대.”

타석에 들어서자 마운드에 올라갔던 포수가 돌아오면서 어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말을 걸었다.

“아, 정말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더그아웃을 확인했다.

번트 사인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준과 이민상 대신 날 믿겠다는 뜻.

“그렇게 싱겁게 반응할 거야? 쯧, 오케이.”

다행히 상대 포수도 더 말을 걸진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상대 선발은 6회를 마치고 내려갔다.

즉, 바뀐 투수가 초구부터 타자를 맞췄다는 뜻.

그렇다면 몸쪽으로 승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타석에 완전히 붙었다.

“너무 바짝 붙은 거 아니에요?”

포수가 볼멘소리로 심판에게 따졌지만, 심판은 내게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볼!”

결국 경기는 그대로 시작했고, 초구는 완전히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진정해!”

포수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지만 투수의 표정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볼!”

결국 다음 공도 빠지면서 2볼.

“좀만 뒤로 가봐. 공 던질 때 맞겠다. 걱정돼서 그래.”

“예.”

잠깐 타임을 요청하고 포수가 공을 던질 때까지 기다렸다.

포수가 다시 공을 던지자 아까처럼 타석에 딱 붙었다.

“후. 그래 좋아.”

“볼!”

이번엔 완전히 솟구친 볼.

급하게 뒤를 확인했지만, 포수가 캐치에 성공했다.

1루 주자에게 빠지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스치듯 본 포수의 표정은 아까보다 확연히 굳어있었다.

이제 볼 카운트는 3볼.

타격할지, 지켜볼지 결정해야 했다.

“스트라이크!”

결국 하나를 그대로 보냈다.

흔들리는 투수를 상대로 만약 병살이라도 나왔다간 재앙이 따로 없다.

이걸로 볼카운트 3-1.

사실 이번에도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따아악!

아무리 그래도 방금과 똑같이 한 가운데로 오는 공을 보낼 순 없지.

잘 맞긴 했지만, 홈런이 되기엔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안타를 확신한 듯 주자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주자를 따라 1루를 지나 2루로 들어갔다.

하지만 3루 코치의 팔은 계속해서 돌리고 있었고, 공을 살짝 확인하고 그대로 3루로 달렸다.

손이 3루 플레이트에 닿는 것과 동시에 나를 태그하는 게 느껴졌다.

“세이프!”

하지만 세이프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돌아본 시야에 3루수가 공을 놓친 게 보였다.

“잘했다! 아주 좋았어!”

이후 이준이 전진 수비를 뚫어내는 안타로 느긋하게 홈으로 들어왔다.

“어때요, 제 사과.”

“완벽했어.”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사과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

상대 공격 기회는 아직 3번 남아있다.

좀 더 점수를 냈으면 좋았겠지만, 2점의 지원이 든든한지 웰릭스는 7회 말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특히 마지막 하이패스트볼로 잡아낸 삼진은 나조차 짜릿할 정도였다.

7이닝 2실점.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불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따아악!

8회 말, 셋업맨 정태석이 선두타자로 나선 최건우에게 홈런을 허용하고 1점 차로 쫓기자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볼!”

“볼!”

“볼!”

“볼!”

심지어 다음 타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이제 4번 타자의 차례인데, 최악이다.

벤치에선 다음 투수가 준비할 때까지 시간을 벌라는 사인이 나왔다.

결국 견제구만 5번 연속 던지고 초구가 볼이 되고 나서야 투구가 교체됐다.

아직 9회가 남았기 때문에 마무리 이용기 대신 선택한 투수는 이호민.

무사 1루, 그리고 불리하게 시작하는 볼카운트.

“스트라이크!”

아마 타자도 이번 공은 그냥 지켜보자는 느낌인지 다행히 곧바로 카운트를 따라갔다.

“스트라이크!”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방망이 소리와 함께 슬라이더로 헛스윙 유도를 해내 이걸로 볼카운트 1-2.

“파울!”

“파울!”

“볼!”

“파울!”

하지만 그 다음부터 존 안에 넣는 족족 파울을 만드는 바람에 더 이상 던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니, 딱 한 군데 안 던진 곳이 있긴 했다.

근데 여길 던질 수 있을까?

제구가 안되면 큰거 한 방 맞고 동점을 허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굳힌 뒤 이호민에게 사인을 보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투구가 이어지고, 공이 내가 원했던 곳과 정확히 일치 되어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몸쪽 높은 코스.

아직 좋아하긴 일렀지만, 투수가 정확히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던지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느껴지는 이 짜릿함은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흠. 이호민, 저 친구도 괜찮군요.”

“배짱이 좋아.”

4년 뒤, 여전히 자신이 감독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유망주가 성장하는 걸 보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모든 선수를 평등하게 볼 수 있고, 성장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자리는 아마 국가대표 감독뿐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호 저 친구는 어떤가.”

“실제로 보니 상당히 단단하네요. 프레이밍이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서 심판이 신뢰하는 느낌입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양준이가 곧 은퇴해서 4년 뒤가 막막했는데 쓸만한 포수가 드디어 나오네요.”

포수난은 마린스만 겪은 것이 아니다.

국대 포수 양준과 제 2포수 최필주를 제외하면 마땅한 포수가 없다.

심지어 양준은 40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국가대표로 뛰는 중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그래서 다음 올림픽이 걱정됐지만, 어차피 그건 4년 뒤 얘기일 뿐.

굳이 자신들까지 여기에 올 이유는 없었다.

김수호라는 저 포수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줘도 변하는 건 없다.

“이미 명단 확정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미 명단을 제출했고, 수정하기 위해선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김목근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만, 무언가 생각이 있으니 불렀겠지 하는 마음이다.

“연습경기 상대는 결정하셨습니까?”

“그래.”

국가대표가 출국하기 전, 보통 프로 구단을 상대로 연습경기를 한다.

그리고 그 구단은.

“마린스와 한다.”

꼴찌 팀, 마린스였다.

0